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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실재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아제르바이잔 식당에서 일하며 마주한 디아스포라의 삶

박지니

2019-06-19

이국의 문화가 한국이라는 도시에 녹아들고 있지만, 디아스포라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의 다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고기팩토리 숯불닭갈비 치킨  illustration Kim Jina

 

디아스포라, 여러 이유로 모국을 떠나 각지로 흩어진 민족에게 여전히 남은 고향의 문화와 관습. 세계화라던가 지구촌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이민자와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딱 잘라 타자를 구분하기 어려워진 지금, 어쩌면 그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진 말일지도 모른다.

일평생 한국에서 ‘한민족’으로 살아온 내게 디아스포라란 다분히 감상적인 언어였다. 그러나 그런 감상적인 언어 사용은 스스로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라는 단단한 둥지 안에 자리를 틀고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얄팍해 보여도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한 둥지인지. 진정으로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이는 자신의 정처 없음을 쉽게 표출하지 못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괴리감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면모와 처지를 자각할 때마다 연한 살이 물어뜯기는 심정을 반복해서 느껴야 하니.

 

스무 살 때, 신촌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이 모여 창업한 가게로 사장님도 아제르바이잔인, 주방장도 아제르바이잔인, 홀 직원도 아제르바이잔과 인근 국가인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완전한 디아스포라 공동체인 그 식당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실재하는 디아스포라를,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마주했다.

홀 직원인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친구들은 한국어 실력이 뛰어났기에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일이 바쁘지 않은 시간이면 네 명이 모여서 종종 수다를 떨곤 했다. 친구들은 주로 한국에서의 경험담을 털어놓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방인에게 닥치는 가혹한 삶의 일면을 마주하곤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까지 내가 이해했던 이방인의 삶은 몹시도 피상적인 수준이었다. 그들에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일은 비교적 간단한 일에 속했다. 실제 이방인들은 새로운 땅에 정주하기 위해 원래 지니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이나 몸에 익은 모국의 문화를 부정하면서까지 안간힘을 다한다. 그럼에도 이주한 곳에 완벽히 녹아들기란 어려웠다. 


디아스포라도 꿈을 꾼다.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변화하면서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illustration Kim Jina


아제르바이잔 친구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 결혼식에 초대받았던 일화를 말해주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결혼식은 축제다. 신랑 신부를 비롯해 모두가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춤을 추며 즐긴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축제 같은 결혼식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 친구는 초대받은 결혼식에 하얀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갔다가 이상한 옷차림을 한 외국인을 아래위로 훑는 싸늘한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그 얘기를 시작으로 본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 간극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카자흐스탄 친구가 “한국 케이크는 너무 안 달아서 맛없지 않아?”라고 묻자 세 친구 모두 환하게 웃으며 맞아, 맞아 하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인 나만 공감하지 못한 채 눈을 껌벅일 따름이었다. 예상치 못한 세세한 지점마다 문화 차이로 가득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비로소 실감했다.나중에 ‘파클라바’라는 아제르바이잔 전통 과자를 먹어볼 기회가 생겼다. 패스츄리를 겹겹이 쌓아 구운 과자였는데 꿀과 설탕이 잔뜩 올라가 단맛이 진하게 났다. 이런 간식을 먹는 데 익숙할 테니 상대적으로 담백한 한국 케이크가 맛없을 만하지. 


아제르바이잔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결혼식에 초대받아 자연스레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갔는데 성대한 축제가 열리고 있어 당황한다. 연미복과 드레스로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한다. 이번에는 카페로 간다.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지나치게 달다. 어느 카페를 가도 입에 맞지 않는 디저트뿐이라 실망한다. 나의 문화 정체성은 이국의 문화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사소한 것에서부터 어긋남을 너무 자주 느껴 스스로의 기반이 혹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 후 친구들이 모국에서도 겉도는 순간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친구들이 명절을 쇠러 본국으로 돌아갔다 온 뒤 고향에서 생긴 일을 얘기해주었다. 한국에서처럼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편한 차림으로 집에 갔더니 여자가 치마도 입지 않고 구두도 신지 않았다며 친척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는 거다. 셋이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지적을 당했다니 놀라웠다. 친구들은 집에서는 평소에 입던 옷차림으로 마음 놓고 다니질 못하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낯선 것들이 익숙해지는 순간, 친구들은 어느 영역에도 완전히 편입되지 못하고 혼재하는 문화 속에 덩그러니 놓였다. 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들은 기묘한 이방인이었다. 세 친구는 오로지 같은 이방인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늘어놓으며 서로를 보듬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비록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삶의 세부에 깊이 침투한 한국의 문화와 새로이 만난 인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 잘 받아들여지기를, 마음 편히 몸 붙이고 쉴 공간을 찾기만 바랄 따름이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고유의 문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를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가까운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국의 문화가 한국이라는 도시에 녹아들고 있지만, 디아스포라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의 다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고기팩토리 숯불닭갈비 치킨  illustration Kim Jina



디아스포라들의 아지트 격이었던 그 식당은 현재 문을 닫았다. 아제르바이잔 음식이 대중적이지 않아 식당 운영은 지속적으로 어려웠고 급기야 폐업 수순을 밟았다. 일하는 도중 간판에 쓴 ‘할랄’ 글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했다. 그들은 왜 한국에서까지 할랄 음식을 먹느냐며 중얼거리곤 했다. 그들에게 디아스포라의 파편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 속히 ‘정상적인’ 자리를 찾아야 할 무엇이었나 보다. 디아스포라가 실재하는 감각이 아니라 완전히 외계의 것으로 치부되던 순간을 기억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선택한 삶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 ‘보편’의 영역 속에 뿌리내린 사람의 뭉툭하고 나른한 시선을 통해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섬세한 영역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그렇기에 디아스포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채 무감각하게 살아온 나는 무언가를 섣불리 말하기보다, 디아스포라를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귀담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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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니
박지니

예술학을 공부한 뒤 작은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중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세상을 이루는 흥미진진하고 신비롭고 복잡하고 암울한 문제를 차근차근 알아가고 있다.  이미지_ⓒ박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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