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몸뿐이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은 생산적인 관계를 만드는 반면, 미움은 불화와 투쟁을 만들고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하지요. 건강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반면, 구성원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혐오한다면 그 공동체는 불안정하고 갈등하다가 무너지고 말겠지요......
ㅣ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여름 그리스
그리스 바다
여름에 그리스의 풍경은 눈부시게 찬란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태양이 작열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고유의 빛깔을 뽐내며 자신의 윤곽선을 또렷이 드러내면서 그 형태가 하나하나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신록이 울창하지 않은 산과 들판이 듬성듬성 건조하게 노출하는 황톳빛조차 척박하고 건조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씩씩하게 느껴집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단거리 육상 선수 같다고 할까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가슴이 탁 트입니다. 투명한 옥빛으로 일렁이는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푸른 하늘과 맞닿아 씩씩거리며 겨루는 듯한데, 그 생동감이 심장을 뛰게 하지요. 햇볕에 발갛게 달아오른 살갗을 스쳐 가는 바람은 온몸을 관능적으로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런 풍경 속에 서 있다 보면, 정말 살아 있음을 저절로 느끼게 되지요. 감격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이 자연과 이 존재 세계 전체와 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 하나를 이루는 것 같은 완벽한 조화의 관념이 이토록 생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런 강렬한 선명함 속에서 살던 그리스 사람들은 예로부터 흙과 물, 공기와 불이 세상을 만드는 근본 요소라고 생각했지요. 그중에서도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탈레스는 물을, 그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근본 중의 근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이들보다 앞선 시인 헤시오도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노래했지요.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 소아시아의 서쪽, 에게해 해변 지역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앞서 그려 넣은 그리스 풍경이 바로 그곳에서 가장 풍부하게 누릴 수 있으니, 아마도 저랑 비슷한 느낌으로 그런 생각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ㅣ만물의 근원은 하나가 아닌 여럿
엠페도클레스(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들의 느낌이나 철학적, 신화적 주장을 종합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엠페도클레스지요. 그는 앞서 소개한 네 명의 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반도 남단 시칠리아섬 출신이었어요. 하지만 지중해의 풍경을 보고 자랐으니 그의 감성도 앞선 네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는 달리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세상 만물의 근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과 불은 엄연히 다르고, 흙과 공기 또한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이들 중 하나만이 세상의 원초적인 근본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엠페도클레스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또한 앞선 사람들의 주장 하나하나를 그냥 허투루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차례차례 곱씹어 보니, 다 맞는 것 같다고 느꼈을까요? 그는 이 모두를 다 인정하며 4원소론을 주장했지요. 세상은 물, 불, 공기, 흙이라는 이 네 가지 근본적인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말입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의 서사시와 같은 운율에 담아 노래했습니다. 철학적인 시를 쓴 겁니다. 그러나 운율만 그랬던 건 아닙니다. 그의 노래는 신화적인 표현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 볼까요?
먼저 만물이 솟는 네 가지 뿌리에 대해 들어 보라.
빛나는 제우스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헤라와 하데스,
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샘들을 적시는 네스티스.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네 가지 ‘근본 원소’를 ‘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물질이 아닌 신들에 연결했고요. 먼저 제우스는 번개와 연결되니 불을 상징합니다. 한편, 생명을 가져다주는 헤라는 땅을 가리키며, 저승의 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속성 때문에 공기가 연결되지요. 마지막으로 네스티스는 하데스의 아내인 페르세포네를 가리키는데, 눈물로 샘을 적신다는 표현에서 물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 불, 공기, 흙이라고 하면 될 것을, 괜히 신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못마땅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게 엠페도클레스의 시적 스타일입니다. 어쩌면 그는 네 가지 원소를 단순한 물질로만 보지 않고 어떤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신화적 표현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ㅣ사람 몸도 ‘물, 불, 공기, 흙’이 조화 이뤄야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
이렇게 엠페도클레스는 앞선 네 사람의 주장을 가져다가 짬뽕처럼 맛있게 섞었습니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주 그럴 듯한 면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우리 몸에 70%가 물이라고 하니, 인간의 몸은 물을 잔뜩 담고 있는 흙 항아리 같은 존재겠지요. 게다가 숨을 쉬어야만 사는 것을 보니, 우리에게는 공기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겠네요.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호흡을 멈출 때, 목숨을 잃었다고 하나 봅니다. 또 산 사람과 죽음 사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체온이지요.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라는 말은 단순히 문학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실제로 목숨이 빠져나간 주검은 차갑고 딱딱하거든요. 이렇듯 우리만 봐도 이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엠페토클레스는 우리의 몸도 네 가지 근본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믿었지요.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 노릇도 했지요. 판티아라는 여인이 갑자기 쓰러져 맥박도 뛰지 않고 숨도 쉬지 않은 채, 몸에 간신히 온기만 남은 가사(假死) 상태로 있었는데, 엠페도클레스가 그녀를 살려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자신의 치료 경험과 철학적 이론을 엮어 『의론』이라는 책도 펴냈지요. 그는 우리 몸을 이루는 물, 불, 공기, 흙이 균형을 이루며 잘 섞여 있을 때는 건강한 반면, 그 균형이 깨질 때 허약해지고 병이 든다고 진단했지요. 그리고 이런 작용의 원천을 ‘사랑’과 ‘미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가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서로 미워하고 다투면 병이 든다는 것이지요.
