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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창작의 자유와 역사왜곡 사이에서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고일권

2022-08-24

학술적인 영역에서도 역사에 완벽한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할진데 역사의 편린을 이용하여 작가의 '주관성'을 가지고 창작하는 콘텐츠인 사극에게

'무결한 객관성'과 ‘국민계몽’을 요구하는 건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다.

즉, 역사기록도 그 시대의 흐름과 주체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기도 했던 것처럼 창작자가 어느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창작자들마다 천차만별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점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극은 각색한다

보통 사극을 비판하는 주요 논점은 고증오류와 역사왜곡이다. 고증은 사전적 의미로 '옛 문헌이나 유물에 기초하여 증거를 찾아 밝히는 것'이다. (네이버국어사전) 즉 고증오류라는 것은 증거를 찾아 밝혔는데 그것에 '오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왜곡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역사를 후세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거짓으로 다시 지어 쓰는 일.' 이라고 한다.(네이버 어린이사전 시사개념) 역사왜곡문제는 창작자가 재평가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재해석에서 불거지는 문제들이다. 흔히 각색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각색이란 어떤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옮긴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기성의 예술 형태를 다른 예술의 방식으로 작업하여 재생산하는 것을 말한다.(네이버 문학비평용어사전) 사극으로 따지면 실제 역사를 드라마, 영화, 웹툰, 소설 등에 맞는 형태로 옮기는 것이다. 사실 관계를 다루는 정사(正史)를 그대로 옮긴다면 역사 고관심층이 아닌 이상 흥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기에 보편적인 대중들에게 맞추어 상업성을 가미하면서 각색하는 것은 사극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극은 때 아닌 위기를 맞고 있다.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거칠게 터져나온 시청자들의 반발에 폐지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주변국과의 각종 역사, 문화 논쟁들로 인해 사극에게 바라는 요구가 높아졌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극은 과거 고질적인 문제였던 소홀한 고증, 평면적인 묘사, 당대에 대한 몰이해를 극복하여야 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사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향후 어떻게 사극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해보려 한다.

 

 

역사=사극이 아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그는 역사를 단지 사실의 나열로 보지 않았으며 역사의 완벽한 객관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학술적인 영역에서도 역사에 완벽한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할진데 역사의 편린을 이용하여 작가의 '주관성'을 가지고 창작하는 콘텐츠인 사극에게 '무결한 객관성'과 ‘국민계몽’을 요구하는 건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다. 즉, 역사기록도 그 시대의 흐름과 주체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기도 했던 것처럼 창작자가 어느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창작자들마다 천차만별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점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학자들이 객관적인 물질증거들을 토대로 논리를 구축한다면 작가들은 그런 논리의 한 부분을 편취하여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는 '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중과 학계, 콘텐츠계의 역사인식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광해군을 들 수 있다. 광해군은 대중들에게 소위 '중립외교'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했던 탁월한 식견을 가진 군주로 비춰진다. 하지만 그를 상징하는 ‘중립외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중과 학계의 차이가 있다. 학계에서는 중립외교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의견들도 많이 나오는 실정이다.

 

대부분 작품들은 광해군을 묘사할 때 대중들의 보통 역사상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고 학계의 인식을 ‘자문’이란 이름으로 일부 차용하는 등 타협점에서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을 묘사한 여러 사극에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건 결국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재해석으로 실존 인물을 사극의 인물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관객들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명나라의 파병요구를 받아들이라는 신하들에게 가짜 광해군 하선이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면서 일갈하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해당 장면구성은 허구에 가까우며 광해군이 말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말은 배우의 입을 빌려 관객들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창작된 것이다. 여기에서 광해군의 언행이 실제로 존재했느냐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말하는 ‘어떤 지도자여야 하는가’라는 명제를 상징하는 대사이기도 하고 또한 그 말을 내뱉은 것은 결정적으로 진짜 광해군이 아닌 가짜 광해군이기 때문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출처: 다음영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필자의 작품 <칼부림>은 모 일간지에서 역사왜곡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언급이 된 바 있는데 이괄과 항왜들이 조우하는 장면이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반항하는 항왜촌을 이괄이 무력으로 포위, 제압하고 설득하여 휘하에 두는 장면이었으며 은연중 이괄의 역심이 드러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록에 나오지 않은 것을 작가의 창작적 상상력으로 묘사한 것이 왜곡이라 하니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장문의 메일로 기자에게 작품 언급을 빼주길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또한 한국 사극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후금 태조 누르하치에 대한 서사를 묘사하였는데 후금의 입장 등을 묘사하는 부분에선 간간히 반발하는 독자들의 반응도 나왔다. 왜 우리 민족을 고생시킨 적국을 멋있게 표현하느냐 라는 반응이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역사적 감정을 조금 덜어내고 그 시대를 건조하게 들여다보자는 나의 취지가 조금은 무색했다. 창작자의 의도와 받아들이는 대중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 일화였다.

