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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인문 문화 이야기

[제주] 하르방의 제주‘담’론

석공 강문석 할아버지

2018.12.13


"알로도(아래에도) . 우로도(위에도) . 산에도 바당(바다)에도 돌. 사는 디도(곳도) . 바티도(밭에도) . 사방천지 돌 어신 디가(없는 데가) 어디 셔(어디 있어)? 그냥 제주도가 돌이야.


애월읍 유수암리의 농부이자 석공 강문석 하르방(할아버지)의 말씀이다. 듣고 싶어도 더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지만 한동네에 살며 그를 만났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쌓아 올린 마을의 곳곳의 돌담은 오늘도 변함없는 마을의 풍경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진 건 돈이 아니라 돌 뿐이라며 모든 이야기를 기승 전 로 마무리 짓던 그를 기억해본다

 

제주 석공 강문석 하르방

▲ 제주 석공 강문석 하르방, 본인이 쌓은 돌담을 자랑하던 그를 기억해본다.



제주의 아픈 역사, 하르방을 석공으로 만들다 


하르방은 1939년에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게다가 남동생까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증조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 역시 4.3 사건 때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모든 남자와 그 많던 제주의 남자들이 영문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4.3 , 마을이 몬딱(모조리) 불에 타비연(탔어). 다덜(다들) 살아보잰(살려고) 알녁더레(아랫마을로) 소까일(피신을) 갔주게(갔지). 그디(거기) 초등학교에 강(가서) 살아신디(살았는데), 것도(그것도) 뭐 아주 잠시라. 선생님들이 몬딱(죄다) 끌려강 (끌려가서) 죽고, 학교도 다 불 태와부렀주게(불살라버렸어). 사람들도 하영(많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갯가(해안가)에 강(가서) 돌담 위에 새()를 얹은 엉성한 초집(초가집) 지성이네(짓고), 그디(거기) 곱앙(숨어) 살았주게(살았지). 함바집이엔(이라고) (하는) ."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하르방에게는 밭 가는 장남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하르방은 마을의 귀한 일꾼이었다. 어린 아들이 혼자 나르지 못하는 쟁기를 어머니가 밭에 가져다주면 그는 작은 몸으로 끙끙거리며 어머니를 도와 밭을 갈았다. 소도 없고 일꾼도 없어진 마을에서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일했고, 서로를 돕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밭담을 허물엉(허물어) 성담을 담는(쌓는) 거라나서(거였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바티(밭에) (있는) 돌 봉가당이네(주워다가) 담을 다와신디(쌓았는데), 아마 그게 내 나이 아홉에 처음으로 다운(쌓은) 담일거라. 겅행(그러고 나서) 사태(4.3사건) 끝나난(끝나니), 마을로 돌아왔주게. 왕 보난(와서 보니) 뭐가 셔(있어)? 아무것도 어신(없는) 마을을 재건허잰허난(하려니까), 다시 제일 먼저 한 것이 담을 쌓는 일이라. 집 만드는 축담, 길 만드는 올렛담, 화장실에 통싯담, 밭 맹글엄시민(만들면) 그딘(거긴) 밭담, 죽은 사람들 산(무덤)을 맹글멍(만들면서) 산담... 아이고 이추룩(이렇게) 고람시난(이야기 하니) 그 시절부터 이제꺼정(까지) 돌담만큼은 셀 수도 어시(없이) 다왔쪄(쌓았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곳곳의 돌담이 허물어지며 마을의 모양새가 조금씩 달라져 갔다. 초가집 돌담 사이사이에 시멘트를 바른 집이 생겨나고, 흙길 위로 미끈한 새 길들이 생겨났다. 큰길을 내기 위해 올렛길(집과 도로를 잇는 길)이 사라지기도 했다. 풍경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서서히 사람들의 직업이 변했고 문화가 달라졌다. 집안의 농사일이 대물림되는 일이 줄었으며, 젊은이들은 시로 나가 가족을 일구고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어머니 곁에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돌담을 쌓는 돌챙이(석공) 일을 했다. 그렇게 하르방이 돌을 쌓아 지은 집만 여섯 채다


석공 강문석이 지은 초가집 돌담

▲ 마을 곳곳에서 그가 돌을 쌓아 지은 집을 볼 수 있다.

 

 

머리가 아닌 몸의 기억으로 돌을 쌓다


“...모르는 사람들은 돌담이 그냥 아무 돌이나 봉강(주워) (와서) 아무추룩(아무렇게나) 다우민(쌓아 올리면) 되는 줄로 알고, 협동해서 다우민 금방 다와지는 줄로(쌓이는 줄) 알아. 겐디(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다 생각이 들어이신(들어 있는)거라. 여럿이 같이 다울(쌓을) 적에는, 다 같이 같은 속도의 높이로 천천히 쌓아야 해. 한 사람만 잘해도 안 되는 거고, 또 한 사람이 잘못 허민(하면) 힘들게 쌓아놓은 것이 한방에 무너지거든. 그러니 딴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잔소리로 들으면 안 되는 거라.


