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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질문은 정신을 강하게 만든다, 철학교사 안광복

‘철학적 물음이 끝나는 것은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

황효진

2019-03-13


검색 하나로 모든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정보화 시대. 깊이 사유하지 않아도 너무 쉽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질문이 무성한 이 세상에 검색하지 않고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물음들은 몇 가지나 될까? 듣고, 보고, 검색한 것들이 나에게 최선의 답이 될 수 있을까? 내 입맛에 맞는 것들만 담아 듣고, 정답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나에게 불편한 것들, 깊이 있는 고민을 요구하는 것들은 그냥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철학은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넘어, 우리 생각의 나태함을 깨우는 질문들로 책은 쓴 사람이 있다. 20년 동안 철학교사로 재직하며 대중에게도 철학을 꾸준히 알려 온 철학교사 안광복. 그는 최근 저서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에서 나태함을 깨우는 22개의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불편한 질문이 우리의 삶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튼실한 정신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해보라 말하는 안광복 선생과 불편한 질문과 철학적 물음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다.


안광복 작가 인물 사진


Q. ‘불편한’ 질문이라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A. 마음의 콤플렉스와 성장의 한계를 짚어주는 것입니다.


대학원에서 심리 상담을 배웠어요. 심리 상담에서 자기 탐색의 한 방법으로 추천하는 게 ‘상대방과 대화할 때 어떤 부분에서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사실은 내 문제라는 뜻이거든요. 쉽게 예를 들면, 누군가 월급의 액수를 두고 쪼잔하게 이야기하는 게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내 문제일 수 있다는 거죠. 나의 쪼잔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사한 것입니다. 이렇듯 불편함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물음을 짚는 데서 옵니다.

 

 

Q. 자꾸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훈련을 통해서 정신을 튼실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운동 하지 않으면 건강이 망가집니다. 마찬가지로 사유도 훈련하지 않으면 정신이 병들게 돼요. 저는 이것을 ‘멘탈 짐내스틱(Mental gymnastic)’이라고 부르는데요, 철학의 장점은 끊임없이 자기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의 근육이 튼실한 사람들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잘 넘어갑니다. 정신의 근력이 갖춰진 사람들, 이성의 힘이 강한 사람들은 삶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맞는 것들만 골라서 소비할 수 있는 큐레이션의 시대에는 불편한 질문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음식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달고 짠 것들은 그냥 맛있죠. 그런데 그것만 먹다 보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면 그런 ‘단짠’ 음식에서 벗어나야 해요.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나하고 다른 것, 불편한 것들과 접할 때 사유할 수 있게 되죠. 비로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만약 불편함 하나 없이 내 두뇌에 쉽게 끌리는 지식이 있다면 영혼의 ‘단짠’이라 할 수 있겠네요.



Q. 저서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의 중심이 된 22개의 질문들은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A. 지금 이 순간 저한테 절실하게 다가오는 문제 위주로 질문을 뽑았습니다.


옷에 기성품이 있고 맞춤형이 있듯, 문제도 기성품이 있어요. 이 책에 실린 질문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논술형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그리고 ‘책문’이라는 조선 시대의 대과 시험 문항에서 골라냈습니다. 제가 품고 있던 문제의식을 정리해서 질문으로 만든 것들도 있고요. 이 질문들은 지금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것들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이 고민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이 기계보다 뭘 잘 할 수 있을까?’ ‘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고민을 비슷하게 하고 있겠지요.



Q. ‘도대체 인간은 뭘 잘할까?’라는 질문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A.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역은 의미탐구가 아닐까 싶어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역추적해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적용해보는 겁니다. 신이 우리의 창조주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 인간은 신에게 끊임없이 묻잖아요.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요. 기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인간에게 끝없이 질문하는 거예요. ‘우리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기계로서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사실 기계는 그런 의미를 탐구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기계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의미를 탐구하는 일이에요.