 

 

누르하치 (출처: 네이버웹툰 칼부림)

 

누르하치 (출처: 네이버웹툰 <칼부림>)


 

왜곡논란을 넘어 진정한 창작으로

앞서 말했다시피 역사기록이 모든 객관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보는 사람들의 해석도 다양하기에 사극을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어찌보면 사극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창작자의 세계관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역사적 맥락을 따라가면서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이는 방식은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학작품 같은 콘텐츠에서도 적용될 정도로 오래되었기에 기록과의 일치여부만으로 작품을 판단할 순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야사, 야담 등 허구에도 당대의 시대성과 성찰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장르와 달리 사극은 대부분 실존했던 인물 혹은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기에 무작정 창작자들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도 오만함이라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창작자는 관객, 독자들을 자신이 만든 세계, 자신이 재해석한 시대로 온전히 초대하여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극은 그런 균형을 맞추어 나가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기에 최소한 해당 시대를 공부하는 기본적인 역사적 소양은 갖추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아쉬운 것은 퓨전이란 미명하에 그런 기본소양들이 무시되어도 좋다고 여기는 풍조가 조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가령 퓨전뿐만 아니라 앞서 정통사극이라 자칭했던 작품들에서도 그런 부분이 엿보여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극이란 장르가 그저 적당한 복식과 건축과 사극톤 말투만으로 이루어진 껍데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사적으로 주변에 퓨전사극을 말할 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퓨전이란 고추장과 초콜릿을 섞는 것이다.’

 

범인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좋은 점들을 섞어서 창조한다면 퓨전이고 정통이고 사실은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퓨전을 하더라도 원재료들이 싱싱하고 고급이어야 섞었을 때도 맛이 좋은 법이다. 고추장은 고추장다워야 하며 초콜릿도 초콜릿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섞으려면 시대성을 관찰하고 통찰하는 눈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황산벌>은 ‘신라, 백제가 사투리를 썼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고증은 어느정도 희생한 대신 현대적인 감각으로 코믹, 풍자를 살려 흥행한 좋은 케이스다. 고증을 덜 신경쓰는 대신 오히려 자유롭게 현대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사투리를 매개로 그 시대로 빨려 들어가 자연스럽게 삼국통일전쟁시기의 시대성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사극의 기능중 하나가 아닌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그와는 정 반대의 길로 흥행하였다. 마치 17세기와 19세기 초를 뒤섞은 모습을 한 가상의 조선이 무대였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고증은 여타 사극들보다 수준이 높았다. 거기에 좀비장르까지 섞은 대담함으로 국내외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가상의 시공간이지만 참고삼은 시대성을 연구하여 작품에 녹여냈기에 사람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 황산벌 (출처: 다음영화), 드라마 킹덤 (출처: 넷플릭스)

영화 <황산벌> (출처: 다음영화), 드라마 <킹덤> (출처: 넷플릭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조선 시대사 배경이다. 가공의 이야기지만 당신 상황을 충분히 묘사하고 충실하게 고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담으려고 했다.’라고 언급했다. (2021.8.2. <KBS스타연예>, 김성훈 감독 “킹덤에 대해 잘 아는 남자”) 참고로 김성훈 감독은 <킹덤>이 사극 데뷔작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창작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창작자의 입장에서 본 역사와 사극, 앞으로 사극이 나아가야 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역사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무게는 상당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저 엄숙하게만 대할 필요는 없다. 창작자들의 창작욕구는 분명 유지되어야 하는, 콘텐츠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핵심이기 때문이다. 관객 ,독자들이 조금 아량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창작자로서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허구를 묘사할 때 그 근간이 실존하는 역사임을 명심하고 많은 자료조사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의 도출된 결과물 아래에는 수십, 수백의 근간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논쟁의 첨병으로서 사명감을 갖는 것은 창작자의 필수, 우선조건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어제보다 나은, 누구보다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은 창작욕구만은 주변국보다 우리가 더 뛰어나길 바라본다.

 

 

 

그장면전후사의 재인식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사극, 창작의 자유와 역사왜곡 사이에서

- 지난 글: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조선어 사전 편찬,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낸 민족 독립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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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일권

웹툰 작가
제 이름은 고일권이고 1985년 생의 웹툰 작가입니다. 토평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한성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진학하였으나 바로 그만두었습니다. 2013년 6월 네이버 도전만화를 시작으로 2013년 8월 베스트 도전, 9월 정식연재가 결정되어 12월 4일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 외에 2017년 VR웹툰업체 코믹스브이와 협업하여 곽재우 장군의 정암진 전투를 그린 ‘정암진’을 선보였고 동년 웹툰플렛폼 코미카와 ‘불후의 명작’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윤태호 작가의 작품 ‘야후’를 오마주한 단편 ‘야후 오마주’를 선보였습니다. 2018년 링거스 커뮤니케이션스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의 최후의 전투였던 장흥 석대들 전투를 그린‘갑오1984-동학최후의 전투 장흥 석대들’을 그려 연재했습니다. 2019년 같은 업체와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조헌과 700의사를 그린 ‘여식’을 연재하였습니다. 2020년 전남콘텐츠코리아랩과 코믹스브이의 의뢰로 스토리작가인 고병준 작가와 함께 ‘순천의 하늘’이라는 작품을 총 4화 연재하였습니다. 2021년, 화성시사편찬위원회와 함께 ‘한권으로 읽는 화성시사’의 삽화작업을 맡았습니다. 2022년 SBS금토드라마 ‘오늘의 웹툰’에서 극중 김갑수 배우(백어진 역)의 대역을 맡았고 총 2화 분량의 원고를 제공하였습니다. 현재 2022년 4월까지 사극웹툰 ‘칼부림’ 4부를 마무리하고 휴식기를 가지며 다시 복귀를 준비 중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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