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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랑의 불가능성과 낯선 사랑의 논리

- 문학이 아닌 모든 것 -

이광호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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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아닌 모든 것은? 문학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있지만, 또한 아무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과 지식들은 문학을 잘 향유하게 만들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가두고 문학을 납작하게 만든다.  문학의 적이 문학을 호명하는 제도와 교육이라는 것은 문학이 처한 불행이다.  이 연재는 문학제도 안에서 문학을 규정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이를테면 문학의 정의, 장르와 문학성을 둘러싼 익숙한 개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문학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문학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그 속에서 문학을 만나는 일이 나날의 삶을 발명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면.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한용운,「님의 침묵」)와 같은 역설은 보다 현대적인 감수성과 문장으로 끝없이 재발명된다. “내 사랑도 어디선가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황동규,「즐거운 편지」)에서 사랑의 주체가 믿는 것은 사랑의 지속성이 아니라 사랑의 소멸이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이성복,「이별」)에서 ‘거울의 연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당신’이 떠난다는 것은 ‘내’가 떠나는 것이라는 …….

 

 

ㅣ근대와 함께 시작된 ‘연애의 시대’

 

사랑

사랑

 

사랑에 관한 그토록 많은 문학 작품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학의 기원이 노래에 있고 그 노래의 대부분이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테마의 보편성을 말해 준다. 한국 문학사에서 ‘공무도하가’와 ‘황조가’의 시대부터 사랑의 노래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사랑 노래의 역사는 문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교적인 봉건 질서에 숨죽여 있던 사랑의 감수성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황진이의 뛰어난 시조와 같은 조선 후기 여성 창작자들의 개인적 욕망이 분출된 작품들이 봉건적 지배질서에 균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적 세계와 분리된 사적인 친밀성의 영역으로서의 ‘낭만적 사랑’ 즉 ‘연애’가 부각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의 시작과 함께 바야흐로 ‘연애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연애’라는 말은 19세기말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영어 ‘LOVE’의 번역어로 개발된 언어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교육열과 문화적 욕구가 팽창하던 시기에 연애는 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연애는 새롭게 학습된 열정의 영역이었고, 취학률의 상승과 독서 대중의 형성은 이런 열정의 사회적 조건이 되었다. 신문과 잡지의 번성, 서간집의 형식 같은 것들은 연애의 시대를 만드는 문화적 환경이었다. 친밀한 사적인 교류로서의 데이트는 연애를 둘러싼 새로운 삶과 문화의 형식이 되었다. 연애는 근대적 신층 종교였고 연애의 시대는 곧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의미했다.

 

하지만 연애의 시대와 함께 자유로운 사랑의 방식이 사회적으로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1900년대 초 애국 계몽기 시대부터 시작된 남녀 평등 여성 해방의 구호는 조혼(早婚)제와 축첩(蓄妾)제의 폐지라는 제도적 개선을 가져왔지만, 국가과 민족에 봉사하는 애국하는 여성이라는 이념 속에 여성을 가두었다. 평등하게 만나 자유롭게 사랑해야 한다는 이상이 등장했지만 개인의 욕망을 민족주의적 규범 속에서 가두어졌다. 연애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여성의 이미지는 근대적 도시 공간의 새로운 시각적 스펙터클을 보여 주었고, 모던걸은 근대의 새로운 스타였지만, 풍경의 일부로서의 모던걸은 성적으로 대상화되었다. 친밀성의 세계는 만들어졌지만 자유연애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고, 이것이 근대 이후의 연애 시스템을 규정하게 되었다.

 

형식의 앞에는 선형과 영채가 가지런히 떠 나온다. 처음에는 둘이 다 백설 같은 옷을 입고 각각 한 손에 꽃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은 백설 같은 옷을 입고 각각 한 손에 꽃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은 형식의 손을 잡으려는 듯이 손길을 펴서 형식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두 처녀는 각각 방글방글 웃으며, ‘형식 씨! 제 손을 잡아주셔요. 예’하고 아양을 부리는 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중략) 이윽고 영채의 모양이 변하여지며 그 백설 같은 옷이 스러지고 피 묻고 찢어진 이름도 모를 비단 치마를 입고 그 치마 째어진 데로 피 묻은 다리가 보인다.

 

- 이광수, 『무정』, 문학과지성사, 2005

 

 

ㅣ욕망과 계몽 사이 식민지 남성의 자기 분열

 

사랑세계문학전집 250 『무정』 이광수 | 정영훈 책임 편집 | 민음사

소설가 이광수(좌)와 장편소설 『무정』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1917년에 발간된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인 『무정』은 계몽주의적 색채가 강한 연애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형식의 관점에서 선형과 영채라는 두 여성 인물을 바라보는 서술이 지배적이다. 형식이 보는 이 두 여성은 근대 이후 남성적 시선에 의해 구축되는 여성 인물의 전형적인 모델이기도 하다. 장로의 딸이자 신여성인 선형은 순결성의 상징이며, 영채는 은인의 딸이자 기생 신분으로 온갖 고초를 겪는 불우한 여성이다. 형식의 마음은 두 여성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결국 선형을 선택하여 함께 애국 계몽의 길을 가기로 다짐하는 걸로 완결된다. 앞의 묘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식민지 남성으로서의 형식은 이 두 여성으로부터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를 가진다. 순결하고 지적인 선형과 매력적이고 역동적이지만 훼손된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영채 사이에서 식민지 남성의 윤리적 감각은 자기모순에 빠진다. 영채의 성적 매력과 구시대적 의미에서의 순결성의 훼손, 선형의 순결성과 신여성으로서의 가능성이라는 이미지의 차이에 대해, 공적인 선택은 선형에게로 귀결되지만 욕망의 수준에서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형식은 여전히 낭만적 사랑을 둘러싼 새로운 윤리에서 구시대적 이념과 식민성을 분리해내지 못한다. 금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남성 주체에 대한 추구는 전근대적 여성관과 억압된 성적 욕망 사이의 분열을 해소하지 못한다. 감정의 해방과 자율성이라는 계몽적 가치는 전근대적인 도덕과 기형적으로 결합 되어 있다.

