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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과연 내 것일까?

몸과 자아의 관계

김석

2019-02-25


이중적인 몸을 대하는 태도


내 몸은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기도 하다. 몸(body)은 자연과 문화 두 영역을 동시에 관여하는 이중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몸의 물리, 생리 기능은 자연적이지만,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몸의 활동이나 몸을 보는 시각은 사회, 문화적 요소에 의해 형성된다.


사회, 문화적 요소가 어떻게 몸 자세, 태도, 활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인류학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 1914-2009)은 우리 몸의 리듬이나 동작을 문화가 규정하기 때문에 문화적 맥락을 배경으로 고려해야 몸의 언어의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권마다 독특한 제스처나 표정을 통한 소통방식이 다른 것도 그 때문이다.


몸의 이중성 때문에 우리는 몸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몸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주관성(subjectivity)의 물적 토대가 될 뿐 아니라 타자와 관계에서 매개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는 인간의 몸이 타인들과 삶을 공유하는 비인칭적 실존과 ‘나’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를 둔 인칭적 실존이 결합된 장소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몸은 욕망과 충동의 원천이면서 사회적인 것과 상징이 기재될 수 있는 매개물이다. 몸의 이런 이중성이 자칫 몸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태도를 낳을 수 있다. 몸의 개인적 경험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자폐적으로 되는데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외부세계로 투여된 성적 에너지 리비도가 주체의 내부로 과도하게 집중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 부르며 병리적 상태로 규정한다.


반대로 몸의 외관만 좇다 보면 소외감이 발생할 수 있다. 성형수술이나 몸 가꾸기에 대한 광적 열풍이 그런 예다. 또 과도하게 타인의 관심을 끌려다 보면 ‘연기성 성격장애’, 즉 남들에게 보이는 측면만 의식하고 관심받기 위해 연극배우처럼 행동하는 성격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극단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몸의 이중성을 이해하면서 나의 몸에 대한 균형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자아 문제로도 연결된다.


이중적인 몸을 대하는 태도



자아에 대한 심리학 이론


몸은 자아 형성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자아와 이드〉에서 자아가 신체 이미지에 대한 리비도 투여와 동일시를 통해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자아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대상화된 신체 이미지를 자아로 취하는 동일시를 통해 구성되기 때문에 주체적 측면과 대상적 측면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이런 면에서 자아개념을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하였다. 경험의 주체로서 ‘나 (the I)’ 또는 자기와 경험의 객체로서 ‘나(the me)’가 그것이다. 결국 자아는 분열되어 있고, 이런 분열 때문에 안정적이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 1902-1987)처럼 개인의 신체적 존재, 행동, 사상 모두를 포함하는 통합체로서 자아를 긍정하는 심리학 이론도 있다. 로저스는 개인이 자신의 특성과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면서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심리치료에서 중시한다.


심리학에서 보는 몸과 자아


반면 프로이트는 자아 형성과 정체성 구축에서 인격 구조 간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여기서 파생하는 콤플렉스의 극복을 강조한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0)은 ‘거울 단계’ 이론을 통해 자아가 거울에 비친 ‘타자적 이미지’로 구성되기 때문에 우리를 이미지에 매달리게 하는 소외의 구조일 수밖에 없다면서 자아의 강화를 주장하는 자아심리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자아를 어느 정도 긍정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라캉은 자아의 주관적 속성을 상상계적 작용이라고 비판하면서 소외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



자기 차이와 나르시시즘


자아의 부정적 속성은 결국 몸의 이중성, 즉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의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 인간은 몸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하고 이를 기억하며 정서적인 것도 상당 부분 몸에 의해 형성된다. 몸의 호르몬의 불균형이나 건강의 문제가 여러 성격 장애를 초래한다. 또 우리 몸은 기억의 저장고로서 자기 정체성의 토대 역할을 한다. 최근의 뇌 과학 연구에 따르면 과거의 인간관계 경험과 현재의 기억은 뇌의 신경세포 네트워크에 지속해서 저장된다. 몸에 반복적으로 쌓인 경험과 기억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정신과정을 조직하는 일관된 자아 의식을 만든다.


동시에 자아의식에는 타인의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우린 이런 사회적 자아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자기 차이(self-discrepancy)’가 발생하는데 자기 차이란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실제 자기와 자신이 도달하기 바라는 이상적 자기의 불일치를 말한다. 자기 차이는 내가 이상화하면서 비교하는 사회적 자아에 의해 규정되는데 이러한 불일치가 커질수록 자아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고 자존감도 상처를 받기 쉽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맹목적으로 이상화된 자아상을 좇을 게 아니라 자기 차이를 줄여야 한다. 결국 건강한 자아를 위해 나르시시즘을 잘 통제할 필요가 있다.


나르시시즘이란 용어는 심리학자 비네(Alfred Binet, 1857-1911)가 1887년 자신을 성적대상처럼 간주하는 페티시즘(fetishism)을 묘사하기 위해 정신 병리적 의미로, 최초로 사용한 용어다.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에서 동성애자들은 나르시시즘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성애적 대상처럼 간주하면서 과도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페티시즘처럼 부정적 효과도 만들지만 자아의 분열을 극복하면서 자아의 지속성을 보장해주는 긍정성도 지닌다. 자기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 (Heinz Kohut, 1923-1981)은 나르시시즘이 긍정적 자아상과 이상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하면서 나르시시즘을 긍정하기도 한다. 자아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통제되는 나르시시즘이 필요하다. 



나의 고유성 실현이 몸의 행복


결국 나르시시즘의 긍정성을 잘 살리는 것은, 자아의 긍정성을 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의 이중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가 되는 몸의 이중성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실존성을 확보하고 이를 사회성과 조화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구이며, 나의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아의식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지나친 자기계발 붐이 좀 수그러들면서 나의 본래성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기 성찰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나의 고유성 실현이 몸의 행복


자기계발이 강조될 때에는 저마다 과도한 자아상과 비전을 추구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상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이 덩달아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억압이었다. 몸이 다르듯 우리 성격이나 자아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도 부모가 강요하는 과도한 자아 이상의 추구가 불러오는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이런 비극이 아닌 행복을 위해서는 나의 고유성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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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석
김석

정신분석 개념과 철학을 접목해 한국 사회의 집단 심리와 사회, 문화 현상을 분석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인문학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철학자. 현재 건국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중 강연과 집필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에도 열심이다.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프로이트 & 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 〈인문학 명강〉 (공저) 등을 썼으며, 옮긴 책으로 〈문자라는 증서: 라캉을 읽는 한 가지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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