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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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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시각 : 마을 - 스스로 발생・진화하는 유기적 존재

by 박진아 / 2017.06.12

마을 - 스스로 발생・진화하는 유기적 존재


도시 바깥 시골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촌락 혹은 동네 ‘마을(Village)’.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서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거나 오밀조밀 밀집되어 형성된 인간 거주 정착지다. 지리학자들에 따라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총 인구 100명 이하의, 적게는 다섯에서 서른의 가족 단위 집단이 모여 사는, 그야말로 서로서로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이 이웃사촌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전통적 공동체(Communit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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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마을은 별도의 계획 없이 중앙 거리가 구심점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집, 교회나 사당 같은 신앙 공간, 장터, 관청, 우체국, 광장이 오밀조밀 모여

유기적으로 발달한 행정적・경제적・관습적 공동체다. 빌렘 쾨쾨크(Willem Koekkoek, 암스테르담, 1839-1895)

<화창한 어느 날 한 네덜란드 시골 거리의 마을사람들(Townspeople on a sunny Dutch street)> 1869년,

캔버스에 유채, 66.2 x 84 cm. Image source: Christie’s.


우주 대폭발과 팽창활동으로 현재의 우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는 빅뱅 이론처럼, 몇몇 건축가와 도시설계 전문가들은 물이 있어 생존이 가능하고 농사를 지어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지점에 인간을 뚝 떨어뜨려 놓으면 인간 거주 공동체(Human settlement)가 유기적으로 형성된다고 믿는다. 실제로, 일찍이 구석기인은 사냥과 수렵에 효율적이도록 핵가족이나 부족 단위의 초소형 유목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고, 이어서 농사와 도구제작을 하며 정착생활을 시작했던 신석기 인류는 보다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농경사회 내의 기능과 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부족 및 친족 기반의 정치경제 체제로 자연스럽게 이행・발전했다.

마을은 유기적인 실체다. 농업기술의 발전, 인구증가, 경제활동의 다양화, 산업화 같은 요인을 거치는 마을 공동체는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중산층 인구가 늘며 통치가 복잡해지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겪고 서서히 크고 작은 도시(City)로 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고대 그리스의 아티카(Attica)가 있다. 지방에서는 농경에 종사하던 수많은 부족들과 씨족 촌락들이 연합과 동맹을 거듭하는 ‘시노이키스모스(Synoikismos)’ 과정 끝에 수도 아테네가 탄생했다. 이 현상을 철학적으로 정당화 하듯,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Politics)』에서 “인간의 본성은 정치적이며, 때문에 가족(Family)을 형성하고 연합하여 마을(Village)을 형성하고 하나의 큰 사회, 즉 국가(State, 이 경우 도시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며 궁극적으로 현자가 추구해야 할 자족의 경지(Autarkeia)”라고까지 보았다. 그리스를 공화국 건설의 모델로 삼았던 고대 로마는 이를 본따 팔라티노 언덕에 살던 가족단위 촌락들을 강제 연합시켜 초기 로마 건설의 주축 구성세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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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자연이 있는 사후세상 엘리시움(Elysium) 신화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귀족과 양반들은 평상시에는 도시 안에서 지내며 사무, 정치, 외교 업무를 보고

여가 시간에는 시골에 소유한 대규모 사유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이른바 앵반 농부(Gentleman farmer) 생활을 누렸다

 스위스의 옛 로마 마을 오르베(Orbe)에 남아있는 이 모자이크는 스위스 동부지방을 지배했던 로마제국 시대 로마 귀족과 영주들이

그들의 대규모 사유지에서 유유하게 농사짓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기원후 170년경 제작. Courtesy © Switzerland Tourism 2017.


