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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와의 만남

나의 첫 번째 인문적 프로필

안미선

2016-02-25

  • 미지의 세계1- 이자혜 책 표지

    ⓒ유어마인드

M, 너는 거짓 행동과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막말과 상스러운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너는 마주보며 하는 말과 뒤돌아서서 하는 말, 주위에 두 사람이 있을 때와 세 사람이 있을 때의 목소리 높낮이가 다르다. 나는 그런 너의 주변인이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혼자 놀지도 못하는 톱니바퀴형의 인간인지라 너를 내치지도, 돈독하게 지내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M, 내가 너로 인해 속한 단체의 친구들에게 곤란함을 겪고 있을 때 단행본으로 묶은 웹툰 연재작 『미지의 세계』를 보게 되었다. 본문 첫 장을 열고 놀라서 책을 떨어뜨렸다. 적나라하게 표현된 그림, 활자화 되어 더 거칠어 보이는 욕설, 거침없이 노출된 속마음의 수위는 너처럼 강력했다. 충격과 경악에 쌓여 며칠을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꼭 읽어야 할 과제물이기에 화장실에서 두 번째 장을 읽다가 네가 내게 처음 실체를 들킨 날처럼 욕지기가 일었다. 빈 사무실에 앉아 읽었던 세 번째 장에서는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던 수많은 날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30장(章)을 넘겨서 부터는 전철 안에서 거리낌 없이 펼쳐놓고 읽게 되었다. 급기야 내릴 역을 지나쳐 출근 시간을 놓쳐버린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치 내가 너를 성토하다가 너를 성토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너를 비호했던 묘한 상황에 빠진 것과 같았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자신을 대상화시켜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고, ‘너 왜 이래?’ 하고 자신을 비판하며 질타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의 못남력(力)에 대하여, 겉과 속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비루하고 나약한 무름력에 대하여, 미래 시간에 계속 잉여 되는 감정의 허무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미지의 세계』의 주인공 미지는 어느 정도 나였고 너였으며, 대부분은 미지이길 바라는 너와 나의 욕망의 발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학기 초나 새해를 맞으면서도 세우지 않았던 계획. 하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 쯤, 한 번 해보기로 한 것이다. 또 하나는 누구든 내 감정을 건드리는 대상에게 화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욕을 해주는 것, 그것이었다.

M, 어제 드디어 한 가지를 예행 연습 없이 실천했다. 너에게 더 호의적인 주변인들에게 나는 앞과 뒤가 다른 얼굴로 너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설사 그들이 상황을 네게 전달해도 네가 나에게 묻거나 따지지 못할 정도의 허위 사실로 된 부비 트랩(Booby trap)을 장치했다. 약간의 성취감에 들떠 모처럼 차를 가지고 출근길에 나선 오늘. 사거리 교차로에서 회전 후 동승자를 지하철역에 내려주려는 순간, 영업용 택시와 접촉사고가 났다. 너와 판박이인 기사와 경찰서로 갔다. 택시에 장착된 블랙박스를 확인하니 택시운전자 과실이 70%로 판정 났다. 수습을 하고 제법 빠른 주행속도로 다시 출근하는 길, 이번에도 영업용 택시가 갑자기 끼어들기를 한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동시에 화가 입으로 치솟았다. 그때 나도 모르게 작정 없이 튀어 나온 말, “저런! 미친….” 거기까지였다.

M, 그래,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기대해라.
내일은 말줄임표가 아닌 원색적인 X로 너에게 마침표를 꼭 찍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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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
  • 자신 대상화
필자 안민선
안미선

안미선은 노후에 더불어 사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 직장에 20년 넘게 장기근속 중이며, 은퇴 후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준비 중 하나로 다문화한국어학을 공부하는 만학도이다. 동시에 시 읽기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어려워하는 문청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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