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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시 돌아오기에 더욱 소중한 이별

미국 서부, 그랜드캐니언

인문쟁이 김주영

2017-07-11

 

여행(旅行). [명사]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단어들을 마주한다. 사전에서는 길고 어렵게 정의할 것 같지만, 막상 찾아보면 복잡한 개념일수록 단어의 정의가 생각보다 간단한 경우가 많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것처럼 삶을 간결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회언어적,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개인적 의미를 찾는다. 이렇듯 어떠한 단어에 삶의 경험에서 체득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단어들에 우리의 경험을, 감정을, 의미를 차곡차곡 채워 넣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정의에는 ‘다른’이라는 형용사가 등장한다. 이처럼 여행의 본질은 ‘다름’, ‘차이’에서 나온다. 평소에 익숙하게 봐오던 풍경, 느껴오던 감정, 만나오던 사람들에게서 떠나 이국적이고 색다른 풍경, 감정, 사람을 찾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자극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올려다봄과 내려다봄, 산과 협곡의 차이

8박 9일,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서부라는 개략적인 지역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일정과 계획을 세우는 것이 참 막막했다. 그래도 힘을 내어 친구와 함께 장장 4개월에 걸쳐 계획을 짠 끝에, 미국 서부에 있는 협곡(Canyon)들과 인디언 유적지를 둘러보는 8박 9일의 일정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랜드캐니언 전경그랜드캐니언 협곡

▲ 내려다보이는 그랜드 캐니언 전경 / 발밑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협곡 ⓒ김주영


미국 현지에 도착해서 마주한 미국의 협곡들은 정말 광대하고 웅장했다. 주요 관광 포인트만 골라서 둘러보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기 때문에 국립공원 관람시간을 반나절정도로 잡고 대략적인 여행계획을 세워갔던 우리는 결국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했다. 절벽위에 서서 발밑으로,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을 바라보는 기분을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전달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첫 여행지였던 그랜드 캐니언 앞에 도달한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Breathtaking’, 말 그대로 숨이 멎을 듯한 기분이었다.


브라이스 캐니언 전경앤털로프 캐니언

▲ 브라이스캐니언 전경 / 협곡 안에서 올려다 본 앤털로프캐니언 ⓒ김주영


호스슈밴드 전경캐니언 드 셰이 전경

▲ 호스슈밴드 전경 / 캐니언 드 셰이 전경 ⓒ김주영


신기하게도 그랜드 캐니언 뿐만이 아니라 브라이스 캐니언, 앤털로프 캐니언, 호스슈밴드, 캐니언 드 셰이 등등 낯설고 새로운 미국 서부의 광대한 협곡들을 돌아볼 때마다 마음 한켠에서 우리나라의 산과 들이 생각났다. 타국의 이색적인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익숙한 우리의 자연을 떠올리는 건, 항상 마주하는 익숙한 주변의 모습들이 어느새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된 까닭이다.


그렇게 비교해본 미국 서부의 협곡과 한국의 산은 정말 달랐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에서 비롯된 체험방식의 차이였다. 한국에서 자연을 체험할 때는 산 아래에서 출발해 산을 ‘올라가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한국과는 정반대로 협곡 위에서 출발해 협곡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연을 체험하는 구조였다. 한국인들의 주거지역은 산 아랫부분에, 미국인들의 주거지역은 협곡 윗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한국인들은 산 아래에서 자연을 올려다보는 반면, 미국인들은 협곡 위에서 자연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설악산 등산로KAIBAB TRAIL

▲ 한국의 설악산 등산로 ⓒ네이버 지식백과 / 미국 그랜드 캐니언 KAIBAB TRAIL ⓒ김주영


또 한국의 산은 비교적 크기가 작기에 대부분의 자연물들이 인간의 신체적 운동범위 안에 머물러 쉽게 닿을 수 있는 반면, 미국의 협곡들은 매우 광대하기에 눈으로는 볼 수가 있지만 신체적으로는 쉽게 접촉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들 때문인지 한국의 산을 체험할 때는 자연이 내 옆에 있는 친근한 존재이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생각을 주로 했었는데, 미국의 협곡을 체험할 때는 자연이 친구 같은 존재라기보다는 광대하고 멋진 하나의 구조물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런 차이를 몸소 체험하면서 문득, 예전에 학교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건축양식 또한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 책에서 배웠을 때와는 다르게 직접 체험해보고 느껴보니 비로소 그 차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동양인들은 자연을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로 생각하기에 되도록 인간의 건축물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자연친화적으로 건물을 짓는다. 반면에 서양인들에게 자연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구조물이기에 이를 개척하고 변형시켜 건축물이 자연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건축공법으로 건물을 짓는다.


불국사 건축의 한 부분서양식 건축법

▲ 자연석에 맞추어 건물 기둥의 밑면을 깎아 짓는 '그랭이공법'으로 축조한 불국사 ⓒ국립중앙과학관 / 자연석에 흠을 내고 그 위에 기둥을 박는 서양식 건축법 ⓒ픽사베이


특정한 사고방식이 다른 것에 비해 더 우월하거나 옳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매우 다양하며, 전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주변 환경에 맞추어 그들의 사고방식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다른 환경 속에서 적응해온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돌아올 수 있기에 더욱더 소중한 떠남

끝없이 넓고 커다란 협곡에서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은 정말 웅장했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정말 맛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산과 김치, 하얀 쌀밥이 참 그리웠다. 전혀 다른 것을 경험하게 되면 그 생경함에 익숙한 것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경하면 생경할수록 가장 익숙한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화, 한국의 자연, 한국어, 한국음식 등 익숙하게만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듯 미국에서 보냈던 시간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기에 더욱더 소중하다. 그러니까 여행이란, 다시 돌아옴을 전제하기에 더욱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수 015B의 곡 <이젠 안녕>의 가사 중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라는 구절이 있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좀 더 성숙한 나를 위한 발판이 되고, 또 그렇게 성장한 뒤에 맞게 될 재회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물론 현재의 위치와 많이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지만, 하루를 시작하며 익숙한 집을 떠나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또한 여행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여행을 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도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김주영, 네이버 지식백과, 국립중앙과학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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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인문쟁이 김주영

[인문쟁이 3기]


김주영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구토박이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스트릿댄서이기에, 스스로를 ‘춤추는 문학인’으로 정의한다. ‘BMW’(Bus, Metro, Walking)를 애용하는 뚜벅이 대구시민이다. 책과 신문, 언어와 문자, 이성과 감성, 인문학과 춤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인생의 목표를 취업에서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로서의 나와 우리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전해져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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