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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쓸쓸한 여행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이야기

지은경

2016-08-24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시의 삶에 지치거나 공허하고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을 둘러싼 색감과 빛은 언제나 따뜻하다.

방, 거리, 건물 벽돌의 색, 아늑한 실내의 풍경들은 당시 유행하던 건축 양식,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일, 패션 등으로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과거 뉴욕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드워드 호퍼가 1932년에 그린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은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음 직한 작품이다. 어두운 저녁의 뉴욕, 창 너머로 환하게 보이는 노란색 벽의 방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평범한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대화를 하거나 서로를 응시하고 있지 않다. 남자는 테이블 앞 안락한 1인용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으며, 여자는 그 옆 피아노 앞에 앉아 지루한 듯 건반을 눌러보고 있다.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벽에 걸린 그림들, 그리고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의상으로 짐작해보건대 이들은 제법 풍족한 삶을 누리는 계층에 속하는 것 같다.



Room in New York, 캔버스에 유채, 74 x 86cm, 1932

캔버스에 유채, 74 x 86cm, 1932



그림 속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부부,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이들의 현실은 그림처럼 온화하거나 평화롭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서로 할 이야기를 잃어 지루하기 짝이 없거나 혹은 너무도 안정된 삶에 권태기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름다운 다홍빛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신문만 쳐다보는 남편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끌기 위해 피아노 건반을 퉁퉁 튕기며 소음을 만들고 있는 듯 보인다.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여자, 퇴근 후 집에서 침묵을 지키며 저녁을 보내고 싶은 남자. 에드워드 호퍼는 조용하고도 정적인, 그리고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을 담은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마치 먼 이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듯 새삼스럽게 펼쳐준다. 그리고 우리를 평범함 속에서 여행하게 한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188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화가다. 그의 사실주의적 작품들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자 했던 미술학도였던 시기와 5년간의 유럽여행에서 보았던 이색적이고도 다양한 삶의 풍경, 그리고 직업 전선에서 펼친 광고미술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일상생활, 그것도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이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그가 그림을 그리던 미국의 1920년대와 1930년대는 1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지난 시대로, 그의 그림에는 격정적인 폭우 후 사람들 사이에 남은 공허함과 소외감, 상실감, 그리고 고독감의 공기가 나른하고 무거운 오후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의 작품은 추상미술에서 사실주의, 팝아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최근에는 그의 그림 속 배경과 의상,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 약간은 코믹하게 묘사한 텔레비전 광고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뒤 잇따른 광고 패러디들이 등장했다. 그의 20세기 초 중반의 작품들이 지금 시대에 다시 한 번 회자되는 까닭은 아마도 황망해가는 현대 도시의 모습과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의 대화가 대공황을 지난 과거 미국 사회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1938년 작인 <193호 차량의 C칸(Compartment C,Car 193)>의 안을 한번 들여다보자. 모자를 쓴 여성이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녀의 옆자리에는 그녀가 손에 든 책 외에도 여행을 위해 가져온 다른 책들이 놓여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기차의 창밖으로는 석양에 물든 숲과 다리가 지나가고 있다. 여자가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 아니면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여행은 쓸쓸한 마음이 짙게 물든 여정임이 확실하다.



Compartment C, Car 193, 캔버스에 유채, 51 x 46cm, 1938

캔버스에 유채, 51 x 46cm, 1938



여행을 떠날 때를 상상해보자. 보통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행의 시작은 밝은 빛이 감도는 낮,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여행지에서 있을 많은 모험과 앞으로 쌓여갈 추억들에 미리부터 가슴이 설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창밖은 무시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에 시선을 준다. 책이 매우 흥미진진해 보이지도 않는다. 여자는 가슴 아픈 이별을 고하고 기차에 올라탄 것일까, 아니면 삶이라는 여정의 무게에 지쳐 붉은 석양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외로움을 가리려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일까.

