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서울] 문래동 전용 서체, 토큰체

문래동 썬팅전문가 하영철

2018.10.19


2010년 즈음 시작된 복고풍 한글 글꼴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전문 레터러에서 시작된 복고풍 한글 글꼴 열풍은 이후 폰트 전문제작 업체와 IT 기업의 공개 폰트로 이어져, 현재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분야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주변 광고나 포스터,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서도 쉽게 복고풍 한글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되는 복고풍 한글 글꼴은 유사한 것도 많고, 조금 덜 다듬어진 글꼴을 복고풍 한글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 아쉽기도 했다.


문래동에서 만난 썬팅전문가 하영철 씨는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대부분의 복고풍 한글 글꼴은 오래된 자료나 간판 등을 보고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하는데, 하영철씨는 유리문 썬팅에 본인이 개발한 독특한 한글 글꼴을 사용하고 있었다. 복고’풍’ 한글 글꼴이 아닌 진짜 ‘복고’ 한글 글꼴인 것이다.


하영철



썬팅하는 친구들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다.


하영철 씨는 38년 전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썬팅하는 일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새 혼자 그 일을 하고 있다. 30년 전에는 썬팅 재료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양평, 제천, 단양을 거쳐 영월까지, 길게는 10박 11일을 다녀온 적도 있다. 그때는 한 달의 절반 정도를 지방에서 작업했다. 몇 해 전까지도 직접 수작업을 했으나, 현재는 썬팅 재료(비닐)가 없어 가끔 의뢰를 받으면 외부에 맡겨 작업하지만 그마저도 많지 않다.


“그때는 썬팅 재료만 있으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작업해 주고, 돈 벌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이 가능했어요.

헌데 지금은 재료가 없어서 못 해요. 지금도 재료만 있으면 가고 싶어요.”


하영철 씨의 작업 도구는 간단하다. 사인펜, 칼, 자가 전부다.


“특별한 도구는 필요 없어요. 금방 하는데요, 뭘. 작업할 때 특별히 도안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하지 않아요. 썬팅지를 붙여 놓고 뒤에서 바로 칼로 작업을 해요. 그리고 잘 보이도록 썬팅 비닐(하얀색)을 붙여서 마무리하는데 요즘엔 옛날처럼 얇은 썬팅 비닐이 나오지를 않아서 의뢰가 있어도 못해요.”


썬팅은 간판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가로, 세로 간판이 아니라 점포 유리문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지금이야 컴퓨터에서 작업 후 출력하여 바로 붙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 그것도 정면이 아닌 후면에서, 그림이나 글자를 반대로 그린 후 나머지 면을 칼로 도려내 마무리했다. 그래서 글씨나 그림을 후면으로 그리는 것이 편하다. 지금은 출력해서 정면으로 붙이는 것이 대부분이라 재미는 없다.


하영철 씨의 레터링 스케치

▲ 하영철 씨의 레터링 스케치



20대 초반 인생이 결정되다.


“왜 108기획썬팅 이냐구요? 20대 초반에 스님 두 분과 무속인 두 분에게 돈을 벌 팔자가 아니니 한곳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부터 운명처럼 돌아다니면서 썬팅 작업을 했어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


명함에 적힌 상호면 ‘108기획썬팅’은 20대 초반 만난 스님과 무속인의 얘기를 듣고 지은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화번호 하나 바뀐 적이 없다. 한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작업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돈보다 글씨 그리는 재미에 더 빠져 그랬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떠돌아다닐 운명, 글씨 그리는 재미에 빠져 운명처럼 떠돌아다녔던 나날.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얘기하는 그의 레퍼토리다.

 

108기획썬팅의 명함(108썬팅 하영철 HㆍP:011-259-7726)

▲ 108기획썬팅의 명함



문래동 지역의 ‘전용 서체’가 되다.


복고풍 글꼴 유행하기 전부터 문래동에는 이미 복고풍 글꼴이 인기를 끌었다. 18년 전쯤 시작된 하영철 씨의 글꼴은 최근 많은 회사가 만들고 있는 ‘전용 서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때는 문래동의 썬팅 중 90%를 작업하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영등포 일대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18년 전 즈음 문래동 한 점포의 썬팅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앞, 옆 점포에서도 작업을 맡겼어요. 그렇게 제가 그린 글씨로 썬팅 작업한 점포가 늘어나다 보니 한 골목에 대부분이었던 적도 있었죠. 지금은 문래동 지역에 한 스무 군데 정도만 남아 있지만, 업종이 바뀌거나 폐업하면서 글씨 때문에 문을 떼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영철 씨는 글자를 그리기 위해 따로 교육을 받거나 자료를 찾아본 적이 거의 없다.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배워 현장에서 바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이는 재미있는 글꼴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영철 씨가 썬팅에 그린 글꼴은 일명 ‘토큰체’로, ‘ㄱ, ㅅ, ㅈ’ 등의 곡선에 들어간 작은 동그라미가 붙어 있다. 당시 재미난 것을 찾던 그가 주머니 속의 토큰을 대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ㅂ, ㅇ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그려진다는 점도 재미있다. 토큰체와 함께 오래전 금분으로 수작업한 금은방 썬팅은 인터뷰할 때마다 자랑하는 대표작이다. 한글과 한자, 그림까지 그려 넣으며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던 지라 가끔 직접 문 앞까지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하영철씨의 토큰체가 담긴 썬팅

▲ 하영철씨의 토큰체가 담긴 썬팅 



문래동 예술촌에서 다시 ‘토큰체’를 만나다.


“얼마 전에도 젊은 분들이 찾아와 인터뷰도 하고 원도를 그려 달라고 해서 그려준 적이 있어요. 이제는 재료가 없어서 썬팅 작업은 못 하지만 주변에 예술촌이 생겨나면서 원도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신들 간판에 쓴다고요.”


이제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지만, 가끔 문래동 예술촌의 젊은 작가들이 찾아와 원도 작업을 의뢰한다. 이제 토큰체로 쓰인 썬팅 작업은 지역의 간판 정비사업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자식 같은 토큰체가 썬팅이 아닌 간판이나 포스터 등에 쓰이면서 다른 모습의 토큰체를 만날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간판이나 포스터로 쓰이고 있는 토큰체

▲ 간판이나 포스터로 쓰이고 있는 토큰체

 

“가끔 취미로 서예 글씨를 쓰거나 화투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요즘에는 유일하게 그릴 줄 아는 그림이 화투여서 누님 가게에서만 이렇게 그리고 있어요. 다음에 또 막걸리 한잔해요.”


하영철씨의 화투 그림과 서예

▲ 하영철씨의 화투 그림과 서예 

 

문래동은 현재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지역 정비사업과 경제적인 이유로 기계 관련 점포들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다른 지역의 젊은 예술 작가들과 다양한 점포가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하영철 씨의 토큰체로 쓰인 썬팅 작업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토큰체의 원도가 새로운 쓰임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복고풍의 재미있는 글꼴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다. 그 아쉬운 마음을 담아 필자가 직접 토큰체를 그려 보았다.

 

토큰체 디지털

▲ 필자가 다시 그린 토큰체

 

한글 글꼴 폰트 디자인 토큰체 문래동 이호 썬팅
필자 이호
이호
폰트전문스튜디오 닥터폰트 대표이자 사인전문잡지 팝사인(POPSIGN)과 타입센터에 한글 관련 외부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폰트 제작과 함께 한글 관련 교육 및 세미나,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고, 개인이나 기업을 상대로 좋은 한글을 만들고 사용하는 내용의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공공누리

'[서울] 문래동 전용 서체, 토큰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0)

관련 콘텐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