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국의 바둑기사 커제가 한국의 박정환 기사와 바둑을 두다가 한국어로 욕을 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초보적인 실수 한 번으로 유리하던 시합에서 패색이 짙어졌고, 그 순간 자신의 뺨을 때리며 ‘시발’이라는 욕을 하고 말았다. 결국 그 경기는 박정환 기사가 이겼다. 이건 하나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의 욕설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K컬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뿐 아니라 이제 시발은 전 세계인이 알아듣는 욕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과 같은 드라마가 방영되고부터는 더욱 그렇다. 한동안 “<지금 우리 학교는> 본 외국인들 상태: 시발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라는 내용의 글이 인기를 끌었다. 고등학생들이 욕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갔으니까, 그들의 귀에 맴돌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주인공에게 “시발, 기훈이 형!” 하고 외치는 장면이 화제가 되어, 그 부분의 전 세계 더빙판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외국에서 함부로 욕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간 듯하다.
우리가 흔히 한류라고 부르던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라든가, <오징어 게임>이라든가, 그런 음악과 드라마를 앞세우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사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된다. 미국이나 일본의 만화, 드라마, 소설, 음악 같은 것이 잘되는 것만 주로 보아왔지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 인기를 끌고 국제적인 상까지 받으리라고는 상상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인가, 하고 고민해 본다면, 사실 잘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각 분야에서 콘텐츠의 퀄리티를 계속해서 높여 왔고, 특히 소속사를 통해 철저한 관리를 받아온 아이돌과 연예인들의 거기에 부합해 꽃을 피운 듯하다. 다만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면, 어쩌면 세계인이 알게 된 ‘시발’이라는 그 욕설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K'
치킨
우리는 그동안 한국의 문화를 알리겠다면서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중 하나가 K푸드, 한국의 음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 K의 사례 중에서도 실패로 손꼽힌다. 김치로 샤베트를 만들어 출품하거나 한국인도 잘 먹지 않는 음식을 대표 음식으로 소개해 오거나 했다. 나는 10여 년 전에 대학의 어학당에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때 그들에게 좋아하는 한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음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답했다. 바로 ‘양념 치킨’이었다. 나는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 사람답게 김치와 갈비도 맛있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 어학당 교재에도 이미 “김치와 갈비는 한식입니다.” 하는 예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 그거 싫어요.” 하는 반응이었다. 왜 싫은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만했다. 김치는 그들에게 맵고, 갈비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접근성 좋은 일상의 음식이 아니다. 대표적인 한식으로 ‘신선로’를 내세우는 데 이르면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나도 먹어 본 일이 없는, 사극에서나 본 음식이다. 거리의 치킨집만 봐도 김치나 갈비보다 훨씬 접근성이 좋다. 대부분의 한국인 역시 치킨을 더 좋아할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그러한 음식들을 굳이 숨겨왔고 누군가가 치킨을 한식으로 호출하면 부정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마치 시발이라는 우리 일상의 욕설이 외국에 퍼지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에 더해, K푸드의 번역어조차 그 기준이 우리가 아닌 외부에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김치는 이미 고유명사처럼 되어 ‘kimchi’로 표기되고 있지만, 떡의 경우는 ‘rice cake’다. 만약 꿀떡이라고 하면 ‘rice cake with honey filling’가 되고, 생선전도 ‘pan-fried battered fish fillet’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이 공공 용어 외국어 번역의 표기 지침을 제정한 데서 참고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매력적인 우리의 일상
이처럼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조심스럽다. 우리를 기준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기준으로 두고 그들의 편의와 이해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꿀떡을 주문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꿀떡을 좋아할 확률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꿀떡 주세요.”가 아니라, “라이스 케이크 위드 허니 필링 플리즈”라고 말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한류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욕설을 배제하고 “아이고, 이런 이 녀석도 참”이라고 한다든가, 그것을 “FUCK”으로 발음한다든가 했다면, 지금과 같은 K컬처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우리가 향유하는 익숙한 것을 내어 보여야 한다. 결국 엄숙하지 않은, 그리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은, 우리만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문화가 타인에게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중 피자 박스접기 아르바이트 하는 가족 (출처: 네이버 영화)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감독상을 받으며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라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과 한국인의 그 모습 그대로다. 반지하의 냄새, 그 창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거리, 피자 박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족까지, 누가 보아도 한국의 풍경 그것이다. 그는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해외 영화제 출품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굳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외국인들에게 1인치의 장벽만 뛰어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의 기준은 개인에게 있고, 개인이 속한 집단에 닿아 있다.
