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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o :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 노라 애프론의 <줄리&줄리아>

이화정

2017-04-13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노라 애프론의 <줄리&줄리아>

 

내가 본 가장 뜬금없는 여가활동을 꼽으라면, 두고두고 <어쌔신 탱고> 속 은퇴를 앞둔 킬러 존(로버트 듀발)의 탱고 교습이 떠오른다. 뒤늦게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살인청부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한 어느 날. 퇴역장군을 살해하는 마지막 임무를 위해 찾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던 그는, 장군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몇 주간 입원하면서 살해 계획을 수정한다. 킬러 본연의 임무가 없어진 한가한 그때, 그는 우연히 숙소 건너 편 탱고 학원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탱고를 배우게 된다.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가 탱고를 배우게 된 연유는 그랬다. 결국 탱고를 추고 즐길 줄 아는 감성을 가졌지만, 그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자비 없이 사람을 살해하는 냉혹한 킬러라는 것이 어쩌면 이 이야기의 비극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었을 거다. 노년에 다다른 존. 그가 원했던 건 어떤 삶이었을까. 그리하여 이 영화는 아마 킬러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 중, 내게 가장 기이하면서도 애틋한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 <어쌔신 탱고> 포스터

▲ 영화 <어쌔신 탱고>

 

<러브 매니지먼트>에 등장하는 베트남 전쟁 퇴역군인은 아내를 따라 모텔 운영에 헌신하지만,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 아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는 평생 운동을 꿈꾼 사람이다. 가장으로써 생활을 유지하는 일이 급선무라 접었던 운동. 그는 나이 들어 운동교실을 찾게 된다. 그렇게 원했던 일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의 고민. 모두들 한 번쯤 이 고민에 짧게든 길게든 봉착해보았을 것이다. 다행히 답안을 빨리 찾은 사람은 행복한 축에 속한다면, 그렇지 못한 채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수익을 얻거나, 건사해야 할 가정을 위해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생활의 무게를 내려놓은 노년에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는 이들. 늦었지만 그들의 취미활동은 그 어떤 일보다 절실해 보이고 열정적으로 비춰진다.

 

남들이 그저 소일거리라 치부하기 쉬운 일에 꾸준히 매진해, 그걸 업으로 삼은 아주 사랑스런 두 여인의 이야기가 아마 이번 주제에는 가장 잘 맞는 영화일 것이다. <줄리 & 줄리아>는 원하는 것을 알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두 셰프의 이야기다. 먼저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 그저 뉴욕에서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줄리는 자기보다 잘 나가는 친구들과 맨날 잔소리만 하는 엄마 사이에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911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해주는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그녀는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취미 삼아 요리 블로그를 시작하는데, 이게 그녀도 몰랐던 그녀의 열정 프로젝트였다.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총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장을 낸 그녀가 롤모델로 삼은 건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이다. 줄리의 워너비가 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 그녀 역시 전설의 프렌치 셰프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는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온 전업주부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외교관인 남편의 지위로 늘 남들이 해주는 요리를 먹는 게 더 익숙했던 그녀였고, 아마 그렇게 평생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당시 요리를 하는 데 관심이 없던 미국인들과 달리 스스로 “옷 쇼핑보다 요리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프랑스 요리를 먹던 중 요리하고 음식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늦깎이 나이에 요리학교의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르꼬르동 블루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운다. 요리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사랑을 줄줄이 표현했던 그녀의 레시피 북은 곧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이른다. 요리책 발간, TV 프로그램 진행 등 요리를 주제로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한껏 펼치게 된다. 1960년대 당시 미국 주부들 사이에서 그녀의 명성은 상당했으며, 프렌치 요리가 뉴욕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영화 <줄리 & 줄리아> 한장면 01

 

영화 <줄리 & 줄리아> 한장면 02

▲ 영화 <줄리 & 줄리아>

 

그녀들이 절실했던 만큼 줄리와 줄리아의 남편 모두 그녀들의 ‘취미활동’에 비난의 시선을 두지 않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가끔 가정 내 남녀의 성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신의 욕망을 펼치지 못하는 여성들의 사연을 접하노라면, 이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 싶다. 하지만 영화의 ‘러브 라인’은 재미있게도 남편이 아닌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줄리와 줄리아 사이에서 더 큰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유브 갓 메일>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남녀의 ‘밀당’을 정교하게 보여주었던 노라 애프런 감독은 파리와 뉴욕, 50년의 시공간을 사이에 둔 두 여성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교감하는 과정을 교차편집을 통해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마치 그녀 둘이 동시대에 살고 있고, 줄리가 줄리아라는 셰프 선배에게 의지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 같은 모습이랄까. 1960년대 유행했던 줄리아의 프렌치 레시피는, 그녀의 레시피를 따라 2002년부터 줄리가 365일 동안 직접 요리하는 과정을 올리면서 다시 한번 뜨거운 열풍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내용은 2005년 책 <줄리 앤 줄리아: 365일, 524개 레시피, 하나의 조그만 아파트 부엌(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으로, 또 이렇게 전 세계의 관객이 즐겨 본 영화 <줄리 앤 줄리아>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여기에 ‘내가 잘 하는 일’에 대한 고민까지 끼어든다면 문제는 사뭇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해야 내 삶이 더 풍족해 질까. 철저하게 그것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전해 보자. 평생직업을 업으로 삼았던 과거와 달리, 이젠 언제든지 새로운 타이틀로 인생을 꾸릴 수 있다. 미래는 ‘남은 인생’이 아니라, 여전히 흥미롭게 채워나갈 수 있는 ‘깨끗한 여백’이다. 더 강조하지만, 도화지는 단 한 장뿐이다.

 

필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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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화정
이화정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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