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 작년에 갔던 해운대에 올해도 가서 발을 담갔다고요? 아닙니다. ‘해운대’라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작년에 당신이 발을 담갔던 그 물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당신의 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일 년 동안 수십 번 발톱을 깎지 않았나요?... ...
끝없는 생성소멸, 영원한 것은 없을까
▲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계절의 모습
시간이 지나가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의 빠짝 마른 가지에 촉촉이 물이 오르더니 툭하고 연둣빛 싹이 텄고, 아이 손바닥처럼 잎으로 자라나 작렬하는 태양을 가리며 집 앞 놀이터에 초록빛 그늘을 주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붉은빛 단풍으로 짙게 물들어 있습니다. 시리게 푸르른 하늘에 불타는 것 같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나도 작년의 나보다 조금 더 무르익고, 늙어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풍경 속에서 나는 사라지겠지요? 괜찮습니다. 원래 없었던 내가 존재를 입고 태어나 자라고 늙고 죽어 가는 것, 오랫동안 입고 있었던 존재를 마침내 벗어버리고 촛불처럼 꺼지는 것,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간혹 찾아오는 저릿한 허무를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살아있음에 느끼는 삶의 환희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 버리고 나면, 나는 먼지처럼 쓸쓸하게 흩어지리라는 상상에 울컥할 때가 있으니까요. 모든 존재가 갑자기 새싹처럼 돋아나 숱한 변화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소멸되고 만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하고 쓰라릴 때면, 지금 이 존재를 있는 힘껏 꽉 붙잡고 싶어집니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묻게 되지요. ‘정말 모든 존재는 생성소멸의 운명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고 살갗에 와 닿는 이 모든 격변의 현상들은 진실이 아니라, 한갓 허상일 뿐인 것은 아닐까?’ ‘헛것 같아 보이는 이 모든 변화의 너머에, 깊은 곳에, 변하지 않고 단단히 버티고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어느 날 문득, 그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변화의 시련과 생성소멸의 운명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영원불변한 존재,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 나를 기대고, 깊숙이 담글 수는 없을까?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갈 수 없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내가 툭툭 던지는 질문들을 헤라클레이토스가 들었다면,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고개를 저었을 겁니다. 그는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변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런 뜻을 전하기 위해 그는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 작년에 갔던 해운대에 올해도 가서 발을 담갔다고요? 아닙니다. ‘해운대’라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작년에 당신이 발을 담갔던 그 물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올해 당신이 발을 담근 물은 그곳을 찾아온 전혀 다른 물입니다. 당신의 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일 년 동안 수십 번 발톱을 깎지 않았나요? 피부도 새로 돋은 것이고, 작년에 당신을 이루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당신도 작년의 당신이 아닌 거죠. 그렇게 당신도 변하고 물도 변했습니다. ‘거 보라고. 내 말이 맞다니까. 당신은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누구냐고요? 그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던 철학자 탈레스가 살던 밀레토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기원전 535년께, 지금의 터키 서해안에 있는 에페소스에서 태어났지요. 밀레토스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그의 고향인 에페소스에 닿을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헤라클레이토스는 탈레스와 정반대의 주장을 했습니다. 탈레스는 세상에 수많은 존재들이 있고, 그것들이 생겨나 변화를 겪다가 사라지지만, 그 모든 변화의 이면에는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물이라고 했던 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그게 물이 아니라 불이라고 했거든요. 둘이 만났다면, 논쟁이 아주 격렬했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둘은 만난 적은 없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아주 어렸을 때, 탈레스는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쉼없이 꿈틀대는 불이 세상 만물의 근원’ 주장도
▲ 이글거리는 불
그런데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로 이루어졌다고 하면 몰라도, 세상만물이 모두 불로 이루어졌다니, 헤라클레이토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엉뚱한’ 말을 했을까요?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이 불로 이루어졌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럼 지금 숨 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불로 이루어졌다는 거잖아요. 말이 되나요? 차가운 물도 그 존재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그 속에는 정말로 아주 작은 불씨들이 꿈틀거리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 솟아나는 의문들 때문에 그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 같지만, 잠깐 불만 생각해 보면, 그 신비로움에는 일단 감탄하게 됩니다. 제우스를 비롯해서 올륌포스의 신들은 불을 신들의 특권이라 여기고 인간들에게 금했다고 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몰래 훔쳐내서 우리 인간에게 주었다는 불, 딱딱한 고체도 아니고, 흐르는 액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체도 아닌 신비로운 존재가 불입니다. 불은 닿는 모든 것을 태우는 강력한 파괴력을 갖고 있죠. 추위를 막아주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까지 뿜어냅니다.
