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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성론’(停滯性論)과 그 영향

- 마르크스의 내재적 발전론과 정체성론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

윤진석

2021-10-18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은? 역사 수업은 재미있다. 그러나 역사학 공부는 힘들다. 역사 수업에서는 기록과 해석을 배우고 즐기지만, 역사학 공부는 그것의 가부를 재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공유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스스로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역사학 공부의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


‘시대구분’은 … 역사연구와 인식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유용하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만 가진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시대구분은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의 ① 역사는 과학이다 ② 역사는 진보한다 ③ 역사에는 합법칙성이 있다는 시각들과 맞물려 절대적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고, ‘과학적이고 합법칙적인 진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사회는 정체된 특수성을 가진 사회로 인식되면서 ‘정체성론’이라는 괴물이 등장했다.



현재에도 논박이 계속 되는 ‘정체성(停滯性)’론




정체(停滯)

정체(停滯)



지난 12회 칼럼 <일제 식민사학과 그 영향 -식민사학의 형성 배경과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일제가 조선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창안한 식민사학의 논리들인 ①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② (조선역사의) 타율성론(他律性論) ③ (한국사) 정체성론(停滯性論) 세 가지를 소개하면서 ‘③ (한국사) 정체성론’에 대해 이번 칼럼에서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을 예고한 바 있다. 기존 역사학 도서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러한 학술적인 자세한 논박은 관련 전문 논저에 미루고 ‘정체성론’이 무엇을 바탕으로 한 이론인가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의 수업을 열심히 들은 학생들로부터, 정체성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강의를 받아 적어 외우는 데만 치중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 먹었다는 고백을 자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선동조론과 타율성론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논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조잡한 논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반면 ‘정체성론’은 서양역사학의 시대구분과 진보사관 및 경제학의 산술적인 수치와 통계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매우 난해하고 일견 그럴듯한 면도 있어 오늘날에도 가부(可不)에 대한 논박이 지속되고 있다. 후술하듯이, 2019년 『반일종족주의』(미래사)의 출간을 주도하여 많은 사람의 찬사(?)와 공분을 불러일으킨 (전)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현) 낙성대 경제연구소 연구원인 이영훈의 학문적 바탕도 바로 이 ‘(한국사) 정체성론’에 있다.


‘정체성’이라고 하면 대개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정체성(正體性)’을 먼저 떠올리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정체는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가 더 진전되지 못하고 일정한 범위나 수준에 그치거나 머물러 있는 것”, 즉 ‘교통정체’ 같은 용례에서 쓰는 ‘정체(停滯)’이다. 필자가 담당했던 수업의 시험에서 “일제 관학자들의 한국사 연구와 식민사학을 쓰시오(타율성론과 정체성론 일선동조론을 중심으로).”라는 문제를 냈더니 한 학생이 “한국인들은 정체성이 없이 타율성에 젖어 있어 일선에 동조한다는 식민사학이다.”라는 답을 쓴 적이 있었다. 필자가 순간 깜빡 속아 부분점수를 주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을 정도로 매끄럽게 조합한 답안인데, 이 학생 역시 ‘정체성(正體性)’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유용하지만 상대적 가치로 봐야 할 역사학의 시대구분

 


역사학의 기초지식을 공부한 독자들은 “진전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쓴 점에서 ‘정체성론’이 역사학의 시대구분과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진보사관)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 챘을 것이다. ‘시대구분’은 역사학의 중요 논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역사가가 방대한 과거 역사를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편의적’으로 분류하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연구와 인식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유용하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만 가진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시대구분은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의 ① 역사는 과학이다 ② 역사는 진보한다 ③ 역사에는 합법칙성이 있다는 시각들과 맞물려 절대적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고, ‘과학적이고 합법칙적인 진보’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사회는 정체된 특수성을 가진 사회로 인식되면서 ‘정체성론’이라는 괴물이 등장했다.


