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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영화관에 갈까요?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김하은

2022-09-08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을 ‘애활가’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남녀가 구분된 자리에 앉았다. 애활가들은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적잖은 상영비를 물고서라도 극장으로 모였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가 한강에 뛰어내리려 했다는.....



영화를 보러 나서는 길은 항상 두근거린다. 큰 화면에 펼쳐지는 화면은 늘 새롭고, 실제보다 몇 배나 큰 소리는 몰입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스토리에 마음을 빼앗긴다. 요즘은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구현하는 영화관에 자주 간다. 좌, 우, 뒤, 천장 등에서 나오는 소리는 화면 속 상황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은 입장으로 이 상황을 돌아본다.


우리나라에 영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지금과 사정이 많이 달랐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인 거류지에 있는 ‘혼마치좌’라는 극장에서 활동사진이 상영되었고, 미국인 애스터 하우스가 가스등으로 단편 활동 사진을 틀었다. 그 다음해인 1899년, 미국인 버튼 홈스는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활동사진을 찍었다. 이 활동사진은 대한제국 황실에서도 상영되었다. 황실에서 또 한 번 활동사진을 상영하는데, 1907년 덕수궁 중명전에서 영사기를 작동한 기사 원희정이 활동사진이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내무대신 송병준이 정운복, 한석진, 김상연을 초청해 변사로 내세웠다. 그들이 조선인 첫 변사였다.



국내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포스터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국내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초기 영화는 무성영화였다. 다채로운 소리를 입히기 위해 무대 밑에 오케스트라나 악단이 음악을 연주했다. 그리고 변사가 옥양목을 펼친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을 설명했다. 변사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소개했고, 인기 있는 변사에겐 많은 팬이 뒤따를 정도였다.


당시 극장은 스크린 앞에 무대가 있어서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곡예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기 때문에 ‘극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때 표현이 여전히 남아서, 요즘도 ‘영화관’과 ‘극장’이라는 명칭을 함께 쓴다.

 

대한제국이 힘을 잃고 일제가 강제로 우리 나라를 점령하던 시기에 극장에는 ‘임석 경관’이 함께 있었다. 합법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인 극장에서 혹시라도 있을 소요 사태를 막으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극장에서 대한독립을 외치는 선전문을 뿌린 사람도 있었고, 불온한 발언을 하는 변사가 잡히기도 했다. 극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대규모로 싸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던 걸 보면, 관람객에게 영화는 단순히 재미 이상의 의미였다.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을 ‘애활가’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남녀가 구분된 자리에 앉았다. 애활가들은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적잖은 상영비를 물고서라도 극장으로 모였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가 한강에 뛰어내리려 했다는 신문 기사가 있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재떨이가 놓인 곳도 있고, 냉난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겨울에는 상영을 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었다.


검열은 점점 강화되어 필름은 모두 상영 전에 조선총독부에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필름은 잘리고 편집되어, 원본과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상영 전에 설명 대본과 맞추어 보는 수고로움도 겪어야 했다. 외화일 경우에는 설명대본이 영어로 써 있을 때가 많아서 이를 읽지 못하는 변사가 대충 화면을 보고 꿰맞추는 일도 일어났다.


그리고 변사 또한 자격 시험을 거쳐야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변사들은 현재 경복궁 앞쪽에서 복원 공사가 한창인 의정부 자리, 그곳에 경기도청에서 ‘변사 자격 검정 시험’을 치뤘다. 시험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그때 1회 시험을 여성 네 명이 응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들이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이후에 활동한 조선인 변사들은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에 이때 응시한 여성들은 시험에서 떨어졌거나 혹은 일본인이었을 수 있다.



책 <변사 김도언> 김하은/바람의 아이들 (출처: 알라딘)

책 <변사 김도언> (출처: 알라딘)



『변사 김도언』(김하은 글, 바람의 아이들)이라는 청소년 소설을 쓸 때, 초기 영화사를 취재했다. 시험에 응시한 여성들 중 한 명으로 ‘김도언’이라는 주인공을 선택했고, 그가 시험에 합격하여 변사로 활동하려 하지만 여성을 변사로 내세우기 싫어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로 살려냈다.



