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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그러니까, Play it again

조선영

2017-04-06

그러니까, Play it again

 

자기소개서에 “취미는 영화감상입니다”와 같이 적던 때가 있었다. 취미는 사전적으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을 의미한다. 진노 유키의 『취미의 탄생』에 따르면 일본 메이지 시대 ‘취미’라는 말이 처음 유행했을 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여 이 중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였으나, 오늘에 이르러선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한 일을 일컫는 것으로 바뀐 것. 무난한 취미 하나는 있어야 교양인처럼 보이던 때를 지나, 지금은 단순히 여가 시간에 무언가를 즐겨하는 것을 넘어 이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여럿 출현하는 때다. 어른들의 놀이인 동시에 자아실현의 장이 되기도 하는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본다.

 

책표지 :『남자의 취미 & 여자의 취미』 남우선 지음 | 페퍼민트 

▲ 『남자의 취미 & 여자의 취미』 남우선 지음 | 페퍼민트

 

‘단 하나의 남자/여자 생태 보고서’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는 이 두 권의 책은 취미에 미쳐 지내다 결국 인생까지 바뀌어버린 아홉 남자와 아홉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모양새를 지녔으나 『남자의 취미』는 2013년에 출간되었고, 『여자의 취미』는 2년 후인 2015년에 출간되었다. 즉, 취미를 가진 남자 아홉을 먼저 만나 책을 만든 이후 여자들의 취미도 취재해 후속편을 쓴 셈이다. 이 책에 실린 이들의 취미는 보편적으로 많이들 떠올리는 오디오 감상이나 스쿠버다이빙, 캠핑부터 구두 수집과 손질, 수염 기르기와 손질, 서핑과 살사 댄스, 향수 수집 등 다양하고도 경이롭다.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배우 최민수부터, 수염 동호회를 운영하는 사람, 모든 스포츠의 끝이라는 요트를 타는 남자 이야기 등 확실히 보통은 아닌 듯한 아홉 남자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이들의 ‘취미’는 취미를 넘어선, 새로운 존재 확인의 방식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자의 취미라고 하여 남자의 그것보다 러블리하고 판타스틱할 거라 생각하면 그건 착각. 찢어진 상처 부위를 순간접착제로 붙여가며 파도에 몸을 맡겼던 서퍼부터, 아들 등록금으로 19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떠난 평범한(?) 엄마까지 사회적 구조와 시간의 장애 속에서도 취미를 위해 올인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웃음이 나면서도 절절하다. 자신 역시 방송 PD 생활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열정적으로 다양한 취미에 임했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누구나가 하기 쉬운 도락이나 취미는 말하자면 케이블 텔레비전의 드라마 시청만큼의 무게밖에나가지 않는다. 취미는 좁고 편협할수록 좋다. 그것 때문에 애태우고, 방황하고 가슴 졸이며 사랑해야 한다. 좋은 취미를 건사하고 누리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폼나게 산다는 것은 그러므로 일생을 바칠 편협한 취미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어떤 마약보다도 중독적이지만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고, 매일 그것에 빠져 편식을 일삼더라도 몸에 해롭지 않다. 좋은 취미란 실로 영혼의 구세주요, 구원으로 가는 계단이다. —『여자의 취미』 머리말 중에서

 

책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취미에 미치긴 어려울지 몰라도, 그들이 외치는 바는 우리의 마음 어딘가를 두드리는 데가 있다. 책에 등장한 열 여덟 명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지금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해주겠는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한단 말인가?”

 

책표지 :『마니아씨, 즐겁습니까?』김대영•김민식•김혁•김형언•손원경•황재호 지음 | 바이북스

▲ 『마니아씨, 즐겁습니까?』김대영•김민식•김혁•김형언•손원경•황재호 지음 | 바이북스

 

먼저 소개한 책의 취미들이 조금 고상한 축에 속했다면, 이 책에 소개된 취미들은 조금 더 은밀(?)하다. 소위 사람들에게 ‘아이들이나 갖고 노는 것’으로 취급되는 액션 피겨와 장난감 수집, 애니메이션 시청과 만화책 탐독, 건담 프라모델 수집과 제작까지 세상은 이러한 취미를 갖고 있는 여섯 남자들을 오타쿠, 덕후, 키덜트 등 다양하게 부른다. 이런 어른들의 은밀한 취미는 꽤 보편화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까진 이 책에 실린 인물들처럼 취미로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다양한 분야에 빠져들며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을 외치는 김민석 PD의 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법하다.

 

인생, 슬쩍 발만 담그고 살지 마세요. 그냥 푹 빠져보세요. 그래야 남습니다. 미친 듯 놀아본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남는 법입니다. 그게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죠. 둘 중 하나만 남아도 수지맞는 장사 아닌가요. 돈이나 성공은 그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죠. 안 와도 그만이라고 마음먹고 그냥 현재를 즐기며 사세요. 인생 살면서, 즐겼으면 됐지, 더 바라면 과욕 아닌가요.” —138쪽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저 ‘아이어른’으로 치부했던 이들이 왜 이와 같은 취미에 올인하게 되었는지 진솔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어 취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강점을 갖고 있는 책이다.