서양사학사에서는 르네상스 시기인 17세기에 인문주의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생(生)-사(死)-부활(復活)의 세 시기로 나눈 후 고전고대(그리스-로마)는 생으로, 중세는 사로, 자신들의 시대인 근세는 고전고대의 부활로 선언한 것을 본격적인 시대구분의 시작으로 꼽는다. 이러한 ‘고대–중세–근세(근대)’의 3단계 시기구분은 19세기에 들어와 마르크스-엥겔스의 ‘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의 3단계 사회구성체 분류와 접목되어 ‘고대노예제사회–중세 봉건제사회-근대자본주의사회’라는 형식으로 정착되었고, 이후 고대노예제사회 앞에 원시공동체사회를, 근대자본주의사회 뒤에 공산주의사회를 붙여 5단계 시기구분이 등장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고대노예제사회에서 중세봉건제사회로, 중세봉건제사회에서 근대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이 필연이었다고 이해하면서(이를 바탕으로 ‘다가올’ 근대자본주의사회에서 공산주의사회로의 전환도 필연이라고 주장했다) 그 전환의 동인(動因)으로 ‘내재적 발전’과 ‘계급투쟁’을 꼽았다.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첫 문장이 워낙 유명하므로, 무슨 뜻인지 잘 모르더라도 익숙하다. 반면 ‘내재적 발전’은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의 핵심임에도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의 역량으로 그것을 온전히 전달하기는 어렵고 지면상으로도 부족함이 있지만, 수박겉핥기로 요점만 설명하면 이러하다.



‘정체성론’ ‘아시아 특수성’ 촉발한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론



철학자 칼 마르크스(좌)의 책 『공산당 선언』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철학자 칼 마르크스(좌)의 책 『공산당 선언』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전복을 기도하고 독려하기 위해 책 제목에 걸맞게 서두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고 먼저 선언한 후 계급투쟁이 일어났던 까닭으로 ‘생산관계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계급의 등장’ 등을 서술했다. 서술순서가 도치되어 있는데, 마르크스는 노예제사회에서 봉건제사회로, 봉건제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생산관계가 변화하여 등장한 새로운 사회계급이 기존의 사회계급과 계급투쟁을 벌여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조’하여(개조하지 못하면 함께 몰락) 새로운 다음 사회로 이행된다는 해석을 한 것이다.1)

1)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관계’란 것은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대응하는 사회관계인데, 그 관계는 그 사회의 주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자유민, 귀족, 영주 같은 억압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노예, 평민, 농노 같은 피억압자) 사이의 계급관계로 표현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동업 조합의 장인과 직인, 요컨대 서로 영원한 적대 관계에 있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 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항상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공산당 선언』 서두)


마르크스는 봉건제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의 전환과정을 예로 ‘혁명적 개조’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아프리카 회항로(回航路)의 발견 등을 언급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예전의 봉건적 또는 동업 조합적 공업 경영 방식은 새로운 시장과 함께 늘어난 수요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는” 사회모순을 발생시켰고, 그에 따라 새롭게 대두하는 사회계급, 즉 부르주아지에게 신천지를 열어주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크스는 ‘혁명적 개조’, 즉 시대전환이 단순히 외부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재적 발전’의 결과라고 생각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이러한 주장은 유럽 사회의 역사를 대상으로 관찰한 것이고, 유럽 외 사회의 역사, 가령 아시아 역사의 경우는 이러한 도식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아시아는 고대의 생산방식 그대로 ‘정체’되어 있는 후진사회라고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면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말을 사용했다.) 즉 마르크스는 유럽사회는 내재적 발전에 의해 합법칙적으로 진보한 ‘보편적 사회’인 반면, 아시아 사회는 정체되어 있는 ‘특수한 사회’라고 설명한 것이다.


사실 마르크스의 위와 같은 ‘보편사회(유럽사회)’와 ‘특수사회(비유럽사회)’ 구분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일 뿐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서양의 제국(帝國)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침입하여 식민지로 경영해 나가던 상황에서는 서양이 선진사회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후진사회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민족운동가 일부는 유구한 정신문화를 내세우며 스스로가 서양인들에 비해 선진적인 족속이라고 설파하였지만, 약육강식의 현실 속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보편성’과 ‘특수성’ 문제는 역사학 이론의 중요 논제 가운데 하나인데, 선악이 없고 양면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보편사회’와 ‘특수사회’는 그러한 역사학의 보편성ㆍ특수성 논의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보편사회’와 ‘특수사회’로 나누면, 보편적인 것이 선이고 특수한 것은 악이거나 혹은 보편적인 것을 따르거나 지도를 받아야 할 존재가 된다. 인간사회에서 ‘특수하다’거나 ‘차원이 다르다(‘사차원이다’라는 표현 같은 것)’는 것은 간혹 선구자에게 붙이는 찬사로 쓰기도 하지만, 선구자적 면모 없이 특수하거나 남다른 것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인(奇人)이나 사이코패스 취급을 받는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국사) 정체성론’은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이론을 바탕으로 19세기 조선사회가 내재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특수한 후진사회라는 주장이다.



