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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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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영화 인물

영화 남한산성 속 그 장면 그 대화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척화를 하자니 죽을까, 살려 달라 하자니 역적 될까...”

by 계승범 / 2020.10.23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영화 남한산성 속 그 장면 그 대화

[그 장면 전후사의 인식] 안시성 전투, 영화와 역사 사이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은?



“헛된 명분 때문에...” 흑백논리에 빠진 ‘병자호란’ 평가

 

 

영화 남한산성 홍보포스터

▲영화 남한산성 홍보포스터(이미지 출처 : 싸이렌 픽처스)



영화 <남한산성>은 2017년 가을에 개봉하여 400만에 가까운 관객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작품에 대한 품평이 이미 적지 않은데 굳이 이 영화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함이다.


병자호란(1636-1637)에 대한 현대인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대명의리(對明義理)1)라는 헛된 명분에 매몰되어 척화(斥和)를 고집하다가 나라를 망치고 미증유의 치욕을 당했다는 비난이 꽤 거세다. 강화(講和)를 통해 일단 급한 소나기를 피한 후에 훗날을 도모하자는 주화론(主和論)이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는 인식도 뿌리 깊다. 하지만 전형적인 흑백논리요 양단 논법이다. 이런 도식화는 소설을 쓰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는 편리할지 모르나, 역사 해석에서는 금물이다. 오히려 몰역사적이다.

1) 대명의리(對明義理) 명나라에 대한 의리


여기서 영화의 한 장면을 보자. 청 태종인 홍타이지로부터 최후통첩을 받고 사면초가에 몰린 조선 조정은 어전에서 최후 선택을 놓고 마지막 논쟁을 벌였다. 핵심 대화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영화 속 1시간 31분~34분 및 47분 대화 장면)


인 조: 나를 성 밖으로 나오라고 하는구나. 나가면 다음은 어찌 되는 것이냐?

김 류: 전하의 뜻을 말씀해 주시면 충분히 받들겠나이다.

인 조: 나는 살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뜻이다.

최명길: 전하, 살고자 하시면 답서를 보내시어 말길을 트시옵소서.

김상헌: 진정 살고자 하신다면 답서를 보내지 마시옵소서.

인 조: 누가 답서를 쓰려느냐? 척화를 하자니 칸의 손에 죽을까 두렵고, 오랑캐에게 살려달라고 답서를 쓰자니 만고의 역적이 될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냐?

최명길: 신은 이제 만고의 역적이옵니다.



인조대왕 앞에서 다른 주장을 펼친 두 신하

▲인조대왕 앞에서 다른 주장을 펼친 두 신하(왼쪽은 척화론의 김상헌(배우 김윤석) 오른쪽은 주화론을 펼친 최명길(배우 이병헌))(이미지 출처 : 싸이렌픽처스)

 


이 대화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항복하면 살겠지만, 그 대신 만고의 역적으로 낙인찍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진정 살고자 한다면 답서를 보내지 말고 끝까지 척화하다가 이 산성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전쟁에서 세가 불리하여 항복하는 일은 역사에서 흔하다. 그런데 왜 이때 국왕과 신하 모두 항복을 만고의 역적으로 받아들였을까? 승패는 병가에서 흔한 일인데, 왜 그토록 마음에 큰 짐을 안고 있었을까? 후자의 경우, 최후통첩을 무시하고 척화하다가 죽어야 진정한 삶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종교적 순교 수준의 이런 척화 발언이 조정 논의를 주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에서의 항복은 병가지상사,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겉으로 드러난 내용은 다를지라도 저 두 입장은 사실상 같은 뿌리다. 이번에 항복하면 만고의 역적이라는 말은(인조‧최명길) 곧 만고에 걸쳐 떳떳한 이름을 남기려면 지금 여기서 의리를 지켜 죽어야 한다는(김상헌) 말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최명길과 김상헌 모두 이번 항복을 ‘병가지상사’로 보지 않기 때문에 만고의 역적이니 진정한 삶을 운운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국왕이 항복의식을 치르는 일이 큰 치욕이기는 하지만, 만고에 씻지 못할 수치는 아니다. 절치부심이나 와신상담을 통한 권토중래는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인조는 물론이고 척화론자나 주화론자 모두 만고의 역적이라는 생각은 같았다. 왜일까? 그들이 말한 ‘만고의 역적’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다른 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서도 그들이 그렇게나 중시한 가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조선부터 달라진 중국에 대한 태도, ‘신하이자 자식’

