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을 예술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년의 삶이 주목받고 있는 시대다.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장수라는 단어에 기뻐하기보다는 기나긴 노년의 나날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과 대비책에 관해 이야기한다. 100세 시대지만 퇴직 나이는 60세, 즉 40년을 일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지급되는 연금을 100% 믿기에도 불안하다. 노년은 두 손 놓고 고민만 하거나 젊은 사장이 지휘하는 벤처 회사에서 다시 인턴이 되어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건강과 민첩성 그리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관한 감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반면 노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시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데이비드 호크니는 얼마 전 “그림은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왕성한 SNS 활동을 통해 그가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끝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가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이 노년에 즐길 수 있는 예술 혹은 나이든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말에는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My parents , 1977, Tate소장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소도시인 브래드퍼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다른 과목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을 그려왔다. 1961년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동료들과 함께 <젊은 동시대인들>이라는 전시를 개최하고, 1963년 최초의 개인전을 열게 되면서 그는 이미 스타작가로 등극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어떤 경향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다. 팝아트적이고 극사실주의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색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1964년 미국의 캘리포니아로 정착한 후 그는 10년간 캘리포니아가 가진 밝은 태양 빛과 집마다 볼 수 있는 수영장, 정갈하게 장식된 실내 공간을 그려왔다. 이후 그는 사진과의 싸움에 몰두하는데, 강력한 도구인 사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만 회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가 측정하는 기하학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의 몸이 아닌 얼굴과 표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새로운 실험을 이어 나갔다. 연극무대와 폴라로이드 이미지의 모자이크, 서양화의 일점소설 원근법 대신 동양화의 끝없이 펼쳐지는 두루마리 그림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스타일의 영화들도 대거 찾아볼 수 있다. 수영장의 물보라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그의 그림은 최근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재현된다. 그는 여름마다 그의 집 야외 수영장을 새롭게 채색한다. 하늘색을 띠는 수영장의 바닥이 그의 그림 속에서 사용된 기하학적인 무늬로 채워진다.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ngers, 1971, Collection David Geffen
A bigger splash, 1967
올해로 78세를 맞이한 호크니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한 그림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림은 노인의 예술’이라고 규정짓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순간의 시각을 담아내는 사진과 달리 회화는 삶의 경험,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 쌓이는 것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풍부하게 세상을 본다는 것은 눈이 마음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원리죠. 나는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 원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경험만을 부르짖는 꽉 막힌 노인네는 아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활발한 그림의 실험을 펼치는 작가다. 그는 경험이 쌓이는 것만큼이나 새로움에 대한 열린 감각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Bigger Trees Near Warter, 2007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작품 50개의 캔버스를 이어 완성한 높이 4.5 m, 폭 12m의 대형 풍경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미술 역사상 가장 큰 풍경화다. 이 거대한 작품은 그림이 그림으로 머무는 것을 넘어 그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2008년 파리의 피악FIAC에서 처음 소개되었는데, 거장인 그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확신을 넘어 끝없이 도전하는 젊은 예술가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82 portraits, 2016
최근 호크니는 또 다른 매개체로 그림을 그린다. 바로 아이폰이다. 1980년대에 복사기와 팩스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듯 2010년 이후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다. 청력이 좋지 않은 그는 전화 통화 대신 문자를 주로 이용하는데, 매일 아침 친구들에게 싱싱한 꽃 그림을 그려 보낸다.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
그렇다고 그가 첨단의 매체만을 추구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영상매체는 새로운 매체이고 회화는 낡은 매체라는 생각이야말로 낡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매체와의 만남을 시도하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매체인 캔버스와 붓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런던에서 83점의 새로운 페인팅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풍경화가 아닌 초상화들이다.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서양화라기보다는 동양화에서 느껴지는 구도와 원근법에 더욱 가까우며 색채는 여전히 신선한 밝은 톤이다.