나태함을 깨우는 철학의 날 선 물음들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도대체 인간은 뭘 잘할까? 기계를 학대하면 안 되는가? 환경보호는 인간을 위한 것인가, 자연을 위한 것인가?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걱정해야 할 일일까? 모두에게 올바른 역사는 과연 가능할까? 사회가 발전할수록 나도 더 행복해질까? 신이 나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과학적인 지식은 누구에게나 객관적인가? 정의니 진리니 하는 것들이 내게 이득을 가져다줄까? 남의 죽음을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게 그리 대단한 일일까? 소신을 내세우는 리더는 독재자인가? 내가 받은 상처를 똑같이 되돌려주는 게 나쁜 일일까? 이기적인 국가가 조폭보다 나을 게 있나? 안광복 지음 30만 독자의 철학교사 안광복의 생각 근육을 키우는 멘탈 피트니스 이크로스

▲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안광복, 어크로스


Q. 오랫동안 철학 교사로도 재직 중이십니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교사이신가요?

A. 철학자가 제일 잘하는 게 침묵을 지키는 일입니다.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높이려고 해요.


제가 진행하는 철학 수업은 학생들 발표가 거의 전부예요.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수업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감정을 드러내게 만들고, 인생의 의미를 고민해보게끔 하죠. 제 수업의 결과는 매년 9월에 완료됩니다. 각자의 열아홉 살을 떠나보내면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해보는 ‘졸업 리추얼’을 가져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의 내용을 담아 자신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쓴 다음,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게 합니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겁니다. 치열한 인생에서 한발 물러서서 우주의 관점에서 인생의 의미를 탐색해보는 것이죠.



Q. 말씀 속에서 철학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느껴집니다.

A.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류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은 인문학의 범주에 속하고 인문학은 역사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면서 인간이 가진 삶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지요.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철학자로서 인류에 대한 소명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계속 말씀드렸던 것처럼 철학은 인간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견이 상식이 되지 않도록 하고, 누구든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농담 삼아 말하면, 주변에 철학자가 있다는 건 위궤양에 걸리기 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웃음) 저는 평소에는 발톱을 감추고 삽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누구에게든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물음을 던지지요.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건 현실을 직면할 수 있게끔 하는 충고니까요. 다만 그 전에, 인간이 스스로 자랄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공감해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광복 작가 인물 사진

 

Q.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철학 공부를 시작하셨나요?

A.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을 시작했어요.


철학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병들고 아픈 사람들 일지도 모릅니다. 건강한 사람이 철학에 관심 있는 경우는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철학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에게 병들었음을 깨닫게 하는 학문입니다. 그렇다고 건강한 사람에게 철학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요.

저 역시 학창시절에 대인공포가 심했습니다. 얼굴이 빨개질까 봐 수치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없었지요. 연단에 서는 것도 두려웠고요. 교사가 된 후에도 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끊임없는 철학적 수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별거 아닌 일이다. 얼굴 빨개지는 것 정도가 뭐가 문제냐. 너는 상대방의 얼굴이 어떻게 바뀌는지 매 순간 관찰하냐. 네가 남한테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이렇게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이 강해진 것이지요. 다만 이런 식으로 철학적 수양을 하게 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려고 합니다. 저도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인간인데, 자칫하면 말로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Q. 결국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요?

A. ‘다르게 생각하기’입니다.


내가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 삶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끝없이 불편한 질문에 도전하며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삶이 지속되는 한 ‘내가 왜 사는가’,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물음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원래 조건이 그렇습니다. 철학적 물음이 끝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놓아버린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철학을 이론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가늘고 모질게, 꾸준히 수련해야 합니다. 어렵더라도 소리 내서 한 두 장이라도 철학책을 매일 읽는 것,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 그렇게 축적하다 보면 정신의 근육이 만들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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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효진
황효진

웹매거진 <ize>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획하고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긴다.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과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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