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성듬성 말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어느 동네 골목이 저녁이 되자 북적이기 시작했다. 구포 피아노 거리의 상인과 골목의 주민이 함께 만나 음악과 이야기(낭독회)를 나누는 골목콘서트, 둥이네 베란다가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둥이네 베란다’는 골목에 위치한 3개의 이어진 건물 옥상에 자리한 베란다로, 오직 피아노 공장에서 키우는 강아지 둥이만이 이곳을 자유롭게 누빈다. 근처에 입주한 사람들은 모두 둥이를 알고 귀여워 하지만, 그들 서로는 마주치면 황급히 자리를 피할 정도로 어색한 사이다. ‘둥이네 베란다’에서 진행하는 이번 골목콘서트는 이곳 사람들이 둥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상인들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웃을 이룰 수 있도록 둥이의 이름을 빌려 낭독회를 마련했다. 행사를 기획한 상상편집소피플은 골목 인근 상인 및 주민들에게 콘서트 초대장을 보냈고, 이들은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아직은 8월 초라 무덥지 않을까 생각했던 우려는 베란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전날과는 다르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어스름하게 깔린 어둠, 그리고 베란다 옆으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와 타닥타닥 감자가 구워지는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말고, 오늘만 사용할 이름을 노트에 적어서 상자에 넣어주세요.”
참석자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사이 진행을 맡은 가수 이내가 노래를 시작했다. 뽑힌 사람은 이름의 의미 설명하고,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한 시와 문장을 낭독했다. 그러면 이내는 시에 어울리는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로 지은 이름의 의미를 알고 나자 한결 친밀한 사이처럼 느껴졌다. ‘낮은 햇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은 오후 3시의 나른한 햇살을 좋아하는 분이었고, ‘열정 졸리’는 열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면서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분이었다. 아, 이내는 ‘산허리에 낀 안개’라는 뜻이다.
“제가요. 지금 여러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제 노래는 짧게 부르고 있어요.”
한 시간 남짓한 콘서트 동안 베란다에 모인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는 이내는 자신의 노래를 줄였다. 시와 즉흥적으로 선곡한 노래가 어울려 기분이 좋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엿보였다. 자칫 소음처럼 느껴질 수 있는 기차가 꼭 이내의 기타와 합을 맞춘 듯이 지나가고, 울창하게 우는 매미 소리마저 강물같이 들리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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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콘서트가 끝나자 동네 반상회가 열렸다. 이름은 반상회지만, 콘서트 동안 열심히 만든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좋은 걸 함께 공유하고 싶어 모두를 데리고 왔어요.”
특히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함께 민화를 배우는 사이인데, 수강생 한 사람의 주도로 모두 이곳에 오게 되었단다. “금요일은 왠지 시끌벅적하고 신나게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잔잔한 분위기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의 얼굴이 편안했다.
이날, 어느 한 골목 베란다에 모인 사람들은 둥이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잠시나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공통점을 관계의 시작으로 발전시킨 이번 골목콘서트를 통해 이들은 그 인연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부산] 골목에서 피어난 관계의 시작
골목콘서트 여름 시즌③ 둥이네 베란다
2018-09-10
듬성듬성 말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어느 동네 골목이 저녁이 되자 북적이기 시작했다. 구포 피아노 거리의 상인과 골목의 주민이 함께 만나 음악과 이야기(낭독회)를 나누는 골목콘서트, 둥이네 베란다가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둥이네 베란다’는 골목에 위치한 3개의 이어진 건물 옥상에 자리한 베란다로, 오직 피아노 공장에서 키우는 강아지 둥이만이 이곳을 자유롭게 누빈다. 근처에 입주한 사람들은 모두 둥이를 알고 귀여워 하지만, 그들 서로는 마주치면 황급히 자리를 피할 정도로 어색한 사이다. ‘둥이네 베란다’에서 진행하는 이번 골목콘서트는 이곳 사람들이 둥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상인들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이웃을 이룰 수 있도록 둥이의 이름을 빌려 낭독회를 마련했다. 행사를 기획한 상상편집소피플은 골목 인근 상인 및 주민들에게 콘서트 초대장을 보냈고, 이들은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아직은 8월 초라 무덥지 않을까 생각했던 우려는 베란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전날과는 다르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어스름하게 깔린 어둠, 그리고 베란다 옆으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와 타닥타닥 감자가 구워지는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말고, 오늘만 사용할 이름을 노트에 적어서 상자에 넣어주세요.”
참석자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사이 진행을 맡은 가수 이내가 노래를 시작했다. 뽑힌 사람은 이름의 의미 설명하고,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한 시와 문장을 낭독했다. 그러면 이내는 시에 어울리는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스스로 지은 이름의 의미를 알고 나자 한결 친밀한 사이처럼 느껴졌다. ‘낮은 햇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은 오후 3시의 나른한 햇살을 좋아하는 분이었고, ‘열정 졸리’는 열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면서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분이었다. 아, 이내는 ‘산허리에 낀 안개’라는 뜻이다.
“제가요. 지금 여러분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제 노래는 짧게 부르고 있어요.”
한 시간 남짓한 콘서트 동안 베란다에 모인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는 이내는 자신의 노래를 줄였다. 시와 즉흥적으로 선곡한 노래가 어울려 기분이 좋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엿보였다. 자칫 소음처럼 느껴질 수 있는 기차가 꼭 이내의 기타와 합을 맞춘 듯이 지나가고, 울창하게 우는 매미 소리마저 강물같이 들리는 시간이었다.
1부 콘서트가 끝나자 동네 반상회가 열렸다. 이름은 반상회지만, 콘서트 동안 열심히 만든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좋은 걸 함께 공유하고 싶어 모두를 데리고 왔어요.”
특히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함께 민화를 배우는 사이인데, 수강생 한 사람의 주도로 모두 이곳에 오게 되었단다. “금요일은 왠지 시끌벅적하고 신나게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잔잔한 분위기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의 얼굴이 편안했다.
이날, 어느 한 골목 베란다에 모인 사람들은 둥이를 안다는 사실만으로 잠시나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공통점을 관계의 시작으로 발전시킨 이번 골목콘서트를 통해 이들은 그 인연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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