ㅣ사랑하면 하나 되고 미워하면 혼란이
평화로운 사랑
어디 몸뿐이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은 생산적인 관계를 만드는 반면, 미움은 불화와 투쟁을 만들고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하지요. 건강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반면, 구성원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혐오한다면 그 공동체는 불안정하고 갈등하다가 무너지고 말겠지요. 더 나아가 엠페도클레스는 세상 만물 모두가 사랑과 미움의 원리로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네 가지 뿌리가 사랑으로 서로 힘을 합하면 조화로운 하나가 되지만, 미워하고 투쟁한다면 뿔뿔이 흩어져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고요.
그의 사상은 신비롭고 비과학적인 구석이 있지만, 그것은 표현의 문학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학적 표현을 걷어내어 철학적 논변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적어도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반대로 서로 혐오하고 미워하며 다툰다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그의 철학에 담긴 뜻이니 말입니다.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및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 서양고전학 박사. 펴낸 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음. 서양고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5. 사랑과 미움이 세상을 움직인다. '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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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과 미움이 세상을 움직인다.
-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 "엠페도클레스의 ‘물, 불, 공기, 흙’ 4원소론"
김헌
2021-01-21
어디 몸뿐이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은 생산적인 관계를 만드는 반면, 미움은 불화와 투쟁을 만들고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하지요. 건강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반면, 구성원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혐오한다면 그 공동체는 불안정하고 갈등하다가 무너지고 말겠지요......
ㅣ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여름 그리스
그리스 바다
여름에 그리스의 풍경은 눈부시게 찬란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태양이 작열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고유의 빛깔을 뽐내며 자신의 윤곽선을 또렷이 드러내면서 그 형태가 하나하나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신록이 울창하지 않은 산과 들판이 듬성듬성 건조하게 노출하는 황톳빛조차 척박하고 건조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씩씩하게 느껴집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단거리 육상 선수 같다고 할까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가슴이 탁 트입니다. 투명한 옥빛으로 일렁이는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푸른 하늘과 맞닿아 씩씩거리며 겨루는 듯한데, 그 생동감이 심장을 뛰게 하지요. 햇볕에 발갛게 달아오른 살갗을 스쳐 가는 바람은 온몸을 관능적으로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런 풍경 속에 서 있다 보면, 정말 살아 있음을 저절로 느끼게 되지요. 감격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이 자연과 이 존재 세계 전체와 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 하나를 이루는 것 같은 완벽한 조화의 관념이 이토록 생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런 강렬한 선명함 속에서 살던 그리스 사람들은 예로부터 흙과 물, 공기와 불이 세상을 만드는 근본 요소라고 생각했지요. 그중에서도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탈레스는 물을, 그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근본 중의 근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이들보다 앞선 시인 헤시오도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든 신들의 어머니로 노래했지요.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 소아시아의 서쪽, 에게해 해변 지역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앞서 그려 넣은 그리스 풍경이 바로 그곳에서 가장 풍부하게 누릴 수 있으니, 아마도 저랑 비슷한 느낌으로 그런 생각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ㅣ만물의 근원은 하나가 아닌 여럿
엠페도클레스(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들의 느낌이나 철학적, 신화적 주장을 종합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엠페도클레스지요. 그는 앞서 소개한 네 명의 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반도 남단 시칠리아섬 출신이었어요. 하지만 지중해의 풍경을 보고 자랐으니 그의 감성도 앞선 네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과는 달리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세상 만물의 근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과 불은 엄연히 다르고, 흙과 공기 또한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이들 중 하나만이 세상의 원초적인 근본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엠페도클레스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또한 앞선 사람들의 주장 하나하나를 그냥 허투루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차례차례 곱씹어 보니, 다 맞는 것 같다고 느꼈을까요? 그는 이 모두를 다 인정하며 4원소론을 주장했지요. 세상은 물, 불, 공기, 흙이라는 이 네 가지 근본적인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말입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의 서사시와 같은 운율에 담아 노래했습니다. 철학적인 시를 쓴 겁니다. 그러나 운율만 그랬던 건 아닙니다. 그의 노래는 신화적인 표현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 볼까요?