오래된 물건이 모두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의 흔적이 아름답게 쌓인 물건은 소중히 간직되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최첨단의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긴 시간의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장엄한 역사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경계라는 것을 최대한 타파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가 든 것은 나이가 든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을 예술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삶의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의 일반적인 고정관념이야말로 세대 간의 갈등과 노년의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호크니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예술이 뭐라고 : 그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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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그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
지은경
2016-11-24
예술은 경계라는 것을 최대한 타파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가 든 것은 나이가 든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을 예술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년의 삶이 주목받고 있는 시대다.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장수라는 단어에 기뻐하기보다는 기나긴 노년의 나날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과 대비책에 관해 이야기한다. 100세 시대지만 퇴직 나이는 60세, 즉 40년을 일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지급되는 연금을 100% 믿기에도 불안하다. 노년은 두 손 놓고 고민만 하거나 젊은 사장이 지휘하는 벤처 회사에서 다시 인턴이 되어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건강과 민첩성 그리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관한 감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반면 노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시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데이비드 호크니는 얼마 전 “그림은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왕성한 SNS 활동을 통해 그가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끝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가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이 노년에 즐길 수 있는 예술 혹은 나이든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말에는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My parents , 1977, Tate소장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소도시인 브래드퍼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다른 과목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을 그려왔다. 1961년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동료들과 함께 <젊은 동시대인들>이라는 전시를 개최하고, 1963년 최초의 개인전을 열게 되면서 그는 이미 스타작가로 등극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어떤 경향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다. 팝아트적이고 극사실주의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색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1964년 미국의 캘리포니아로 정착한 후 그는 10년간 캘리포니아가 가진 밝은 태양 빛과 집마다 볼 수 있는 수영장, 정갈하게 장식된 실내 공간을 그려왔다. 이후 그는 사진과의 싸움에 몰두하는데, 강력한 도구인 사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만 회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가 측정하는 기하학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의 몸이 아닌 얼굴과 표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새로운 실험을 이어 나갔다. 연극무대와 폴라로이드 이미지의 모자이크, 서양화의 일점소설 원근법 대신 동양화의 끝없이 펼쳐지는 두루마리 그림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스타일의 영화들도 대거 찾아볼 수 있다. 수영장의 물보라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그의 그림은 최근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재현된다. 그는 여름마다 그의 집 야외 수영장을 새롭게 채색한다. 하늘색을 띠는 수영장의 바닥이 그의 그림 속에서 사용된 기하학적인 무늬로 채워진다.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ngers, 1971, Collection David Geffen
A bigger splash, 1967
올해로 78세를 맞이한 호크니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한 그림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그림은 노인의 예술’이라고 규정짓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순간의 시각을 담아내는 사진과 달리 회화는 삶의 경험,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 쌓이는 것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풍부하게 세상을 본다는 것은 눈이 마음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원리죠. 나는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 원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경험만을 부르짖는 꽉 막힌 노인네는 아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활발한 그림의 실험을 펼치는 작가다. 그는 경험이 쌓이는 것만큼이나 새로움에 대한 열린 감각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Bigger Trees Near Warter, 2007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작품 50개의 캔버스를 이어 완성한 높이 4.5 m, 폭 12m의 대형 풍경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미술 역사상 가장 큰 풍경화다. 이 거대한 작품은 그림이 그림으로 머무는 것을 넘어 그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2008년 파리의 피악FIAC에서 처음 소개되었는데, 거장인 그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확신을 넘어 끝없이 도전하는 젊은 예술가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82 portraits, 2016
최근 호크니는 또 다른 매개체로 그림을 그린다. 바로 아이폰이다. 1980년대에 복사기와 팩스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듯 2010년 이후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다. 청력이 좋지 않은 그는 전화 통화 대신 문자를 주로 이용하는데, 매일 아침 친구들에게 싱싱한 꽃 그림을 그려 보낸다. “아이패드의 훌륭한 점은 스케치북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된 물감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지요.”
그렇다고 그가 첨단의 매체만을 추구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영상매체는 새로운 매체이고 회화는 낡은 매체라는 생각이야말로 낡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매체와의 만남을 시도하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매체인 캔버스와 붓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런던에서 83점의 새로운 페인팅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풍경화가 아닌 초상화들이다.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서양화라기보다는 동양화에서 느껴지는 구도와 원근법에 더욱 가까우며 색채는 여전히 신선한 밝은 톤이다.
오래된 물건이 모두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의 흔적이 아름답게 쌓인 물건은 소중히 간직되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최첨단의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긴 시간의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장엄한 역사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경계라는 것을 최대한 타파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가 든 것은 나이가 든 대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대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을 예술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삶의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의 일반적인 고정관념이야말로 세대 간의 갈등과 노년의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호크니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예술이 뭐라고 : 그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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