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을까’를 고민하며 그 푸르른 젊은 날을 우울한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내 마음 속에서는 ‘이제 그런 끝없는 인정투쟁은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여행은 내게 삶을 아프게 찌르는 그 무엇들과 작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우리 삶을 아프게 찌르는 마음의 가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타인의 오해’다.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오해의 가능성 속에 나를 던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든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의도와 감정에 비추어 타인을 이해하는 오래된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내 마음의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오해 속에 둘러싸여 있다는 소외감이 들 때면, 나는 관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오해를 풀 방안을 궁리하기보다는 머리를 식히러 짧은 여행을 떠난다. 이리저리 궁리할수록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엔 내게 소중한 어떤 것들을 내려놓아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내려놓아야할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여행이라는 마음의 처방을 내리곤 했다.
내면의 여행을 통해 잘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아갈 수 있다.
나를 향한 내면의 여행의 시작
처음 유럽여행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시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던 나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일까’ 하는 아픈 물음이 마음을 옥죄어왔다. 그때까지 한 번도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본 적이 없는 집순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커다란 용기를 내어 배낭여행을 떠났고, 그 낯선 생활이 정말 뜻밖에도 나에게 꼭 필요한 자극이었음을 깨달았다.
한식 이외의 음식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피자 한 조각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것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꼭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앉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파리, 런던, 로마를 비롯해, 베를린, 마드리드, 세비야, 바르셀로나, 베니스 등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찾아갔던 그 모든 여행은 곧 나를 향한 내면의 여행이기도 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냈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을까’를 고민하며 그 푸르른 젊은 날을 우울한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내 마음 속에서는 ‘이제 그런 끝없는 인정투쟁은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간단한 영어회화 말고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못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느낌, 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다.
부모, 교사, 또래집단, 사회, 국가, 미디어의 시선에 길들여진 우리의 신체는 삶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여행지에서는 누군가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에, 즉 나는 그저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이기에 누구도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필요도, 누군가의 오해 속에서 가슴앓이 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런 관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가 내가 진정 필요로 하던 마음챙김이었음을 첫 번째 유럽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십여 년 전에는 전화나 이메일도 외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완벽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 사이에 거리를 둠으로써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머나먼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냉정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다. 익숙한 삶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보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의 거리감을 알게 해준다. 특히 외국으로 나가면 평소처럼 전화 한 통만으로 쉽게 의사를 전달할 수가 없어지니 메일 한 통, 전화 한 통에도 신중해지게 된다. 시차가 큰 곳일수록 통화는 어려워지고 통화요금도 비싸지니 되도록 연락은 줄일 수밖에 없다. 직접 연락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대신에 ‘침묵’ 속에서 관계를 침착하게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다’ ‘이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저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싶다’라는 욕심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망칠 수도 있음을.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고,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들을 모두 다 잘해낼 수는 없었다. 내가 의무감 때문에 놓지 못하는 일 중에는 ‘내가 원하는 인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일도 많았다. 자존감을 회복한다는 것은 단지 ‘더 멋지고 대단한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증오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주변 사람들과 뚝 떨어져 홀로 있는 나를 돌아다 보니, 내가 나를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싫어도 ‘좋다’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하겠다’고 말해온 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작 나 자신을 위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저버리고 있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거절을 하면서도 걱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으며, 부정적인 의견일지라도 정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나를 조금씩 만들어가야 했다.
진정한 나를 알고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더욱 열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진짜 나를 알고 사랑하기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조금씩 ‘진짜 나’를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짜릿했다. 예컨대 부모님께 정직해지는 것은 어렵지만 ‘자기와의 대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요구하는 성공과 출세의 길을 ‘나는 걷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는 순간, 그 순간 부모님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과 배신감 어린 눈빛을 확인하는 순간. 고통스러웠지만 처음으로 ‘진짜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불안한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순간, 나는 거대한 모래사막 위에 홀로 선 기분이었지만 그것이 진짜 자유를 얻은 자의 눈부신 희열임을 직감했다. 자유의 향기는 달콤하고 기름진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담백한 것이었다.
이미 ‘내가 원하는 삶’으로 충분히 만족하기에 다른 자극적인 것들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누구에게나 내 의견을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오히려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나 선생님들께도 솔직히 내 의견을 말하니 서로를 향한 불편함과 어색함이 줄어들었다. 솔직하게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오히려 당찬 내 모습, 나를 사랑하는 내 모습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환하게 밝혀줄 때가 많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지켜야 할 내 주변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다. 지켜야 할 것, 아껴주어야 할 것이 곁에 있을 때 우리는 더욱 강인해진다.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아껴주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내가 지켜주어야 할 나 자신의 모습을 ‘커다란 하나’로서 인식할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낯선 곳에서도 얼마든지 잘 견디는 나’ ‘낯선 장소에서 오히려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대면하는 나’를 발견했다. 여행에서 얻은 그 소중한 발견의 힘을 일상 속에서 녹여내는 것. 그것은 단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자존감’의 문제를 넘어, 삶을 사랑하는 따뜻한 눈을 가지는 것,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품어 안는 것이다.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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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는 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가는 여행
정여울
2017-12-28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냈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을까’를 고민하며 그 푸르른 젊은 날을 우울한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내 마음 속에서는 ‘이제 그런 끝없는 인정투쟁은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여행은 내게 삶을 아프게 찌르는 그 무엇들과 작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우리 삶을 아프게 찌르는 마음의 가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타인의 오해’다.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오해의 가능성 속에 나를 던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든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의도와 감정에 비추어 타인을 이해하는 오래된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내 마음의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오해 속에 둘러싸여 있다는 소외감이 들 때면, 나는 관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오해를 풀 방안을 궁리하기보다는 머리를 식히러 짧은 여행을 떠난다. 이리저리 궁리할수록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엔 내게 소중한 어떤 것들을 내려놓아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내려놓아야할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여행이라는 마음의 처방을 내리곤 했다.