먼저 만물이 솟는 네 가지 뿌리에 대해 들어 보라.
빛나는 제우스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헤라와 하데스,
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샘들을 적시는 네스티스.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네 가지 ‘근본 원소’를 ‘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물질이 아닌 신들에 연결했고요. 먼저 제우스는 번개와 연결되니 불을 상징합니다. 한편, 생명을 가져다주는 헤라는 땅을 가리키며, 저승의 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속성 때문에 공기가 연결되지요. 마지막으로 네스티스는 하데스의 아내인 페르세포네를 가리키는데, 눈물로 샘을 적신다는 표현에서 물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 불, 공기, 흙이라고 하면 될 것을, 괜히 신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못마땅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게 엠페도클레스의 시적 스타일입니다. 어쩌면 그는 네 가지 원소를 단순한 물질로만 보지 않고 어떤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신화적 표현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ㅣ사람 몸도 ‘물, 불, 공기, 흙’이 조화 이뤄야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이미지 출처 : 네이버 백과)
이렇게 엠페도클레스는 앞선 네 사람의 주장을 가져다가 짬뽕처럼 맛있게 섞었습니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주 그럴 듯한 면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우리 몸에 70%가 물이라고 하니, 인간의 몸은 물을 잔뜩 담고 있는 흙 항아리 같은 존재겠지요. 게다가 숨을 쉬어야만 사는 것을 보니, 우리에게는 공기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겠네요.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호흡을 멈출 때, 목숨을 잃었다고 하나 봅니다. 또 산 사람과 죽음 사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체온이지요.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라는 말은 단순히 문학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실제로 목숨이 빠져나간 주검은 차갑고 딱딱하거든요. 이렇듯 우리만 봐도 이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엠페토클레스는 우리의 몸도 네 가지 근본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믿었지요.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의사 노릇도 했지요. 판티아라는 여인이 갑자기 쓰러져 맥박도 뛰지 않고 숨도 쉬지 않은 채, 몸에 간신히 온기만 남은 가사(假死) 상태로 있었는데, 엠페도클레스가 그녀를 살려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자신의 치료 경험과 철학적 이론을 엮어 『의론』이라는 책도 펴냈지요. 그는 우리 몸을 이루는 물, 불, 공기, 흙이 균형을 이루며 잘 섞여 있을 때는 건강한 반면, 그 균형이 깨질 때 허약해지고 병이 든다고 진단했지요. 그리고 이런 작용의 원천을 ‘사랑’과 ‘미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가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서로 미워하고 다투면 병이 든다는 것이지요.
ㅣ사랑하면 하나 되고 미워하면 혼란이
평화로운 사랑
어디 몸뿐이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은 생산적인 관계를 만드는 반면, 미움은 불화와 투쟁을 만들고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하지요. 건강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며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반면, 구성원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혐오한다면 그 공동체는 불안정하고 갈등하다가 무너지고 말겠지요. 더 나아가 엠페도클레스는 세상 만물 모두가 사랑과 미움의 원리로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네 가지 뿌리가 사랑으로 서로 힘을 합하면 조화로운 하나가 되지만, 미워하고 투쟁한다면 뿔뿔이 흩어져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고요.
그의 사상은 신비롭고 비과학적인 구석이 있지만, 그것은 표현의 문학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학적 표현을 걷어내어 철학적 논변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적어도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반대로 서로 혐오하고 미워하며 다툰다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그의 철학에 담긴 뜻이니 말입니다.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5. 사랑과 미움이 세상을 움직인다.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4.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의 믿음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및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 서양고전학 박사. 펴낸 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음. 서양고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5. 사랑과 미움이 세상을 움직인다.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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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발리에서 생긴 일’에 빠지다.
명로진
한국문학, 세계를 향해 이제 한걸음
장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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