직접 농사를 짓고 땅을 만지지 않고서야 아무리 말로 해도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석공의 일이다. 그는 제주의 모든 석공은 한낱 농사꾼이라고 말했다. 눈짐작눈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꺼내면서. 평생 땅을 만지며 돌과 마주하며 살지 않고서 그것들을 익히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허곡(그리고) 요즘에는 돌을 기계로 반듯하게 잘랑이네(잘라서) 쌓는 것도 있지만, 멋지고 튼실해 보이는 것이 꼭 존(좋은) 것만은 아니라. 오히려, 고망(구멍)이 뚫려서 호끔(조금) 서툴어 뵈는(보이는) 담이 강한 거주게. 또 그것이 직선으로 반듯하지 않고 구불구불 다와져 이시난(쌓여져 있으니) 비바람이 불어도 견뎌내는 것이라. 겐디(근데) 요즘 시에서 용역을 보내서 마을에 새로 쌓는 돌담은 그저 경치 좋으랜 담는(쌓는) . 경칫담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전엔 어서난(없었던) 거라.


좌)석공의 손, 우)마을 올렛담

▲ 그는 한평생 돌과 함께 살았다.

 

 

평생 제주 땅과 돌을 만진 삶, 오롯이 돌담에 깃들다 


석공 기술을 가진 하르방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난다. 이제 제주의 수많은 돌담이 허물어지기라도 하면 과연 누가 이것들을 다시 쌓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하르방에게 담을 쌓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매번 부탁했었다. 그는 방법 따위 없다고, 농사도 짓지 않는 이가 어찌 담을 쌓겠느냐며 허허허 웃기만 했었다. 우리 집의 돌담이 무너졌을 때도 그를 불러 손을 보았지만, 끝끝내 혼자 담을 고치셨다. 그렇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부지런히 밭 농사를 지었다. 자식들도 주변 사람들도 그만하라 말렸지만 그는 한결같이 밭 가는 장남으로 생을 마감했다.


땅을 버릴 수 없잖아. 돌 천지 땅을 겨우겨우 일구어 논 건디(놓은 건데)... 일 년이라도 쉬면 땅은 가시밭이 되어. 게민(그럼) 그걸 또 밭으로 허잰허민(만들려 하면) 사람 손이 필요한 거고. 농사를 안 해도 틀림없이 먹고 살 순 있주게(살 수는 있지). 이걸로 큰 돈벌이를 하려는 건 아니고. 게도(그래도) 쭉 해 온 일이라부난(이니까) 안 허민(하면) 맘이 불안한 거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일을 하지 않으면 땅이 죽고, 땅을 살리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가 어신 거주게(없는 거지).


그는 제주도는 살아있는 '큰 돌'과 죽어있는 '작은 돌'로 이뤄진 섬이라고 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부터 해안가 바닷속까지 깊이 뿌리내린 큰 돌을 그는 '산 돌(살아있는 돌)'이라고 했다. 제주 사람들은 땅 위로 검게 드러난 거대한 화산암의 일각을 빌레라 부른다. 생명이 깃든 돌은 살아있는 제주의 뼈대와도 같은 거라 함부로 잘라서 쓰거나 하지 않았다. 밭을 일구다가 빌레가 나오면 그것을 피해 농사를 지었다. 빌레를 따라가다 보면 밑에 동굴이 있거나 용천수 연못, 곶자왈이 펼쳐지는 경우도 많다. 하르방 말씀처럼 제주도는 살아있는 큰 돌이다.

 

제주밭담풍경 동쪽해안

▲ 제주도는 살아있는 큰 돌이다.


사람들은 대신 굴러다니는 '작은 돌을 주워다 썼다. 파고 파도 돌 뿐인 땅 위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그 돌은 죽은 돌이다. 잘려나간 돌에는 뿌리가 없으니 생명도 없다고 그는 설명했었다. 그것들을 주워다가 집을 올리고 길을 내고 밭을 일구며 그는 작은 중산간 마을에서 한평생을 돌과 함께 살았다.


마을 곳곳에 하르방이 남긴 돌담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오늘도 건재하다. 수많은 마을의 농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허물고 쌓기를 반복한 마을의 돌담이지만, 그가 쌓은 담은 유달리 튼튼하고 멋져 보인다.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며 밤낮으로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의 요즘, 돌담이 사라진다고? 허허허, 게민(그러면) 제주도가 사라지주게(사라지는 거지)!말하던 하르방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죽은 돌에 생명을 불어넣고 떠난 그가 보고 싶을 뿐, 더 늦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은 많아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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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신지
정신지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할망은 희망’(가르스연구소 2018) 저자.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2년간 지역연구학을 배웠다. 2012년 귀향하여 제주 노인들을 만나고 만남의 기록을 나누며 시간여행 중이다. 노인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시대에 ‘할망의 희망’을 전파하고자 하는 자칭 ‘제주할망 광신론자’. facebook.com/mayasinjijung (정신지의 제주 아카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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