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는 고대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비롯되었다.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철학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여기 더 재밌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사랑이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여겼다.
어딜 가서 내 전공이 철학이라는 것을 밝히면, 그때부터 나는 굉장히 고지식하고 딱딱한 사람이 된다. (물론 사람이 아닌 인식의 문제지만) 그리고 이 말도 덧붙여준다. “우와 그럼 굉장히 철학적이겠네요.”라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멋쩍게 웃거나 종종 난색을 보이곤 한다. 그들의 말이 내게는 전혀 공감을 유발하는 말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적이다’와 ‘삶’을 별개로 보아서 그런 질문을 던지겠지만 나는 철학과 삶을 별개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간이 생각하고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이상 살아 있는 순간이 철학 그 자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나른한 오후 햇살이 살짝 비치는 카페 안에서 등등. (사실 생각에 잠기는 순간 주위 환경은 전혀 개의치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종종 생각에 빠지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한다. 이때의 생각은 ‘오늘 뭐 먹지?’라거나 ‘내일 뭐 입지?’와 같은 질문들이 아니다. 일회성 대답에 멈추는 것이 아닌, 생각에 꼬리를 물 수 있는 질문이다. 음, 이를테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이 되겠다.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무한 동력을 지닌 질문들 말이다.
▲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철학이 있는 삶을 산다.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생각하는 사람>, 조각
이런 사고의 회로를 갖게 된 것은 새내기 시절로 그때 나는 한동안 철학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진지하게 철학을 배우고자 대학에 왔건만 늘어나는 건 철학자에 관한 지식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듣게 된 철학의 어원은 날 새롭게 사고하게 만들었고, 이내 외부의 지식이 마치 내 지식인 양 스스로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내면의 성장을 위해 생각하기를 시작했다.
정말 철학은 딱딱한 학문일까? 생각을 바꿔보자. 오히려 철학은 열린 방향과 사고를 지향하는 학문이다. 이에 대한 타당한 이유는 철학의 어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는 고대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비롯되었다.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철학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여기 더 재밌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사랑이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여겼다. 사랑이란 갖지 못해 갖고 싶어 하는 인간 심리의 작용이라 보았다. 이런 결핍은 학문으로 나아갔고 이는 곧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의 탄생을 알렸다.
철학은 이렇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알고 싶어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기인했지만, 세상의 변화를 향해 던져진 질문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가져다줬다. 요즘에서야 철학자의 사상과 명언을 영어단어 외우듯 암기하니 철학이 딱딱하다고 느껴지겠지만, 본래 철학은 그 자체로 질문하는 삶이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이다.
▲ 오직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내 자신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Christopher Sardegna, Irvine, United States, Unsplash
철학이 결핍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 지식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완전한 줄 알았기 때문이었기에. 그래서 나는 나에게 결핍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나는 진정한 나에 대한 정보는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따위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이게 내 인생의 첫 철학적인 발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생각놀이에 빠질 수 있었다.
누군가 ‘철학자의 시선은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는 세상의 작은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그 변화에 감탄한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처럼 세상이 보기보다 신기하고 즐거운 곳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나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제쳐보고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모든 걸 비우고 자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내 머리로, 내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묻고 답하는 시간을.
이다선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고, 집안에 만들어 놓은 서실이 개인의 아지트이자 작업실이다. 현재는 대학에서 철학 공부에 전념하고 있으며 철학을 배우다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 인문쟁이에 지원하게 되었다.그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감정을 노래한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를 만나보고 싶다. 이 기회를 통해서 책장 밖으로 나온 철학을 맛보고 싶다. 음, 그러니까 우리 주위의 인문정신에 대해서 말이다.
ssunda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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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철학은 딱딱한 학문일까?
철학이 있는 삶, 생각하는 사람
인문쟁이 이다선
2016-06-27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는 고대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비롯되었다.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철학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여기 더 재밌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사랑이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여겼다.
어딜 가서 내 전공이 철학이라는 것을 밝히면, 그때부터 나는 굉장히 고지식하고 딱딱한 사람이 된다. (물론 사람이 아닌 인식의 문제지만) 그리고 이 말도 덧붙여준다. “우와 그럼 굉장히 철학적이겠네요.”라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멋쩍게 웃거나 종종 난색을 보이곤 한다. 그들의 말이 내게는 전혀 공감을 유발하는 말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적이다’와 ‘삶’을 별개로 보아서 그런 질문을 던지겠지만 나는 철학과 삶을 별개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간이 생각하고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이상 살아 있는 순간이 철학 그 자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나른한 오후 햇살이 살짝 비치는 카페 안에서 등등. (사실 생각에 잠기는 순간 주위 환경은 전혀 개의치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종종 생각에 빠지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한다. 이때의 생각은 ‘오늘 뭐 먹지?’라거나 ‘내일 뭐 입지?’와 같은 질문들이 아니다. 일회성 대답에 멈추는 것이 아닌, 생각에 꼬리를 물 수 있는 질문이다. 음, 이를테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이 되겠다.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무한 동력을 지닌 질문들 말이다.
▲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철학이 있는 삶을 산다.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생각하는 사람>, 조각
이런 사고의 회로를 갖게 된 것은 새내기 시절로 그때 나는 한동안 철학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진지하게 철학을 배우고자 대학에 왔건만 늘어나는 건 철학자에 관한 지식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듣게 된 철학의 어원은 날 새롭게 사고하게 만들었고, 이내 외부의 지식이 마치 내 지식인 양 스스로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내면의 성장을 위해 생각하기를 시작했다.
정말 철학은 딱딱한 학문일까? 생각을 바꿔보자. 오히려 철학은 열린 방향과 사고를 지향하는 학문이다. 이에 대한 타당한 이유는 철학의 어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철학을 뜻하는 ‘philosophy'는 고대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비롯되었다.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철학이라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여기 더 재밌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사랑이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여겼다. 사랑이란 갖지 못해 갖고 싶어 하는 인간 심리의 작용이라 보았다. 이런 결핍은 학문으로 나아갔고 이는 곧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의 탄생을 알렸다.
철학은 이렇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알고 싶어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기인했지만, 세상의 변화를 향해 던져진 질문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가져다줬다. 요즘에서야 철학자의 사상과 명언을 영어단어 외우듯 암기하니 철학이 딱딱하다고 느껴지겠지만, 본래 철학은 그 자체로 질문하는 삶이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이다.
▲ 오직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내 자신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다.
ⓒChristopher Sardegna, Irvine, United States, Unsplash
철학이 결핍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 지식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완전한 줄 알았기 때문이었기에. 그래서 나는 나에게 결핍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나는 진정한 나에 대한 정보는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따위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이게 내 인생의 첫 철학적인 발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생각놀이에 빠질 수 있었다.
누군가 ‘철학자의 시선은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아이는 세상의 작은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그 변화에 감탄한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처럼 세상이 보기보다 신기하고 즐거운 곳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나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제쳐보고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모든 걸 비우고 자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내 머리로, 내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묻고 답하는 시간을.
[인문쟁이 2기]
이다선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고, 집안에 만들어 놓은 서실이 개인의 아지트이자 작업실이다. 현재는 대학에서 철학 공부에 전념하고 있으며 철학을 배우다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 인문쟁이에 지원하게 되었다.그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감정을 노래한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를 만나보고 싶다. 이 기회를 통해서 책장 밖으로 나온 철학을 맛보고 싶다. 음, 그러니까 우리 주위의 인문정신에 대해서 말이다. ssundasun@naver.com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정말 철학은 딱딱한 학문일까?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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