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의 기억
군 훈련소에서 입소식을 마치고 가족과 헤어진 이후에, 모든 훈련병은 체육관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때부터 끝없는 윽박질과 기합이 시작된다. 물론 어리바리한 신입들이 조교의 명령을 재빨리 알아듣지 못하고 굼뜨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직전까지 ‘정상적인’ 사회에서 보통의 사회인 혹은 학생으로 생활하던 그들이 군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명령과 지시를 한번에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기합은 그 자체가 곧 목적이었다. 군대 용어로 ‘사회물을 뺀다’는 그 절차가 끝난 뒤, 우리들은 여기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내 의지나 합리적인 주장 같은 것을 절대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그때그때 재빨리 복종하는 것만이 허용된 곳이었다. 그와 같은 존재론적 통찰을 모든 훈련병에게 주입하는 데 고작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군대는 자신들의 목적을 매우 짧은 시간에 지극히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목적이란 신입 훈련병들을 명령 하나 못 알아듣는 바보멍청이로 취급하며 통나무처럼 굴려댐으로써 그들이 입대 전에 각자 가지고 있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그 어떤 명령에도 고분고분 복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낮은 자존감의 기능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지면 좋은 점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안다. 자존감이 높으면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스트레스에 더 오래 버틸 수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능이 덜 저하된다. 자존감은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삶,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심리적 기반이다. 자존감이 높으면서도 불행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행복하면서 자존감 낮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존감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이며, 부족하면 그저 문제가 생긴다고만 오해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자존감이 낮으면 우울해진다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애초에 높은 자존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것이 저하되는 경험을 할 때 우울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시작한 사람들은 일종의 만성 자존감 결핍 상태에 적응한다. 그들은 우울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쉽게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대 또한 낮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이 세상에 아무리 많더라도, 처음부터 거기에 욕심을 내지 않으면 실망할 이유도 없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쁜 일이 벌어져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며(가치 없는 나에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니까), 되려 어쩌다 찾아오는 작은 행운에 기뻐할 수 있다. 특히 군대에서는 이런 낮은 자존감이 적응에 도움이 된다. 군대에서는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나쁜 일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매일 벌어지는 나쁜 일에 그때마다 반응하다 보면 군대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지어 탈영하기에 십상이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주인공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점심에 나온 멀건 죽에 평소보다 조금 큰 감자가 들어있으면 뿌듯해하듯, 병사들도 낮은 자존감을 받아들여 나쁜 일에 익숙해져야 군대 생활을 버텨낼 수 있다.
자존감이 낮으면 불행하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오히려 기대치가 낮은 만큼 작은 일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낮은 자존감의 대가
하지만 낮은 자존감이 주는 이점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저하되고 상황의 힘에 쉽게 굴복하게 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보다 주변에서 그걸 요구하는지 아닌지에 먼저 반응한다. 청소년 범죄의 특징 중 하나가 단독범행보다는 집단범행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면담해보면 그들 중 스스로 원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옆 친구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서, 친구들이 실망하거나 나를 무시할까 봐 서로서로 한 걸음씩 나서다 보니 어느 순간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게 된다. 같은 이유로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짓밟아서 유지되는 조직치고 똑똑한 조직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처음에는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멍청한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지고 만다.
무엇보다 낮은 자존감에 적응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자신이 멍청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자기보다 더 훌륭한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자기들만 멍청해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낮은 자존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존재하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이 떠받드는 권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기와 같이 비천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더 짓눌려야 만족한다. 그 병든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오만하고, 건방지고,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이라고 비난한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분노와 증오를 쏟아붓는다. 그들이 자기들처럼 한심한 존재가 될 때까지.
