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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원론 : 윤동주, 지금부터 시작이다: 윤동주 문화 콘텐츠에 관하여

김응교

2016-05-19

윤동주, 지금부터 시작이다 윤동주 문화 콘텐츠에 관하여

영화 『동주』와 윤동주


올해 들어 영화, 다큐 등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윤동주 열풍'이라 할 만하다. 요즘 소위 일고 있는 ‘윤동주 현상’에 대해 윤동주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까. 내년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에는 어떤 일이 필요할까.

 

영화 『동주』의 한 장면1

▲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주)루스이소니도스

 

먼저 영화 『동주』에 대해 쓰자면, 일단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았던 판결문에서 영화를 시작한 점, 윤동주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송몽규의 존재를 알린 점 등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흑백 영화로 찍었기에 과거를 회상하는 느낌과 함께, 카메라가 배우 얼굴을 흑백으로 찍어낸 강렬함은 큰 매혹이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어 아쉬웠다. 원본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들 때, 70% 정도의 실제 자체는 변화시키면 안 되고 30% 정도의 해석으로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큰 흐름에서 영화 『동주』에 동의할 수 있으나, 디테일에서 많은 것이 틀렸다. 영화 앞부분에 연이어 등장하는 백석 시집 『사슴』의 출간 시기와 『정지용 시집』의 등장은 실제 출판 시기와 다르다. 하지만 12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삶을 담기 위해, 러닝 타임 안에서 의도적으로 편집한 허구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러닝 타임(running time, 上映時間)이란, 영화의 상영 길이를 말하며 상영관 용 영화의 상영 시간은 대개 90분에서 120분 정도이다.

 

둘째, 중요한 시들이 많이 빠져 아쉽다는 이들이 있다. 신연식 감독은 “원래 『동주』 앞부분에 「십자가」를 넣었는데, 영화의 흐름과 맞지 않아 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화에 시가 등장하려면 무엇보다도 영화의 흐름을 위해 도움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 때, 시가 아무리 좋아도 스토리 진행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 과감히 뺐을 것이다. 또 영화에 삽입되어야 할 시가 시대와 맞아야 하고, 윤동주의 시들 중 잘 알려진 대표작이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들이 제외되었을 것이다.

 

이밖에 배우들이 함경도 사투리를 쓸 때, 영화를 본 조선족들은 너무 생경해서 영화에 몰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일본어의 경우 재일교포가 나왔고 주인공의 일본어 발음도 좋았지만, 한국의 배우들이 말했던 함경도 사투리는 조선족이 들으면 아쉬웠나보다.


‘윤동주 현상’의 문제점


영화 『동주』의 한 장면2

▲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주)루스이소니도스

 

첫째, 윤동주가 우상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우상이란 대상의 본질을 따라 실천하지 않고 맹종하는 거다. 껍데기를 맹종한다. 우상은 주체와 거리가 있지만, 친구는 함께 대화하고 함께 곁으로 간다. 윤동주는 멀리 있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대화하고 함께 곁으로 가는 친구다.

 

둘째, 상품화가 염려된다. ‘미키마우스 저작권’이라는 말이 있다. 도는 얘기지만, 미키마우스 이미지 저작권을 더욱 확보하려고 월트 디즈니에서 작가 사후 50년이었던 저작권법을 20년을 늘여 70년으로 만들었다는 설이다. ‘저작권 보호 70년’에서 풀리는 책들은 자유롭게 저작료 내지 않고 출판할 수 있다. 사후 71년이 되는 윤동주 시집은 그래서 올해 봇물 터지듯 출판되었던 것이다.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을 위해 상품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물론 상품이 되었다고 모든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확히 잘 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판매되는 식품에 불량식품이 있지만, 야생 그대로 유통되는 좋은 먹거리도 있다. 내가 낸 윤동주 시에 관한 졸저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도 엄중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윤동주의 삶이 축소되어 해석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윤동주 삶의 핵심은 자기 성찰에 끝나지 않고 ‘실천’과 이어져 있다. 그의 시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윤동주의 시를 자기 성찰의 시라고만 묘사한다. 윤동주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자기 성찰에만 머물면 안 된다. 친구들은 윤동주가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줌마가 있으면 뒤에서 밀어주고, 앉아서 쉬는 농부가 있으면 곁에서 대화하곤 했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시는 자기 성찰이라는 ‘큰 고요’를 출발하여 이웃 ‘곁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는 말로 이어지고 있다. 시 「병원」을 보면 환자가 떠난 빈 침상에 곁으로 가서 누워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 「병원」, 1940.12.

 

자기 성찰과 실천의 일치를 말한다. '큰 고요'(자기 성찰)를 품고 '곁으로'(실천) 가야 한다. ‘자기성찰=실천’의 구도가 윤동주에게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큰 고요만 강조하면 윤동주의 뜻이 왜곡되기 쉽다. 자기 성찰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빠진 성찰은 공허할 뿐이다.


