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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다

- 감정의 자서전 -

손택수

2022-09-20

생각이 앞섰다면 아마도 시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도 교육을 받거나 독서를 하는 중에 누군가 머릿속에 심어놓은 생각의 범위를 맴돌다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생각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제 첫 시집에 실린 서시가 나오게 된 과정입니다. 한국인들은 최소 12년 동안 정규교육을 받으면서 ..... 



심장의 소리



문학(文學)의 ‘문(文)’자는 사람의 몸에 심장을 그려넣은 모습이라고 합니다. 망자의 가슴에 심장을 새겨 넣음으로써 부활을 기원하는 주술 의식의 한 과정에서 나온 ‘문(文)’자는 이후 인간의 모든 기록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록물들 중 유독 심장의 기억을 잊지 않고자 하는 기록이 문학이고 시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면 심장 박동 뛰는 게 느껴지듯이 좋은 시엔 이성의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힘이 있습니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시티 오브 엔젤> (출처: 네이버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가 저승사자로 분한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엔 자신을 알아보는 능력을 지닌 여의사에게 배의 맛이 어떠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맛있어.’ 맛을 알 수 없는 도시천사에게 그 답은 어떤 느낌도 주지 못합니다. 천사가 실망스럽게 고개를 내젓자 여의사는 집중해서 다시 말합니다. ‘과즙이 아주 풍부해. 달콤하면서도 새콤해. 촉촉이 젖은 혀 위에서 마치 설탕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것 같아.’ 도시 천사는 그제야 느낄 수 없는 감각을 어렴풋이나마 알겠다는 듯 만족스런 표정을 짓습니다. 이것이 이미지입니다. 이미지엔 타자를 공감케 하는 실감이 있습니다.


시의 트라이앵글을 언어의 뜻과 소리와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라이앵글 속의 여백이 더해지면 잠들어 있던 시의 맥박이 비로소 뛰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미지입니다. ‘슬픔’에는 이미지가 없지만 ‘물에 불은 나무토막’에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나무가 생명을 잃고 토막이 되었는데 물에 불었으니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슬픔의 중량감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한국전쟁을 말하면서 25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중의 5분의 4는 민간인이었으며 국가 전체 가옥의 2분의 1과 거의 모든 산업 및 공공시설이 파괴되었다는 설명에는 이미지가 없습니다. 숫자만 나열되어 있어서 전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종삼의 시 「민간인」에는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민간인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권명옥 엮음, 『김종삼 전집』, 나남, 2005 -



남북 분단

남북 분단




전쟁 발발 전 죽음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 월남을 하는 극한 상황에서 발각되지 않기 위해 울음을 터뜨리는 젖먹이 아이를 수장시켜야 했던 비극을 카메라의 눈으로 담담하게 묘사한 시입니다. 시인은 해석과 느낌을 지운 채 배경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나 남북 분단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깊이를 모르는 수심의 이미지는 슬픔의 수심과 연결됨으로써 1947년 봄과 용당포로 국한된 상처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통증으로 보편화시키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이라도 이미지의 생생함에 이끌려 우리는 평소에 잊고 지내는 분단의 고통을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한 편의 짧은 시에 제시된 이미지가 전쟁의 처참한 실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나 반전 인문서의 두께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이미지



도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출처: 진은영)

도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출처: 알라딘)



