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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roots와 길routes 사이의 긴장, 디아스포라

실체 없는 방황도, 탐색 없는 회귀도 지양하는 것

최영석

2019-06-17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광고 하나를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 언어를 쓰며 자라난 아이들. 이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항상 조국의 안녕만을 바래왔습니다. (...) 아이들의 정체성을 잡아주고, 한인사회의 인재를 발굴하고, 동포들이 거주국의 모범적 구성원이 되도록 지원했습니다. 글로벌 경제 교류의 장을 열었으며, 국경을 초월한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우리는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고 문화공간을 확대하는 재외동포가 대한민국 성장의 원동력이며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온 세계에 알려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랑스런 한민족입니다. 이민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그 힘은 재외동포입니다." 


재외동포재단의 이 광고는 그 자체로 완벽한 디아스포라 이야기이다. 먼 타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고향으로 귀환하는 꿈을 잊지 않았으며, 정주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면서 받은 차별과 상처를 견디고, 초국적 민족 네트워크에 속해 모국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 이 집단을 가리켜 우리는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라고 할 때, 우리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민족의 후손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명명하면서 하나의 실체로 묶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추방-망향-관계-귀환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비극적이면서 강렬한 정념이다.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거닐다



디아스포라, 외연의 확장



디아스포라 서사의 원형은 종교적 신화에 사실상 뿌리를 둔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어 디아스포라diasporá는 '~를 넘어, ~를 지나'라는 뜻의 dia와 '흩뿌리다'를 의미하는 speirein의 합성어인 동사 diaspeirein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유대 민족이 신의 분노로 인해 흩어지게 된 사건들을 기술하는 대목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성경에 기록된 유대 역사의 핵심은 디아스포라의 반복이다.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바빌론 유수에 이르기까지, 디아스포라는 신이 주재한 추방과 고난과 다가올 구원을 함축하는 종말론적 개념어로 자리잡았다. 기원후 1세기 로마는 유대인의 봉기를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고향에서 쫓겨나 세계로 흩어져 고난을 겪고 있으나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수천 년 동안 유대인 정체성의 중핵을 이루었다.  


오랫동안 유대적 구원 서사의 핵심어이던 디아스포라는 20세기 들어 점차 그 외연을 넓혀 갔다. 유라시아 대륙의 교차로에 자리잡은 아르메니아는 끊임없이 침략과 점령, 대학살을 겪었고, 중세부터 현대까지 계속 이주민들을 내보내야 했다.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전 세계의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보다 그 숫자가 적다. 16세기 이후 무려 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 상인의 배에 실려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이 발생한 후 아일랜드인들은 대거 신대륙으로 향했다. 영국 제국 하의 인도인들은 반노예제에 가까운 계약노동의 형식으로 인도양을 건너가 제국의 노동력을 보충했다.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갈 때, 인구와 노동도 함께 이동했다. 이른바 '대이주 시대'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은 유대인의 구원 서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디아스포라 서사의 전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예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출현이다. "더 이상은 학대를 견디지 못하니, 내 백성을 보내라/ 가라, 모세야, /이집트 땅을 떠나라" 이 구절은 '출애굽기'에 뿌리를 둔 19세기 미국 영가, <가라 모세야 Go Down Moses>의 일부분이다. 노예들이 강요받은 지배자의 종교는 이들에게 고난, 귀환,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해방의 이야기도 함께 전달했다. 



20세기 이주 집단, 비로소 이름을 갖다



헤이든 화이트의 말처럼 역사는 언어의 가공물이다. 디아스포라 서사는 전 세계의 이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생성할 기회를 제공했고, 제국주의의 후퇴와 탈식민화의 흐름 속에서 신생국들은 이주민과 난민들을 디아스포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서 제 민족의 일원으로 호출했다. 이제 20세기 후반 이후 디아스포라는 이민자, 난민, 이주노동자, 망명자, 소수 민족 사회 등 다양한 이주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국제학, 민족학, 문학비평에서 핵심 용어로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차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 용어가 되었다. 