 


현실에서의 남한산성 모습

▲현실에서의 남한산성 모습(이미지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는 중원의 황제국(종주국)을 여덟 차례나 바꾸면서 어떤 이념적‧윤리적 부담도 갖지 않았다. 현실의 패권국을 그대로 황제국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은 달랐다. 조선인이 보기에, 명은 단순한 강대국 차원이 아니라, 주-한-당-송으로 이어진 유교적 중화 문명의 주인공, 곧 중화 문명국이자 천자국이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주자학적 화이관2)이 매우 강고하였다. 그 결과, 16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명-조선 관계의 본질을 이전의 군신 관계에 부자 관계를 추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충과 효에 동시에 기초한 군부-신자 관계로 이념화한 것이다.

2) 화이관(華夷觀) 편집자 주-인간 세상을 중화와 오랑캐 둘로 나누어 보는 배타적인 관념


그런데 군신 관계(충)와 부자 관계(효)는 차이가 있다. 군신 관계는 군주의 태도 여하에 따라 가변적이었다. 군주가 왕도를 떠나 악을 행하며 간쟁도 듣지 않으면, 신하는 군신 관계를 끊고 조용히 떠날 수 있었다. 반정이나 역성혁명도 가능했다. 즉 영원불변의 절대적 관계가 아닌, 상대적 가치였다. 이에 비해, 부자 관계는 부모가 아무리 패악하더라도 자식으로서는 부자 관계를 스스로 끊을 길이 없는 영원불변의 절대적 가치였다. 바로 이점이 명‧청 교체기를 맞아 조선인이 고려인과는 달리 황제 곧 천자를 바꾸는 데 심각한 윤리적 부담을 가진 이유였다.


17세기 전반 명‧청 교체라는 격변의 시기를 맞아 조선이 명과 청 사이에서 저울질하기보다는 형세에 상관없이 무조건 명에 사대하고 청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충효에 기초한 사대 의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조선이 취할 대응방법은 사실상 명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조선이 정묘호란(1627)을 맞았을 때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후금(청)과 형제 관계까지는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홍타이지가 새롭게 요구한 군신 관계는 조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패륜에 다름 없었다. 위기에 처한 아버지(명)를 돕기 위해 자식(조선)이 자기 안위를 돌보지 않고 바로 달려가기는커녕 아버지를 죽이려는 원수(청)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린 것이 바로 삼전도 항복의 핵심 본질이었다. 이 항복이 병가지상사가 아닌 이유, 곧 국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재 이유(레종데트르) 자체를 범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존망보다 더 중요했던 ‘중화’

 


영화 남한산성 속 인조대왕

▲영화 남한산성 속 인조대왕 모습(이미지 출처 : 싸이렌픽처스)



당시에는 아직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왕조의 존망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였다. 바로 중세적 보편문명 곧 중화였다. 구체적으로는 한족(漢族)이 주도하는 유교적 중화문명이었다. 조선이 지리적으로는 중화의 바깥 곧 이적(夷狄. 오랑캐)의 땅에 자리했지만, 문화 차원에서는 어엿한 소중화로서 중화의 일원이라는 문명의식이었던 것이다. 조선이 명에게 사대한 이유는 명을 그런 보편문명의 담지자로 인식했기 때문이지,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1644년 명의 몰락을 조선인이 그저 한 제국의 멸망이 아니라 천붕(天崩), 곧 하늘이 무너진 일로 받아들인 이유도 바로 이런 문명의식 때문이었다. 이점이 바로 남한산성의 극한 상황에서도 척화론이 강고했던 근본 이유다.