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 (출처: 위키백과)



영화는 계속 발전했다.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극장 사환들은 필름통을 들고 뛰어다녔다. 당시 필름은 납작한 철제 통에 들어 있었고, 영화 한 편을 다 보려면 서너 통을 릴에 감아서 돌렸다. 한 극장에서 첫 번째 릴을 돌리고 두 번째 릴을 끼우는 사이에 사환은 첫 번째 릴을 다음 극장으로 들고 뛰었다. 필름을 복제할 자금이 부족했던 그 시기에도 ‘아리랑’을 본 관객들은 열광했다.


그동안 본 영화에서 나왔던 외국인들이 아니라 익숙한 풍경, 익숙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이 화면에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순사가 영진을 잡아가는 장면에서 울음이 터질 만큼, 영화로 대리만족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필름 한쪽에는 젤라틴으로 만들어서 높은 온도에 불이 붙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극장에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잦았다. 자금이 부족했던 초기 영화인들은 영화 필름을 보관할 여력이 없었다. 잦은 상영으로 필름이 상하고 화질이 떨어지면 그 필림을 버리곤 했다.


처음 무성영화가 상영했을 때부터 영화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발성영화로 넘어간 이후에도 극장으로 왔다.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일제에게 또 다른 빌미를 제공했다. 2차 세계대전을 벌인 가해국인 일본은 영화를 통해 참전을 북돋았고, 전쟁에 나간 사람을 칭송했다. 이는 비단 일제만 한 일이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독일에서 영화관에 아낌없는 지원을 쏟았다. 물자가 부족하고 식량을 배급받는 상황에서도 영화관에 난방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전 영화를 상영했다. 대규모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전 선동을 하기에 영화만큼 좋은 매체는 없었다. 선전 영화는 이후에도 우리 영화에 그림자를 남겼다. ‘대한 늬우스’라는 이름으로, 본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정부가 하고 싶은 선전을 했다. 이는 영화뿐만 아니라 대중 가요에도 ‘건전 가요’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시대가 달라지고, 영화는 또 다시 발전했다. CG 기술이 발달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낯선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고, ‘싱 어롱’이라고 함께 노래 부르는 상영관도 있었다.



다양한 OTT 서비스

다양한 OTT 서비스



이처럼 영화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단관 상영을 하던 영화관은 문을 닫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영화관에서 상영한 영화가 머지않아 OTT로 올라오기도 한다. 4D 영화처럼 좌석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어오고, 물이 뿌려지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 변사가 연행하던 무성영화 시절을 떠올린다. 후시 녹음이든 동시 녹음이든, 발성영화가 있기 전 때처럼 영화에 소리가 없던 그 시절에는 변사가 유일한 해설자였다.


이런 경험을 딱 한 번 했다. 장애인이 볼 수 있는 영화,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제작된 영화는 조금 특별했다. 소리를 듣고, 화면을 보고, 오감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럴 수 없는 사람에게도 영화관이 열려 있기를 바란다. 소리가 없던 그 시절에도 영화를 보러 오던 사람들처럼, 장애가 영화를 볼 기회를 막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는 산업이고, 그 산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영향이 조금 더 다양성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 영화관에 온 사람들 중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화를 즐겼다.


영화관에 오는 사람들에겐 턱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다고 느꼈던 영화를,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친구나 휠체어를 탄 선배도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영화란, 역사와 함께 나아가는 영화란,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우리는 어떤 영화관에 갈까요?

- 지난 글: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사극, 창작의 자유와 역사왜곡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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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은

어린이청소년책 작가
『꼬리 달린 두꺼비, 껌벅이』로 2009년 한국안데르센상을 수상했고, 『얼음붕대 스타킹』과 『변사 김도언』으로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고,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달려라, 별!』 등 다양한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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