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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진정 멋진 노년을 위해

장근영

2016-11-17

진정 멋진 노년을 위해


노년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 번째는 우울함이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외모도 시들어 자신을 매력적으로 봐주는 사람이 줄어들고, 사회적인 활동에서도 점차 밀려나니 어쩌면 당연한 변화다. 두 번째는 내향성이다. 노년에 들어서 지난 인생을 회고하는 것 자체가 경험과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내향성이다. 세 번째는 성 역할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남자의 역할이 주로 직업에 의존하기에 은퇴를 기점으로 약화되고 여자의 역할은 가정과 친구들 중심이기에 계속 강성해져 남자 노인들은 여성적이 되고, 여자 노인들은 남성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네 번째는 신체적·심리적인 경직성이다. 낯선 곳, 새로운 취미,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지 않으려 하고 사고력이나 판단력도 좀 더 보수적이 되어간다. 위험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옛것에 대한 애착이 커진다.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놓는데, 그것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조심성이 증가한다.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고, 게다가 실패했을 때의 타격도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대에 유산을 남기는 것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진다. 유산은 자식을 위해서 남기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기려는 욕구의 표현이다. 물론 자녀들은 재산을 더 환영하겠지만, 노년기의 우리가 진짜 남기려는 건 대개 정신이나 전통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내 존재를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쳤기를 바라는 심리다.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 뒷모습

 

이처럼 치러야 할 대가가 큼에도 불구하고 전통사회에서는 늙어간다는 것이 좋은 점도 많았다. 일단 험한 꼴 볼 때까지 오래 사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거니와, 한 해라도 오래 살았다는 것이 비교우위를 갖는 동네이니 사회적 지위의 박탈도 적었고, 변화가 없는 사회이니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 별 흠이 되지 않았고, 후손들이 대부분 고분고분 말을 들어줬으니 전통이라는 유산도 전수하고 삶의 의미도 찾기 쉬웠다.
노인의 경험은 수렵채집사회에서도, 농경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지식과 기술의 원천이었다. 수렵채집사회에서 노인은 사냥터에서의 온갖 위험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재난이나 질병, 기근을 버티고 살아남은 존재였다. 그 시대의 노인은 “일이 벌어졌을 때 이렇게 하면 살 수 있다”고 알려주는 표본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경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농경은 춘하추동에 맞춰 씨 뿌리고 김매고 추수하는 순환의 반복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년 조금씩의 변동이 있다. 어떤 해에는 비가 적고, 어떤 해에는 지나치게 비가 많고, 어떤 해에는 너무 덥거나 춥고, 어떤 해에는 뜻밖의 병충해가 닥친다.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혹은 최소한 어떻게 대처하면 망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노인들의 머릿속에 축적되어 있었다. 당연히 노인들의 조언을 듣는 것은 농경사회 전체의 생존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수백 년간 같은 형태로 지속되던 삶이 십 년 단위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산업구조도 바뀌고 없던 직업이 생겨나고, 제도나 법률도 과거와는 전혀 달라졌다. 노인의 경험이 가지는 효용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부터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어른이 모르는 새로운 지식을 배워서 어른들의 가르침에 저항하는 걸 불편해했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새 지식의 근원인 책을 위험한 매체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세상이 발전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로 발전 자체를 막으려 들었던 셈이다. 반면 어떤 노인들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유연하게 자기 자리를 찾고 역할을 다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

아마 그 차이는 자기 존중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 Rogers 는 우리 각자의 주관성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만큼의 진실이 존재한다고까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결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주어진 경험을 나만의 해석의 틀로 받아들인 결과 만들어진 현상학적 사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타인과 대화가 통하고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여 자기의 주관적 세계를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반면, 어떤 사람은 계속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산다. 그 차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내게 어떤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기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기 주관적 세계를 수정하고 보완하며 성장한다. 반면에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의 존재가치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세상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병든 존재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자기가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다고 인정하는 순간, 현명한 웃어른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아집과 독선으로 이끈다. 반면 자신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그럼에도 내가 살아온 삶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다면,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펼쳐진 책 위 안경

 

늙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모두 결국에는 늙어갈 것이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세상의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된 노인으로 늙어갈 것이냐, 아니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기 역할을 찾아내고 노년의 장점을 발휘하는 현명한 노인으로 늙어갈 것이냐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웃어른의 역할은 이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있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우고 겸손하게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진정 멋진 노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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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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