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움직임에 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격렬한 춤을 추듯 이글거리고, 위를 향해 치솟듯이 몸부림친다는 것입니다. 모닥불이나 횃불은 물론, 심지어 촛불조차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끊임없이 꿈틀대며 흔들어대는 불의 격렬한 몸짓에 혼을 쏙 빼앗기곤 합니다. 바로 그 순간,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을 저도 번뜩 깨닫게 됩니다. ‘아, 그래 불이다. 모든 것이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하고, 어떤 것도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 헤라클레이토스가 고른 말이 바로 ‘불’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도 그렇게 불꽃처럼 태어나고 치솟듯이 자라나고, 횃불처럼 격렬하게 몸부림치다가 지치고 늙고 병들어 잦아들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촛불처럼 꺼지는 것 아닐까요?
모두 변하는데 불은 계속 불일 수 있을까
▲ 불꽃을 이루는 불
묘한 역설은 있습니다.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고, 모든 것이 물 흐르듯 변하며, 불꽃처럼 끊임없이 운동한다고 했잖아요. 좋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한다고 해도, 그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arkhê)’인 불은 어떤가요? 불도 변하나요? 불이 변하면 그것은 불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불로 이루어졌고, 불처럼 끊임없이 운동하며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쉼 없이 변해도 불은 언제나 불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모든 변화의 저변에 불은 불로서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원인인 불만은, 오직 불만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불로 존재한다.’라고요. 모든 것이 변해도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 진리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어렵습니다. 변하는 것들 뒤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역설이 ‘불’로 다 설명이 되는지, 생각이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가을입니다.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및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 서양고전학 박사. 펴낸 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음. 서양고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3. “모든 것은 변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3. “모든 것은 변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
-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
김헌
2020-11-11
그는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 작년에 갔던 해운대에 올해도 가서 발을 담갔다고요? 아닙니다. ‘해운대’라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작년에 당신이 발을 담갔던 그 물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당신의 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일 년 동안 수십 번 발톱을 깎지 않았나요?... ...
끝없는 생성소멸, 영원한 것은 없을까
▲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계절의 모습
시간이 지나가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의 빠짝 마른 가지에 촉촉이 물이 오르더니 툭하고 연둣빛 싹이 텄고, 아이 손바닥처럼 잎으로 자라나 작렬하는 태양을 가리며 집 앞 놀이터에 초록빛 그늘을 주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붉은빛 단풍으로 짙게 물들어 있습니다. 시리게 푸르른 하늘에 불타는 것 같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나도 작년의 나보다 조금 더 무르익고, 늙어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풍경 속에서 나는 사라지겠지요? 괜찮습니다. 원래 없었던 내가 존재를 입고 태어나 자라고 늙고 죽어 가는 것, 오랫동안 입고 있었던 존재를 마침내 벗어버리고 촛불처럼 꺼지는 것,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간혹 찾아오는 저릿한 허무를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살아있음에 느끼는 삶의 환희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 버리고 나면, 나는 먼지처럼 쓸쓸하게 흩어지리라는 상상에 울컥할 때가 있으니까요. 모든 존재가 갑자기 새싹처럼 돋아나 숱한 변화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소멸되고 만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하고 쓰라릴 때면, 지금 이 존재를 있는 힘껏 꽉 붙잡고 싶어집니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묻게 되지요. ‘정말 모든 존재는 생성소멸의 운명을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고 살갗에 와 닿는 이 모든 격변의 현상들은 진실이 아니라, 한갓 허상일 뿐인 것은 아닐까?’ ‘헛것 같아 보이는 이 모든 변화의 너머에, 깊은 곳에, 변하지 않고 단단히 버티고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어느 날 문득, 그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변화의 시련과 생성소멸의 운명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영원불변한 존재,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 나를 기대고, 깊숙이 담글 수는 없을까?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갈 수 없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내가 툭툭 던지는 질문들을 헤라클레이토스가 들었다면,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고개를 저었을 겁니다. 그는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변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런 뜻을 전하기 위해 그는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 작년에 갔던 해운대에 올해도 가서 발을 담갔다고요? 