동시에서 만나는 윤동주


영화 『동주』의 한 장면3

▲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주)루스이소니도스

 

윤동주를 주제로 상영된 영화 「동주」, 공연되었던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에 공통되는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윤동주의 동시를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분이 아니라 윤동주 삶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가장 큰 문제는 윤동주가 쓴 40여 편의 동시에 관해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윤동주, 「창구멍」 1936년.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도 구구절절 묻어난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창구멍) 침을 발라 작은 창구멍을 뚫는다. 또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풍지에 쏘옥 구멍을 낸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하고 안타깝다. 가족의 생계를 조금이나마 나눠 져야 하는 누나 역시 그의 눈에는 고맙고 안타깝기만 하다. 아침엔 해바라기처럼 화사한 누나 얼굴이 밤이 되면 “얼굴이 숙어 익”(「해바라기 얼굴」)는 게 동생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이 가지 않나.

 

이 동시는 『사진판 육필시고 전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굴된 작품이다. 1999년 새로 공개된 작품은 시 「가슴 2」와 「울적」, 「야행」, 「비삥뒤」, 「어머니」, 「가로수」, 동시 「개」, 동요 「창구멍」 등 8편이다. 1934∼1939년(18∼23세), 간도 은진-광명학교와 평양숭실중학교 연희전문 등을 다니며 시인의 꿈을 키우던 문학 습작기를 반영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윤동주의 제1 습작시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 제2 습작시집 『창』에 각각 실렸으나 그가 1941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낼 때 빠졌으며, 광복 후 윤동주 시집을 내는 과정에서도 후손들이 공개하지 않아 실리지 못했다.

 

새로 공개된 작품들은 윤동주 자신이 마음에 들지않아 X표를 한 것들이지만, 이중 “「비삥뒤」나 「어머니」 같은 좋은 작품에 그가 왜 X표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검토한 오오무라(와세다대학교 한국문학)교수는 말했다.

 

영화 『동주』의 한 장면4

▲ 영화 『동주』의 한 장면 ⓒ(주)루스이소니도스

 

윤동주가 연희전문 4학년 때였던 1941년 11월에 쓴 「서시」에 나오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은 갑자기 나온 표현이 아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이미 그는 어려운 이웃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빨래, 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바지 계신
만주땅 지돈가
윤동주, 「오줌싸개 지도」, 1936년.

 

19세 때 쓴 이 시 「오줌싸개지도」는 그저 아이가 오줌을 싸는데 이불에 싼 지도를 그린 재미있는 풍경으로 볼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유민의 삶이 오줌으로 얼룩진 요에 그려진 지도를 통해 드러내는 회화적 소품이다. 엄마가 계신 별나라 지도라고 묻는 낙천적인 질문에 “돈 벌러간 아버지 계신/ 만주땅 지도인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아이가 오줌을 싸서 젖은 이불을 말리는데 형과 동생만 있고, 부모가 없는 상황이다. 아이 둘이서 젖은 이불을 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단순히 그리움을 표현한 소품이 아니라, 식민지 시절 가족이 해체되어 있는 아픔을 그리고 있는 동시라 해야 할 것이다.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논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윤동주, 「눈」, 1936.12.

 

잠깐 읽으면 하얗게 내리는 아름다운 ‘눈’을 묘사한 시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시에서 중요한 단어는 눈이 아니라. ‘이불’이다. 사진판 육필 시집을 보면 본래 제목이 ‘이불’이었는데 글자 위에 X자를 쓰고 ‘눈’으로 쓴 것을 볼 수 있다.

 

왜 ‘덮어주는 이불’을 상상해냈을까. 지금과 달리 당시 만주의 온돌방은 나무를 때어 덮히면 그 따스함을 이불로 덮어 보온해야 했다. 왜 ‘지난밤’을 염려했을까. 낮보다는 밤에 보온하는 것이 힘들었다. 낮에는 밥 짓기 위해 군불을 땠기 때문에 방 안 온도가 따스했다. 낮의 따스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불밖에 없었다. 그런데 ‘밤’에는 따스한 집에 들어가 있지 않는다면 얼어 죽을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은 바로 눈이 추운 겨울을 만나 떨고 있는 대지를 포근한 이불처럼 덮어주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제 윤동주를 단순히 팬시 상품이나 교과서 시인 정도로 기억하는 단계는 넘어서야 하겠다. 윤동주가 남긴 43권의 책들도 아직 제대로 분석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윤동주 연구는 이제야 시작 단계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윤동주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윤동주를 제대로 연구하고, 정확히 기억하고, 그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의미를 ‘실천’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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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응교
김응교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최근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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