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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귀환의 길

- 감정의 자서전 -

손택수

2022-08-11

리드문

 

 

고전주의의 신을 대체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물신입니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계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유행하는 상품들에 의존하게 만들고, 산업전사를 훈육하는 근대교육 시스템과 화폐경제를 보다 원활하게 작동시킵니다.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논리를 내면화함에 따라.....



자아 발견의 역사



호메로스의 「오딧세이」 에서 지배계급이 아닌 등장인물은 가정부 유레클레이아와 돼지를 치는 하인 유매이어스 둘뿐입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삶이나 감정이 없이 천한 대사와 행위로 묘사되고, 지배계급의 인물들은 신분에 맞는 격조 높은 언어와 문체로 진지하게 다뤄집니다. 일종의 계급적 편견이 문체의 분리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의 장르, 등장인물과 행동, 문체와 대화가 서로 걸맞아야 한다는 고전주의의 ‘적격(decorum)’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신분사회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져서 평등사회로 이행해가는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반성의 대상이 됩니다. 가령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가 「서정담시집의 재판 서문에서 ‘사건이나 상황을 평민의 생활에서 취하고 가능한 한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로서만 서술하고 묘사하는 것 그리고 어떤 상상의 색채를 가해서 평범한 사물들이 비범하게 비치도록 하는 것’으로서 시적 선언을 하였을 때 그것은 고전적 적격의 허구성에 대한 혁명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적 현실을 전경화하고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의 문제성과 실존을 보다 핍진하게 묘사하는 작가군을 통해 근대 리얼리즘의 초석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회화사에서도 유사한 붕괴가 일어납니다.



루벤스(1577~1640) <십자가에서 내림(Descent from the Cross)> (출처: 위키백과)/ 쿠르베(1819~1877) <화가의 아틀리에> (출처: 위키백과)

(좌) 루벤스(1577~1640) <십자가에서 내림(Descent from the Cross)> (우) 쿠르베(1819~1877) <화가의 아틀리에> (출처: 위키백과)


 

위 그림에서 루벤스의 그림은 신화적이고 종교적으로 이상화된 제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천상과 지상의 수직구도를 매개인 예수를 통해 연결하고, 신을 중심으로 사물들을 방사형으로 배치하는 카톨리시즘의 이념을 대변하기 위해 원근법을 쓰고 있습니다. 원근법은 보편수학의 원리에 의해 세계를 측정하고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세계를 통제하는 기획입니다. 서양의 경우 절대왕권 권력구조의 기반과 동화되어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였지요. 원근법의 절대성을 해체한 것이 쿠르베의 그림입니다. 쿠르베의 화면에서 전형적인 수직구도는 수평구도로 바뀌었습니다. 묘사 대상들 역시 민중과 지식인 같은 평범한 인물들로 그리고 매개 또한 예수 대신 과감하게 예술가를 선택함으로써 견고하던 위계를 해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른쪽 화면 맨 끝에서 무엇인가를 탐독하고 있는 이가 시인 보들레르인데 그는 고전주의를 비판하며 “우리의 일상을 고전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세속적 인간의 삶을 화폭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예술사는 현실과 일상 그리고 자아를 제재로 전유하는 상상력을 마침내 획득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관습적이고 권위적이고 규범적인 표현들이 독창적이고 비규범적이고 낯선 표현들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문학에서 제재로서의 개인과 자아는 오랜 역사적 흐름 가운데 쟁취한 발견으로서 지리상의 발견보다 한참 뒤의 비교적 최근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발견을 시인들은 저마다의 역사 속에서 다시 경험합니다. 



자기 귀환의 길



고전주의의 신을 대체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물신입니다. 물신이 지배하는 세계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유행하는 상품들에 의존하게 만들고, 산업전사를 훈육하는 근대교육 시스템과 화폐경제를 보다 원활하게 작동시킵니다.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논리를 내면화함에 따라 현상의 개별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화폐가 모든 현상의 특질과 특성을 단지 수량적인 것으로 평준화시키는 교환가치만을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 증세와 함께 획일화에 대한 거부의 감각은 갈수록 희귀해지게 됩니다. 재독 사회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이런 사회의 기본 원리가 자발적인 자기 착취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진행되는 자기 착취는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율성이 높아서 활동 과잉을 초래하고 나아가 우울증 같은 정신 병리학적 현상까지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제 가슴을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활동이 기계적 노동의 수준으로 추락하는 걸 막는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착취로 인한 우울증

자기 착취로 인한 우울증



송아지

 

송아지의 눈은 크고 맑고 슬프다 

그런데, 소고기국은 맛있다 

난 어떡하지?

- 작가 미상, 어린이 시 중 -



어느 백일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일 학년 소년의 자작시 전문입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여한 외국 작가들 앞에서 이 시를 낭송해주었더니 하나같이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새뜻합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 포레스토 갠더는 이 시의 작자가 초등학교 일 학년이라는 걸 알고는 거듭 감탄을 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왔습니다. 무엇이 그를 움직인 것일까요. 삼행으로 된 이 짧은 시엔 관찰과 고백 그리고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첫 행에선 송아지의 눈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그 크고 맑음에 감탄하는 자아와 송아지가 자라면 그 맑은 눈을 잃어버린 채 한낱 소고깃국용 상품이 되고 말리라는 슬픔이 동시에 나옵니다. 백석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 뒤지지 않는 구절 아닙니까. 이어지는 행은 자신의 모순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고깃국을 먹을 줄만 알지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소의 비애까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천진한 고백이 독자의 방어기제를 활짝 열어젖혀 미소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일게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의 스승들이 오랫동안 던져온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연상케 하는 물음으로 시는 갈무리 되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애써 회피하거나 망각하고 사는 이 질문은 소년의 눈망울을 송아지의 눈과 겹치게 하면서 화인처럼 뜨겁게 다가옵니다. 단 세 줄의 시 앞에서 수십 년의 시업이 통쾌하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면 이 부끄러움이 조금은 가실 수 있을까요? 시행의 물리적 길이가 심리적 길이로 전환되는 순간 단 세 줄의 시는 삼천 줄 삼만 줄의 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공명의 음역을 영토로 누리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탐구

