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은 일을 할 때 실제적인 이익과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인간관계는 삶의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하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는 여지다.
더불어 이렇듯 “사회 안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은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해지며 무엇보다 사회와 나의 관계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자존감’을 검색어로 넣으면 180여 종의 도서가 나온다. 이 가운데 50여 종이 올해, 30여 종이 지난해, 그리고 20여 종이 지지난해에 나왔으니, 자존감 열풍이라는 표현이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자존감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이 눈에 띄게 되었을까. 돌아보면 예전에는 자존감보다는 자신감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고, 나를 위하고 지키기보다는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바꾸는 데 중심을 두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이제 후자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니,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자존감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지키는 데에 온 힘을 쏟아도 나 하나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자존감은 과연 마지막 피난처이자 휴식처이자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자존감은 왜 갑자기 나타났나?
숱하게 쏟아지는 자존감 도서 가운데 단 한 권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다니엘 브랜든의 『자존감의 여섯 기둥』을 권하겠다. 그는 자존감의 개념, 근원, 작동 원리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정리한 학자로 평가받는데, 이 책은 자존감이란 무엇인지, 자존감은 왜 중요한지,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존감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어떤 것들인지에 차례로 답하며, 자존감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실천 방안, 그러니까 나를 지지하고 지탱하는 여섯 가지 기둥을 하나씩 세워가는 방법을 전한다. 자존감의 대가가 평생의 연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낸 책이니, 자존감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곁에 두고 교과서로 삼기 맞춤일 것이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 너새니얼 브랜든 지음, 교양인
그런데 여전히 왜 자존감이 갑자기 나타났는지가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는데, 이 책은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화된 경제는 급격한 변화, 과학적•기술적 혁신의 가속화, 전례 없이 치열한 경쟁이 특징이다. 이러한 발전은 이전 세대가 요구받았던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직업 훈련을 요구한다. (중략) 이런 종류의 발전은 개인에게 특히 혁신, 자기 경영, 책임감, 자기 주도와 같은 측면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한다. (중략) 한마디로 자존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정부나 교회, 노동조합 같은 대규모 집단이 개인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은 없다. 삶의 어떤 측면에서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로지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라고 하니, 자존감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자존감을 요구받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용서받을 기회를 찾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존경받을 기회를 찾는다”라는 멋진 말이 왠지 허망하게 느껴진다.
내 안의 자존감을 타자와 함께하는 자존감으로
앞선 책은 자존감의 외부 요인을 정리하며 끝을 맺는데, 주요한 요인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 학교와 일터에서의 경험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말한다면 이 가운데 일터가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터, 사회를 진단하고 처방을 고민하는 역할로서 ‘사회 의사’를 자처하는 강상중 교수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자존감을 지키면서 일하는 방법, 일하면서 자존감을 확충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사계절
시대가 험악하다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거나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진심은 대체로 인정받되 여전히 존중받기는 어렵다. 이 간극을 채우는 말이 바로 ‘자아실현’이다. 그런데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지금의 나’는 임시적인 모습일 뿐 ‘진짜 나’가 아니고, 내 안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훨씬 더 훌륭한 ‘진정한 나’가 있어서 그것을 목표로 삼아 매진하며 자신을 질타하고 격려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 즉 향상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아 실현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라 “환상에 가깝다 해도 좋을 정도”다. 왠지 자존감이라는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출구 없는 미로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무엇일까. 강상중은 일을 할 때 실제적인 이익과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인간관계는 삶의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하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는 여지다. 더불어 이렇듯 “사회 안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은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해지며 무엇보다 사회와 나의 관계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현실이 각박하다고 시선을 안으로만 좁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밖으로 돌려보자는 제안이다. 이 과정에서 얻는 각성과 깨달음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되니, 이제 출구 없는 미로는 서로를 확대재생산 하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우리 시대의 자존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아름다운 결말이지만 멀고 먼 남의 이야기라 여겨진다면, 1년 전 겨울을 떠올려보자. 2016년 겨울에 시작해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시위에는 무려 1,7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결국 불의한 권력자는 이들의 함성과 항쟁 앞에 무너졌고, 1년이 지난 오늘, 역사는 그날을 혁명이라 기억한다. 나 하나 온전히 지켜내기 어려운 각박한 현실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마주한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고 바로잡기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경험.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쉼 없이 나섰고, 염려했던 결과가 아니라 기대했던 결과로 마무리되었으니 그토록 찾아 헤맨 각자의 자존감이 바로 이것 아닌가 싶다.
『촛불혁명』 김예슬 지음, 느린걸음
마침 1년을 맞아 나온 역사의 기록 『촛불혁명』은 지난 2010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함으로써 한국사회에 대학과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전한 김예슬의 저작이다. 그는 “촛불의 아이들이 이 혁명의 기억과 함께 자라날 수 있는 책, 이 아래로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이걸 딛고 나아갈 반석과 같은 책, 그런 바람을 담아 이 책을 지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촛불혁명은 우리 시대 자존감의 출발점이자 최소한의 자존감이다. 시선을 안으로만 좁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밖으로 돌릴 때 모두의 자존감과 나의 자존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귀한 경험을 얻었으니, “광장의 촛불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으나 1700만 촛불의 빛과 함성은 내 안에 살아 있다. 새로운 삶의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나를 구하고 모두를 위하는 태도
『자존감의 여섯 기둥』 외
박태근
2017-12-26
출구 없는 미로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무엇일까.
