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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 고독을 자처하는 자들의 특권

너무 시끄러운 고독·고독의 위로를 중심으로

이다혜

2018-09-21

인간관계보다 압도적으로 고독을 즐기는 일이 행복을 준다면 “저는 비정상인가요?”를 물을 필요가 없다.

철학자, 음악가, 미술가, 작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내 안으로 침잠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예술로 끌어올리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고독에 있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의 행복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고독한 정도로 충분하다.




‘우리의 불행은 대부분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는 말이 있다.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책 「언어의 연금술사」의 이런 문장들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고독에 대한 불안에서 나오는 행위인가? 이것이 우리가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게 될 모든 일을 포기하는 이유인가?

이것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기 힘든 이유인가?”

 

고독과 외로움은 혼용되며, 둘 다 해소되어야 할 감정 상태로 이해되곤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함께 있는 시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정말 그런가? 기꺼이 혼자 있고자 하는 이에게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폐지 더미에서 발견한 깨달음

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35년간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온 ‘한탸’의 이야기다. 작업장 천장의 뚜껑 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총제인 종이 덩어리(책)들이다. 철학이든 문학이든 그저 압축될 쓰레기에 불과한 이 거대한 문서의 더미 안에서 그는 우연한 독서를 시작한다. 그는 책을 읽고, 그중 귀한 책들을 따로 모으기 시작한다. 폐지는 다시 책으로 신분을 회복한다. 어느새 책으로 가득 찬 집 속에서 노인이 된 한탸, 그리고 그의 추억 속의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너무시끄러운고독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그가 그 자리에서 나이가 들어 가는 동안 세상도 변해간다. 이제 새로운 압축기는 인간의 노동력보다 더 강력한 기계 그 자체다. 폐지를 압축하며 책을 가까이서 보고 만지고 책장을 들추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이다.

 

한탸가 발견한 고독은 책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성찰의 기쁨이 있다. 독서는 거의 종교적인 행위가 된다. 그의 노동이 그를 구원한 것이다. 그의 삶은 그가 읽은 것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독서를 하는 순간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들어서고 그의 영혼은 멀리 떠날 수 있는 날개를 갖는다. 그는 말할 수 있다.

 

“난 분명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눈만 감아도 모든 게 현실에서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르니까.”

 

 

풍요로운 삶의 필수 조건

홀로 사색하는 법을 아는 자의 고독이란 군중보다도 풍성한 뉘앙스를 갖는다. 앤서니 스토(Anthony Storr)의 『고독의 위로』는 고독이란 단어에 ‘슬픔’이라는 감정을 덧씌울 필요가 없음을, 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창조자를 예로 들어 말한다. 인간관계가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명제는 부분만 진실이다. 풍요로운 인생은 고독한 순례자의 것이다.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창조적인 삶을 위해서 고독과 기꺼이 벗하라. 『고독의 위로』 초반부는 천재를 만드는 고독에 할애된다.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많다. 데카르트, 뉴턴, 로크, 파스칼, 스피노자, 칸트,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중에는 한동안 이성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도 있고 뉴턴처럼 금욕적인 삶을 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결혼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오랜 시간을 혼자서 지냈다.”

 

 

고독의 위로

『고독의 위로』, 책읽는수요일

 

 

화목한 가정이야말로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고독한 창조자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고독의 위로』가 위안이 되는 지점은, 우리가 느끼는 정 반대되는 두 개의 충동-다른 이들을 사귀고 사랑을 나누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동시에 독립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우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독을 스스로 발견하고 발명하는 일이 창조적인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격려를 보탠다는 데 있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나는 니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개인으로 살며, 가까운 사람과 애정을 나누고 싶고 그저 때로 고독을 음미하고자 할 뿐이다. 그렇게 거창한 고독은 필요 없다!

 

누구나 위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고독을 인내하라는 주문은 이 책과 무관하다. 일단, 인간관계보다 압도적으로 고독을 즐기는 일이 행복을 준다면 “저는 비정상인가요?”를 물을 필요가 없다. 철학자, 음악가, 미술가, 작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내 안으로 침잠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예술로 끌어올리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고독에 있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의 행복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고독한 정도로 충분하다. 『고독의 위로』 속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면 이렇다.


당시의 여성들은 매일 오후에 혼자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 시대 여성은 관습에 따라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살피는 데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오후의 휴식시간은 충실한 청취자와 구원의 천사라는 역할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었다. 현대의 여성이라고 다를까? 남성은 어떠한가? 특히 여성들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까닭은, ‘사회’ 생활의 영역이 아닌 ‘사생활’의 영역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타인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힘든 주부, 어머니에게 고독을 선물하라. 가장 좋은 일은, 가사와 양육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서로의 필요에 귀 기울이고 서로에게 고독을 선사하는 일이다.

 

 

고독을 선물하자

고독을 선물하자 @ Photo by Timothy Choy on Unsplash

 

 

『고독의 위로』 에 실린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서곡」은 고독을 이렇게 말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누군가의 삶의 전부, 삶의 운명

미국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이라는 시를 남겼다. 워즈워드가 고독을 “일에 지키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의 대조항으로 제시했다면 에밀리 디킨슨에게 고독은 삶의 모든 것이었다.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그 크기는

그 파멸의 무덤에 들어가서 재는 대로

추측할 뿐-

고독의 가장 무서운 경종은

스스로 보고는-

스스로 앞에서 멸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

공포는 결코 보이지 않은 채-

어둠에 싸여 있다-

끊어진 의식으로-

하여 굳게 잠가진 존재-

이야말로 내가 두려워하는- 고독-

영혼의 창조자

고독의 동굴, 고독의 회랑은

밝고도- 캄캄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삶에 대한 테렌스 데이비스(Terence Davies) 감독의 영화 <조용한 열정>은 제목 자체가 그녀의 삶에 고독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에밀리 디킨슨은 어린 시절 다녔던 기숙학교 시절을 제외하면 집을 떠나본 적이 없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매일 시를 썼고, 1,8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세상의 끝까지 여행하고, 만나는 모든 이와 사랑을 나누고, 다른 사람은 경험한 적 없는 모험의 주인공이어야 타인이 솔깃할 예술을 창조하는가? 창작은 경험의 영역에 있는가 사색의 영역에 있는가? 그 둘 모두 창작에 필요하지만, 온전히 나의 고독을 마주하며 시를 창작한 에밀리 디킨슨의 삶은 그 자체로 영감이 되어준다.

 

고독 속에서만 태어나는 격정, 열정, 언어가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을, 기꺼이 끌어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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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로사는현대인
  • 호모솔리타리우스
필자 이다혜
이다혜

작가. 지은 책으로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등이 있다. 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등의 프로그램에서 책과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일을 한다. <씨네21>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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