 

책표지 : 『무취미의 권유』 무라카미 류 지음 | 부키

▲ 『무취미의 권유』 무라카미 류 지음 | 부키

 

일본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무라카미 류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비즈니스맨을 위한 일본의 월간지 『괴테』에 연재했던 글을 엮었다. 회사를 다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들의 본질에 대해 짧고도 강렬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표제작인 ‘무취미의 권유’는 언뜻 읽기엔 취미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취미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취미란 기본적으로 노인의 것이다.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7쪽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감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 것 모두 경험할 수 있다. —8~9쪽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취미는 결국 앞에서 소개한 책들에서 나왔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왕 무언가를 즐기기로 했다면 살짝 한 발만 걸치지 말고 그 안에서 희열과 성취, 좌절과 절망을 느낄 만큼 열심히 ‘일’이 될 만큼 빠져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가장 마지막 꼭지 ‘분재를 시작할 때’에서 무라카미 류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실 나도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중략)…정원을 바라보면서 화분에 화초를 키우는 분재랄 지, 텃밭을 가꾸거나 난을 친다든가 해서 뭔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식물을 접한다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175쪽

 

그러나 결국 아직 저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큼 몰두할 만한 일을 찾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아마 책읽기와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날 분재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만약 취미를 가지려 한다면, 내가 정말 몰두할 수 있고 가슴 뛰는 그 무언가를 찾아보라는 역설이 아닐까? 책에 실린 38꼭지의 이야기들은 접대, 메모, 독서, 스케줄 관리, 협상, 인맥, 동기부여, 부하 직원 관리, 전직, 어학, 기획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지만 위 결론의 다양한 변주로 읽힌다.

 

책표지 : 『다시, 피아노』앨런 러스브리저 지음 | 포노 PHONO

▲ 『다시, 피아노』앨런 러스브리저 지음 | 포노 PHONO

 

이 책은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이었던 저자가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피아노 레퍼토리 중 가장 난곡으로 꼽힌다는 쇼팽의 걸작 <발라드 1번 G단조>를 완주해내는 1년 간의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낸 것이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으나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음악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던 그는 ‘인생의 오후’로 일컬어지는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선생을 구해 레슨을 받고, 쉰 살이 되던 해부터 5년 간 매년 7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이 모이는 음악캠프에 참가하며 취미 생활을 즐기던, 그는 자신과 실력이 엇비슷했던 중년의 남자가 난곡으로 꼽히는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를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자신도 같은 곡을 1년 간 배워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주할 것을 결심한다. 그게 바로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앞으로 한 해 동안 직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이렇게 쉽게 덤비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신문 시장의 환경에서도 업무와 조금도 상관없는 피아노 연습을 위해 하루 20분이라는 시간을 짜낼 수 있었는지 자신을 시험했던 앨런. 그의 여정은 여름휴가를 떠났던 8월부터 시작되어 당초 예상을 살짝 넘는 16개월 동안 계속된다. 그는 피아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곳이 내전 중인 트리폴리의 황량한 호텔 레스토랑일지라도— 연습을 이어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마추어·전문 연주자를 가리지 않고 피아노를 치는 이들을 만나 조언을 구한다. 결국 12월의 어느 날 런던의 작은 클럽에서 그간의 성과를 사람들에게 선보이며 16개월의 여정을 마친 후 그는 이렇게 소회한다.

 

그리고 16개월간의 여정이 끝난 지금, 두 가지 물음(‘시간은 충분한가?’와 ‘너무 늦은 건 아닐까?’)에 대한 답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먼저 첫 번째 질문. 그렇다, 시간은 있다. 아무리 정신없이 바쁜 삶이라 할지라도 시간은 있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시간이야 여기서 10분, 저기서 10분, 하는 식으로 야금야금 모으면 그만이다. (중략) …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엇인가에 100퍼센트 전념함으로써 삶이 균형을 되찾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 역시 마찬가지다. (중략)…따라서 중년에 접어든 지도 한참인 두뇌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신경 회로를 전면 가동해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일 유연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기분이 무척 삼삼했다. 그러니까, 아니, 너무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572~573쪽

 

일상이 버겁다고만 느껴질 때, 잠깐이라도 숨 돌릴 여유를 만들어 무엇인가를 꾸준히 즐긴다면 당신은 어느덧 작은 성취를 이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살아있다는 기분으로 충만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생각만으로 끝내지 말고 지금 미루지 말고, 다시 해보길(Play it again).

 

선반위의 책들 시계 일러스트

  • 엠디의서가
  • 조선영
  • 여가
  • 무라카미류
  • 괴테
필자 조선영
조선영

예스24 도서팀장.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2년 가량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책에 파묻혀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고 싶어 2001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초 바람과는 달리 책에 깔려 지낸다고 하소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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