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내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깡그리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 상태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어떤 질병보다도 알츠하이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병이 점점 ‘나다움’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나’를 도저히 ‘나’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의 첫 번째 역할, 그것은 정체성의 창조와 보존이다. 줄리언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언어학 교수의 이야기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세계적인 언어학자 앨리스는 일과 사랑의 성공을 모두 거머쥔 행운아였다. 삼남매의 완벽한 어머니, 50대의 나이에도 연인처럼 사랑을 주고받는 남편, 연구업적뿐 아니라 동료나 선후배들의 평가에서도 최고인 남부러울 것 없는 그녀였지만 어느 날 알츠하이머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그녀의 뛰어난 기억력과 지능이 오히려 치매를 발견하는 데 방해물이 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은 충격적이다. 중요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을 때마다 여러 가지 연상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원하는 것을 끝내 찾아내온 덕분에 앨리스는 ‘내가 알츠하이머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및 스틸컷
기억은 과거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어제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어제 그 사람과 약속을 했었지’ ‘오늘은 어제보다 기분이 좋구나’ ‘10년 전의 나에 비하면 그래도 요즘의 나는 많이 나아졌구나’라는 생각을 통해 기억과 현재를 이어붙여 ‘나’라는 존재의 연속성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를 때,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 때, 주민등록번호나 생일을 기억해낼 때마다 자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기억의 미로들을 뒤지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나다운 것들의 목록’을 헤아린다. 어떤 기억은 너무 아름다워서 죽을 때까지 그 기억에 관계된 사물조차 버리지 못할 것 같지만, 어떤 기억은 너무 참혹해서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삭제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사랑했지만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남긴 연인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이 기억삭제 전문회사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과연 그 아픈 기억, 쓰라린 기억을 모두 지운다면, 그것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을 지움으로써 나다움도 함께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기억은 감정과 연관되어 있어 기억을 건드리면 우리의 감정도 함께 움직인다. 때로는 감정이 기억을, 또 때로는 기억이 감정을 지배하기도 한다. 여기에 욕망이 끼어든다. 욕망은 기억을 강화하거나, 망각하거나, 좀 더 좋은 방향 또는 나쁜 방향으로 윤색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기억, 감정, 욕망의 삼각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내 삶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좋은 기억조차 나쁘게 해석하게 된다. 그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 어차피 내게 남은 것은 실망스러운 오늘뿐인데.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망쳐버리게 된다. 그런데 삶에 대한 자존감이 높을 때는 나쁜 기억조차 좋은 감정으로 해석하게 된다. ‘지금 나는 충분히 잘 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때는 힘들고 아팠던 기억조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역설적인 밑거름처럼 느껴진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부정적인 기억조차 ‘슬프지만 아름다운 무엇’으로 바꾸어 해석해내려는 욕망이 강해지면서 기억의 내용물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예술을 창조적으로 만들다
기억의 두 번째 역할은 삶을 복잡하고 미묘하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기억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이라 우리의 의식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리 잊으려 해도 기어코 기억이 습격해오기도 한다. ‘이 사람 이름은 꼭 기억해야 하는데’라고 의식이 명령을 내려도, 며칠 뒤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이 기억만은 좀 희미해졌으면’ 해도, 무의식은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뜻밖의 순간에 불화살처럼 쏘아 올려 의식의 평온을 방해한다. 기억은 의식과 무의식의 쌍방향 소통의 결과다.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무의식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삭제하며 정리한다. 최면을 통해 무의식에 깊숙이 잠자고 있는 기억을 되살리는 실험이 계속되는 이유도 무의식이 기억의 저장과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기억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풍요롭게 재생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떻게 무의식의 협력을 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매일 밤 꾸는 꿈을 일어나자마자 기록하는 것도 좋고, 명상이나 요가를 통해 기억을 차분히 관조하고 반추해보는 작업 또한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는 명상이 실제로 대뇌피질을 두껍게 만들어 전반적인 두뇌활동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마음 챙김 명상은 무의식과 의식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며, 의식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무의식의 멘토링’을 통해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한 가지 연구과제에 몇 년째 매달리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중요한 영감을 받아 위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학자도 많고, 아무리 집중해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던 화가나 작가, 음악가들이 꿈속에서 어떤 중요한 계기를 발견하여 창작의 열정에 불이 붙는 경우도 많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명령하는 의식의 통제가 없어지기에 무의식이 더욱 풍요롭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은 인간의 열망