당연히 모든 이주를 디아스포라라고 칭할 수는 없다. 강제 이주, 모국으로의 귀환 시도,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디아스포라 사이의 긴밀한 네트워크 형성 등은 유대인에게서 비롯한 고전적 디아스포라 개념의 기본 틀을 이루며, 이론가들은 여기에 기대 디아스포라 개념의 무한정한 확장을 방지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래야만 디아스포라 개념이 생산적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국-디아스포라-거주국의 삼각 관계와 그 사이의 복잡한 연결망은 디아스포라의 이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모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중간자나 매개자, 혹은 잔여나 분란의 씨앗으로 간주되곤 하는 디아스포라는 국민국가의 틀로 해명되지 않는 특정 사태를 이해하려는 정치학적, 국제학적 시도에 좋은 대안이 되어 주었다. 디아스포라는 '이중의 충성'을 요구받는다. 한편으로는 거대한 민족주의적 확장ultra-nationalism의 도구나 증거다. "우리 모두는 자랑스런 한민족입니다. 이민으로 해 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그 힘은 재외동포입니다." 그러나 "동포들이 거주국의 모범적 구성원이 되도록"이라는 언명이 내비치듯이 이들의 생활 공간은 현재 정주해 있는 그 곳이다. 이들을 디아스포라로 규정하는 순간,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거주국의 바깥에 속하는 존재가 된다.  



뿌리roots와 길routes 사이, 그 어딘가 



걸음과 그림자의 경계


정주국에, 또 모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디아스포라 개념을 엄밀하게 규정하는 것으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연결짓고 집단화하기 위해 디아스포라 담론을 이용하는 이들의 실천과 기획은 디아스포라를 민족성이나 국가성의 틀에서 단순화하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다. 고정되지 않고, 부유하는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가지는 초국민성trans-nationality은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정체성의 불순물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디아스포라는 중심과 주변, 주체와 타자라는 근대 정체성 정치의 이분법을 폭로하는 존재다. 예컨대 일본의 코리아 디아스포라가 갖는 '재일성(在日性)'은 단순히 재일조선인의 후예들이 겪은 차별과 고난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근대성이 강요한 표지들을 넘어서는 '디아스포라 정체성'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뿌리와 실체로 환원되는 근대적 정체성과는 달리 인식과 담론의 차원이 강하다.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보다 혼종성과 이중 의식을 갖는 정체성이 구성, 변형, 생성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시각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는 근대성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 고정된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제 모습을 바꾸는 ‘포스트모던한 노마드’를 뜻하는 것일까? 디아스포라 연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1990년대 이후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개막과 맞물린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과 인구의 이동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디아스포라는 탈근대의 표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를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고 문화공간을 확대하는" 존재로 여기는 민족주의적 시각이 지닌 한계 못지않게, 유동성과 파편성의 차원만을 강조하는 시각도 디아스포라의 가능성을 왜곡한다. 디아스포라는 고난과 구원, 모국과 정주국, 정착과 단절, 근원과 이동 사이의 긴장과 교섭 속에서 그 원동력을 얻는 개념이다. 디아스포라를 특정 방향으로 굳어진 고정된 실체로 간주할 때, 디아스포라는 역사와 담론의 변곡점이자 교차로로서의 특색을 잃고 그 내부에서 자본, 인종, 젠더, 내셔널리티의 균열과 차별을 다시 생산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사를 떠올려보자. 신의 약속을 참칭하며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실현시켰을 때, 다시 말해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완성시켰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은 뿌리 뽑힌 자가 되어 흩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디아스포라의 해소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를 만들어냈다.  


어떤 이들은 디아스포라라는 말에서 바로 ‘근원으로 회귀’를 떠올린다. 또 어떤 이들은 과거가 아닌 새로운 영역으로의 이동으로 디아스포라를 정의한다. 그러나 뿌리roots와 길routes 중 어느 하나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것, 그래서 실체 없는 방황도, 탐색 없는 회귀도 지양하는 것, 여기에 디아스포라로 불리는 역사, 개념, 사람들의 존재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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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석
최영석

문학/문화 연구자. 연세대학교에서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다름과 만나기>, <디아스포라 이즈>, <페미니즘의 위대한 역사>, <권력 정치 문화>,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등을 번역했다. 모빌리티, 디아스포라, 난민, 크리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_ⓒ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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