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크기는 얼마일까? 사실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질문일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주를 어떻게 정의하든, 그 크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게다가 빅뱅이론에 따르면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그 크기를 측정하려는 건 별로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그래서 우주의 실제 크기를 논하기보다는 우리가 측정 가능한 범위의 우주를 다룬다. 천문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도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의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를 은유하는 단어로 사용되곤 한다. 어떤 경우에든 우주는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며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고 사소한지를 깨닫게 만들어준다. 무한한 우주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인식능력이다. 우리가 아는 만큼 우주의 크기는 커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우주는 어떨까? 심리학자로서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갓난아기 시절, 우리가 아는 우주는 나와 내 양육자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공간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울면 저 멀리 우주에서 양육자가 찾아와 나에게 젖을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를 품어 진정시켜줬다. 하지만 그가 늘 내 곁에 있지는 않았다. 이가 나고 젖을 떼면서 우리는 그 작은 우주에서 밀려난다. 우리에게 이 과정은 별로 달갑지는 않았던 듯하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Freud)는 이 '젖을 떼는 경험'이 구약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는 사건으로 묘사되었다고 봤다. 그들이 선악과를 깨물어먹은 탓에 신의 진노를 산 것처럼, 아기도 엄마의 젖꼭지를 갓 나온 이로 깨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젖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다. 그 경험은 성경에서 묘사한 것처럼 고통과 좌절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덕분에 우리의 우주는 좀 더 커진다.
이제 음식은 더 많은 곳에서 더 다양한 형태로 주어진다. 우리는 내가 세상을 알면 알수록 더 많은 먹을 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기저귀를 떼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우주는 비약적으로 확장된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뒤져볼 수 없었던 집안의 모든 곳들을 이제 자유로워진 두 발로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뿌듯한 성취와 처참한 비극을 넘나든다. 내 손으로 찾아낸 맛난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며 행복해할 때도 있고, 어머니가 아끼는 화장품을 전부 꺼내서 뒤섞다가 두들겨 맞거나, 해롭고 위험한 물건을 잘못 만져 큰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이 탐험을 통해 우리는 저 밖의 우주에는 내게 허용된 영역과, 들어가서는 안 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긴다.
좀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우주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다. 일단 내 우주는 집과 동네에서 학교라는 새로운 곳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양적으로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도 일어난다. 내 우주 속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우주의 중심은 나였다. 부모는 나를 키워주기 위해 존재했고, 내 장난감들은 모두 내 것(혹은 우리 형제 것)이었으며, 음식들은 모두 내가 발견해서 먹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수준이 비슷한, 각자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또래들을 만나면서 내 우주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이제 내 우주가 얼마나 확장되느냐는 남들의 우주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이 시기에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경험은 이후에 만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우주와 얼마나 교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져스(Carl Rogers)는 이 세상에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우주가 존재한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경험과 100%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도 그 세상의 의미와 해석은 모두가 다르다. 이를 로져스는 ‘현상학적 장’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들의 우주는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공유하는 최소한의 접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들과의 접점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많으면 내 자아가 없는 상태가 되고, 이 비율이 너무 적으면 소위 말하는 4차원에서 사는 사람, 혹은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사람이 된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함께 사는 건 두 우주의 결합이다. 그 결합이 어떤 경우에는 재난에 가까운 충돌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져스(Carl Rogers)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저 멀리 은하계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아직도 인간의 뇌를 미지의 우주라고 말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역시 미지의 세계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타인들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뿐 아니라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미지의 우주이긴 마찬가지다. 당신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중에 어떤 영역은 당신으로서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서로 대화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고 신뢰하고 협력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기적같이 만들어져 확장되고 있는 또 다른 은하계일지 모른다. 빅뱅 이후 빛과 함께 확장되는 저 밖의 우주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은하계도 끊임없이 새로운 별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확장되는 중이다. 우리는 그 속에 서 있다.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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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끊임없이 확장되고 사라지는 우리들의 은하계
