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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까닭은?

-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

김헌

2021-06-25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는? 세상엔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철학은 시작됩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직접 찾아가 보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앎에 이르러 느끼는 희열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이 모든 과정을 다듬어 낸 그리스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철학의 뿌리를 찾고자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감옥 같은 육체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킨다고 말했답니다. 해방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참된 존재의 세계로 올라가면 그동안 자신이 잘 모르던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현자들의 영혼을 만날 것이라며 희망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그가 정말 그런 세계로 간 것일까요?



짙은 어둠이 영혼을 덮을 때




도심의 어둠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밤새도록 불을 밝히는 도심의 어둠



해가 지면 어둠이 온 세상을 덮습니다. 도심에서야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밤새도록 불을 밝히니 밤에도 어두운 줄 모르고 살아가지만, 숲이나 산속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어둠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할 때, 공포와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쓴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인 호메로스는 전사가 목숨을 잃고 쓰러질 때, 어둠이 두 눈을 덮었다고 표현했지요. 절망이 깊을 때 앞이 캄캄하다고 하고, 기다리던 사람에게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을 때 깜깜무소식이라고 하는 걸 보면, 어둠의 힘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봅니다.


짙은 어둠이 영혼을 덮을 때, 어떻게 빛을 찾을까요? 옛 그리스 사람들과 인근의 이방인들은 델피에 있는 아폴론 신전을 찾았습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비추는 빛이 어둠을 몰아내면, 눈과 마음이 시원하게 열리고 세상은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믿음이겠지요?



아폴로 신은 인정했지만, 스스로는 “내가 왜?”




태양과 예언 및 광명·의술·궁술·음악·시를 주관하는 아폴론 신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태양과 예언 및 광명·의술·궁술·음악·시를 주관하는 아폴론 신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기원전 5세기께, 카이레폰이라는 사람도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기원전 399~470)의 친구였는데, 소크라테스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과 나누는 대화를 흥미롭게 들으면서 동시에 큰 의문을 품었습니다. 뭔가를 안다고 으스대는 사람들보다, 잘 모르겠다며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가 훨씬 더 똑똑해 보였기 때문이었지요.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질문 앞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두 쩔쩔매곤 했으니까요. 카이레폰은 이런 답답한 상황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폴론 신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나요?”

“없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롭다.”


역시나, 아폴론의 대답은 카이레폰이 예감하던 대로였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그는 기뻤지요. 하지만 속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그런데 왜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운 걸까?’ 이에 대해선 답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이레폰은 이 신탁(神託)을 소크라테스에게 전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난감했습니다. ‘거참 이상하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왜 가장 지혜롭다는 거지?’ 지금껏 그는 자신과 인간, 세상에 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느라 애써왔습니다. 지혜롭다는 사람들의 글도 읽고 그들과 대화도 나누고 혼자 깊이 탐구도 했지요. 하지만 답을 얻기는커녕, 점점 더 많은 의문의 미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 무지의 절벽에 직면한 셈이지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순간, 소크라테스는 답을 얻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뭔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소크라테스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게 만든 겁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한가요? 무지를 깨닫기만 하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무척 허전합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떠드는 모든 것을 날카롭게 비판하여 그 허점을 드러낸 후, 사실 우린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오롯이 드러낸 것만으로는 지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무지가 영혼을 혼란 속에 가두는 어둠이라면, 무지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가야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이잖아요.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직 어둠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니까요. 소크라테스는 과연 ‘무지(無知)의 지(知)’를 넘어 어떤 앎에 이르렀을까요? 그는 정말로 태양이 창공 위에서 만물을 비추기 때문에 모든 것을 또렷이 보고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을까요?



죽음을 겁내지 않고 지혜를 갈망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냄으로써 미움을 샀고, 급기야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그의 사형 집행은 아폴론 축제 때문에 수일이 미루어졌습니다. 그동안 그는 친구와 제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그가 친구들이 강권하는 탈옥을 끝까지 거부하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고집처럼 보이는 그의 선택엔 다 이유가 있었겠지요? 플라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죽음이 감옥 같은 육체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킨다고 말했답니다. 해방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참된 존재의 세계로 올라가면 그동안 자신이 잘 모르던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현자들의 영혼을 만날 것이라며 희망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그가 정말 그런 세계로 간 것일까요? 그곳에 갔기 때문에, 그곳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란 신탁이 내려졌던 것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혜(Sophia)’를 ‘갈망하며 추구하던(Philo-)’ 사람, 즉 철저하게 ‘철학자(Philosophos)’였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특히 그는 시시각각 변하며 감각에 포착되는 이 세상의 변화무쌍한 현상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철학이며, 그것은 죽음으로 완성된다고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갈망하던 그 순수한 세상이 정말 있을까요? 그는 정말 그곳으로 갔을까요? 죽지 않고 살아 있기에 육체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지금 여기’의 모든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의 순수하고 완전한 참모습(Idea)만 모여 있는 완벽한 존재의 세계가 따로 있을까요?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런 존재와 세상을 그려내고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불완전한 세상을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걸까요?



끝없이 질문하고 숙고하며 실천하는 삶



끝없는 질문과 노력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매 순간 숙고하는 삶



아폴론의 신탁은 옛날 소크라테스와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다가 떠나간 그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은 것일까요? 이 질문은 지혜롭기를 원하며 슬기로운 삶을 통해 행복을 누리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떠오를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답을 갈망하며 계속 질문은 던지며 매 순간 숙고하며 결론을 내리고 실천한 후에 다시 검토하는 삶 자체가 지혜의 실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불현듯 죽음이 다가왔을 때, 두려움 없이 의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 삶 전체가 지혜로운 삶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아무 두려움 없이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한 소크라테스는 정말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보입니다.



◆   ◆   ◆


그동안 10회에 걸쳐 철학자들의 삶과 생각을 짤막하게 소개하는 글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글입니다. 갑작스럽게 연재를 끝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길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도 끝은 언제나 비슷한 느낌을 줄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의 끝이 결코 소크라테스는 아니며, 그는 오히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도, 이 이야기에는 적절한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대와 지역을 임의로 정하고 끊는다고 끊어지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계속 이어져 갈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여러분의 몫입니다. 아니, 살아가며 의문을 품고, 답을 찾아 탐구하다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제 이야기에 적절한 끝이 없듯, 그 누구의 삶에도 적절한 마침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재 종료 안내   

김헌 교수님의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칼럼은 10회차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칼럼을 아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어 7월부터는 철학자 네 분의 〈MZ 세대를 위한 철학 카페〉 칼럼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10.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까닭은?

- 지난 글: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9. “아무것도 없다, 있다 해도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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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및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 서양고전학 박사. 펴낸 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음. 서양고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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