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는 공동체 구성의 기본 요건이다. 그리고 공동체는 나약한 인간이 소위 만물의 영장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므로 공유는 인간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지구상의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도 더 많은 것을 더 넓은 범위로, 그것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인간은 단순히 음식이나 옷, 거주지, 물리적인 도구를 공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이나 지식, 감정도 공유한다. 그리고 그 공유의 범위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다. 문자기록이 시간의 제약을 넘어선 지식 공유의 시작이었다면, 시장(Market)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공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공유의 범위와 깊이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공유의 범위가 커질수록 인간이라는 존재의 크기와 무게도 커진다.
이렇듯 중요한 공유이지만, 심리학자로서 나는 여기서 감정의 공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타인과의 감정적 공유, 즉 ‘공감(Empathy)’ 말이다. 공감능력이란 간단히 말해 남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보통 '감정이입'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인간의 공감능력은 몇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나간다. 갓난아기들은 존재 자체가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옆의 아기가 불안해하면 덩달아 불안해하고, 즐거워하면 영문도 모르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울면 따라서 운다. 이 시기의 아기들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환경도 구별하지 못한다. 아기들의 세계에서는 내가 감각하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감각할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던 아이들이 3살쯤 되면 비로소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거울에 비춰진 자기 모습이 자신을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는 시점이고, 내가 아는 것을 타인은 모를 수 있다는 사실(그리고 마찬가지로 타인이 아는 걸 나는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 결과, 남의 감정과 내 감정을 뚜렷하게 구별하기 시작한다. 남이 운다고 무조건 같이 울지는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자아(Ego)가 형성되는 기초이다. 자아는 양면적이다. 자아 개념이 생긴 아이들은 자기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기적이고 반항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던 아이가 “싫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한다. 게다가 내가 아는 걸 남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의 깨달음은 거짓말하는 능력을 열어준다. 그러다 보면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억지로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고, 그 친구가 울어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기심 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놀고 싶은 욕구는 강렬한데, 남과 같이 놀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남과 나를 구별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와 다른 존재임을 알면서도 그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공감능력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사회생활은 결국 공감과 이해의 반복적인 숙달훈련이다.
그 결과 어른이 된 우리들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공감능력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된다. 너무나 숙달된 공감능력 덕분에 우리는 상대방이 웃거나 울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를 명확히 이해한다. 심지어 백지에 쓰인 글자로 묘사된 사람이나 텅 빈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능력은 충분히 발휘된다. 공감능력이 없었다면 소설이나 드라마는 모두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감정의 공유는 다른 공유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확장이기도 하다. 공감은 우리 대 그들(Us vs Them)의 구분선이다. 인간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우리’라는 범주에 끼워 넣는다. 반면에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공감할 수 없는 상대방은 ‘그들’이 된다. 인간의 숭고하고 따스한 모습은 모두 그 ‘우리’들을 향해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인간은 자기가 공감하는 ‘우리들’에겐 협력도 하고 신뢰도 쌓고 사랑도 느낀다. 하지만 ‘그들’에겐 한없이 냉혹하고 잔인해진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인류 잔혹사는 바로 공감의 대상인 우리가 아닌, 공감의 영역 밖에 있는 그들에게 저질러진 행동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도 유태인을 우리가 아닌 그들로 보았기에 아무런 가책 없이 가스실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성의 진보는 공감의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고, 우리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누구와 공감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공감의 영역이 정의롭고 넓을수록, 우리는 더 거대하고 풍성한 존재가 된다. 타인과의 공감이 없다면 우리의 감정은 그저 공허한 신경계의 전기적 발작에 불과할 것이다. 성숙한 공감은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시절은 3살 이전에 끝났다. 진정한 공감은 오히려 상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되 여전히 유대를 이어갈 수 있는 성인들만의 능력이다.
