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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큐레이터다. ‘국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미술관에서 일하는 계약직 공무원 큐레이터다. 게다가 그냥 큐레이터가 아닌 ‘건축’ 큐레이터다. 사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회자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큐레이터의 사건 이후 한국에서 큐레이터는 그 전문성보다 스캔들로 입에 오르내렸다. 한편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는 홍보와 브랜딩 전략으로 ‘큐레이션’ 혹은 ‘00 큐레이터’라는 말을 자주, 쉽게 내걸고 있다. 심지어 마트 광고에서도 말이다. 큐레이션 혹은 큐레이터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입장이나 사람만을 지칭한다면 그 일의 가치를 굉장히 축소시키는 것이다. 특히나 독특한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기 위해, 즉 다름과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큐레이션은 남용된다. TV나 영화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우아한 오너(Owner) 큐레이터들도 이 직업에 대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큐레이터가 하는 ‘실제 일’과는 다른 왜곡된 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큐레이터라는 이름에 붙은 역사적 유래라든지, 직업 윤리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는 이 지면에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금 용기를 내어 개인적인 삶에 대해 목소리를 내보고자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이 일을 함께 하고 있거나 함께 할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은 소망에서 이 글을 쓴다. 개인의 서사들이 쌓일수록 ‘각자가 하는 일’에 대해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고 최선과 차선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작년 11월에 발간된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영향이 크다. 이 책은 세대, 결혼 및 출산 여부 등을 고르게 안배하여 호출된 11명의 여성 디자이너들과, 그들이 지목한 또 다른 11명이 짝을 이뤄 진행한 대담을 수록한 것이다. 특히나 내게 인상 깊었던 지점은 결국 여성이 어떤 일을 말할 때 수면 위에 공적으로 올리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삶의 여러 면면들이었다. 아무리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더구나 여성으로서 일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13년차, 출산한지 5년차에 접어드는 나로서는 매일 일이라는 것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 시점에서 그것은 ‘초조함’ 자체라고 답할 것이다.
▲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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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과 출신에 공대를 졸업했지만 잡지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나마 건축이라는, 예술과 공학의 경계에 놓인 학문을 공부하고 이를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 경력의 절반은 에디터였고 올해부터 큐레이터로서의 경력이 앞선다. 처음 내가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 저널에서는 ‘국내 건축 큐레이터 1호’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 역시도 그 수식어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건축과 큐레이터는 병렬로 놓이기 어려운 단어였다. 미술관이 건축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미술 제도에서 가장 공고하면서도 핵심 기관인 국립미술관에서 미술사가 아닌 건축을 전공한 사람을 큐레이터로 뽑는다는 건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의도치 않게 그러한 직업적 부담을 안고 미술관에서 지금까지 6년을 일했다. 미술관 입사의 계기는 작고한 건축가 故 정기용의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일에 건축 전공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3년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라는 전시를 올리고 나서, 나는 비로소 건축 큐레이터 1호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일기>전을 한창 준비할 때 나는 만삭이었고 전시에 매진하느라 출산 후의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냥 전시장 문을 제대로 열 수 있을까라는 고민뿐이었다. 정기용 건축가의 명성이 워낙 커서 건축계 인사들의 관심도 높은 데다 유가족의 기대를 저 버릴 수 없어 입봉을 앞둔 나는 매일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 전시도 내가 기획한 여러 전시 중 하나였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선례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을 빌려, 나는 그 시간을 철저하게 통과하면서 한순간 큐레이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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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라는 전시를 올리고 나서,