엄숙함과 문법의 경계를 넘어
2020년 오스카 시상식 봉준호 감독 (출처: 나무위키)
그의 수상 소감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로서 나도 항상 새기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 PC통신을 하면서부터였다. 고등학교 매점에서 빵을 사 먹은 이야기를 쓰면서 나의 글쓰기가 시작됐다. 매점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고3 선배에게 혼이 났다는 별것 아닌 글이었으나 무척 많은 댓글이 달렸다. 자신들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거나, 매점의 햄버거는 어떤 맛이었다거나, 요즘의 고등학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거나, 하는. 요약하면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너의 지금을 더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글을 쓰는 고등학생들은 있었다. 등단을 위해 예술고등학교에서 시와 소설을 쓰는 나의 또래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떤 엄숙함이나 문법 없이 써나간 고등학생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간 제안을 받았고 고2 가을에 나의 첫 책이 나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그 말을 국가의 단위로 옮겨오면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겠다. 싸이와 BTS가 한국어로 자신들의 노래를 발표해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일, 그 가사에 ‘강남’이라는 명사라든가 평범한 청춘들의 서사를 담아내는 일. 우리는 스스로를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정체성을 잃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닮고자 했던 다른 대상에 대한 동경만이 남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울리는 일을 즐겁게 해 나가다 보면, 거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곁에 와서 앉을 것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우리의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 잠시 누군가를 속일 수는 있지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로서 잘 살아가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싸이 <강남스타일>, BTS <다이너마이트> (출처: MBC뉴스, 서울신문)
지속 가능한 K컬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모두가 개인적인 서사를 계속 꺼내기를 바란다. 욕설도 하고, 치킨에 맥주도 먹고, 반지하가 있는 거리를 지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한 문화 범주 안의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그려지면 좋겠다. 거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더라도 그 안에서 당신의 평범한 노동과 소소한 일상이 기록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다시 세계적인 데로 계속 인도할 것이다.
K컬처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에서부터
- K컬처로 인문하기 -
김민섭
2022-07-21
전 세계인이 알아듣는 한국어
영화 <오징어게임> (좌)과 <지금우리학교는> (우)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몇 년 전 중국의 바둑기사 커제가 한국의 박정환 기사와 바둑을 두다가 한국어로 욕을 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초보적인 실수 한 번으로 유리하던 시합에서 패색이 짙어졌고, 그 순간 자신의 뺨을 때리며 ‘시발’이라는 욕을 하고 말았다. 결국 그 경기는 박정환 기사가 이겼다. 이건 하나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의 욕설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K컬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뿐 아니라 이제 시발은 전 세계인이 알아듣는 욕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과 같은 드라마가 방영되고부터는 더욱 그렇다. 한동안 “<지금 우리 학교는> 본 외국인들 상태: 시발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라는 내용의 글이 인기를 끌었다. 고등학생들이 욕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갔으니까, 그들의 귀에 맴돌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주인공에게 “시발, 기훈이 형!” 하고 외치는 장면이 화제가 되어, 그 부분의 전 세계 더빙판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외국에서 함부로 욕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간 듯하다.
