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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화합이 필요한!!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

함규진

2022-02-28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는?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흔적이고, 그 사람들은 숫자와 구간에서 어떤 상징을 떠올렸을 것이기에, 어떤 달이나 날에 대한 특별한 관념과 개념이 연결지어질 수 있다. 가령 ‘1월’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시작’을 떠올리리라. 영어로 ‘March’라고 할 때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래서 여기서는 그러한 열두 달에서 연상되는 각각의 개념들, 그 개념들의 역사와 오늘에 다가오는 의미를 열두 달에 걸쳐 풀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열두 달에서 연상되는 개념들’의 역사다. ‘열두 달별로 일어났던 사건들’의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달에 일어났던 사건을 서술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이 그 달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의미가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독자들이 이 잡문을 읽고, 흥미와 함께 어떤 의미를 음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음력설을 쇤다고 야만인은 아니다. 2월 14일을 연인들의 날로만 여긴다고 역사를 잊은 매국노는 아니다.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고 더 되풀이될 위험이 있는 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는 것이야말로 민주 시민의 본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하여 좀 기묘하지만(조금 다르지만) 2월도 열두 달의 하나로 품듯, 나보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사람도, 지나치게 개인주의인 듯한 사람도 ……, 품고 화합해야 한다.


 

유독 튀는, 그래서 보듬어야 하는

 


2022년 2월 달력

2022년 2월 달력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유독 ‘튀는’ 달을 꼽는다면? 여러 사람이 여러 이유에서 여러 달을 꼽을지 모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정답은 2월이다. 다른 달들은 30(개) 이상의 날짜를 갖고 있음에 비해 유일하게 20대의 날짜인 데다가 그나마 때로는 28일이, 때로는 29일이 된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절기상으로도 좀 묘하다. 입춘(立春)이 첫머리에 들어 있으니 ‘2월이면 봄’이라고 할 법도 하련만, 봄다운 날씨는 최소 3월은 되어야 찾아오기 때문이다.


남들에 비해서 튀면 이상하다는 눈길을 받기 마련이다. 2월 29일에 태어나서 생일을 4년에 한 번씩 치러야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따돌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은 남들과 뭔가 다르다는 의식을 갖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화합이 필요하다. 특이한 존재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거나 대립되는 주제를 놓고서 말이다. 1월을 야심차게 시작했다면, 새봄이 오기 전에 뭔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우리 자신도 모르게 따돌려 왔던 존재나 주제에 대해 돌아보고, 함께 보듬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야만의 풍습!’이라 탄압받아 온 음력 명절들



날 수가 다른 달보다 적은 데다 고유 명절은 음력을 따르므로 2월에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지만, 설날과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 전통 동양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시했던 두 명절은 대개 2월 중에 온다. 설날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정월대보름은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보다는 중국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기원전 87년, 한무제(漢武帝. 중국 한나라의 제7대 황제)가 이날 자신이 즉위한 것을 기념하여 ‘원소절(元宵節)’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큰 잔치를 열게 했고, 도교에서 ‘상원절(上元節)’이라 하여 1년 중 가장 중요한 ‘하늘이 모든 사람의 생사와 선악을 정리하는 날’로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중국이나 대만 등에서는 휘황찬란한 전통식 등롱(燈籠. 등불을 켜는 도구)을 집집마다 내 거는데, 기원후 1세기 후한의 제2대 황제였던 명제(明帝)가 불교의 연등을 염두에 두고 내린 지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원소’라 부르는 둥근 과자를 만들어 먹는데, 둥근 등롱을 내걸고 둥근 원소를 먹으며 가족의 화합을 다지는 일을 중국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해 왔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세요 /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까치까치 설날 노래 가사 (작사: 수도미디어)



하지만 이 땅에서는 한동안 그러기가 어려웠다. 조선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대보름 행사에 도교, 불교적인 성격이 있다 해서 중국만큼 화려하게 기념하지는 않았으나, 귀밝이술, 쥐불놀이, 다리밟기, 부럼 등등 대보름과 관련된 풍속도 많았고 잔치도 많이 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음력을 ‘야만의 풍습’이라며 배격, 설날, 대보름, 추석 등 음력으로 쇠던 명절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래서 설보다 먼저 오는 양력설은 ‘까치까치 설날’일 뿐, ‘우리우리 설날’이 아니라는 은근한 저항의 노래도 만들어졌다. 빼앗겼던 국권을 되찾은 뒤, 대한민국이 시작된 뒤에도 이런 ‘문화 탄압’은 계속되었다. ‘전 세계가 태양력을 쓰고 있다. 음력을 쓰는 사람은 무지몽매한 야만인이며, 국민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정부 고관의 입에서 나왔을뿐더러, 경찰들이 몰래 음력설이나 대보름을 쇠는 사람을 잡으려 다녔다! 하지만 금지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인지, 1공화국이 무너지기까지, 또 그 한참 뒤까지도 사람들은 꾸준히 음력설을 쇠고 대보름을 기념했다. 정부 쪽에서 견디다 못해, 1976년에 처음으로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이후 ‘민속의 날(1985)’, ‘설날(1989)’이라는 이름 변경을 거쳐 양력설보다 더 긴 연휴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과세는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세계가 다 안 하는 걸 왜 우리만?’이라는, 일제강점기 때부터의 논리 그대로다. 게다가 전통과 그에 딸린 가족 화합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면서, 어쩌면 음력 명절들은 가까운 장래에 자연스럽게 사라질지 모른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 그저 상술일 뿐이라고?

