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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꽃아 꽃아, 네 이름이 뭐니? 나랑 놀자꾸나!

거창군 위천면 김종순 엄니

권영란

2018-10-19


 “코스모스, 장미… 이런 거는 그대로 말리면 시커멓게 색이 변해요. 이 색깔이면 참 예쁘겠다 싶은 물감을 들여서 곱게 말려요.

가을꽃은 봄꽃보다 더 알록달록해서 물감을 들이지 않고 자연색으로 그대로 말리는 것이 많고요.”


경남 거창군 위천면 김종순(78) 엄니. 밝은 분홍빛으로 물들인 코스모스 꽃송이들을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그 상자에는 ‘말린 꽃'들이 들어 있었다.


김종순 엄니


1941년생 종순 엄니는 요즘 꽃을 따서 말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봄 큰딸이 권해서 소일삼아 시작한 일이 이제는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종순 엄니는 길을 가다가도 피어 있는 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한다. 예쁜 꽃이 있으면 조심조심 따서 모으고 꽃 이름을 모르면 이름을 찾아보거나 딸한테 물어본다. 집 마당 텃밭이나 담장 옆에도 온갖 꽃과 채소가 자라고 있다. 국화며 백일홍만이 아니라 때 되면 밥상 위에 오르는 것들이 피워내는 무꽃이며, 감자꽃이며 호박꽃이며 모두 종순 엄니한테는 곱고 고운 꽃들이다.


“내가 좀 많이 바빠요. 꽃 말리느라고…. 봄 여름 가을 꽃 따서 말리고 겨울에는 포장해요. 딸이 요양보호사인데 말린 꽃(압화) 체험 프로그램도 해요. 올해 봄부터 처음 해본 건데 잘한다 해요. 공짜 아니에요. 딸이 용돈을 줘요.”


종순 엄니는 작은 마당이 딸린 방 두 칸짜리 집에 혼자 살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집 안 구석구석 허툰 데가 없다. 종순 엄니가 꽃을 말리는 방에는 색색의 물감이며 진공포장기 등이 갖춰져 있다. 상자에는 물감을 들이고 다 말려 진공포장한 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좌) 압화들을 설명하는 김종순 엄니, 우) 압화들



한국전쟁 피난살이에 4•19혁명까지 겪어


종순 엄니, 조용조용 말하는 말씨에 경상도 말투가 살짝 섞여 있지만 경상도 사람이 아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가 고향이다. 강원도서 여기로 시집온 거냐며 놀라니, “거창에 온 지는 14년 정도 됐네요. 평생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니며 살았지요”라고 말한다.


한국전쟁이 났을 때 종순 엄니는 9~10살이었다. 그해 겨울 어린 종순 엄니는 어른들 손을 잡고 무조건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대구쯤이었을까, 날은 춥고 어른들 등에 업혀 언 강을 건너는데 강물이 온통 핏물이었다.


“다들 다리가 얼어서 터지고 이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넜는지 강이 뻘게. 자다가도 밥 먹다가도 군인들이 가라면 가야 하고. 울 아버지는 이불, 쌀 보따리 이고. 내가 힘들어 못 가면 저만큼 가서 짐 벗고 다시 나를 데리러 오고. 아버지는 계속 왕복해야 하고. 단양 고모 집에 가서 남동생이 죽고. 또 동생 죽고…. 아버지가 인민군들한테 붙들려 갔다가 우찌 도망을 나왔는지 새벽에 논두렁을 기어 기어 왔더래요.”


2년 후 휴전이 되고서야 다시 강원도로 돌아갔다. 하지만 피난길에서 형제들은 다 죽고 종순 엄니 혼자 살아남은 뒤였다. 고향 동네는 전쟁의 흔적으로 어른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몇 년 후, 종순 엄니 18살 무렵 증조할머니뻘 되는 아버지 당숙모가 소개하는 집에 애 보기로 서울로 갔다. 애 보기는 힘들었지만,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과 종로 창경궁, 덕수궁으로 놀러 다닌 즐거운 추억도 있다. 그러다가 1년 뒤인 19살 무렵 4•19가 터졌다. 오후 5시만 되면 통행금지가 되어서 함부로 나다니지도 못했다.


“그때도 난리 통이야. 쫓겨 댕기고. 동대문 경찰서 데모해서 불 지르고 할 때 쫓겨 다니고. 군사혁명 때도 골목으로 쫓겨서 집으로 가야 하고요. 전차도 겨우 타고 다녔어요. 애들 데리고 가다가 신발 벗어졌다 캐서 신발 주러 갔는데 군인들한테 식겁 먹고 쫓기고. 무서웠어요.”


말린 꽃을 넣어 꾸민 액자 속 열아홉 살의 김종순 엄니

▲ 말린 꽃을 넣어 꾸민 액자 속 열아홉 살의 종순 엄니



스물여덟에 남편 잃고 애 셋만 오롯이…


그러다가 제천 사는 이모가 중매해서 충북 청풍으로 시집을 갔다. 이때가 20살인데 안 갈래 하는 것을 억지로 보냈다. 어른들은 다 큰 딸내미 밖으로 내돌리면 안 된다고 혼인을 서둘렀다.