우리가 흔히 한류라고 부르던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라든가, <오징어 게임>이라든가, 그런 음악과 드라마를 앞세우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사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된다. 미국이나 일본의 만화, 드라마, 소설, 음악 같은 것이 잘되는 것만 주로 보아왔지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 인기를 끌고 국제적인 상까지 받으리라고는 상상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인가, 하고 고민해 본다면, 사실 잘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각 분야에서 콘텐츠의 퀄리티를 계속해서 높여 왔고, 특히 소속사를 통해 철저한 관리를 받아온 아이돌과 연예인들의 거기에 부합해 꽃을 피운 듯하다. 다만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면, 어쩌면 세계인이 알게 된 ‘시발’이라는 그 욕설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K'
치킨
우리는 그동안 한국의 문화를 알리겠다면서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중 하나가 K푸드, 한국의 음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 K의 사례 중에서도 실패로 손꼽힌다. 김치로 샤베트를 만들어 출품하거나 한국인도 잘 먹지 않는 음식을 대표 음식으로 소개해 오거나 했다. 나는 10여 년 전에 대학의 어학당에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때 그들에게 좋아하는 한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음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답했다. 바로 ‘양념 치킨’이었다. 나는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 사람답게 김치와 갈비도 맛있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 어학당 교재에도 이미 “김치와 갈비는 한식입니다.” 하는 예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 그거 싫어요.” 하는 반응이었다. 왜 싫은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만했다. 김치는 그들에게 맵고, 갈비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접근성 좋은 일상의 음식이 아니다. 대표적인 한식으로 ‘신선로’를 내세우는 데 이르면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나도 먹어 본 일이 없는, 사극에서나 본 음식이다. 거리의 치킨집만 봐도 김치나 갈비보다 훨씬 접근성이 좋다. 대부분의 한국인 역시 치킨을 더 좋아할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그러한 음식들을 굳이 숨겨왔고 누군가가 치킨을 한식으로 호출하면 부정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마치 시발이라는 우리 일상의 욕설이 외국에 퍼지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에 더해, K푸드의 번역어조차 그 기준이 우리가 아닌 외부에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김치는 이미 고유명사처럼 되어 ‘kimchi’로 표기되고 있지만, 떡의 경우는 ‘rice cake’다. 만약 꿀떡이라고 하면 ‘rice cake with honey filling’가 되고, 생선전도 ‘pan-fried battered fish fillet’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이 공공 용어 외국어 번역의 표기 지침을 제정한 데서 참고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매력적인 우리의 일상
이처럼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조심스럽다. 우리를 기준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기준으로 두고 그들의 편의와 이해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꿀떡을 주문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꿀떡을 좋아할 확률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꿀떡 주세요.”가 아니라, “라이스 케이크 위드 허니 필링 플리즈”라고 말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한류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욕설을 배제하고 “아이고, 이런 이 녀석도 참”이라고 한다든가, 그것을 “FUCK”으로 발음한다든가 했다면, 지금과 같은 K컬처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우리가 향유하는 익숙한 것을 내어 보여야 한다. 결국 엄숙하지 않은, 그리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은, 우리만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문화가 타인에게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중 피자 박스접기 아르바이트 하는 가족 (출처: 네이버 영화)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감독상을 받으며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라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과 한국인의 그 모습 그대로다. 반지하의 냄새, 그 창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거리, 피자 박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족까지, 누가 보아도 한국의 풍경 그것이다. 그는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해외 영화제 출품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굳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외국인들에게 1인치의 장벽만 뛰어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의 기준은 개인에게 있고, 개인이 속한 집단에 닿아 있다.
엄숙함과 문법의 경계를 넘어
2020년 오스카 시상식 봉준호 감독 (출처: 나무위키)
그의 수상 소감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로서 나도 항상 새기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 PC통신을 하면서부터였다. 고등학교 매점에서 빵을 사 먹은 이야기를 쓰면서 나의 글쓰기가 시작됐다. 매점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고3 선배에게 혼이 났다는 별것 아닌 글이었으나 무척 많은 댓글이 달렸다. 자신들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거나, 매점의 햄버거는 어떤 맛이었다거나, 요즘의 고등학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거나, 하는. 요약하면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너의 지금을 더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글을 쓰는 고등학생들은 있었다. 등단을 위해 예술고등학교에서 시와 소설을 쓰는 나의 또래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떤 엄숙함이나 문법 없이 써나간 고등학생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간 제안을 받았고 고2 가을에 나의 첫 책이 나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그 말을 국가의 단위로 옮겨오면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겠다. 싸이와 BTS가 한국어로 자신들의 노래를 발표해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일, 그 가사에 ‘강남’이라는 명사라든가 평범한 청춘들의 서사를 담아내는 일. 우리는 스스로를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정체성을 잃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닮고자 했던 다른 대상에 대한 동경만이 남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울리는 일을 즐겁게 해 나가다 보면, 거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곁에 와서 앉을 것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우리의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 잠시 누군가를 속일 수는 있지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로서 잘 살아가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싸이 <강남스타일>, BTS <다이너마이트> (출처: MBC뉴스, 서울신문)
지속 가능한 K컬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모두가 개인적인 서사를 계속 꺼내기를 바란다. 욕설도 하고, 치킨에 맥주도 먹고, 반지하가 있는 거리를 지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한 문화 범주 안의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그려지면 좋겠다. 거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더라도 그 안에서 당신의 평범한 노동과 소소한 일상이 기록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다시 세계적인 데로 계속 인도할 것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 K컬처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에서부터
- 지난 글: [K컬처로 인문하기] 세계는 왜 K-콘텐츠에 열광하는가!
북크루 대표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독자와 작가를 연결하는 일을 하며 지낸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서비스에 <다감한 르포, 김민섭>을 연재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K컬처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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