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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무는 그곳, 솔랑시울길을 걷다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솔랑시울길'

인문쟁이 한초아

2017-07-07


오밀조밀 마주한 주택 사이로, 품을 내어주던 ‘골목길’.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골목’은 기억의 상자 속 희미해진 ‘유년기’를 꺼내오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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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의 골목길


이처럼 공간은 사람과 오래된 추억을 연결한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맞아온 건물, 일상이 스며든 골목길,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는 대전 동구 소제동 ‘솔랑시울길’을 소개한다.


일제에 의한 아픈 상처,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대전역’을 지나, 대전역 동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귀를 따갑게 했던 도시의 소음이 잠잠해진다.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으니, 서로의 얼굴을 맞댄 플라타너스 나무가 이방인을 반긴다. 커다란 나무, 빛바랜 간판, 좁은 골목, 시간의 흔적을 거스른 소제동 ‘솔랑시울길’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철도관사촌의 모습

▲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솔랑시울길)의 모습


‘반짝이는 솔랑산길’이라는 이름을 지닌 대전 소제동 ‘솔랑시울길’은 굴곡진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920년대 말 대전역 동쪽으로 일본 철도기술자들을 위한 관사가 건설되면서 ‘소제동’은 ‘철도관사촌’으로 존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철도관사촌 중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수탈과 억압의 역사와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40여 채의 가옥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모진 세월을 머금은 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역사적 의의 또한 지니고 있다.


일본 건축 양식이 반영된 가옥 형태1일본 건축 양식이 반영된 가옥 형태2

▲ 일본 건축 양식이 반영된 가옥 형태


솔랑시울길을 걷다보면, 일본식 건축 원형이 보존된 집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목조 형태로 지어진 건축 구조와 두 집이 벽을 맞대고 있는 연립주거 형태, 돌출된 창문, 다다미와 오시이레(일본식 벽장) 등의 요소는 당시의 건축 특징을 말해준다. 시간을 덧댔지만, 틈 사이로 묻어나오는 ‘일제’의 흔적은 우리의 아픈 과거를 증명한다. 또한 골목 모퉁이를 지키는 ‘나무전봇대’와 녹슨 못, 지붕 아래 숫자가 새겨진 ‘관사촌 번호판’ 등 일상의 틈 속에서 역사는 숨쉬고 있다. 과거를 잊고 살아갔던 우리에게 ‘솔랑시울길’은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나무전봇대의 모습

▲‘나무전봇대(오른쪽)’의 모습


근대와 현대의 접점에서, ‘솔랑시울길’을 마주하다

‘솔랑시울길’은 근현대의 모습이 공존한다. 화려하고 도시화된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아닌, 투박하고 정감가는 옛 1970~80년대의 모습이 마을 곳곳에 드러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이와 그의 친구들이 뛰어놀 것만 같은 옛 모습 그대로, ‘솔랑시울길’의 공간들은 망각 저편에 자리하던 추억들을 자극한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

▲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


60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키며, ‘대전 기네스’로 등재된 ‘대창이용원’과 1956년도에 지어진 철도청의 보급창고(등록문화재 제168호), 모든 걸 고쳐내던 만능박사 ‘전파사’와 생소한 브랜드인 ‘금성전자 체인점’까지.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간판과 건축은 삭막했던 도시의 정서마저 환기시킨다.


솔랑시울길의 공간들1솔랑시울길의 공간들2

▲ 변치않은 모습으로 60년을 그 자리에서 지켜온 ‘솔랑시울길’의 공간들


추억 속 옛 친구들이 뛰어나와 술래잡기를 할 것 같은 골목길과 아이들에게 커다란 스케치북이 되어주던 담벼락.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 아줌마와 나무 그늘 밑에서 부채질을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잊고 있던 우리의 옛 추억을 되새긴다. 사람과 공간을 잇고, 일상을 켜켜이 간직한 ‘솔랑시울길’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소제창작촌

▲ 소제관사42호이자 예술창작촌으로 운영되는 ‘소제창작촌’


재개발이라는 미명(美名)하에 허물고 버려졌을 공간은 ‘현재’와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둡고 침침한 골목에 화사한 벽화가 드리워지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던 오래된 집은 ‘예술창작촌’으로 변해 생기를 되찾고 있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되, 이를 배경으로 한 음악극과 전시회, 근대유산투어 등 다양한 아카이빙 사업을 통해,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소제동 솔랑시울길의 벽화 골목

▲ 소제동 솔랑시울길의 벽화 골목


회색빛 도시 저편,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제동 ‘솔랑시울길’은 그 만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함과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되새기라는 단순한 진리를 말이다. 할머니의 품처럼 세월의 향취가 묻어나오는 ‘솔랑시울길’에서 느림의 미학을 즐겨보길 바란다.



사진= 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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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철도관사촌과 관련된 건축 및 역사적 자료는 이상희, 「대전 원도심 재생을 위한 도시역사성에 관한 연구」, 목원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13을 일부 참고했습니다.


장소 정보

  • 대전
  • 골목길
  • 철도관사촌
  • 솔랑시울길
  • 대창이용원
  • 소제창작촌
한초아
인문쟁이 한초아

[인문쟁이 3기]


20여년을 대전에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대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청춘(靑春) ‘한초아’이다.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산책, 꽃과 시와 별,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행간의 여유를 즐긴다. 신문이나 책 속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자칭 ‘문장수집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뜨거운 ‘YOLO'의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를 통해, 찰나의 순간을 성실히 기록할 생각이다. 윤동주 시인의 손을 잡고, 가장 빛나는 별을 헤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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