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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나이가 들어야 아는 맛

박찬일

2016-11-22

나이가 들어야 아는 맛


수능이 끝났다고 딸아이가 맥주 한잔하잔다. 흠, 벌써? 내가 더 떨렸다. 한 잔 따랐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시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나는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어른들의 ‘술이 달다’는 말을 믿었다. 소년 시절, 입에 넣은 막걸리는 쓰고 시고 누룩 특유의 향이 괴로웠다. 어른들은 거짓말쟁이! 아버지가 동태찌개를 한 술 뜨시더니 흡족하게 말씀하셨다. “어허, 시원하다!” 맵고 짜기만 한 동태찌개를 왜 좋아할까.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나이 들어야, 길이 들어야 아는 맛이 있다. 우리는 혀의 미뢰와 코의 후각으로 ‘맛’을 느낀다. 그중 코의 후각이 더 중요하다. 그 미각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달라진다. 기억하는지. 하루종일 아이스크림과 과자만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인체 감각 중에서 ‘포비아’가 가장 심한 것이 바로 미각이다. 홍어 맛을 알게 된 외국인이 있다면, 그는 정말 대단하다. 나는 이탈리아에 처음 갔던 삼십 대 초반, 치즈와 프로슈토(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만든 생 햄)를 먹고 토하는 줄 알았다. 이런 음식을 먹다니. 그들은 반대로 우리의 묵은지나 된장, 청국장을 보고 기겁을 한다. 맛은 포비아요, 시간이 지나야 이해하는 매우 까다로운 감각이다.

 

칼로 고기를 자르는 손

 

아버지를 따라 곰탕집에 갔었다. 벌써 40년이 다 된 얘기다. 을지로에 하동관이라는 집이었다(그 이름도 나중에 알았다). 그 역사가 80여년째다. 아버지는 이 집을 좋아하셨다. 나는 정말 하동관이 싫었다. 기름기 가득하고, 소 내장이 듬뿍 든 밍밍한 국물! 거기에 파를 넣고 먹는 음식을 소년이 좋아할 리 있겠는가. 소 내장과 고기를 삶는 냄새로 가득한 가게가 싫었고, 그 음식이 상에 올라오면 도대체 어른들은 왜 이런 음식을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물성 기름이 둥둥 뜬 그 국물을 뜨다가 아버지는 외쳤다. “깍국!” 하도 이상한 이름이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렇게 외치면 노란색 양은주전자를 든 ‘뽀이’(홀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을 칭하는 일제강점기부터의 용어)가 달려와 깍국을 뚝배기에 부어주었다. 뻘건 깍두기 국물이 바로 깍국이었다. 그걸 휘휘 저어 아버지는 더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가 그 국물을 내게 부어줄 것을 뽀이에게 청했고, 나는 얼떨결에 받았다. 안 그래도 이상한 국물이 더 이상해졌다. 왜 시큼하고 이상한 숙성 향이 나는 깍두기 국물을 부어 먹을까. 물론 나는 지금 하동관의 광팬이며 당연히 이렇게 외친다. “깍국 좀 주시오!”

아버지가 가는 술집에도 몇 번 갔다. 무엇보다 냄새가 너무 싫었다. 바닥에 떨어진 막걸리가 썩어가는 듯한 이상한 냄새. 왜 어른들은 이런 집을 좋아할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물론 술청에서 슬슬 피어나는 묵은 술 냄새, 마룻바닥에 흘린 맥주냄새가 배어든 오래된 생맥줏집을 좋아한다. 대학로에는 비어할레라는 오래된 생맥줏집이 있다. 이 집에 가면, 늘 쿰쿰한 맥주 발효향이 난다. 나무로 인테리어를 했기 때문에 맥주 냄새가 배어든 것이다. 거기에 가면 입맛이 돌고 술을 마실 준비가 되는 것이다. 코를 통해 내 몸에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봐, 이제 술이 들어올 거야.’ 나는 흥분하고, 나도 모르게 탄식을 뱉는다. ‘맥주여, 내 몸을 적셔다오.’

겨울은 김장철이다. 도시에 살았는데 어머니는 친척이 주변에 없으니 동네 친구들과 품앗이로 김장을 했다. 김장의 신호탄이 있었다. 마당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였다. 바로 멸치젓 달이는 향(?)이었다. 이거 상당히 괴롭다. 나는 김장 따위가 없는 세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뻘건 고춧가루향도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김장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면, 겉옷에 배어든 양념과 멸치젓갈 냄새 때문에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 게다가 생굴(콧물처럼 미끈거리는)에다가 김치를 싸서 먹지 않는가! 어른들은 참 이상해. 왜 저런 음식을 힘겹게 만들어 먹을까. 매일 빵만 먹어도 살 수 있을 텐데. 예상하시겠지만, 이제 김장철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하다. 멸치젓을 달여 쓰지 않는 게 불만이다. 생굴도 물론 엄청나게 좋아한다. 온갖 요리법이 있으나 아내나 어머니가 한 김장 속에 굴을 슬슬 비벼 먹는 것을 최고로 좋아한다. 최악에서 최고로! 맛은 역시 나이가 들어야, 학습이 되어야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대학 1학년 때 광주에 갔다. 선배 결혼식이 있었다. 무등산 기슭에는 결혼 피로연을 할 수 있는 닭 전문 식당이 많았다. 문제는 닭고기를 회로 내준다는 점이다. 닭발과 가슴살을 회로 치고, 참기름 소금을 뿌려낸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윽고 잔치의 하이라이트, 홍어가 나온다! 나는 그때 홍어를 처음 보았다. 경상도 출신의 부모를 두고 서울에서 자랐으니 알 리 없었다. 고통스러운 냄새와 혀를 찌르는 발효의 맛이 너무도 괴로웠다. 선배들이 이걸 먹어야 진짜 미식가가 된다고(지금도 그렇지만 미식가라는 말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해서 몇 점 먹었다. 어어? 먹을수록 거부감이 줄어들지 않는가.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니었으니 ‘포비아’가 금세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맛은 원형적인 포비아를 가지고 있으나 학습과 나이 먹어가는 여유가 그것을 완화시키는 한 사례일 것 같다.

이탈리아 음식에도 그런 게 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무난히 먹을 수 있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구더기가 발효시키는 치즈가 있고, 발고린내를 닮은 것도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참치알 절임도 있다. 이걸로 파스타를 만드는데, 한번은 시칠리아에서 구해와서 손님에게 낸 적이 있었다. 그 손님은 다시 우리 식당을 찾지 않았다. 미식가라고 했는데 말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도 알 수 없는 맛일 것 같다. 시칠리아에 한 번은 가봐야 알 수 있는 맛이려나.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 음식
  • 노년
  • 박찬일
  • 미각
  • 하동관
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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