기억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지속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잊힐 권리’를 선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죽고 나서 어떤 기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갈 것인가’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이든 완벽한 기억의 저장고를 가질 수는 없다. 누구나 부끄러운 기억, 숨기고 싶은 기억,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신문에 자신의 부고가 멋지게 나오기를 바라는 80대 노인 해리엇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리엇(셜리 맥클레인)은 ‘그동안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신문의 부고에서만은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부고 전문 기자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미리 부고를 써줄 것을 의뢰한다.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의 부고를 써야 하는 이 황당무계한 제안 앞에서 앤은 난처한 입장이 된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해리엇이 알고 보니 최고의 사업가이자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개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에 호기심이 생긴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스틸컷
앤은 좋은 부고의 요건이 네 가지라고 말한다. 고인은 가족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 고인은 동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고인은 우연한 기회에 타인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 고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와일드카드가 있다는 것. 즉 '아무 카드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카드' '동시에 여러모로 쓰이는 카드'를 뜻하는 와일드카드처럼, 고인의 삶에도 그 사람의 최고의 모습을 언제든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해리엇에게는 이 네 가지가 모두 없어 보였다. 딸과는 10년 넘게 만나지 못하고 있고, 동료들은 해리엇을 미워하며, 좋은 영향을 끼친 타인도 없고, 와일드카드는 더더욱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앤과 해리엇은 기발한 묘안을 짜낸다. 지금까지 좋은 삶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좋은 삶을 살아 ‘아름다운 부고’의 주인공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에서 해리엇은 멋진 인디 라디오 프로그램의 디제이도 맡게 되고, 처음 만나는 어린 소녀의 멘토도 되어주며, 가족과도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80이 넘은 나이에 그녀는 왜 그토록 부고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바로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기억,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바뀌는 것,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그리하여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어 ‘나’라는 존재를 비로소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이다.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드는 것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내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깡그리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 상태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정여울
2017-10-31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드는 것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주는 정체성의 목록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내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이 깡그리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 상태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어떤 질병보다도 알츠하이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병이 점점 ‘나다움’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나’를 도저히 ‘나’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의 첫 번째 역할, 그것은 정체성의 창조와 보존이다. 줄리언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언어학 교수의 이야기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세계적인 언어학자 앨리스는 일과 사랑의 성공을 모두 거머쥔 행운아였다. 삼남매의 완벽한 어머니, 50대의 나이에도 연인처럼 사랑을 주고받는 남편, 연구업적뿐 아니라 동료나 선후배들의 평가에서도 최고인 남부러울 것 없는 그녀였지만 어느 날 알츠하이머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그녀의 뛰어난 기억력과 지능이 오히려 치매를 발견하는 데 방해물이 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은 충격적이다. 중요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을 때마다 여러 가지 연상 능력과 방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원하는 것을 끝내 찾아내온 덕분에 앨리스는 ‘내가 알츠하이머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및 스틸컷
기억은 과거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어제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어제 그 사람과 약속을 했었지’ ‘오늘은 어제보다 기분이 좋구나’ ‘10년 전의 나에 비하면 그래도 요즘의 나는 많이 나아졌구나’라는 생각을 통해 기억과 현재를 이어붙여 ‘나’라는 존재의 연속성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를 때,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 때, 주민등록번호나 생일을 기억해낼 때마다 자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기억의 미로들을 뒤지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나다운 것들의 목록’을 헤아린다. 어떤 기억은 너무 아름다워서 죽을 때까지 그 기억에 관계된 사물조차 버리지 못할 것 같지만, 어떤 기억은 너무 참혹해서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삭제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사랑했지만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남긴 연인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이 기억삭제 전문회사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과연 그 아픈 기억, 쓰라린 기억을 모두 지운다면, 그것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을 지움으로써 나다움도 함께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기억은 감정과 연관되어 있어 기억을 건드리면 우리의 감정도 함께 움직인다. 때로는 감정이 기억을, 또 때로는 기억이 감정을 지배하기도 한다. 여기에 욕망이 끼어든다. 욕망은 기억을 강화하거나, 망각하거나, 좀 더 좋은 방향 또는 나쁜 방향으로 윤색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기억, 감정, 욕망의 삼각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내 삶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질 때는 좋은 기억조차 나쁘게 해석하게 된다. 그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 어차피 내게 남은 것은 실망스러운 오늘뿐인데.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망쳐버리게 된다. 그런데 삶에 대한 자존감이 높을 때는 나쁜 기억조차 좋은 감정으로 해석하게 된다. ‘지금 나는 충분히 잘 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때는 힘들고 아팠던 기억조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역설적인 밑거름처럼 느껴진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부정적인 기억조차 ‘슬프지만 아름다운 무엇’으로 바꾸어 해석해내려는 욕망이 강해지면서 기억의 내용물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예술을 창조적으로 만들다
