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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온다. 겨울 준비보다는 겨울을 살자.

- 철학,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이한진

2023-01-10

리드문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권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인들이 권태를 겪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노인의 무관심이 노인을 그의 계획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우리가 각자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인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해도......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일생을 사계절에 비유했다. 겨울은 노년에 어울리는 계절이다. 동물은 노화가 진행되면서 호흡이 어려워지고 소화력도 떨어진다. 모든 감각이 둔화한다. 여기에 더해 인간은 노쇠가 진행됨에 따라 죽음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삶의 끝자락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불안이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서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죽음에 가까운 노년을 걱정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마지막 장이다.



영화 <유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유스>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우리는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영화 ‘유스(YOUTH)’는 우리에게 노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프레드 벨린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겸 지휘자다. 그는 24년간 이끌던 베니스 오케스트라 활동에서 은퇴 후 스위스의 요양 호텔에서 장기 휴가를 보내게 된다.


어느 날 영국 여왕의 특사가 호텔로 프레드를 찾아와 왕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작곡한 ‘심플 송’ 지휘를 요청하지만, 이를 거절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심플 송’은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작곡한 노래다. 자신보다 훨씬 노쇠하여 요양병원에서 생을 유지하고 있는 아내였기에, 그녀가 부를 수 없는 ‘심플 송’ 지휘는 프레드에게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 노래의 의미는 오로지 자신과 아내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프레드의 삶은 매우 무료해 보인다.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들과 결별하고, 마치 삶에서 은퇴한 사람처럼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 우리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게 된다. 노년은 삶의 의미를 천천히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인가? 삶의 의미를 찾으며 현실에 맞서는 일은 오직 젊음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노년은 단지 젊을 때의 노력 여하에 따라 누리는 삶의 여분이 아니다. 혹자는 노년을 젊은 시절의 인과응보로 여긴다. 이런 사고방식은 노년의 삶을 노년기에 도착할 때까지 누가 더 치열하게 살았는가에 따라 말년에 행복을 누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정도로 구분할 뿐이다.


노년을 죽기까지 흘려보내야 할 시간으로 치부하기보다 삶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노년 자체도 삶의 과정이요, 인생의 일부다. 영화 유스(YOUTH)는 이 사실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 은퇴 후 프레드가 보이는 삶의 태도와 대비되는 인물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있다. 늙어서도 여전히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친구, 아직 이루지 못한 공중 부양을 꿈꾸며 끊임없이 수련하는 수도승, 이전 작품에서 맡은 캐릭터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영화배우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런 목표가 없는 프레드는 일에서의 은퇴를 넘어 삶의 은퇴자로 묘사할 수 있다. 아무리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명석한 두뇌를 유지한 채 노년을 보낸다고 할지라도 삶의 은퇴를 자처한 사람은 권태라는 끔찍한 재앙에 시달리게 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지적이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박탈당한 은퇴자는 다른 어떤 영향력도 회복할 수 없다. 자기 일이 없는 여가란 자주성이 상실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우울한 나태는 결국 남아 있는 신체적, 정신적 균형마저 해치기 마련이다. 노년에도 여전히 우리는 할 일이 있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영화 <유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유스> 스틸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흔히 우리는 그토록 바라던 일을 성취했을 때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삶은 어느 한 가지 일로 온전히 환원될 수 없다. 인생의 목표가 지휘자인 사람이 지휘자가 되었을 때 남은 인생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 삶이 순수하게 하나의 단자에만 연관되어 있다면, 어떤 사건 하나에 의해서 삶의 의미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프레드의 오랜 벗이자 노장 감독 믹 보일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믹은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평생을 함께해온 여배우의 배신으로 더이상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되자 엄청난 상실감에 빠졌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노년에도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주변 세계와의 의미 연관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 프레드가 작곡한 음악은 그의 아내와 함께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지휘를 애타게 보고 싶은 영국 여왕부터 시작해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며 ‘심플 송’을 연습하는 소년도 프레드의 삶의 일부로 스며들 수 있다.


영화 중간중간 프레드가 작은 셀로판지를 한 손으로 비비적거리며 타는 리듬은 여전히 살아있는 그의 음악적 감각을 보여준다. 들판의 소들이 내는 울음소리, 목에 달린 방울 소리,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에 맞춰 지휘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지만 그야말로 압권이다. 안타깝게도 정작 프레드 본인은 자신의 재능을 뒤로 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권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인들이 권태를 겪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노인의 무관심이 노인을 그의 계획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우리가 각자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지 않는다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인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해도, 목표의 부재는 우리의 삶을 어둡게 만든다. 한편으로, 우리는 의미의 발견 속에서 삶이 여전히 미완성임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자각은 삶에 대한 회의주의적 태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삶에서 권태를 방지하고, 삶에 대한 의지와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열망을 품게 만든다.