진은영 시인은 자신의 청춘을 노래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서 문학을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이라고 했습니다. 흉가이긴 하나 백열전구처럼 켜진 개구리 울음이 있으니 민가가 있을 것이고, 그 희망으로 당면한 지금의 불우를 견뎌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럴싸한 문학개론을 아무리 읽어도 이런 이미지 하나 만나는 것만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문학 갈래 중에도 하필이면 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들려주는 대목에선 시인의 길을 ‘어둠 속에서 부서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는 소리에 비유합니다. 피리가 멀쩡하면 부서질까 두려워서 벽을 두드릴 수 없겠지만 피리가 부서졌기에 오히려 그 상처를 힘으로 벽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상처는 쓸모가 없어진 피리를 타악기로 전환시키고 새로 발명하는 역동성을 선물합니다. 어지간한 시인론보다 ‘부서진 피리’의 이미지 하나가 주는 사유의 힘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인은 자본과 혁명에 대해서도 노래합니다. 자본론과 혁명론을 읽기 전에 이 시를 읽고 깊은 사유의 바다에 빠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들은 이미지를 통해 생각하고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이미지에 자신의 삶을 담고 이미지로 자신의 삶을 예감하기도 합니다. 당송 팔대가를 대표하는 소동파는 “정처 없는 우리 인생 무엇과 같은가/ 눈밭을 배회하는 저 기러기 같네/ 오며 가며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날아가버린 뒤엔 동과 서를 어찌 알까”(「설니홍조」 중)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여기서 새 발자국은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합니다. 흔적을 남기려 애써보나 방향도 알 수 없고 눈이 녹으면 그 자국마저 사라지고 마는 새 발자국은 권력 실세들에 밀려 변방을 떠돌며 생애의 절반 이상을 유배로 보내야 했던 시인의 불우한 삶과 떼어놓고 읽을 수 없습니다. 소동파는 권력과 부의 덧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존재의 고독과 쓸쓸함을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생로병사의 유한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새 발자국 이미지 하나가 소동파의 전생을 밀어가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글에는 이 같은 시적 이미지가 있습니다.



“내 아주 어렸을 때, 기억나는 첫 번째 것은 누군가가 가스난로를 켜놓아 거시서 푸른 불꽃이 솟아오르던 일이다. 세 살 때의 일이었다. 나는 불꽃을 보았고 얼굴에 확 다가드는 그 열기를 감지했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짜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난 그 불꽃에서 일종의 모험과도 같은, 야릇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 경험은 내가 가보지 못한 내 머리 속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 준 듯하다. 아마도 모든 가능한 일들의 경계, 언저리 같은 것? 글쎄. 잘 모르겠다. (중략)내가 태어난 다음 해에 세인트루이스에 회오리바람이 덮여 도시를 완전 산산조각을 만들었다. 그 회오리바람이 나에게 난폭한 창조성을 심어주었나보다. 트럼펫을 불려면 강한 바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 마일스 데이비스. 퀸시 트루프 저, 성기완 옮김,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1』, 집사재, 2003 -



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출처: 알라딘)

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출처: 알라딘)



현대 재즈음악의 신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년시절 회상 장면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뿌연 안개로 가득한 기억 저편을 허우적거리다가 홍차에 곁들인 마들렌 과자의 맛을 만나면서 잃어버린 기억들을 회복하듯이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감각에 남아있는 불꽃과 회오리의 이미지를 찾아냄으로써 상실한 유년의 풍경들뿐만 아니라 ‘불꽃’의 미에 꽂힌 그가 왜 재즈 뮤지션이 되었고 하필이면 트럼펫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려줍니다. 불꽃과 회오리는 상호 작용의 에너지가 되어 그에게 재즈의 경계선을 새로 그려나가게 했습니다. 트럼펫을 통과한 회오리의 ‘난폭한 창조성’은 활활거리는 불꽃을 만나 ‘모든 가능한 일들의 경계, 언저리’를 향해 그를 타오르게 했습니다. 유년시절 직접 체험한 불과 아마도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로부터 들었을 회오리 이미지를 통해 그는 연주자로서의 길이 어떤 시원과 연결되고 어떤 미래를 열어갔는지를 더없이 간명하게 들려줍니다. 아마도 그는 불꽃과 회오리의 이미지를 발견함으로써 그것이 과연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탐색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미지는 자신이라는 금광을 향해 난 채굴 열차와 같습니다.



매혹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이테 문양이 있습니다. 나이테 문양이 무엇을 닮았나요? 비 오는 연못도 떠오르고, LP음반도 떠오르고, 소용돌이무늬도 떠오르고, 제가 좋아하는 양궁선수 안산의 과녁도 떠오릅니다. 자유롭게 연상을 펼쳐나가다가 화살나무를 만났습니다. 화살나무의 과녁은 어디에 있나요? 자신의 내부에 있습니다. 여기서 일상의 상식을 깨는 진술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목표물은 내 안에 있다.’ 이 진술을 토대로 시가 흘러나옵니다.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가는 동심원, 나이테를 품고 산다 


- 졸시, 「화살나무」 중 - 



생각이 앞섰다면 아마도 시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도 교육을 받거나 독서를 하는 중에 누군가 머릿속에 심어놓은 생각의 범위를 맴돌다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생각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제 첫 시집에 실린 서시가 나오게 된 과정입니다.