자존감은 논쟁이나 교육을 통해서 향상되지 않는다. 자존감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존중뿐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회복을 위해서 최소한 그 문제가 지속되어온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낮은 자존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남들을 비하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려면 어쩌면 남은 평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조금은 높은 자존감을 정상으로 여길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비난을 멈추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다. 근데 참, 우리가 언제 존중을 배우긴 했던가?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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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똑똑해지기 위해서 자존감을 지켜야
낮은 자존감에 관하여
장근영
2017-12-05
자존감
훈련소의 기억
군 훈련소에서 입소식을 마치고 가족과 헤어진 이후에, 모든 훈련병은 체육관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때부터 끝없는 윽박질과 기합이 시작된다. 물론 어리바리한 신입들이 조교의 명령을 재빨리 알아듣지 못하고 굼뜨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직전까지 ‘정상적인’ 사회에서 보통의 사회인 혹은 학생으로 생활하던 그들이 군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명령과 지시를 한번에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기합은 그 자체가 곧 목적이었다. 군대 용어로 ‘사회물을 뺀다’는 그 절차가 끝난 뒤, 우리들은 여기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내 의지나 합리적인 주장 같은 것을 절대로 내세울 수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그때그때 재빨리 복종하는 것만이 허용된 곳이었다. 그와 같은 존재론적 통찰을 모든 훈련병에게 주입하는 데 고작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군대는 자신들의 목적을 매우 짧은 시간에 지극히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목적이란 신입 훈련병들을 명령 하나 못 알아듣는 바보멍청이로 취급하며 통나무처럼 굴려댐으로써 그들이 입대 전에 각자 가지고 있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그 어떤 명령에도 고분고분 복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낮은 자존감의 기능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지면 좋은 점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안다. 자존감이 높으면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스트레스에 더 오래 버틸 수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능이 덜 저하된다. 자존감은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삶,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심리적 기반이다. 자존감이 높으면서도 불행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행복하면서 자존감 낮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존감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이며, 부족하면 그저 문제가 생긴다고만 오해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자존감이 낮으면 우울해진다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애초에 높은 자존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그것이 저하되는 경험을 할 때 우울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시작한 사람들은 일종의 만성 자존감 결핍 상태에 적응한다. 그들은 우울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쉽게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대 또한 낮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이 세상에 아무리 많더라도, 처음부터 거기에 욕심을 내지 않으면 실망할 이유도 없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쁜 일이 벌어져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며(가치 없는 나에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니까), 되려 어쩌다 찾아오는 작은 행운에 기뻐할 수 있다. 특히 군대에서는 이런 낮은 자존감이 적응에 도움이 된다. 군대에서는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나쁜 일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매일 벌어지는 나쁜 일에 그때마다 반응하다 보면 군대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심지어 탈영하기에 십상이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주인공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점심에 나온 멀건 죽에 평소보다 조금 큰 감자가 들어있으면 뿌듯해하듯, 병사들도 낮은 자존감을 받아들여 나쁜 일에 익숙해져야 군대 생활을 버텨낼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의 대가
하지만 낮은 자존감이 주는 이점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저하되고 상황의 힘에 쉽게 굴복하게 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보다 주변에서 그걸 요구하는지 아닌지에 먼저 반응한다. 청소년 범죄의 특징 중 하나가 단독범행보다는 집단범행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면담해보면 그들 중 스스로 원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옆 친구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서, 친구들이 실망하거나 나를 무시할까 봐 서로서로 한 걸음씩 나서다 보니 어느 순간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게 된다. 같은 이유로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짓밟아서 유지되는 조직치고 똑똑한 조직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처음에는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멍청한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지고 만다.
무엇보다 낮은 자존감에 적응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자신이 멍청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자기보다 더 훌륭한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자기들만 멍청해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낮은 자존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존재하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이 떠받드는 권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기와 같이 비천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더 짓눌려야 만족한다. 그 병든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오만하고, 건방지고,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이라고 비난한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분노와 증오를 쏟아붓는다. 그들이 자기들처럼 한심한 존재가 될 때까지.
자존감은 논쟁이나 교육을 통해서 향상되지 않는다. 자존감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존중뿐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회복을 위해서 최소한 그 문제가 지속되어온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낮은 자존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남들을 비하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려면 어쩌면 남은 평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조금은 높은 자존감을 정상으로 여길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비난을 멈추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다. 근데 참, 우리가 언제 존중을 배우긴 했던가?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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