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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와 할머니

오래된 기억들에 관하여…

하지희

2019-03-06

4명이 달리는 달리기 시합에서 4등을 하고 풀이 죽어 있으면, "꼴찌를 하는 사람이 있으니 1등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거란다."라며

열 살이 채 안 된 어린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셨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는 거라며, 힘든 시기가 지나면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주셨던 나의 할머니는 어느새 아흔의 진짜 할머니가 되셨다.




받아쓰기의 추억

나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모두 다녔다.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다니다 보니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공책 표지에 있는 'OO국민학교'를 볼펜으로 찌-익 긋고, 'OO초등학교'라는 글씨를 새로 써넣었다. 중간에 전학까지 가게 되어 여러 번 고쳐 써야 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자 했었던 당시 정부는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고, 일제가 남긴 국민학생에서 대한민국의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기 위한 관문을 하나씩 넘어가고 있던 때였다.

 

받아쓰기와 그림일기는 피할 수 없는, 하지만 꼭 넘어야만 하는 높은 문턱과도 같았다. 여덟, 아홉 살의 어린이가 색색의 그림을 그리고 몇 줄의 일기를 매일같이 쓰는 게 상당히 어렵고 고달픈 일임을, 성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물론 개중에는 그림일기를 아주 훌륭하게 써온 친구도 있었다. 궁서체로 새겨진 ‘참 잘했어요’ 도장이, 또는 푸른색 잉크가 만들어내는 별 다섯 개가 찍혀 마땅한 그런 작품이었다. 나는 그림일기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어린이는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어떤 날은 엄마까지 동원해서 써내야 했던 고달픈 일과 중의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받아쓰기 시험은 내게 재미난 놀이 중 하나였다. 선생님이 던지는 어려운 단어를 맞췄을 때의 기분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동그라미 열 개가 그려진 공책 한 페이지를 네모난 책가방에 넣고 집에 갈 때면 '할머니한테 먼저 자랑을 할까, 할아버지한테 할까?'라고 생각하며 집까지 달려가곤 했다.

 

책가방 안에 든 철 필통에 연필들이 부딪쳐 내는 소리가 마치 나에게 손뼉을 쳐주는 것 같았다.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짤까닥, 짤까닥 소리도 더욱더 세차졌다. 엄마가 뾰족하게 깎아준 연필은 받아쓰기를 열심히 적어내느라 둥그렇게 뭉개졌지만, 분명 연필도 기쁘리라 생각했다.

 

 

‘휜색’이어도 괜찮아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받아쓰기 시험을 보던 날이었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하나씩 하나씩 내 공책 위에 글자로 태어나고 있었다. 아홉 개의 단어를 고민 없이 깔끔하게 써내었고, 마지막 열 번째 단어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가 아는 단어를 내주세요. 선생님!' 아마 교실에 있던 서른대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단어는 '흰색'이었다. 흰색.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 얼마나 깔끔하고 간단한 단어인가. 어려운 받침도 없고 발음 나는 대로만 쓰면 되니까. 하지만 어린 나는 그렇지 못했다. '흰색'과 '휜색'을 썼다, 지웠다, 를 반복했다. 연필이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지우개도 열심히 움직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종이 위에 지우개 부스러기가 늘어갔고 마음의 고민도 쌓여만 갔다.

 

24색 크레파스로 색칠공부를 할 때 한 번쯤은 집어 들었을 색인데. 미술학원에서 색을 칠하다 삐져나온 부분을 지워보겠다고 스케치북에 칠했던 색인데. 그 색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이 참 답답했다. 뾰족했던 연필심이 둥그렇게 변했을 때, 결국 나는 답을 써냈다. '휜색' 으로.

 

100점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당연히 답은 '흰색'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짝꿍의 공책을 봤다. '10. 흰색'이라고 쓴 칸에 예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부러웠다. 내 공책의 '10. 휜색'이 얄미웠다. 하나만 없었으면 나도 맞을 수 있었는데!

 

 

10.휜색 90점 10.흰색 100점 Illustration ⓒ Amy Shin

 

 

짝꿍에게 왜 휜색이 아니고 흰색이야? 라고 질문을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우리의 수준에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을 테니까. 그날 나는 90점이 적혀진 공책을 들고 털레털레 발걸음을 떼었다. 언제나 그랬듯, 할머니의 따뜻한 위로를 듣기 위해.

 

때때로 100점이라는 빨간 글씨 밑에 밑줄 두 줄이 쫙쫙 그어지지 않은 공책이라 할지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결같이 잘했다고 하셨다. "다 맞아야 진짜 잘하는 거죠!" 뾰로통한 나의 말에도 "꼭 그런 건 아니란다."라며 나긋한 목소리로 보듬어주시던 할머니였다.

 

 

Illustration ⓒ Amy Shin

 

 

나의 영원한 스터디 메이트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받아쓰기 공책을 새롭게 바꿀 때마다, 마지막 페이지를 채운 공책은 할머니의 서랍 속에 모이고 있었다. 먼 옛날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할머니는 아침마다 등교하는 당신의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고 하셨다. 열한 살 꼬마 할머니의 부러움과 배움에 대한 열망이었다.

 

할아버지와 결혼 후, 그는 그녀의 한글 교사가 되어주셨다. 이름 석 자, 집 주소를 가장 먼저 깨우친 할머니는 간단한 한자까지 섭렵하셨다. 어릴 때 배우지 못한 한을 마흔이 다 되어서야 푸셨던 거다. 할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학교 숙제를 하는 내 곁에서, 내가 읽던 전래동화책, 이솝 우화 책을 읽으며 밤 시간을 보내셨다. 가끔 얇다, 갉아먹다, 핥다 같은 받침의 발음이 어려운 단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물어보면서, 나와 할머니는 스터디 메이트인 셈이었다. 아마 받아쓰기 성적이 제법 좋았던 건 할머니가 항상 옆에서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팔 할이 할머니의 공이었다.

 

 

ㄱㄴㄷ Illustration ⓒ Amy Shin

 

 

할머니는 그런 분이었다. 4명이 달리는 달리기 시합에서 4등을 하고 풀이 죽어 있으면, "꼴찌를 하는 사람이 있으니 1등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거란다."라며 열 살이 채 안 된 어린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인생의 진리를 알려주셨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는 거라며, 힘든 시기가 지나면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주셨던 나의 할머니는 어느새 아흔의 진짜 할머니가 되셨다.

 

가끔, 아흔 살의 할머니 옆에서 아홉 살의 어린아이였던 그날들을 떠올린다. 어린 손녀를 지켜주었던 할머니의 튼튼한 팔다리는 세월 속에서 깊게 팬 주름 사이사이로 검버섯이 피어올랐지만, 그분이 해주셨던 말씀은 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내 뜻대로 삶이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지쳐갈 때면 조용히 되뇐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다고. 나는 지금 오르막길의 끝에 와있다고. 곧 수월하게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고.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할머니가 삶의 지혜를 아낌없이 전수해주셨기 때문이다. 팔 할이 할머니의 공이다. 나의 영원한 스터디 메이트, 할머니 덕분에 인생의 걸림돌을 조금은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것이다.

 

 

Illustration ⓒ Amy Shin

 

 

 

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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