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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o : 느린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 - 대니 분 감독의 <알로, 슈티>

이화정

2017-06-12

느린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


대니 분 감독의 <알로, 슈티>


마을에 도착한 도시인이 폐쇄적인 마을 분위기로 인해 극단적인 공포를 경험하고 나오는 영화들을 지금 당장 100개쯤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내 앞집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익명의 공간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구성원 모두가 가깝게 지내는 마을의 개념은 멀고도 낯설기만 하다.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마을이 주는 친근함이 도시인들에게는 오히려 프라이버시의 ‘침범’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심리는 단순히 불쾌함에 그치지 않고 폭력, 살인 등 극단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때마침 섬마을 성폭행, 살인사건 같은 흉흉한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기도 한다.
그 반대로 마을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곳이 벗어나고자 하는 공간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마을을 벗어남은 ‘성장’의 의미로 다가온다. 도심에서 뚝 떨어져 있고,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고, 이웃과 교류하는 마을이라는 고전적 단위가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기에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외지인에게는 두렵고,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겨운 공간. 이 부정적인 시각 안에서, 현대의 마을은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영화 <알로, 슈티> 포스터

 

프랑스 영화 <알로, 슈티>는 이렇게 오래된 마을에 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배경이 되는 마을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을은 이 영화의 설정이자, 갈등 유발 요소이자, 주제와 맞물려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문제의 마을은 프랑스 최북단 마을 베르그, 일명 ‘슈티’라 불리는 곳이다. 프랑스보다 오히려 이웃 벨기에와 근접한 이곳은 프랑스 하면 우리가 단박에 떠올리는 낭만적인 파리 혹은 휴양지로 알려진 니스 같은 남프랑스와는 사뭇 거리가 먼 곳이다. 북부에 위치한 탓에 날씨는 비가 많이 오며 1년 중 추운 날이 더 많고, 대부분 독주를 즐겨 먹는 탓에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슈티 프랑스어(Ch'tis-French)' 사전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심한 방언을 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타 지역에 비해 낮은 소득 수준을 지녀, 정치인들이 출마하고도 정작 거주하진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같은 프랑스인들에게도 슈티는 ‘악명’이 자자한 마을이다. 딱한 사연은 여기부터다. 우체국장 필립(카드 므라드)은 바쁜 도시 생활에도 진력이 나고 아내까지 우울증에 걸려, 남 프랑스로 인사발령을 받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 우선 원칙으로 내정되어 있던 필립의 전근이 갑작스럽게 취소된다. 필립은 가짜 장애인 행세까지 하면서 허위 신청서를 작성하고 눈속임을 하려 하지만, 곧 들통이 나게 된다. 그 결과 누구든 꺼려하는 베르그 지역으로 발령이 난다. 그러니까, 명백히 이건 ‘유배’인 셈이다. 도저히 가족까지 이 생지옥에 데려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혼자 떠난다. 가족들의 걱정 어린 배웅, 베르그에 가까워질수록 쏟아지는 장대비, 우체국 직원 앙트완(대니 분)의 도통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 게다가 커피에 치커리를 넣어 먹는다든가, 속 재료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지역 음식(프리카델), 코를 찌르는 강력한 치즈 등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벌칙’ 같은 것들이다. 베르그에서의 시작은 모든 것이 한 치 어김없이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베르그에 도착한 필립이 진짜 매력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도착할 때 그를 괴롭혔던 날씨는 막상 살아보니 화창한 날도 적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이 아닐까 싶었던 사람들에게도 사연이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날씨가 춥다보니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위스키를 좀 즐겨 마실 뿐이다. (주로 커피 마실 때 하나씩 녹여먹는 그 각설탕을 이곳에서는 위스키에 하나씩 넣어서 먹는다.) 게다가 늘 정신없이 지내던 도시에서와 달리, 낮술을 마시며 조금쯤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여유도 느끼기 시작했다. 못 알아들었던 사투리도 함께 말을 섞으며 배우다 보니 오히려 대화의 재미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냉담했던 필립이 꽁꽁 닫았던 마음을 열고, 우체국 동료들과 친해지고, 마을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고 정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자신은 달라졌지만, 막상 가족들이 있는 집에 가서는 여전히 ‘우울하고 끔찍한 곳’인 척하는 베르그의 연기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흥미롭다. 처음엔 “시간아 제발 빨리 가라”며 집에 돌아갈 휴일만 기다리던 그는 점차 이곳에서의 휴일을 즐기려 든다. 처음엔 가기 싫은 마음에 저속운전을 해 교통경찰에게 주의를 받았다면, 후에는 한시라도 빨리 베르그에 가려다 교통 위반 딱지를 뗀다. 베르그에는 실제로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타지인이 베르그에 오면 두 번 운다. 처음 왔을 때 (있기 싫어서) 울고, 떠날 때 (떠나기 싫어서) 운다.’ 필립 역시 그 심경의 변화를 직접 체험한다.

 

영화 <웰컴투 사우스> 포스터

 

프랑스 개봉 당시 <알로, 슈티>는 2,100만 관객을 동원하며(프랑스 국민 3명 중 1명이 본 셈) 역대 프랑스 자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탄탄한 각본으로 이후 <웰컴 투 사우스>라는 이탈리아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아들의 교육 때문에 밀라노로 전근을 꿈꾸던 가장이, 꼼수가 들통 나 소득·교육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이탈리아 남부 오지로 좌천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물론 <알로, 슈티>의 필립처럼, 그들과 부대끼고 알아가는 동안 그런 편견은 사라진다. 필립은 베르그에서의 체험을 통해 도심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여유와 사람들 간의 정감 어린 소통을 경험한다. 모두가 얼굴을 아는 작은 지역이라서, 생활이 너무 바쁘지 않아서 나뿐 아니라 남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자기 일에만 골몰하기에도 바쁜 도시인들이 볼 때는 분명 이 관심이 ‘낯설고’ ‘불편하고’ ‘무례하고’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필립처럼 우리 역시 무관심에 익숙해지고 무뎌져 있는 건 아닐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게 마을이라는 ‘느린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는 우리의 결핍을 채워줄 공간으로써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필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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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화정
이화정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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