아닙니다. ‘해운대’라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작년에 당신이 발을 담갔던 그 물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겁니다. 올해 당신이 발을 담근 물은 그곳을 찾아온 전혀 다른 물입니다. 당신의 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일 년 동안 수십 번 발톱을 깎지 않았나요? 피부도 새로 돋은 것이고, 작년에 당신을 이루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당신도 작년의 당신이 아닌 거죠. 그렇게 당신도 변하고 물도 변했습니다. ‘거 보라고. 내 말이 맞다니까. 당신은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누구냐고요? 그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던 철학자 탈레스가 살던 밀레토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기원전 535년께, 지금의 터키 서해안에 있는 에페소스에서 태어났지요. 밀레토스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그의 고향인 에페소스에 닿을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헤라클레이토스는 탈레스와 정반대의 주장을 했습니다. 탈레스는 세상에 수많은 존재들이 있고, 그것들이 생겨나 변화를 겪다가 사라지지만, 그 모든 변화의 이면에는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물이라고 했던 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그게 물이 아니라 불이라고 했거든요. 둘이 만났다면, 논쟁이 아주 격렬했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둘은 만난 적은 없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아주 어렸을 때, 탈레스는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쉼없이 꿈틀대는 불이 세상 만물의 근원’ 주장도
▲ 이글거리는 불
그런데 이글거리는 태양이 불로 이루어졌다고 하면 몰라도, 세상만물이 모두 불로 이루어졌다니, 헤라클레이토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엉뚱한’ 말을 했을까요?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이 불로 이루어졌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럼 지금 숨 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불로 이루어졌다는 거잖아요. 말이 되나요? 차가운 물도 그 존재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그 속에는 정말로 아주 작은 불씨들이 꿈틀거리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 솟아나는 의문들 때문에 그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 같지만, 잠깐 불만 생각해 보면, 그 신비로움에는 일단 감탄하게 됩니다. 제우스를 비롯해서 올륌포스의 신들은 불을 신들의 특권이라 여기고 인간들에게 금했다고 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몰래 훔쳐내서 우리 인간에게 주었다는 불, 딱딱한 고체도 아니고, 흐르는 액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체도 아닌 신비로운 존재가 불입니다. 불은 닿는 모든 것을 태우는 강력한 파괴력을 갖고 있죠. 추위를 막아주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까지 뿜어냅니다.
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움직임에 있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격렬한 춤을 추듯 이글거리고, 위를 향해 치솟듯이 몸부림친다는 것입니다. 모닥불이나 횃불은 물론, 심지어 촛불조차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끊임없이 꿈틀대며 흔들어대는 불의 격렬한 몸짓에 혼을 쏙 빼앗기곤 합니다. 바로 그 순간,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을 저도 번뜩 깨닫게 됩니다. ‘아, 그래 불이다. 모든 것이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하고, 어떤 것도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 헤라클레이토스가 고른 말이 바로 ‘불’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도 그렇게 불꽃처럼 태어나고 치솟듯이 자라나고, 횃불처럼 격렬하게 몸부림치다가 지치고 늙고 병들어 잦아들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촛불처럼 꺼지는 것 아닐까요?
모두 변하는데 불은 계속 불일 수 있을까
▲ 불꽃을 이루는 불
묘한 역설은 있습니다. 한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고, 모든 것이 물 흐르듯 변하며, 불꽃처럼 끊임없이 운동한다고 했잖아요. 좋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한다고 해도, 그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arkhê)’인 불은 어떤가요? 불도 변하나요? 불이 변하면 그것은 불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불로 이루어졌고, 불처럼 끊임없이 운동하며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쉼 없이 변해도 불은 언제나 불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모든 변화의 저변에 불은 불로서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원인인 불만은, 오직 불만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불로 존재한다.’라고요. 모든 것이 변해도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 진리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어렵습니다. 변하는 것들 뒤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역설이 ‘불’로 다 설명이 되는지, 생각이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가을입니다.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3. “모든 것은 변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2.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라고?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및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 서양고전학 박사. 펴낸 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음. 서양고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3. “모든 것은 변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0)
3. 범죄수사·사법절차와 역사학의 닮은 점 : <사료와...
윤진석
“정신질환, 분리와 배제 말고 사회적 연대, 공생이 답...
신승철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