결론은 이렇다. 진정으로 성숙된 공감능력, 인간성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공감능력은 자아의 발현 이후에나 가능하다. 자아는 내가 남과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요컨대 공유는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분 없는 상태를 ‘미분화 상태’라고 부른다. 이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혼돈과 미발달의 상태를 말한다. 내 것과 남의 것을 명확히 구분한 뒤에 자아의 의지로 남과 나눌 것을 선택하는 것이 공유다. 공유는 성숙한 자아를 가진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말하는 공유는 사기나 갈취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 용어에 불과하다.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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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감정의 공유는 인간성의 확장
장근영
2017-06-19
감정의 공유는 인간성의 확장
‘공유’는 공동체 구성의 기본 요건이다. 그리고 공동체는 나약한 인간이 소위 만물의 영장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므로 공유는 인간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지구상의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도 더 많은 것을 더 넓은 범위로, 그것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인간은 단순히 음식이나 옷, 거주지, 물리적인 도구를 공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이나 지식, 감정도 공유한다. 그리고 그 공유의 범위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다. 문자기록이 시간의 제약을 넘어선 지식 공유의 시작이었다면, 시장(Market)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공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공유의 범위와 깊이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공유의 범위가 커질수록 인간이라는 존재의 크기와 무게도 커진다.
이렇듯 중요한 공유이지만, 심리학자로서 나는 여기서 감정의 공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타인과의 감정적 공유, 즉 ‘공감(Empathy)’ 말이다. 공감능력이란 간단히 말해 남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보통 '감정이입'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인간의 공감능력은 몇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나간다. 갓난아기들은 존재 자체가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옆의 아기가 불안해하면 덩달아 불안해하고, 즐거워하면 영문도 모르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울면 따라서 운다. 이 시기의 아기들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환경도 구별하지 못한다. 아기들의 세계에서는 내가 감각하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감각할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던 아이들이 3살쯤 되면 비로소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거울에 비춰진 자기 모습이 자신을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는 시점이고, 내가 아는 것을 타인은 모를 수 있다는 사실(그리고 마찬가지로 타인이 아는 걸 나는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 결과, 남의 감정과 내 감정을 뚜렷하게 구별하기 시작한다. 남이 운다고 무조건 같이 울지는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자아(Ego)가 형성되는 기초이다. 자아는 양면적이다. 자아 개념이 생긴 아이들은 자기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기적이고 반항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던 아이가 “싫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한다. 게다가 내가 아는 걸 남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의 깨달음은 거짓말하는 능력을 열어준다. 그러다 보면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억지로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고, 그 친구가 울어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기심 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놀고 싶은 욕구는 강렬한데, 남과 같이 놀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남과 나를 구별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와 다른 존재임을 알면서도 그 상대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공감능력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사회생활은 결국 공감과 이해의 반복적인 숙달훈련이다.
그 결과 어른이 된 우리들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공감능력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된다. 너무나 숙달된 공감능력 덕분에 우리는 상대방이 웃거나 울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를 명확히 이해한다. 심지어 백지에 쓰인 글자로 묘사된 사람이나 텅 빈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능력은 충분히 발휘된다. 공감능력이 없었다면 소설이나 드라마는 모두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감정의 공유는 다른 공유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확장이기도 하다. 공감은 우리 대 그들(Us vs Them)의 구분선이다. 인간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우리’라는 범주에 끼워 넣는다. 반면에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공감할 수 없는 상대방은 ‘그들’이 된다. 인간의 숭고하고 따스한 모습은 모두 그 ‘우리’들을 향해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인간은 자기가 공감하는 ‘우리들’에겐 협력도 하고 신뢰도 쌓고 사랑도 느낀다. 하지만 ‘그들’에겐 한없이 냉혹하고 잔인해진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인류 잔혹사는 바로 공감의 대상인 우리가 아닌, 공감의 영역 밖에 있는 그들에게 저질러진 행동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도 유태인을 우리가 아닌 그들로 보았기에 아무런 가책 없이 가스실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성의 진보는 공감의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고, 우리의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누구와 공감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공감의 영역이 정의롭고 넓을수록, 우리는 더 거대하고 풍성한 존재가 된다. 타인과의 공감이 없다면 우리의 감정은 그저 공허한 신경계의 전기적 발작에 불과할 것이다. 성숙한 공감은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시절은 3살 이전에 끝났다. 진정한 공감은 오히려 상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되 여전히 유대를 이어갈 수 있는 성인들만의 능력이다.
결론은 이렇다. 진정으로 성숙된 공감능력, 인간성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공감능력은 자아의 발현 이후에나 가능하다. 자아는 내가 남과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요컨대 공유는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분 없는 상태를 ‘미분화 상태’라고 부른다. 이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혼돈과 미발달의 상태를 말한다. 내 것과 남의 것을 명확히 구분한 뒤에 자아의 의지로 남과 나눌 것을 선택하는 것이 공유다. 공유는 성숙한 자아를 가진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말하는 공유는 사기나 갈취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 용어에 불과하다.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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