마을(Village)은 여러모로 도시(City)와 아주 상반되는 개념의 거주 단위이자 영역이다. 자연, 시골, 가족과 부족 중심으로 뭉쳐 사는 사람들이 영위하는 도시에 비해 단순하고 전통적인 생활습관을 핵심축 삼아 돌아가는 거주 단위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의 경제는 농사, 어업, 임업, 가축사육 등 자연의 순환과 세월의 변화에 복종하며 노동하는 시골적 생계활동으로 돌아간다. 행정적으로는 마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나 유지가 마을 주민들과 사안을 공유하고 소통하여 합의(Consensus)한 끝에 의사결정을 하는 이른바 ‘비공식적 민주주의’ 협동조합처럼 운영된다. 대가족 친족들이나 부족의 구성원들과 오랜 세월 알고 살아왔던 이웃들 사이의 공동체적(Communal) 인간관계와 사교생활은 전통적 관습과 신앙심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에 차가운 사회계약이 아닌 ‘아는 사람들끼리의 신뢰(Trust)’에 기반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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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중심부를 둘러싸고 거주 정착지가 형성되는 ‘클러스터형’ 농경 마을 외에도 강가나 바닷가를 끼고

길게 마을이 형성되는 ‘일자선형’ 주거 정착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클러스터형 마을은 자칫 고립된 촌락이 되기 쉽지만

바나나 강가를 끼고 발달한 마을은 물자이동과 교통에 유리하기 때문에 부유한 무역도시로 발전하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제공한다.

피터 브뢰겔 아들(Pieter Brueghel the Younger) <성 조지 기념 축제 장터에서 메이폴 5월제 기둥 아래에서 춤추는 사람들>,

1620-25년 경, 참나무판에 유채, 52.7 × 85.1 cm. 개인 소장. Source: Sotheby’s London.


하지만 그 정겹고 친근한 마을 생활에도 문제점은 있다. 마을은 한 고장에서 정착해 사는 시골사람들의 정적인 생활 터전이다. 도시에 비해 생활 반경이 작고 전통과 인습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한 시골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꺼리고 외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무지몽매한 외톨이가 되기도 쉽다. 실제로 농부(Farmer)가 토지를 소유한 농장주로서 재산축적과 재정활동을 할 수 있는 농장주인 것과 달리, 소작농(Peasant)은 구조화된 빈곤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 결과 현대인은 ‘시골 사람은 도시인에 비해 덜 세련되고 경제적으로도 빈곤하다’는 편견을 여간 버리지 못한다.


군락에서 도시 혁명으로


마을 공동체는 공동체 내 인구수가 증가하고 면적이 커지면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개입과 치정(治定)을 필요로 한다. 태곳적부터 인류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고을(District 또는 Country)이나 도시 및 그 안의 여러 인프라는 단순히 인간 부락의 유기적 생성의 결과였다고 짐작할 수 있지만, 실은 인간이 심사숙고하여 설계하고 건설하여 실현된 도시계획과 토목사업의 성과였다. 예를 들어, 세계 4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를 포함한 기원전 4천 년에 등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미 친지나 대가족 중심의 군락 단위 마을의 규모나 조직적 질서를 능가한 도시 혁명을 이룩했다. 파라오 지배 하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들판노동자, 농부, 장인, 필경사 등 직업과 사회적 계급별로 격리된 마을을 형성해 모여 살았다. 고대 인더스 계곡 문명은 면밀하게 ‘도시계획’된 100개의 읍 규모의 소도시와 마을이 옹기종기 응축된 집락(集落)을 건설했다. 인도는 그래서 지금도 전체 인구의 70% 가까이가 시골 마을에서 살며 도시 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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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대공황기 미국 동부에 있는 비버메도우 마을을 풍경을 통해서 도시 대 시골, 진보 대 전통, 신앙 대 세속, 도시 신흥부유층 대 시골빈민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표현한 그림. 폴 샘플(Paul Sample)의 <비버메도우 마을(Beaver Meadow)> 1939년,

캔버스에 유채. Collection: Hood Museum of Art, Dartmouth College.