기억의 두 번째 역할은 삶을 복잡하고 미묘하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기억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이라 우리의 의식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리 잊으려 해도 기어코 기억이 습격해오기도 한다. ‘이 사람 이름은 꼭 기억해야 하는데’라고 의식이 명령을 내려도, 며칠 뒤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이 기억만은 좀 희미해졌으면’ 해도, 무의식은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뜻밖의 순간에 불화살처럼 쏘아 올려 의식의 평온을 방해한다. 기억은 의식과 무의식의 쌍방향 소통의 결과다.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무의식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삭제하며 정리한다. 최면을 통해 무의식에 깊숙이 잠자고 있는 기억을 되살리는 실험이 계속되는 이유도 무의식이 기억의 저장과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기억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풍요롭게 재생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떻게 무의식의 협력을 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매일 밤 꾸는 꿈을 일어나자마자 기록하는 것도 좋고, 명상이나 요가를 통해 기억을 차분히 관조하고 반추해보는 작업 또한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는 명상이 실제로 대뇌피질을 두껍게 만들어 전반적인 두뇌활동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마음 챙김 명상은 무의식과 의식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며, 의식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무의식의 멘토링’을 통해 창조적으로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한 가지 연구과제에 몇 년째 매달리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중요한 영감을 받아 위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학자도 많고, 아무리 집중해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던 화가나 작가, 음악가들이 꿈속에서 어떤 중요한 계기를 발견하여 창작의 열정에 불이 붙는 경우도 많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명령하는 의식의 통제가 없어지기에 무의식이 더욱 풍요롭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은 인간의 열망
기억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지속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잊힐 권리’를 선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죽고 나서 어떤 기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갈 것인가’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이든 완벽한 기억의 저장고를 가질 수는 없다. 누구나 부끄러운 기억, 숨기고 싶은 기억,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신문에 자신의 부고가 멋지게 나오기를 바라는 80대 노인 해리엇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리엇(셜리 맥클레인)은 ‘그동안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신문의 부고에서만은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부고 전문 기자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미리 부고를 써줄 것을 의뢰한다.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의 부고를 써야 하는 이 황당무계한 제안 앞에서 앤은 난처한 입장이 된다. 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해리엇이 알고 보니 최고의 사업가이자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개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에 호기심이 생긴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스틸컷
앤은 좋은 부고의 요건이 네 가지라고 말한다. 고인은 가족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 고인은 동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고인은 우연한 기회에 타인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 고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와일드카드가 있다는 것. 즉 '아무 카드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카드' '동시에 여러모로 쓰이는 카드'를 뜻하는 와일드카드처럼, 고인의 삶에도 그 사람의 최고의 모습을 언제든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해리엇에게는 이 네 가지가 모두 없어 보였다. 딸과는 10년 넘게 만나지 못하고 있고, 동료들은 해리엇을 미워하며, 좋은 영향을 끼친 타인도 없고, 와일드카드는 더더욱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앤과 해리엇은 기발한 묘안을 짜낸다. 지금까지 좋은 삶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좋은 삶을 살아 ‘아름다운 부고’의 주인공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에서 해리엇은 멋진 인디 라디오 프로그램의 디제이도 맡게 되고, 처음 만나는 어린 소녀의 멘토도 되어주며, 가족과도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80이 넘은 나이에 그녀는 왜 그토록 부고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바로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기억,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바뀌는 것,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그리하여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어 ‘나’라는 존재를 비로소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이다.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드는 것'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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