유스(YOUTH)에서 영화배우로 등장하는 지미 트리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중 인기가 없었던 작품의 캐릭터를 기억하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은 없다.”는 그의 대사가 특별히 인상 깊었다고 말하는 소녀를 통해서 다시 연기할 용기,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노년도 마찬가지다. 노년은 준비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뤄야만 할 두려운 시기도 아니다.


암벽 등반을 무서워하는 프레드의 딸 레나에게 한 암벽등반가는 두려움을 경이로운 감정이라고 이야기해준다. 노년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기에 두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두려움이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일 수는 없다. 삶에서 늙었다는 독백은 핑계에 불과하다. 노화는 단지 생리적 균형의 새로운 상태다. 어쩌면, 별 무리 없이 노년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그냥 기존과 마찬가지로 자기 삶을 살아갈 뿐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아마도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만 있을 뿐 노화란 인식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오히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노화를 인지하게 된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자아가 나가 되는 셈이다.



노화

노화


 

노화는 거부할 수 없지만, 병이 아니다. 노화 자체에는 통증이 없다. 노화가 나쁜 병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자꾸 회피하려 하고, 최대한 늦추려 한다. 화장품은 주름살을 감추었고, 향수는 특유의 냄새를 가렸다. 염색약은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였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고도의 변장술을 발휘하는 삶 말이다. 사실, 이러한 변장술은 실제 자기 자신과의 대면으로부터 멀어짐이다. 자기동일성의 사슬에 묶여 사는 삶은 온전히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몸은 노쇠해지고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삶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끝날 서사를 써가는 꼴이다.


믹은 자신의 스텝 중 한 사람에게 망원경으로 먼 산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저게 젊을 때 보이는 풍경이야. 모든 게 정말 가까워 보이지. 그게 미래야.” 그러고 나서 거꾸로 망원경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게 늙으면 보게 되는 풍경이야. 모든 게 정말 멀어 보여. 그게 과거야.”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는 멀리 보기에는 여전히 젊고, 가까이 보기에는 한참 늙었다.


노년이 삶의 막바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동안의 삶을 정리한다는 의식에 함몰되어 버리면, 노년기는 삶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단지 관찰자로서 삶을 지탱하는 시기일 뿐이다. 정리보다 중요한 것은 노년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관조는 평생토록 할 일이고, 우리는 당장에 내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아내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한탄하며 지휘를 거부하는 주인공 프레드의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다.


영화는 프레드가 영국 왕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심플 송’을 지휘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비록 그의 인생은 겨울에 들어섰을지라도 자신의 겨울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프레드의 모습은 회춘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년이어도 여전히 우리는 사랑하고, 연민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 자신 또한 삶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


“모든 환상들이 사라지고 생명의 열기가 식었다 하더라도, 계속 삶에 밀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년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고, 정당하고 참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 S. Beauvoir, 홍상희・박혜영 역(2022), 「노년」 중에서 -

 

 

사람들은 노년을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이때의 충고는 대부분 저축이나 은퇴 후 안정된 생활, 취미를 만드는 일 정도를 언급하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까지도 강렬한 열정들을 보존해야 한다. 우리는 노년을 준비하는 데에만 매몰되지 말고 노년을 살아가는 데 힘써야 한다. 이것이 진정 삶의 회춘일 것이다. 언제나 봄, 여름, 가을이고픈 그대여, 겨울은 온다. 겨울 준비가 된 사람은 없다. 겨울을 살자.




 

 

[철학,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겨울은 온다. 겨울 준비보다는 겨울을 살자.

- 지난 글: [철학,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폐허를 넘어 새로운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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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진 초등학교 교사, 교육학 박사 사진
이한진

연동초등학교 교사, 교육학박사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초등교사로 근무 중이며, 레비나스의 타자윤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는 <아이들은 자꾸 어려운 질문을 한다>, <교사의 서재>, <철학하는 교사, 사유하는 교육과정>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 도덕교육에 주는 시사>, <레비나스의 고독과 탈출 개념에 대한 도덕교육적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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