 

1929년 작품인 <촙수이(Chop Suey)>는 한 레스토랑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모자를 쓴 세련된 두 여인이 창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창밖에 보이는 빨간색 간판을 보니 아마도 이 레스토랑의 이름이 ‘촙수이’인 것 같다. 레스토랑 안은 환하고 따사로운 햇볕이 사선으로 내리고 있다. 창문 옆에 걸린 노란색 코트가 햇살을 받아 더욱 환하게 빛난다. 정면을 향한 여자의 얼굴에서 경직된 표정이 포착된다. 분명 이 두 여인은 그리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등을 지고 앉은 여자가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고, 맞은편 여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의 시선은 방향성을 잃었다.



Chop Suey, 캔버스에 유채, 81 x 96cm, 1929

캔버스에 유채, 81 x 96cm, 1929



어떤 기쁘지 않은 사연이 이들에게 찾아온 것일까. 두 여자의 뒤로 마주하고 앉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지만, 남자는 무언가를 감추는 듯 손에 든 담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아마도 남자는 여자에게 꺼내기 힘든 말을 시작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든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든가 등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다. 그렇지만 레스토랑 안은 가을 햇살의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스토랑의 이름이나 테이블 위에 놓인 찻주전자는 당시 아시아 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한 뉴욕의 이질적인 단상이다. 식당 안의 대리석 상판을 한 테이블이나 등나무 등받이의자, 창가에 놓은 작은 스탠드가 1930년대 뉴욕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호퍼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1942년 작 <밤도둑(Nighthawks)>을 살펴보자. 어두운 밤, 길에는 아무도 없다. 바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이 주변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커다란 유리 벽으로 된 바에는 4명의 사람이 있다. 바텐더같이 보이는 하얀 셔츠를 입은 금발머리 남자는 일을 하며 자신을 향해 앉은 두 남과 여, 특히 빨간 드레스를 입은 빨강머리의 여성을 훔쳐보는 듯하다. 여자 옆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신사가 있다. 이들은 무언가 무거운 이야기를 별 대수롭지 않게 나누고 있는 듯하다. 둘은 분명 사랑하는 사이다. 바에 올려진 남자와 여자의 손이 서로 맞닿아 있다. 여자는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며 무언가 불만을 품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정면을 응시한 남자의 자세는 어쩐지 확고해 보인다. 아마도 여자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는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일 게다.


 

Nighthawks, 캔버스에 유채, 84 x 152cm, 1942

캔버스에 유채, 84 x 152cm, 1942



맞은편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역시 자신만의 상념 속에 빠져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1940년대 뉴욕 남자들은 세련된 중절모와 모직 슈트, 그리고 넥타이를 착용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자극적인 외모와 의상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으로 전시체제에 돌입한 당시 미국의 불안한 사회의 분위기에서 여성들은 더욱 자극적이고 섹시한 외모로 남성들을 자극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시의 삶에 지치거나 공허하고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을 둘러싼 색감과 빛은 언제나 따뜻하다. 방, 거리, 건물 벽돌의 색, 아늑한 실내의 풍경들은 당시 유행하던 건축 양식,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일, 패션 등으로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과거 뉴욕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풍경들은 수많은 시도로 포착되는 걸작 사진들과는 달리 지난 시간의 일상을 거니는 소소한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여행 중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장면들에 불과하다. 여행은 우리에게 남들이 보지 못한 멋진 무언가를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국적인 나라라고 해도 그곳의 도시가 가진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은 언제나 지루하고 평범하다. 바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지치고 실망한 일상의 권태, 그러나 작가는 그 권태로운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사로운 일상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그 장소, 그 사람과 그 상황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삶이라는 여정 자체가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호퍼의 그림이 보여주듯 단조로운 풍경 하나에도 길게 풀어낼 만한 사연은 가득 스며 있다. 삶의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를 하여금 추측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고독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슬픔이나 근심을 마치 작가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위로하려는 듯 따뜻한 공기로 캔버스를 채웠다.

 

    춤추는 사람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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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지은경
지은경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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