유교 사회 조선에서 육두문자를 제외하고 가장 심한 욕은 ‘의리 없는 놈’이었다. 의리란 인간관계의 본질이자 기본윤리다. 가정에서 의리를 지켜야 할 최고 대상은 부모이며, 그것이 바로 효다. 국가사회에서 의리를 지켜야 할 최고 대상은 군주이고, 그것이 바로 충(忠)이다. 따라서 의리 없는 놈이란 바로 인간의 마땅한 도리를 지키지 않는, 그래서 인간이 아니라는 심한 욕이다. 우리 귀에 익은 ‘금수만도 못한 놈’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문명론적 이념 무장이 철저했기에, 삼전도 항복은 결코 일회성의 치욕으로 끝날 수 없었다. 성문을 열고 항복하러 나가는 순간 인조와 대신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금수로 전락한 극악무도한 패륜적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고의 역적’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삶’이란 항복을 거부하고 지금 죽어야 중화의 인간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항복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들 그런 삶은 이미 인간이 아닌 금수의 삶이라는 얘기다.


한편, 문명론의 기저에서 작동하던 양반사대부의 현실적 이해관계도 살필 필요가 있다. 삼전도 항복의 가장 큰 문제는 충효를 솔선수범해야 할 국왕과 중신들 스스로 유교의 양대 가치인 충과 효를 동시에 범한 되돌리기 힘든 극악무도한 패륜 행위였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런 행위를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논리로 변명하고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부자 관계(효)는 상황을 초월하는 절대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삼전도 항복을 변명한다면, 그 후폭풍으로 조선 사회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를 깊이 염려했을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훗날 송시열이 남긴 분석이 가장 정곡을 찌른다. 그의 진단을 현대어로 바꾸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삼전도 항복의 정당화는 가치체계와 지배구조의 붕괴



병자호란 이후 북벌론을 주장했던 송시열 사진

▲병자호란 이후 북벌론을 주장했던 송시열 사진(이미지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삼전도 항복을 상황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다면, 이제는 더이상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노비가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상놈이 양반에게 무조건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송시열은 그동안 조선왕조는 충효라는 양대 가치로 지배질서를 구축하였는데, 충효를 동시에 범한 삼전도 항복을 상황 논리로 변명하고 받아준다면, 그것은 바로 충효를 상대적 가치로 전환하는 것이고, 정말로 그렇게 되면 조선왕조의 양반지배구조가 사실상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우려를 표명한 셈이다. 따라서 조선의 지배 엘리트층은 외교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청을 새 황제국(종주국)으로 받아들였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이미 망하여 없어진 명을 여전히 군부로 간주하며 더 철저하고도 애틋하게 흠모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삼전도 항복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누란지세의 국가위기에서도 척화론이 여론을 주도한 연유를 단순히 사대 의리나 헛된 명분론 등으로 설명하고 그치면 곤란하다. 항복의 이면에는 군위신강(君爲臣綱)과 부위자강(父爲子綱)과 같은 3강 문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양반지배층의 기득권(지배구조)을 고수하기 위한 현실적 이유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병자호란을 전후하여 척화론이 조야를 뒤덮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내내 정치‧지성사의 흐름을 주도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점을 간과한 채 헛된 명분론이라는 피상적 설명만 반복한다면, 17세기 조선은 정말이지 매우 ‘이상한’ 나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승범 영화 남한산성 송시열 병자호란 인조
계승범
계승범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 University, UCLA에서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가르쳤다. 주로 조선시대 양반 지식인들의 중국관과 유교의 한국적 특성이 결합되어 조선사회를 만들어 간 과정과 그 역사적 유산이 현대 한국사회에 전이되어 나타나는 양태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중종의 시대: 조선의 유교화와 사림운동》, 《정지된 시간: 조선의 대보단과 근대의 문턱》,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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