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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지혜롭게 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만남 : 안덕산방도서관 ‘산방독서회’

현재를 지혜롭게 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만남 -안덕산방도서관 '산방독서회'

인문쟁이 이경열

2016-08-18


“사람이 짐승하고 뭐가 다른가, 라는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런 고민을 해야겠다. 인간다운 게 뭘까? 무겁다… 지금도 혼란스럽다… 가해자가 살아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지혜롭게 살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한다.”  - 배진성(50) 발표 내용 중 -



도서관 외관모습

▲ 도서관 외관모습


도서관에 생기를 넣는 사람들

 

저녁 8시! 고층 건물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한적한 시골 동네 도서관에 해가 사라지는 속도만큼 적막함이 찾아온다. 텅 빈 도서관은 나의 발자국 소리조차 조심스럽게 했다. “시골은 해와 함께 낮과 밤을 구분하는데….” 혼자 중얼 거린다. 도서관 현관을 지나 조심스레 불빛을 따라 열람실을 들어가 봤다. 여느 도서관과 마찬 가지로 많은 책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지만 이용자는 보이지 않았다. ‘제주에서 제일 잘 운영된다는 ’산방독서회‘는 어디에 있는 게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몇 초간의 혼란을 부끄럽게 하듯 열람실 반대편 복도 끝 ‘문화창작실’에는 이미 몇 분이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잠시 시간차를 두고 열 분이 모였다.


도서관 내부사진도서관 독서회 모집알림

▲ 도서관 내부사진 / 도서관 독서회 모집알림


역사화 현재 그리고 지혜…

 

산방 독서회 식구들은 한 달에 한번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필독서인 날이었다. 이 책을 추천하고 난 다음날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뉴스에서 접했다는 추천자의 말에 모두들 “맞아… 그러게…. 우리가 먼저 알아 봤네…” 하는 회원들에게서 천진한 미소가 잠시 머물렀다.


소년이 온다(저자 한강)

▲ 소년이 온다(저자_한강)


이어서 열띤 발표가 이어졌다. 광주가 고향이라는 한 회원은 “당시(5.18) 고등학생이었다. 휴교령으로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며 마냥 좋기만 했었는데… 광주시민으로써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을 간과했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코뼈가 부러지고, 각막을 잃고… 연좌제로 고생한… 유공자인 남편의 무뚝뚝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배진성(50세)

▲ 배진성(50세)


제주 토박이인 필자로써는, 1998년 직장을 따라 인천에서 제주로 이사를 왔다는 배진성(50세)님의 발표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사람이 짐승하고 뭐가 다른가? 라는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고민을 해야겠다. 인간다운 게 뭘까? 무겁다… 지금도 혼란스럽다… 가해자가 살아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현재를 지혜롭게 살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당시는 적과 아군이 확실히 구분이 되었다. 지금은 그게 어려워졌다. … 4.3은 훨씬 전에 일어났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게 슬프다. 동광인육사건(제주 4.3 사건 중 하나로 동광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칭함)을 보면 진압군이 동네 사람들을 쏴 죽였다. 3일 후에 또 가서는 개, 돼지를 잡아먹었다. 굶주려 시체를 뜯어 먹었던 개·돼지를… 그 때 살아남은 어린 아이들이 다 봤다. 어쩌면 가족을 먹은 것이다.”


독서회 진행 중1독서회 진행 중2

▲ 독서회 진행 중


장부며 출석부로 짐이 많은 총무가 낮은 목소리로 발표를 잇는다. “힘이란 무엇인가? 우리 가족 중에도 4.3 희생자가 네 분이나 있다. 힘 있는 사람이 힘을 어떻게 써야 될까? 하는 것을 항상 고민해야지 않을까? 소소한 일이라도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책 한권에서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고 제주 동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함께 고민하게 했다. 남편과 가족의 아픔을 공감하고 힘 있는 자들의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리 개미들이 투표에 신중을 기해야 된다는 거시적인 고민에 이른다.


문화창작실 팻말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반짝인다

 

밤 9시 37분! 텅 빈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열 사람이 모여 있는 ‘문화창작실’은 여전히 독서 발표와 토론으로 마무리 시간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철학과 신념의 영혼 이탈로 허공을 떠도는 혼란스런 시대에도 이들은 15년 동안 책에서 지혜를 찾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도서관 이용 시간은 밤 10시지만 독서회가 일어서는 시간까지 살짝 기다려주는 도서관 직원들의 유연성도 독서회가 마음 놓고 인문학 사랑을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필자는 막차를 타기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골 마을 막차는 도시보다 일찍 끊긴다. 현관문을 나서자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마치 든든한 돌하르방처럼 버티고 있다. 차량 불빛마저 쉬고 있는 시골 하늘 위로 유난히 별이 반짝 거린다.

‘힘’이란 단어에 발목을 잡혀 잠깐 도서관을 돌아 봤다. 생각을 거듭하고 고민을 거듭하는 공간이 깊고 넓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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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가 바뀌는 곳


-산방독서회 회장 현미숙

 

산방독서회 회장 현미숙

Q. 독서회 시작과 취지는 무엇이었나?
A. 2001년 도서관이 개관하면서 독서회가 만들어졌다. 저는 중간에 가입을 하게 됐고,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수요일 8시, 15년 넘게 변함없이 이곳에서 만나고 있다. 발표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채워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Q. 독서회가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게 있다면?
A. 굉장히 나아졌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전공서적은 읽어 봤었다. 어느 날 소설책을 읽으려고 펼쳤는데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서, ‘정말 내 마음이 피폐해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슬펐다. (웃음) 책을 읽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왜 읽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독서 발표 말미에 시낭독도 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이 큰 변화다. 또, 사소한 사물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됐다고 할까? 나의 삶에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Q.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도서관을 더 많은 사람이 이용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다. 일흔이 넘으신 분도 있고…. 젊은 세대들 간에 독서회가 만들어지면 많이 돕고 싶다. 우리 동네에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



사진= 이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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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열
인문쟁이 이경열

[인문쟁이 2기]


이경열은 틈만 나면 친구들이 있는 제주시로 나설 궁리를 하지만 부모님이 계신 서귀포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은퇴 후 제2막 인생을 즐기는 인생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을 한다. 엉뚱하고 FUN한 퍼포먼스를 기획할 때 신이나고 사는 맛을 느낀다. 겸손과 배려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효를 말하는 공자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일기를 잃어버렸던 트라우마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지만, 인문쟁이를 빌어서 낙서쟁이 소녀로 돌아가고 싶다. kissday196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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