나를 향한 내면의 여행의 시작
처음 유럽여행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시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던 나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대한 장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일까’ 하는 아픈 물음이 마음을 옥죄어왔다. 그때까지 한 번도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본 적이 없는 집순이로 살아온 나로서는 커다란 용기를 내어 배낭여행을 떠났고, 그 낯선 생활이 정말 뜻밖에도 나에게 꼭 필요한 자극이었음을 깨달았다.
한식 이외의 음식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피자 한 조각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것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꼭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앉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파리, 런던, 로마를 비롯해, 베를린, 마드리드, 세비야, 바르셀로나, 베니스 등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찾아갔던 그 모든 여행은 곧 나를 향한 내면의 여행이기도 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냈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을까’를 고민하며 그 푸르른 젊은 날을 우울한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내 마음 속에서는 ‘이제 그런 끝없는 인정투쟁은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간단한 영어회화 말고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못 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느낌, 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다.
부모, 교사, 또래집단, 사회, 국가, 미디어의 시선에 길들여진 우리의 신체는 삶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여행지에서는 누군가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에, 즉 나는 그저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이기에 누구도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필요도, 누군가의 오해 속에서 가슴앓이 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런 관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가 내가 진정 필요로 하던 마음챙김이었음을 첫 번째 유럽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십여 년 전에는 전화나 이메일도 외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완벽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머나먼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냉정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다. 익숙한 삶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보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의 거리감을 알게 해준다. 특히 외국으로 나가면 평소처럼 전화 한 통만으로 쉽게 의사를 전달할 수가 없어지니 메일 한 통, 전화 한 통에도 신중해지게 된다. 시차가 큰 곳일수록 통화는 어려워지고 통화요금도 비싸지니 되도록 연락은 줄일 수밖에 없다. 직접 연락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대신에 ‘침묵’ 속에서 관계를 침착하게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다’ ‘이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저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싶다’라는 욕심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망칠 수도 있음을.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고,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들을 모두 다 잘해낼 수는 없었다. 내가 의무감 때문에 놓지 못하는 일 중에는 ‘내가 원하는 인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일도 많았다. 자존감을 회복한다는 것은 단지 ‘더 멋지고 대단한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증오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주변 사람들과 뚝 떨어져 홀로 있는 나를 돌아다 보니, 내가 나를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싫어도 ‘좋다’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하겠다’고 말해온 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작 나 자신을 위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저버리고 있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거절을 하면서도 걱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으며, 부정적인 의견일지라도 정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나를 조금씩 만들어가야 했다.
진짜 나를 알고 사랑하기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조금씩 ‘진짜 나’를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짜릿했다. 예컨대 부모님께 정직해지는 것은 어렵지만 ‘자기와의 대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요구하는 성공과 출세의 길을 ‘나는 걷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는 순간, 그 순간 부모님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과 배신감 어린 눈빛을 확인하는 순간. 고통스러웠지만 처음으로 ‘진짜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불안한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순간, 나는 거대한 모래사막 위에 홀로 선 기분이었지만 그것이 진짜 자유를 얻은 자의 눈부신 희열임을 직감했다. 자유의 향기는 달콤하고 기름진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담백한 것이었다.
이미 ‘내가 원하는 삶’으로 충분히 만족하기에 다른 자극적인 것들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누구에게나 내 의견을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오히려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나 선생님들께도 솔직히 내 의견을 말하니 서로를 향한 불편함과 어색함이 줄어들었다. 솔직하게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오히려 당찬 내 모습, 나를 사랑하는 내 모습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환하게 밝혀줄 때가 많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지켜야 할 내 주변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다. 지켜야 할 것, 아껴주어야 할 것이 곁에 있을 때 우리는 더욱 강인해진다. 내가 사랑하는 일, 내가 아껴주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내가 지켜주어야 할 나 자신의 모습을 ‘커다란 하나’로서 인식할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낯선 곳에서도 얼마든지 잘 견디는 나’ ‘낯선 장소에서 오히려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대면하는 나’를 발견했다. 여행에서 얻은 그 소중한 발견의 힘을 일상 속에서 녹여내는 것. 그것은 단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자존감’의 문제를 넘어, 삶을 사랑하는 따뜻한 눈을 가지는 것,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품어 안는 것이다.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는 길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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