 

선형과 영채가 상징하는 새로운 계급 즉 ‘여학생-신여성’과 기생은 근대 이후 남성 주체가 소비하는 시각적 스펙터클의 일부였다. 기생은 무대와 음반 활동으로 새로운 대중문화의 스타가 되었고, 여학생은 교회, 청년회, 강연회, 음악회에 등장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받게 된다. 형식의 갈등과 자기모순은 ‘기생/ 여학생’이라는 여성 이미지의 대상화에 갇혀 새로운 자기 윤리를 찾지 못하는 식민지 남성 지식인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남성 주체의 윤리적 이중성과 자기모순은 한국 현대 문학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ㅣ무모한 사랑이 불가능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이 문제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사회 제도 안에 내재된 것이기도 하다. 낭만적 사랑에 따른 파트너의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며, 연애는 자본의 교환 체계와 권력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자본과 제도 권력으로 분리된 완벽하게 억압 없고 자유로운 사랑의 선택은 힘겨운 투쟁을 의미한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국가 체제와 공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가와 자본은 사회 통제를 위해 가부장제를 필요로 하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아래서 자유로운 연애와 평등한 가족 관계의 추구는 매우 지난한 싸움을 의미한다. 결혼과 무관한 사랑의 열정은 반규범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가족제도 안에 포섭되어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사적 공간에서의 두 사람의 무모한 사랑의 열정은 이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이 사회를 거부하는 ‘반사회적인’ 것인 공간이다. 수많은 문학이 집단과 제도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사랑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의 삶.

 

-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역,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2001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의 『은밀한 생』은 사회와 집단의 동의 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가족 제도 바깥에서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은밀하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다. 이 완전한 사랑의 열정은 사회와 완전히 절연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연인들이 무인도나 동굴에 둘만 살지 않는 이상, 사회관계의 권력 질서와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랑의 자립적인 공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ㅣ‘시간’을 넘어서는 사랑은 없다

 

많은 사랑의 문학이 사랑의 환희보다는 사랑의 결여와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를 다루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환상 자체가 사회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육체와 영혼의 결합은 없다는 사랑의 근본적인 한계 또한 존재한다. ‘나’와 ‘당신’의 완벽하고 지속적인 결합에 대한 열망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조건 때문에 강렬함을 부여받는다. 사랑의 보편적인 경험은 '타자(당신)과의 넘어설 수 없는 거리'이다. 공간적인 거리는 신체의 '함께 있음'이라는 방식으로 일시적으로 해소될 수 있지만, '시간'을 넘어서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사랑의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랑은 '당신'을 소유하려는 욕망일 수 있지만, '타인의 의식'은 완전히 소유될 수 없다. 가령 '잠든 연인'만을 완벽하게 소유할 수 있다. 연인의 의식이 완전히 '나'에게 예속되었을 때, 연인은 더 이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연인의 (자유로운) 의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언제나 실패한다.

 

따라서 완전한 사랑은 근원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상실의 뼈아픈 깊이를 통해 사랑에 처한 자는 '사랑의 텅빈 주체'가 된다. 모든 사랑은 실패한 것이거나, 다가올 어떤 것이다. 사랑의 노래는 '지나간 사랑'과 '도래할 사랑'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완전한 사랑을 방해하는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경멸도 사랑의 근원적인 불가능성을 은폐하는 알리바이일 수 있다. 사랑이라는 사건에 처한 개인은 사랑의 상처와 부재의 뼈아픔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한다. 사랑에 관한 노래들은 사랑이라는 상처를 끝임없이 감각하면서 쾌락과 고통이 구별되지 않은 상처의 ‘향유’를 이어간다.

 

 

ㅣ문학은 낯선 사랑의 논리를 찾는 모험

 

BUMWOO LIBRARY 범우문고282 시 『님의 침묵』 한용운韓龍雲 지음 | 범우사(좌)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시3 『즐거운 편지』 황동규 외 지음 | Human&Books(우)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좌)와 황동규 시집 『즐거운 편지』(우)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사랑의 글쓰기가 끝없이 다시 시작되는 사랑을 만드는 방법은, 그 사랑의 사건을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낯선 사랑의 논리를 찾아내는 모험을 의미한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와 같은 역설은 보다 현대적인 감수성과 문장으로 끝없이 재발명된다. “내 사랑도 어디선가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황동규, 「즐거운 편지」)에서 사랑의 주체가 믿는 것은 사랑의 지속성이 아니라 사랑의 소멸이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이성복, 「이별」)에서 ‘거울의 연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당신’이 떠난다는 것은 ‘내’가 떠나는 것이라는 역설을 만들어 낸다. 이런 언어들은 사랑의 새로운 논리를 고안하고 발명하는 언어이며, 사랑의 무대를 재연하고, 사랑을 '재선언'하는 언어들이다. 낯선 사랑의 논리를 만드는 것은 삶의 재발명이다.

 

 

[문학이 아닌 모든 것] 10. 사랑의 불가능성과 낯선 사랑의 논리

- 지난 글: [문학이 아닌 모든 것] 9. 문학은 왜 여성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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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광호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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