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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180˚] - 2

함돈균

2015-12-24

사물 180˚____일상의 사물을 ‘새롭게’ ‘낯설게’ 생각해보는 순간!


 

거기에 있으나 거기에 없다작지만 크다 블랙홀만큼 밀도가 높다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사물 다시 말해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사물누군가 그것을 만들었지만 그 순간 그것은 모든 이들의 공유물이 된다

나쁜 권력을 쥔 사람에게는 불온한 대상 백성과 시민에게는 필요의 대상 개인이나 사회나 '짐승'이 되지 않고 '사람다워'지려면 이 사물과의 접촉면을 최대로 개방하라!'인문정신'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사물을 당신에게 선택하라면?



책을 쓴 사람은 있지만, 책은 그의 소유가 아니다. 책은 저자가 마침표를 찍고 출간되는 순간, 모두에게 개방된 공적인 사물이 된다. 책은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읽는 사람의 관점과 경험과 지식, 문화의 차이와 역사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그러므로 책은 완성되거나 완료되지 않으며, 사후적으로 끝없는 이해 과정으로 남는 특이한 사물이다. 작은 부피에 무한에 가까운 내용을 담을 수 있으며, 해석의 무한성으로 열려 있다. 과거의 해석은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 될 수 있으며, 미래의 시간에 다시 이해가 갱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은 책장에 꽂혀있고, 책상 위에 물리적으로 있지만, 책이 담고 있는 세계는 그 위에 있지 않으며, 책을 이해하는 사람들 역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열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쁜 권력은 책을 쓰는 사람, 책이라는 사물을 불온한 것으로 여기고 경계했다. 반면 좋은 정치를 하는 이들은 이 사물을 보물처럼 여기고 가까이에 두었다. 백성과 시민들에게 이 사물은 세계의 진실을 이해하고 사회적·역사적 성장을 돕는 필수적인 사물이다. 어떤 사회가, 문화가, 역사가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구성원들과 이 사물과의 접촉면을 만나게 하는 통로를 최대한도로 쉽게 확보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짐승’의 몸을 갖고 태어나, 책을 통해 ‘사람’으로 되어가는 과정이 있는 존재일 뿐이다.
‘인문(人文)’은 ‘사람의 무늬’라는 뜻이다. 인문의 핵심은 사람살이의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확보하고 그것들을 공존시키는 것이다. 인문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사물이 있다면, 바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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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함돈균

(기획자문위원)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문학과 인문고전에 관한 강의·글쓰기를 하고 있다.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공공성과 창의성을 담은 다양한 인문 기획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문학평론집 『예외들』 『얼굴 없는 노래』 인문철학에세이 『사물의 철학』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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