장근영
2017-02-14
끊임없이 확장되고 사라지는 우리들의 은하계
우주의 크기는 얼마일까? 사실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질문일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주를 어떻게 정의하든, 그 크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게다가 빅뱅이론에 따르면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그 크기를 측정하려는 건 별로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그래서 우주의 실제 크기를 논하기보다는 우리가 측정 가능한 범위의 우주를 다룬다. 천문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도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의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를 은유하는 단어로 사용되곤 한다. 어떤 경우에든 우주는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며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고 사소한지를 깨닫게 만들어준다. 무한한 우주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인식능력이다. 우리가 아는 만큼 우주의 크기는 커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우주는 어떨까? 심리학자로서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갓난아기 시절, 우리가 아는 우주는 나와 내 양육자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공간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울면 저 멀리 우주에서 양육자가 찾아와 나에게 젖을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를 품어 진정시켜줬다. 하지만 그가 늘 내 곁에 있지는 않았다. 이가 나고 젖을 떼면서 우리는 그 작은 우주에서 밀려난다. 우리에게 이 과정은 별로 달갑지는 않았던 듯하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Freud)는 이 '젖을 떼는 경험'이 구약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는 사건으로 묘사되었다고 봤다. 그들이 선악과를 깨물어먹은 탓에 신의 진노를 산 것처럼, 아기도 엄마의 젖꼭지를 갓 나온 이로 깨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젖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다. 그 경험은 성경에서 묘사한 것처럼 고통과 좌절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덕분에 우리의 우주는 좀 더 커진다.
▲ ©h.koppdelaney
이제 음식은 더 많은 곳에서 더 다양한 형태로 주어진다. 우리는 내가 세상을 알면 알수록 더 많은 먹을 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기저귀를 떼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우주는 비약적으로 확장된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뒤져볼 수 없었던 집안의 모든 곳들을 이제 자유로워진 두 발로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뿌듯한 성취와 처참한 비극을 넘나든다. 내 손으로 찾아낸 맛난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며 행복해할 때도 있고, 어머니가 아끼는 화장품을 전부 꺼내서 뒤섞다가 두들겨 맞거나, 해롭고 위험한 물건을 잘못 만져 큰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이 탐험을 통해 우리는 저 밖의 우주에는 내게 허용된 영역과, 들어가서는 안 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긴다.
좀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우주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다. 일단 내 우주는 집과 동네에서 학교라는 새로운 곳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양적으로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도 일어난다. 내 우주 속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우주의 중심은 나였다. 부모는 나를 키워주기 위해 존재했고, 내 장난감들은 모두 내 것(혹은 우리 형제 것)이었으며, 음식들은 모두 내가 발견해서 먹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수준이 비슷한, 각자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또래들을 만나면서 내 우주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이제 내 우주가 얼마나 확장되느냐는 남들의 우주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이 시기에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경험은 이후에 만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우주와 얼마나 교류할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져스(Carl Rogers)는 이 세상에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우주가 존재한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경험과 100%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도 그 세상의 의미와 해석은 모두가 다르다. 이를 로져스는 ‘현상학적 장’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들의 우주는 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공유하는 최소한의 접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들과의 접점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많으면 내 자아가 없는 상태가 되고, 이 비율이 너무 적으면 소위 말하는 4차원에서 사는 사람, 혹은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사람이 된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함께 사는 건 두 우주의 결합이다. 그 결합이 어떤 경우에는 재난에 가까운 충돌로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져스(Carl Rogers)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저 멀리 은하계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아직도 인간의 뇌를 미지의 우주라고 말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역시 미지의 세계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타인들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뿐 아니라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미지의 우주이긴 마찬가지다. 당신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 중에 어떤 영역은 당신으로서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서로 대화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고 신뢰하고 협력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기적같이 만들어져 확장되고 있는 또 다른 은하계일지 모른다. 빅뱅 이후 빛과 함께 확장되는 저 밖의 우주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은하계도 끊임없이 새로운 별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확장되는 중이다. 우리는 그 속에 서 있다.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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