“시집을 가보니까 역시 아니더라고. 신랑은 잘 해주는데 시골이라도 해도 너무 깡촌이라 시장을 한 번 보더라도 20리 길을 걸어가야 하더라고요. 게다가 신랑이 내가 애 둘 낳고 군대 갔어요. 옛날에는 36개월이니까, 꼬박 3년 동안 신랑도 없이 시댁 살림을 다 살았어요.”


남편 제대 후 3년이 지나서야 시아버지가 충주로 살림을 내줬다. 그러나 충주로 간 지 얼마 후에 충주 전매청담배제조조합에 다니던 남편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말았다. 종순 엄니는 나이 28살에 남편을 잃고 가장으로서 애 셋 데리고 살아야 했다. 생활은 고단했지만 8살, 6살, 8개월 된 아이들은 종순 엄니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중 한 아이가 소아마비 폐렴에 걸려 14살에 죽었다. 종순 엄니는 피눈물을 흘렸지만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울고 있을 틈이 없었다. 돌봐야 할 두 애가 있었다.


종순 엄니는 단양과 제천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따리 옷 장사를 했다.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들고 하루에도 몇십 리를 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서울로 갔다. 종순 엄니, 41살 무렵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머리에 이는 것은 절대로 안 해요. 차라리 안고 끌고 다니지. 그때 어찌나 머리에 이고 다녔는지.”


종순 엄니는 아이들을 위해서 뭐든 해야 했다.


“오뎅 공장, 후추 빻는 공장도 다니고, 비니루 공장, 한일 도루코도 가고, 답십리에서 구멍가게도 하고, 박스 공장도 다니고, 요지(이쑤시개) 갑도 접었는데 하루에 1000개 만들면 지금 돈으로 30,000원이나 될까. 당시 돈으로 300원이었으니. 스뎅(스테인리스) 나올 때는 그릇 장사도 하고. 집에 쌓아놓으면 와서 사 갔다. 박스 공장이 제일 힘들었다. 지금은 자동화됐지만 그때만 해도 수동으로 하니까. 찍고 붙이고 갖다 날라야 하고. 나는 농사는 못 짓것더라고요. 도저히….”


지금 생각하니 도대체 몇 군데 공장을 전전했는지 손꼽아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나이가 있고 여자 혼자 애 둘 데리고 산다고 무시하데요. 반말 찌익직하고 대우를 안 해요. 아니꼬우면 두 말도 안 하고 나왔지요. 그러다 보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래도 내가 남하고 싸우지는 않았어요. 바른말을 잘하지 왁자지껄 싸우지는 못해. 가진 것은 없어도 자존심으로 사는 거지.”



종순 엄니 텃밭엔 온갖 꽃은 피어나고


종순 엄니, 이제 거창살이 14년째다. 아들딸네가 이곳 경남에 자리 잡아 살고 있으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


“저기 위천면 모동에서 11년 살다가 요기로 2015년 4월 21일에 왔으니, 온 지는 햇수로 3년 됐네. 딸네 집도 요 근처예요. 노령연금 20만 원 받고 딸이 용돈 주고 며느리가 용돈 주니 그럭저럭 살아요. 아들보다 우리 며느리가 잘 챙겨줘요.”

 

종순 엄니는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집 한 채뿐이라 했다. 혼자라 적적할 때도 있지만 주변에 동무들도 있고, 지금은 세상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했다.


“내 묵을 거는 저기 마당 텃밭에서 다 나와요. 저 마당 밭에서 나는 게 12가지도 넘어. 쪽파 당근 토마토 고추 오이 상추 쑥갓… 내는 안 사 먹어요. 저 밭이 내 야채 슈퍼야. 다 있어요. 거기에다 꽃도 딸 수 있어요. 고추꽃, 부추꽃, 호박꽃, 당근꽃, 쑥갓꽃…. 내가 일궈 먹는 것들은 전부 꽃을 피워요. 고것들이 어찌나 살갑고 예쁜지.”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종순 엄니 먹을 것은 물론 아들딸네 챙겨줘야 할 것들이 쏟아진다. 거기에다 때 되면 꽃은 피어 종순 엄니를 열여덟 소녀처럼 들뜨게 한다.


“내가 이리 만든 것을 우리 딸이 산청 축제에도 가져가서 사람들한테 선보이고 ‘꽃누름 체험’을 시켜준대요. 우리 딸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 또 그게 힘이 돼요. 올해는 여름에 노니라고 조금 게으름 피웠는데 내년에는 좀 바지런히 해볼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놀 게 있으면 놀러 가버릴 겁니다. 노는 게 더 좋잖아요.(웃음)”


좌) 압화로 만든 부채, 우) 파란 대문 앞 김종순 엄니


종순 엄니네 집 담벼락에는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종순 엄니가 직접 칠했다는 파란색 대문 옆에는 맨드라미 백일홍꽃이 가을볕에 붉게 피어 있다. 저 꽃들도 며칠이면 다시 종순 엄니 손에서 새롭게 피어나리라.


* 엄니는 경상도, 전라도에서 어머니를 가리키는 토박이 입말이다. 이 글에서는 글 속의 지역성과 친밀감을 위해 어머니 나 ~씨 등의 호칭보다 이 지역의 토박이말을 지키기로 한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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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권영란
권영란

현재 〈한겨레〉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전라도닷컴〉과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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