일본 학자가 씌운 굴레, “조선은 기형적 사회, 역사 발전도 정체”



경제학자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1874년~1930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경제학자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1874년~1930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물론 한국사에 ‘정체성론’이라는 굴레를 씌운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한 일본인이었다.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1874년~1930년)라는 경제학자로 독일에 유학하여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여 일본에 전파하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하기도 한 인물이다. 메이지유신(1886년부터 약 20여 년간 진행되어 온 일본 근대화 과정)으로 개혁을 이룩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유럽인과 동등하며, 자신들의 역사도 유럽 여러 나라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메이지유신 이전의 막부시대(幕府時代, 가마쿠라-무로마치-에도)는 서양의 봉건제와 유사한 면이 있어, 메이지 유신 이후는 근대자본주의사회로, 그 이전은 중세봉건제사회로 주장하기가 용이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왕조교체를 통한 지배세력의 변화만 선명히 드러날 뿐 봉건제의 성립 같은 지배구조와 경제구조의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 약점(?)이 있었다.


후쿠다 토쿠조는 원래는 한국사에 큰 관심을 가진 이가 아니었는데, 러일전쟁 당시 며칠간 한국을 여행한 후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1904년)라는 논문을 남겼다. 이 논문에서 그는 당시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가 일본의 봉건제가 성립한 가마쿠라막부 이전 시기인 10세기 후지와라(藤原)시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이 봉건제가 결여된 노예제사회에 정체되어 있는 사회라는 해석으로 귀결되었던 바, 결국 한국이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진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주장을 한 셈이 되었다. 실상은 탁상에서 나온 주장이지만, 겨우 며칠간의 여행으로 얻은 단상이 자세한 관찰처럼 둔갑한 것이다.



백남운의 반론 “한국 역사도 내재적 발전 통해 성장”

 


역사학자 백남운(좌)의 저서 『조선봉건사회경제사』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역사학자 백남운(좌)의 저서 『조선봉건사회경제사』 표지(우)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이후 일본의 대다수 역사학과 경제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정체성론’의 시각에서 조선의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았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반론이 시도되었으나 사실 그러한 반론 대다수는 과녁을 잘못 설정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반론은 마르크스주의 사회경제학을 공부한 백남운(1894년~1979년)에 의해서 나왔다. 백남운은 우리나라 근대역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학자인데,2) 과거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에서는 거의 언급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어서 생소한 대중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948년 4월 평양의 남북연석회의에 백범 김구와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그대로 눌러앉아 죽을 때까지 북한 정권의 고위 관료로 활동한 이력 때문이다.

2) 우리나라 근대역사학 태동의 세 갈래로 ⓵ 신채호 등의 민족주의사학, ⓶ 백남운 등의 사회경제사학, ⓷ 이병도 등의 실증사학을 꼽는다.


백남운은 한국사를 특수한 기형사회로 보는 모든 견해에 반대하면서(정체성론 뿐 아니라 타율성론에 대한 반론도 시도), 마르크스주의의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에 입각해 한국사도 세계사적 보편법칙에 따라 발전해 왔음을 규명하려고 했다. 즉 한국사도 ‘내재적 발전’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주장한 것이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1933년)과 『조선봉건사회경제사』(1937년)를 출간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발전과정을 ⓵ 원시씨족공동체 ⓶ 노예경제(삼국시대) ⓷ 아시아적 봉건사회(삼국시대말기에서 최근세) ⓸ 아시아적 봉건국가의 붕괴과정과 자본주의의 맹아형태 ⓹ 외래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제관계 ⓺ 이데올로기 발전의 총과정 등의 6단계로 나누어 파악하고자 했다. 주목할 것은 삼국시대를 고대노예제사회로, 삼국시대말기 이후, 즉 삼국통일 직전단계 이후부터를 중세봉건사회로 본 것이다. 이는 현대의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와 한국사 개설서 대다수가 고려시대 이후를 중세사회로 시대구분하는 것보다 시기를 더 올린 것이다.