특히 18~19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은 시골 사람들의 인생과 마을 공동체를 영원히 변화시켰다. 시골사람들은 고향 마을을 버리고 더 많은 보수의 일자리와 더 밝은 미래를 찾아서 대도시로 떠났다. 시골 사람들은 자연 대신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동네나 이웃에 교회나 공동체 모임터 하나 없는 도시 속의 작은 아파트로 잠자러 들어가는 도시인이 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는 급속히 불어나는 인구의 주거를 해결하기 위하여 근대적인 도시계획이 실험된 시기이기도 했다. 파리는 프랑스 제2제국 시대 건축가 오스망의 도시재정비 사업으로, 꼬불꼬불한 중세 도시에서 길고 널찍한 대로(Boulevard)와 위풍당당한 오스망 양식 고급 아파트로 들어찬 웅장한 메트로폴리스로 재탄생했다.

20세기는 산업화 시대가 낳은 병폐 ―예컨대 인구증가, 도시환경의 혼란, 대기 오염, 주거부족, 공공 토목위생시설 등― 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20세기 대량생산・대량소비와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겠다는 자신감과 유토피아적 비젼이 주도한 시기다. 1950년대 핀란드 타피올라에서 시도된 ‘뉴 타운(New towns)’ 마을은 르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 건축론의 영향을 받아 인공 마을 공동체를 계획・설계한 프로젝트였는데, 이후 1960년대에 대륙권 유럽과 미국에서 도시재정비와 지역 재개발 사업에 널리 도입된 모범적 도시개발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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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시대 핀란드의 서민대중을 위해 설계된 인공 마을단지 ‘생태 마을(Ecological village)’ 혹은 ‘가든 시티’ 는

모든 입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자연과 조화되어 인공 신도시 안에서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적 삶을 모방해 본 헬싱키 외곽 신도시건설 프로젝트였다.

1.핀란드 타피올라 뉴타운 단지 내 옷손페사(Otsonpesa) 연립주택의 모습. 건축가: 하이키 시렌(Heikki Siren), 1959년.2.타피올라 가든 시티(Tapiola Garden City) 단지 내 매점. 건축가: 아르네 에르비(Aarne Ervi), 1952-69년. Courtesy: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Library.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마을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형성되고 성장하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산업화, 도시화, 인구증가를 겪었던 지난 20세기. 대도시 주변 위성도시를 개발하고 한정된 공간에 가급적 많은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여 대중에게 봉사하는 디자인 민주주의를 외쳤던 근대 건축가들의 야심은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시골서 상경한 도시근로자들이 직장과 아파트 사이를 걸어 오가던 마을 거리는 하나둘씩 자동차 도로로 닦였고, 전통장터나 주민광장 같은 자생적인 공동체 미팅포인트는 상가 쇼핑몰과 단지 여가센터로 대체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산업혁명과 근대적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 경제체제 덕분에 자연에 의존해 살던 인간은 고된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일상생활은 편리해졌다. 그럼에도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지적하듯, 공동체가 파괴된 현대사회 속 도시인의 마음과 영혼은 그 언제보다 공허해졌다. 그것이 자연에 귀의해 우주의 대섭리에 순응해 사는 엘리시움 낙원을 향한 갈망일 수도 있고, 친지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인터넷이 미래 글로벌 빌리지의 도시광장(Town square)이 되고 있다” 라고 예견한 빌 게이츠의 말대로 대다수가 도시거주자가 된 글로벌 시대의 인간은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같은 현대적 기술이 제공하는 가상 사회망을 빌어서나마 옛 마을 공동체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향수를 되찾아보려 몸부림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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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지도자 에보시의 지휘 하에 철을 가공하는 타타라 마을.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하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판타지 아니메 영화 <프린세스 모노노케(もののけ姫)>는

숲과 숲 속 생명체 그리고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해 살아가는 전통 부족 공동체를 파괴해가면서도

천연자원의 착취를 멈추지 않을 인간의 암울한 숙명을 여운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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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마을 군락 혁명 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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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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