 


밸런타인데이에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여성

밸런타인데이에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여성



한편 2월 중순에 있으면서, 대보름보다 관심을 많이 받는 ‘외래 명절’이 있다. 바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여성들이 먼저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초콜릿 판매업체의 상술이고, 밸런타인데이 따위는 다른 나라에는 있지도 않다며 ‘국적 불명의 명절! 상술에 놀아나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말자!’라고 헐뜯는 주장이 언론 등에서 적어도 1980년대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라며 ‘일제가 우리 민족의 경각심을 흐리기 위해 일부러 같은 날에 밸런타인데이를 만들고, 안중근과 독립 투쟁을 잊히게 획책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떠돌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밸런타인데이의 의미가 다소 변형된 것은 맞다. 거기에는 아마 제과업체의 상술이 한몫했을 수도 있다(한 달 뒤의, 이번에는 남성이 사탕으로 답례한다는 ‘화이트데이’까지, 아마도). 그러나 밸런타인데이가 제과업체나 일제의 발명품은 결코 아니다. 기원은 269년까지 올라간다. 그때 로마에서 발렌티누스라는 사제가 처형되었는데, 그 까닭은 미혼 남성들을 더 많이 군대에 보내려고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의 명령을 어기고 결혼 미사를 집전했기 때문이었다. 그 처형일이 바로 2월 14일이었고, 따라서 훗날 발렌티누스는 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다. 이후 그를 기념하는 ‘성 발렌티노 축일’은 연인들을 위한 날로 여겨져 왔으며, 크리스마스처럼 밸런타인 기념 카드나 선물 등이 널리 오갔다. 초콜릿이 주요 선물 품목이 된 건 1861년 영국에서부터라고 한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래 여러 서구의 풍습을 받아들이며 밸런타인데이도 수입했는데,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초콜릿 열풍이 불게 된 것은 전후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로 여겨진다. 다만 남녀 구별이 딱히 없는 서구와 달리 ‘여성이 먼저 선물하는 날’로 바뀐 것은 아마도 여성의 소극성을 강조했던 동양적 관습 때문일 것이며, 일본을 거쳐 그러한 변형판까지 한국에 수입된 것은 맞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 그 기독교적, 서구적 기원을 싫어하는 일부 이슬람 국가들과 북한 같은 나라에서만 금지할 뿐!


따라서 굳이 안중근 의사를 끌어내는 일은 무리다. 도대체 안중근 의사의 생일(9월 2일), 의거일(10월 26일), 처형일(3월 26일)을 다 제쳐 두고 사형 선고일만 특별히 의미를 둬야 할 이유는 뭘까? 일제가 얼마나 안중근 의사를 두려워했길래,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자국에까지 밸런타인데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그 사형 선고일만큼은 애써 기억에서 지우려 했단 말인가? 그것도 일제강점기가 끝난 수십 년 뒤에 가서야?



미국의 2월, 어두운 자국 역사를 되새기는 달

 


프레드릭 더글러스(좌)와 에이브럼 링컨(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프레드릭 더글러스(좌)와 에이브럼 링컨(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2월을 계기로 우리가 ‘유별나 보이는 사람들’과의 화합을 생각해야 할 더 큰 까닭은 미국인들이 기념하는 2월의 독특함에 있다. 미국인들에게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이기도 하지만, 프레드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8~1891, 미국의 신문 발행인, 강연자, 정치가)의 생일이기도 하다. 흑인 노예 출신이면서 노예제 폐지와 인종 차별 철폐에 평생을 바친 프레드릭 더글러스. 또한 2월 12일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의 생일이다. 이 미묘한 우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미국인들은 1926년에 ‘흑인 역사 주간’을 만들어, 2월 12일과 14일이 들어 있는 주에 흑인들이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해방되었는지를 공립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치도록 했다. 이는 남부 지역 등에서 맹렬한 반대와 무시도 받았지만,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바람을 타고 점점 더 중시되어서 1970년부터는 아예 2월 한 달 전체를 흑인 역사를 집중 탐구하는 달로 삼게 되었다. 자국의 더러운 역사에 대한 이런 통렬한 반추, 반성,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인종끼리 화합하며 함께 준비해 나가는 보기 드문 교육 문화 운동에 비슷한 흑역사가 있었던 다른 나라들도 호응했다. 그래서 1987년, 일찍이 미국보다 빨리 노예를 해방했던 영국이 한발 늦게 ‘흑인 역사의 달’을 도입하게 된다. 이제는 캐나다와 아일랜드도 동참 중이며, 구글이나 코카콜라 같은 대기업들도 이를 적극 후원하고 있다. 해마다 2월이면 뉴욕, LA, 런던, 몬트리올, 더블린의 어린 학생들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의 녹음된 육성에 귀(를) 기울이며,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처절한 투쟁의 일생을 배우며,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가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되기까지에 대해 읽고 레포트를 쓴다. 우리 역사에도 어두운 부분들은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밸런타인데이는 ‘거짓’이며,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 ‘참’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가?


음력설을 쇤다고 야만인은 아니다. 2월 14일을 연인들의 날로만 여긴다고 역사를 잊은 매국노는 아니다. 그렇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고 더 크고 더 처절했으며 더 되풀이될 위험이 있는 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는 것이야말로 민주 시민의 본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하여 좀 기묘하지만(조금 다르지만) 2월도 열두 달의 하나로 품듯, 나보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사람도, 지나치게 개인주의인 듯한 사람도,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고 사회를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도 품고 화합해야 한다. 그러한 ‘관용’과 ‘화합’이야말로, 우리 스스로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2. 2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화합이 필요한!!

- 지난 글: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1. 1월, 새로운 시작이 꿈틀대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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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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