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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文紋 : 공동체 절반에 대한, 전부를 위한 이야기 -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서효인

2017-06-23

공동체 절반에 대한, 전부를 위한 이야기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이나 행동 등을 함께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문학적 의미에서 공동체는 유기체적 조직 안에 같이 머물며, 단순한 결속이 아닌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갈등을 조정하며 유지되는 집단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공동체란 좁게는 가족이나 회사 동료에서부터 같은 도시의 시민이나 같은 국적의 사람, 더 나아가 인류 전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 삶은 타인과의 관계망 속에 존재하며 이 복잡한 관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 인류가 알고 보면 하나의 공동체라니, 이 얼마나 코스모폴리스탄적 낭만성인가? 그러나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거대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대한 위해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존재해왔다. 세계는커녕 나의 애인과도 미끄러운 갈등의 연속면에 서 있기 일쑤다.


 

손 잡고 있는 사람모습 일러스트

 

 

공동체란 좁게는 가족이나 회사 동료에서부터 더 나아가 인류 전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공동체에 가장 위협적인 갈등은 무엇일까?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그 종류와 유형은 다양하지만, 남녀 갈등이 그중 하나라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남녀 갈등이라니, 사실 이런 용어는 성립할 수 없다. 대대로 남자와 여자의 갈등은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그 안에서 여성이 희생당하는 형식으로 발현되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은 더욱 그렇다. 근래에 들불처럼 회자되고 있는 여러 페미니즘 도서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전에는 습관처럼 지나갔을 여성혐오 언사를 지적하고 불쾌감을 표하는 것도, 유리 천장의 존재와 깨는 것이 꼭 여성의 노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여성으로 느껴야 하는 불안과 억압이 개인적인 예민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다. 차라리 공동체의 발전에 따른 기꺼운 필연에 가깝다.

 

책표지 : 82년생 김지영

 

이곳의 82년생 여성들은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았고, 형식적으로 양성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자랐다. 남성보다 성적이 좋고, 능력도 뛰어나며 성실한 여성 또한 많았음은 물론이다. 그러한 여성들이 체감하는 성별에 의한 좌절과 차별은 이전 세대보다 조금 더 첨예할 것이다. 소설 속 82년생 김지영은 중산층 가정(소설에서는 김지영의 가정은 여성인 ‘어머니’에 의해 해당 계층으로의 편입이 가능해진다)에서 태어나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와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 선량한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같은 인물인 김지영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에 대해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변호를 들어야 하고, 같은 학원을 다니는 모르는 남학생에게 ‘흘리고 다닌’다는 이유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다. 대학에 와서는 같은 과 선배에게 ‘먹다 버린 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취업에 성공해서는 남자 동기들에 비해 중요한 자리를 맡지 못하게 된다.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압박이 시달리며, 출산 후에는 경력이 단절된 채, 공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맘충’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는 여성의 문제이자 공동체의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공동체 절반에 대한 이야기이자 전부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지영은 어쩌면 매우 평범한, 되레 이상적일지도 모를 환경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통은 매우 사실적이다. 이는 여성의 고통이 무척 만연해 있으며, 오래되었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허구처럼 보이는 상황들에 대해 붙여진 각주들(각종 통계, 언론 기사, 학술 논문 등)이 고통의 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동체의 절반이 고통받고 있는 사회가 나머지 절반에게 좋은 사회일리 없다. 여성의 상처가 남성의 행복일 수 없고, 여성에 대한 혐오가 곧 남성의 지리멸렬임 또한 당연하다. 우리 공동체는 『82년생 김지영』을 자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읽고 토론함으로써 우리는 혐오와 지리멸렬을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남자가 읽기를 권한다. 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그 공동체의 일원을 나 자신을 위하여.


lite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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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체
  • 82년김지영
  • 양성평등
  • 남녀갈등
필자 서효인
서효인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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