자신에 대한 탐구


 

관찰과 고백 그리고 질문을 통해 시는 일상의 속도와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하면서 자아성찰과 형성의 길을 걷게 됩니다. 랭보는 시인을 ‘견자(見者)’라고 하였는데 ‘모든 감각들을 교란하여 미지에 도달하는’ 견자의 출발점을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탐구 없이 미지 역시 오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력서에 쓴 시

 

생년월일 사이엔 할머니의 태몽이 없고 

첫손주를 맞은 소식을 고하기 위해 

소를 끌고 들판에 나가셨다는 할아버지의 봄날 아침이 없고 

광주고속 거북이 등을 타고 와서 여기가 용궁인가 

동천 옆 고속터미널에 앉아 있던 소년의 향수병이 없고 

길바닥 보단 지붕을 좋아해서 

못을 징검돌처럼 밟고 슬레이트 지붕을 뛰어다니던 

도둑괭이 문제아가 없고 

맥주병 소주병 환타병을 깨서 송곳니를 드러낸 담벼락처럼 

가난하고 겁 많은 눈망울을 숨기기 위해 

아무 데서나 이를 드러내던 청춘이 없고 

남포동 통기타 음악실 무아에서 허구한 날 

죽치고 앉아 있던 너를 그냥 보내고 시작된 

서른 몇 해 동안의 기다림이 없고 

신춘문예 응모하러 가던 겨울 아침 

그게 무슨 입사지원서나 되는 줄 알고 

향을 피우고 계시던 어머니가 없고 

참 신기하지 재가 되었는데 무너지지도 않고 

창을 비집고 든 바람 앞에서 우뚝하던 향냄새가 없고 

늦깎이 근로 장학생으로 대학건물 수위를 보던 그때 

일 하면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힘내라고 

밥을 사준 이름도 모를 그 행정실 직원이 없고 

이후로 나를 지켜준 그 밥심이 없고 

이력서엔 영영 옮겨올 수 없는 것들로 하여 

구겨진 이력서에 나는 시를 쓰고 있네

(졸시)


- 손택수-



이 시엔 향수병을 앓는 소년의 성장기가 나옵니다. 실향과 실연 그리고 실패로 얼룩진 성장기를 통과하며 문청 시절을 보내고 있는 시적 자아는 이력서에 옮길 수 없는 삶의 결정적 장면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 타고 온 버스가 하필 ‘광주고속’인 것은 실제 경험과 무관하게 ‘거북이’라는 도상이 아이러니를 실현해주기 때문에 동원된 장치입니다. 산업화의 물결에 따라 이촌 향도의 거센 흐름에 떠밀려가는 고속의 시대를 거북이의 속도로 통과하는 자전을 통해 전혀 다른 리듬을 살아내야 하는 근대인의 비애가 읽히길 바라기도 하였습니다. 구체적 실존의 감각을 추상화하는 이력서가 고속의 기호라면 그 기호 너머로 잊힌 자잘한 서사들과 ‘영영 옮겨올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사라진 향냄새 같은 감각이 거북이의 기호들일 것입니다. 어질머리를 일으키는 이 아이러니한 속도 위에 가난과 유랑으로 점철된 가족사와 음울한 청춘의 기록들이 겹쳐집니다. 그 과정이 마냥 행복했을 리만은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부끄럽기도 해서 외면하고 싶은 자아의 기억은 그러나 ‘밥심’을 길러준 더 큰 자아와 만나면서 나와의 소통을 연대의 가능성으로 열어놓습니다. 고통이 소통의 길로 나아가면서 ‘영영 옮겨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청과 ‘이력서를 구기는 행위’는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같은 층위에 놓이게 됩니다. 시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정화의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미완의 가능성



열성적

열성적인 노동자



「이력서에 쓴 시는 미완성입니다. 어쩌면 이 시 역시 이력서처럼 구겨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시 속에 들어오지 못한 삶의 문맥들이 간단없이 출렁이며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처 호명해주지 못한 굽이굽이의 흐름으로 시는 새로 쓰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에게 미완은 그래서 쓴 것을 거듭 쓰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쓴 잎을 되새김질하면 오묘한 맛들이 살아나듯이 이미 쓴 것을 다시 쓰는 일로 결정된 상태에 판단을 보류한 뒤 미결정의 불만과 불안을 행복하게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서전이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술가란 언제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기 귀에 들려오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 솔직하게 적어놓는 열성적인 노동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말대로 모든 문학 텍스트가 결국 자기 서사와 함께 하는 자기 귀환의 여정이라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열성적인 노동이 아닌가 합니다.

 


 


[감정의 자서전] 자기 귀환의 길

- 지난 글: [감정의 자서전] 고백하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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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
담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때 꿈은 농부였다. 별(辰)과 노래(曲)가 하나가 된 농(農) 자를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꿈이 좌절되면서 그만 시를 쓰게 되었다. 유년시절의 실향과 실패와 숱한 실연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시집 『목련전차』,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청소년시집 『나의 첫소년』, 동시집 『한눈 파는 아이』 등이 있다. 제3회 조태일문학상, 제13회 노작문학상, 제22회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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