한국인들은 최소 12년 동안 정규교육을 받으면서 접한 시에 대해 의미와 주제를 중심으로 이해 강박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미하는 바는? 이해로 적절한 것은? 주제로 적절치 않은 것은? 그렇게 문제 풀이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를 골치 아파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선친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랑하였습니다. 불가해한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현대예술은 확고불변의 견고한 이해보단 파문과 설렘과 미지와 비밀로 가득 찬 사랑을 더 중시합니다. 사랑은 완벽하게 이해되었을 때조차 비밀을 잃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리하여 과거의 정형화된 이해가 아니라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합니다. 사랑하다 보면 그 시를 누구보다 오래, 깊게, 드넓게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시를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이미지입니다.


고대에 이미지는 환대의 주인공만은 아니었습니다. 플라톤은 사물을 모방하여 이미지로 재현하는 예술가의 창작물이 사본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모방품이 진리나 이데아로부터 더 멀어졌는데도 진리나 진실한 표상이라는 환상을 준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지 재현 본능이 인간의 기본 본능이며 현실의 모조가 아니라 보편자의 표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보편자는 이데아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미지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존재입니다. 20세기 이후에는 단순히 재현과 모방에만 그치지 않고 이미지의 자족적인 생성력을 중시하는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추상미술이나 환타지 장르 등이 그 맥락 속에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경우 몽타주 기법은 이미지에 많은 영감을 줍니다. 에이젠슈타인은 「영화의 원리와 상형문자」란 논문에서 몽타주의 원리를 중국 한자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는 “귀(耳)의 형상과 문(門)의 형상을 결합하면 듣는(聞) 것을 의미하고 칼(刀)과 마음(心)을 결합하면 참는다(忍)는 뜻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몽타주다. 이것이 영화에서 우리가 할 일이다. 의미상으로는 단일하고 내용상으로는 중성적인 묘사화면들을 결합해 지적인 문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병치하거나 연쇄시킴으로써 낡은 의미에 충돌을 일으키고 충돌을 통해 예기치 않은 제3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현대시 창작의 원리와 매우 흡사합니다. 저는 그래서 무료할 때면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아무 페이지나 무작위로 넘겨가면서 단어들을 골라 한자를 처음 만들던 고대의 사람들처럼 조립하는 놀이를 해보기도 합니다. ‘달, 별, 불면, 유리조각’. 아무 관계도 없는 말들로 문장을 만들어봅니다. ‘달이 사막에 불시작한 별들을 찾고 있다.’ ‘유리조각을 밟고 피 흘리는 별의 불면’. ‘불면의 유리조각이 달과 별을 쫓는다’. 어떻게 선택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이미지의 유희가 펼쳐집니다.


이 유희를 관장하는 주인은 우연이고, 우연은 무의식이란 내 안의 자연이 발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시를 쓸 때는 사유하고 해석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이미지의 광기와 홍수에 익사하지 않도록 의식적인 질서로 재편합니다. 물감에 젖은 스펀지를 벽에 던지면 벽에 의도하지 않은 두상이나 짐승, 풍경이나 그 밖의 형태들이 나온다는 보티첼리의 발언에 영향을 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에 대해 긴 논문을 썼습니다. 그처럼 예술가는 보티첼리의 유희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논문을 다 갖고 있어야 합니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시인은 이미지를 통해 감정과 사고를 키운다”고 했고, 모리스 블랑쇼는 “이미지에 대한 정열이 곧 매혹”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정의 자서전] 이미지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다

- 지난 글: [감정의 자서전] 자기 귀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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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
담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때 꿈은 농부였다. 별(辰)과 노래(曲)가 하나가 된 농(農) 자를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꿈이 좌절되면서 그만 시를 쓰게 되었다. 유년시절의 실향과 실패와 숱한 실연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시집 『목련전차』,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청소년시집 『나의 첫소년』, 동시집 『한눈 파는 아이』 등이 있다. 제3회 조태일문학상, 제13회 노작문학상, 제22회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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