후쿠다의 (한국사) 정체성론과 백남운의 반론 이후 다양한 관점에서 새로운 논의들이 나왔다. 모리야(林谷克己)라는 일본인 경제학자는 한국사에 있어서 봉건사회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노예제사회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후쿠다와는 전혀 반대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기형적인 특수사회라고 주장했다. 한편, 백남운과 함께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사가들로 분류되는 김광진, 이청원, 전석담 등은 노예제사회의 존속시기를 백남운보다 훨씬 후대로 내려 잡거나, 모리야처럼 노예제사회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해방 후 북한학계에서 이 사회경제사가들이 모여 오랜 ‘삼국시대 사회성격논쟁’을 거친 후 기원전후인 삼국시대 초기부터 봉건제사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북한학계에서는 한국사의 봉건사회 등장이 가장 빠르고 2000년 동안 존속했다는 기형적 해석이 정설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내재적 발전’ 두고 계속 논쟁 중, ‘자본주의맹아론’ vs ‘식민지근대화론'



역사학자 김용섭(좌)의 저서 『김용섭 저작집1 [증보판] 조선후기농업사 연구(朝鮮後期農業史硏究 Ⅰ) 金容燮 | 지식산업사』  표지(우)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교보문고)

역사학자 김용섭(좌)의 저서 『조선후기농업사 연구』 표지(우)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교보문고)



이처럼 후쿠다의 정체성론과 백남운의 반론 이후 다양한 논의들이 나왔지만, 우리 학계의 시각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대체로 1970년대 이후의 김용섭(1931년~2020년) 등이 제기한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과 1990년대 후반 안병직ㆍ이영훈 등이 이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한 ‘식민지 근대화론’ 간의 논쟁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자본주의 맹아론’은 일제의 침략이 없었더라도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는 싹(맹아)을 틔우고 있었다는 ‘내재적 발전론’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러한 주장을 부정하면서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자본주의로 전환할 토대를 얻었다는 주장이다.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가부(可不)에 대해서는 매우 난해하고 지면상의 제약도 있어 이 정도로 약술하고, 심화학습이 필요한 부분은 이 분야 전공자들이 저술한 논저에 책임을 넘기고자 한다. 다만 이와 관련한 한두 가지 필자의 짧은 생각과 소회를 언급하고자 한다. 불타는 애국심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면,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의 손을 들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에는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학술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면 1930년대 백남운의 연구와 1970년대의 ‘자본주의 맹아론’이 다소 과장된 면이 있고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지적한 문제제기들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반일종족주의』, 냉철한 자기반성 아닌 자기부정으로 비쳐

 


『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기억과의 투쟁, 그 진실된 역사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영훈 외 | 미래사(좌),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 ‘반일 종족주의‘ 현상 비판』강성현 지음 | 푸른역사(우)

이영훈의『반일종족주의』(좌)와 강성현의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우)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그런데 『반일종족주의』에서 늘어놓은 이영훈의 언설을 살펴보면, 이영훈의 ‘식민지근대화론’이 과연 학술적인 냉철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의심되는 면이 있다. 필자가 학창시절 배운 바 있는 선생 가운데는 우리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미국(또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이런 건 상상할 수 없어”라는 말을 즐기는 이가 종종 있었다. 우리 현실의 문제점을 개선하자고 독려하는 취지에서 미국ㆍ독일ㆍ일본 같은 선진국의 국민의식을 소개하는 것은 타당한 교육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실제로 그런 말을 즐기는 사람 대다수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ㆍ독일ㆍ일본 같은 나라의 문화에 홀딱 빠져서 자신이 우리나라 사람임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그 나라 사람과 동화되고 싶어 하는 이였다.


이영훈은 『반일종족주의』의 첫 장인 프롤로그의 제목을 ‘거짓말의 나라’라고 붙이고 첫 문장을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라고 시작한다. ‘한국종족’이 거짓말 잘하는 민족이라고 단정하면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분노할만한 주장인데, 필자는 분노보다 의문이 앞섰다. “이 책에 열광하는 독자가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거 뭐지?” 싶었다. 더욱 “뭐지?” 싶은 건 이영훈이 뉴라이트 역사를 표방하는 대표적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뉴라이트는 '자학사관'을 펼치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거 뭐지? 이거 자학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단재 신채호가 말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영훈이 과연 우리민족을 아(我)로 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경제사연구에서 나온 ‘식민지 근대화론’의 저의까지 의심받는 것은 자승자박이라 하겠다.3)

3) 『반일종족주의』의 반론으로 많은 논저들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대중에게 우선적으로 소개할만한 책을 꼽으라면 필자는 강성현의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푸른역사, 2020)와 전강수의 『반일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한겨레출판사, 2020)을 추천하겠다. 이영훈은 책의 앞부분에서는 식민지 수탈론이 허구라고 주장하고, 중간 이후부터 끝까지 위안부 강제동원 주장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강성현의 책은 위안부 문제를 중점 검토했고, 전강수 선생의 책은 전체를 논박했으나 수탈문제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14.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성론’(停滯性論)과 그 영향

- 지난 글: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13. ‘사회 진화론’이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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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석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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