나는 비로소 건축 큐레이터 1호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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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전시를 개막하고 나서 외부에서 숱한 질문을 받았다. 왜 미술관에서 미술이 아닌 건축을 아카이빙해야 하는가(미술을 아카이빙하기에도 인력과 예산이 모자란다는 의미였다), 미술관에 전시된 숱한 드로잉들이 정말로 ‘건축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건축가의 작품이란 바로 현장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등등. 과거에는 건축전에서 건축가가 전시를 직접 기획한 적이 많았기에 직능의 전문성도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전시 내용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전시를 구성하는 형식에 대해서도 질문과 우려는 많았다. 특히 미술관 내부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전시 연출을 구현하기 위해 실험되어야 하는 것들을 설득하는 일이 컸다. 건축 전시는 내용과 형식 두 가지 측면 모두 미술관 안에서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청동에 새로운 분관(서울관)을 개관하고 미술관이 장르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표방하면서 상황은 나아졌다. 최근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등 건축 전시 전반이 이룬 성취도 한몫할 것이다. 건축은 여전히 미술관 혹은 미술제도의 마이너 장르이지만, 건축을 전공한 동료 큐레이터가 생겼고, 건축 전문 아키비스트도 있다. 무엇보다 건축 전시를 통해 촉발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내용과 형식들이 미술관의 기존 관행을 흔들면서 건강한 긴장을 만들어간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내 일은 한편으로 문제를 야기하지만 그 문제 제기가 좁게는 건축계, 넓게는 시각예술 전반을 포함한 예술계 내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건축 큐레이터로서 내가 갖고 있는 소명의식이다. 하지만 직업적 소명의식과는 별개로, 나는 돌봄노동을 외부로부터 빌려와 겨우 일을 하고 있는 ‘버티는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반문하고, 분노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조정기에 접어들었다.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 두 개의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공적이고 사적인 기준으로 그 일의 가치를 나누기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한없이 사적으로 여기는 일들이 언제쯤 제도라는 공적인 장치를 통해 개선될 수 있을까? 이러한 나의 불안정한 상태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주문처럼 아래의 글귀를 되새김한다. 순전히 내가 원하는 일을 스스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희망을 향한 실천의 과제는 각각의 장소들이 남겨 놓은 희미한 의미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의 흐름을 일깨우고 다른 장소들과 서로 연결해나가는 데에 있다. 건축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누가 또는 누구와? 그리고 어떻게?” 나는 건축가 故 이종호의 이 문장들이야말로 건축 큐레이터의 일을 제대로 설명하는 명문이라 생각한다. 의미를 발굴하고 연대하여 실행에 옮기는 일. 이종호의 말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은 건축 기획이라는 건축계에 도래한 새로운 학문, 직능이다. 나는 오늘도 아직 온전한 답이 불가능한 이 질문을 붙들고, 정답은 아니지만 차선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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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건축 큐레이터의 어떤 일
정다영
2017-03-16
건축 큐레이터의 어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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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큐레이터다. ‘국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미술관에서 일하는 계약직 공무원 큐레이터다. 게다가 그냥 큐레이터가 아닌 ‘건축’ 큐레이터다. 사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회자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큐레이터의 사건 이후 한국에서 큐레이터는 그 전문성보다 스캔들로 입에 오르내렸다. 한편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는 홍보와 브랜딩 전략으로 ‘큐레이션’ 혹은 ‘00 큐레이터’라는 말을 자주, 쉽게 내걸고 있다. 심지어 마트 광고에서도 말이다. 큐레이션 혹은 큐레이터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입장이나 사람만을 지칭한다면 그 일의 가치를 굉장히 축소시키는 것이다. 특히나 독특한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기 위해, 즉 다름과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큐레이션은 남용된다. TV나 영화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우아한 오너(Owner) 큐레이터들도 이 직업에 대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큐레이터가 하는 ‘실제 일’과는 다른 왜곡된 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큐레이터라는 이름에 붙은 역사적 유래라든지, 직업 윤리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는 이 지면에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금 용기를 내어 개인적인 삶에 대해 목소리를 내보고자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이 일을 함께 하고 있거나 함께 할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은 소망에서 이 글을 쓴다. 개인의 서사들이 쌓일수록 ‘각자가 하는 일’에 대해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고 최선과 차선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작년 11월에 발간된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영향이 크다. 이 책은 세대, 결혼 및 출산 여부 등을 고르게 안배하여 호출된 11명의 여성 디자이너들과, 그들이 지목한 또 다른 11명이 짝을 이뤄 진행한 대담을 수록한 것이다. 특히나 내게 인상 깊었던 지점은 결국 여성이 어떤 일을 말할 때 수면 위에 공적으로 올리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삶의 여러 면면들이었다. 아무리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더구나 여성으로서 일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13년차, 출산한지 5년차에 접어드는 나로서는 매일 일이라는 것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 시점에서 그것은 ‘초조함’ 자체라고 답할 것이다.