강상중은 일을 할 때 실제적인 이익과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인간관계는 삶의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하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는 여지다.
더불어 이렇듯 “사회 안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은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해지며 무엇보다 사회와 나의 관계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자존감’을 검색어로 넣으면 180여 종의 도서가 나온다. 이 가운데 50여 종이 올해, 30여 종이 지난해, 그리고 20여 종이 지지난해에 나왔으니, 자존감 열풍이라는 표현이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자존감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이 눈에 띄게 되었을까. 돌아보면 예전에는 자존감보다는 자신감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고, 나를 위하고 지키기보다는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바꾸는 데 중심을 두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이제 후자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니,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자존감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지키는 데에 온 힘을 쏟아도 나 하나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자존감은 과연 마지막 피난처이자 휴식처이자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자존감은 왜 갑자기 나타났나?
숱하게 쏟아지는 자존감 도서 가운데 단 한 권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다니엘 브랜든의 『자존감의 여섯 기둥』을 권하겠다. 그는 자존감의 개념, 근원, 작동 원리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정리한 학자로 평가받는데, 이 책은 자존감이란 무엇인지, 자존감은 왜 중요한지,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존감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어떤 것들인지에 차례로 답하며, 자존감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실천 방안, 그러니까 나를 지지하고 지탱하는 여섯 가지 기둥을 하나씩 세워가는 방법을 전한다. 자존감의 대가가 평생의 연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낸 책이니, 자존감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곁에 두고 교과서로 삼기 맞춤일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왜 자존감이 갑자기 나타났는지가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는데, 이 책은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화된 경제는 급격한 변화, 과학적•기술적 혁신의 가속화, 전례 없이 치열한 경쟁이 특징이다. 이러한 발전은 이전 세대가 요구받았던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직업 훈련을 요구한다. (중략) 이런 종류의 발전은 개인에게 특히 혁신, 자기 경영, 책임감, 자기 주도와 같은 측면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한다. (중략) 한마디로 자존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정부나 교회, 노동조합 같은 대규모 집단이 개인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은 없다. 삶의 어떤 측면에서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로지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라고 하니, 자존감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자존감을 요구받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용서받을 기회를 찾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존경받을 기회를 찾는다”라는 멋진 말이 왠지 허망하게 느껴진다.
내 안의 자존감을 타자와 함께하는 자존감으로
앞선 책은 자존감의 외부 요인을 정리하며 끝을 맺는데, 주요한 요인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 학교와 일터에서의 경험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말한다면 이 가운데 일터가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터, 사회를 진단하고 처방을 고민하는 역할로서 ‘사회 의사’를 자처하는 강상중 교수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자존감을 지키면서 일하는 방법, 일하면서 자존감을 확충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시대가 험악하다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거나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진심은 대체로 인정받되 여전히 존중받기는 어렵다. 이 간극을 채우는 말이 바로 ‘자아실현’이다. 그런데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지금의 나’는 임시적인 모습일 뿐 ‘진짜 나’가 아니고, 내 안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훨씬 더 훌륭한 ‘진정한 나’가 있어서 그것을 목표로 삼아 매진하며 자신을 질타하고 격려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 즉 향상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아 실현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라 “환상에 가깝다 해도 좋을 정도”다. 왠지 자존감이라는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출구 없는 미로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무엇일까. 강상중은 일을 할 때 실제적인 이익과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인간관계는 삶의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하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는 여지다. 더불어 이렇듯 “사회 안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은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해지며 무엇보다 사회와 나의 관계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현실이 각박하다고 시선을 안으로만 좁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밖으로 돌려보자는 제안이다. 이 과정에서 얻는 각성과 깨달음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되니, 이제 출구 없는 미로는 서로를 확대재생산 하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우리 시대의 자존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아름다운 결말이지만 멀고 먼 남의 이야기라 여겨진다면, 1년 전 겨울을 떠올려보자. 2016년 겨울에 시작해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시위에는 무려 1,7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결국 불의한 권력자는 이들의 함성과 항쟁 앞에 무너졌고, 1년이 지난 오늘, 역사는 그날을 혁명이라 기억한다. 나 하나 온전히 지켜내기 어려운 각박한 현실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마주한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고 바로잡기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경험.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쉼 없이 나섰고, 염려했던 결과가 아니라 기대했던 결과로 마무리되었으니 그토록 찾아 헤맨 각자의 자존감이 바로 이것 아닌가 싶다.
마침 1년을 맞아 나온 역사의 기록 『촛불혁명』은 지난 2010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함으로써 한국사회에 대학과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전한 김예슬의 저작이다. 그는 “촛불의 아이들이 이 혁명의 기억과 함께 자라날 수 있는 책, 이 아래로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이걸 딛고 나아갈 반석과 같은 책, 그런 바람을 담아 이 책을 지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촛불혁명은 우리 시대 자존감의 출발점이자 최소한의 자존감이다. 시선을 안으로만 좁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밖으로 돌릴 때 모두의 자존감과 나의 자존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귀한 경험을 얻었으니, “광장의 촛불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으나 1700만 촛불의 빛과 함성은 내 안에 살아 있다. 새로운 삶의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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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높이는 소비
진종훈
[자존감]우리의 마지막 식사일지라도 우아하게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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