▲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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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과 출신에 공대를 졸업했지만 잡지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나마 건축이라는, 예술과 공학의 경계에 놓인 학문을 공부하고 이를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 경력의 절반은 에디터였고 올해부터 큐레이터로서의 경력이 앞선다. 처음 내가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 저널에서는 ‘국내 건축 큐레이터 1호’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 역시도 그 수식어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건축과 큐레이터는 병렬로 놓이기 어려운 단어였다. 미술관이 건축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미술 제도에서 가장 공고하면서도 핵심 기관인 국립미술관에서 미술사가 아닌 건축을 전공한 사람을 큐레이터로 뽑는다는 건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의도치 않게 그러한 직업적 부담을 안고 미술관에서 지금까지 6년을 일했다. 미술관 입사의 계기는 작고한 건축가 故 정기용의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일에 건축 전공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3년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라는 전시를 올리고 나서, 나는 비로소 건축 큐레이터 1호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일기>전을 한창 준비할 때 나는 만삭이었고 전시에 매진하느라 출산 후의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냥 전시장 문을 제대로 열 수 있을까라는 고민뿐이었다. 정기용 건축가의 명성이 워낙 커서 건축계 인사들의 관심도 높은 데다 유가족의 기대를 저 버릴 수 없어 입봉을 앞둔 나는 매일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 전시도 내가 기획한 여러 전시 중 하나였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선례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을 빌려, 나는 그 시간을 철저하게 통과하면서 한순간 큐레이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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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라는 전시를 올리고 나서,
나는 비로소 건축 큐레이터 1호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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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전시를 개막하고 나서 외부에서 숱한 질문을 받았다. 왜 미술관에서 미술이 아닌 건축을 아카이빙해야 하는가(미술을 아카이빙하기에도 인력과 예산이 모자란다는 의미였다), 미술관에 전시된 숱한 드로잉들이 정말로 ‘건축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건축가의 작품이란 바로 현장에 세워진 건물이 아닌가 등등. 과거에는 건축전에서 건축가가 전시를 직접 기획한 적이 많았기에 직능의 전문성도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전시 내용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전시를 구성하는 형식에 대해서도 질문과 우려는 많았다. 특히 미술관 내부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전시 연출을 구현하기 위해 실험되어야 하는 것들을 설득하는 일이 컸다. 건축 전시는 내용과 형식 두 가지 측면 모두 미술관 안에서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청동에 새로운 분관(서울관)을 개관하고 미술관이 장르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표방하면서 상황은 나아졌다. 최근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등 건축 전시 전반이 이룬 성취도 한몫할 것이다. 건축은 여전히 미술관 혹은 미술제도의 마이너 장르이지만, 건축을 전공한 동료 큐레이터가 생겼고, 건축 전문 아키비스트도 있다. 무엇보다 건축 전시를 통해 촉발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내용과 형식들이 미술관의 기존 관행을 흔들면서 건강한 긴장을 만들어간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내 일은 한편으로 문제를 야기하지만 그 문제 제기가 좁게는 건축계, 넓게는 시각예술 전반을 포함한 예술계 내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건축 큐레이터로서 내가 갖고 있는 소명의식이다. 하지만 직업적 소명의식과는 별개로, 나는 돌봄노동을 외부로부터 빌려와 겨우 일을 하고 있는 ‘버티는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노동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반문하고, 분노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조정기에 접어들었다.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 두 개의 장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공적이고 사적인 기준으로 그 일의 가치를 나누기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한없이 사적으로 여기는 일들이 언제쯤 제도라는 공적인 장치를 통해 개선될 수 있을까? 이러한 나의 불안정한 상태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주문처럼 아래의 글귀를 되새김한다. 순전히 내가 원하는 일을 스스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희망을 향한 실천의 과제는 각각의 장소들이 남겨 놓은 희미한 의미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의 흐름을 일깨우고 다른 장소들과 서로 연결해나가는 데에 있다. 건축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누가 또는 누구와? 그리고 어떻게?” 나는 건축가 故 이종호의 이 문장들이야말로 건축 큐레이터의 일을 제대로 설명하는 명문이라 생각한다. 의미를 발굴하고 연대하여 실행에 옮기는 일. 이종호의 말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은 건축 기획이라는 건축계에 도래한 새로운 학문, 직능이다. 나는 오늘도 아직 온전한 답이 불가능한 이 질문을 붙들고, 정답은 아니지만 차선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디딤널 : 건축 큐레이터의 어떤 일'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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