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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이 낯선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최유안

2023-01-11

도대체 서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서툴지 않은 듯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견고히 쌓아놓은 벽들은,

결국 인생이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반증일 뿐인 것 아닐까.

나는 그래서 내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자꾸 실패하게 만드나보다.

서툴지 않은 인생이, 비겁하지 않은 인생이,

그러니까 견고히 짜인 그물망 같은 세상에서 내 멋대로 되는 인생이, 도무지 없으니까.

 

 

 

소설집 <보통 맛> 에 실린 단편 <거짓말>을 쓰던 때, 주인공 세영의 감정이 변곡점을 맞이하는 이야기의 마디마다 나는 어쩐지 몸 안쪽이 긁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세영은 3년 전 결혼한 후에 아이 없이 사는 인물이었고, 자기 몫의 삶을 부지런히 해내며 사는 서른 넷의 직장인이었다. 고민이 많은 날들을 터널처럼 지나는 중이었는데, 세영의 가장 큰 고민은 생애주기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런, 때가 있는 일을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닐까?

 

세영의 서사를 만들고 숨을 불어넣던 나 역시 내게 닥치지도 않았던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당분간 내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일들. 이를테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 같은 것들에 대해, 나는 근거 없는 불안을 겪고 있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봐야 한다는 일들이, 내 인생에 존재조차 않는 거라면 이상한 무력감과 낭패감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한 가지 더 고백을 하자면 그때 나와 가까운 친구가 난임 판정을 받고 꽤나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국가 출산율이 이렇게나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경력을 포기하면서라도 아이를 낳겠다고 저렇게나 애를 쓰는 친구네 부부를 보며 나는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책 표지 (출처: 알라딘)

도서 <아이 없는 완전한 삶> 표지 (출처: 알라딘)

 

 

당장 눈앞에 놓인 일도 아니면서 결혼과 아이에 대해 왜 그렇게 고민을 했느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경험해본 적 없는 미지의 일들은 형체 없는 상자 안에 담겨 내 몸 속에서 밤낮으로 덜컹대며 나의 생각을 좌지우지했다. 그때 나는 <아이 없는 완전한 삶> 같은 책들을 읽으며 내 등에 얹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외로운 운명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그 탓에 내가 직접 못해본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세영을 소설 속 인물로 세운 것 아닐까, 지금에 와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내 앞에 세영이 가는 길을 살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혹시 길을 가다 세영이 마음을 다치더라도, 세영은 내가 만든 인물일 뿐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인물을 앞세워 나는 사실 내가 먹은 겁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이니까, 허구의 이야기이니까, 어떤 결정을 해도 괜찮으니까, 나는 그렇게 비겁했던 것 같다.

 

 

자두 책 표지 (출처: 알라딘)

도서 <자두> 표지 (출처: 알라딘)


 

이주혜 작가의 소설 <자두>를 읽으면서 세영의 이야기를 쓰던 봄이 다시 떠올랐다.

 

프리랜서 번역가이며 결혼 9년 차인 은아는 완연해진 병세의 시아버지 간호를 맡아줄 간병인을 구한다. 살짝 놀랄 만한 비용이었고 시아버지의 완곡한 거절의사를 이해하면서도 간병인의 노련함과 전문성에 간병을 맡기기로 결정한다. 시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질수록, 결혼이라는 풍경에 금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오롯이 은아의 몫이다.

 

지금 시점에 은아에게 결혼이란 무엇이 되어버렸는가. 은아 앞에서는 제대로 오줌 누러간다는 말도 못하는 시아버지가 낯선 간병인의 손길이 닿은 후에야 대변보는 것을 지켜보는 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에둘러진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결국 제대로 묶일 수 없는, 어디까지나 서로에게 타인일 뿐임을 알려주는 일. 늘 며느리에게 예의 있고 깍듯하던 시아버지의 진심 한 편에 놓인 날선 감각을 깨닫게 되는 일. ‘저 애가 우리 집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한 일이 있나? 박사님과 결혼하면서 열쇠 세 개를 해왔나? 애를 낳았나? 저 애 때문에 우리 집 귀한 손이 끊겼다.’ 그러니 결혼이란, 시아버지의 말이 자신을 겨누고 심장을 찔러대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 하는 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과 남편의 고모마저 체념하게 하는 일. 이런 삶이 처음이라 외마디도 내지르지 못했던 일.

 

 

고모는 원 밖으로 떠밀려난 가엾은 타인에게 최대치의 동정심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원심력과 함께 영원히 우주 밖으로 날아가버린 존재를 향한 반사적인 연민.

- 『자두』 중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쓸데없는 에너지까지 낭비하지는 말자고, 그렇게 남편과 상의한 후에 더는 아이에 대해 집착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 순간 눈 감고 있는 남편 세진을 돌아보는 은아의 마음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낳고 싶지 않아서 못 낳은 게 아니지 않느냐고, 너와 내가 알지 않느냐고, 너는 눈을 감은 채 이 모든 일을 다 내 탓으로 돌리는 나의 시아버지, 아니 네 아버지의 고함을 그저 듣고만 있을 거냐고.

 

 

유산의 아픔


 

 

나는 은아의 마음을, 나의 세영이 유산 후에 멍하니 병실 구석을 보고 있는 그 장면을 썼던 그날의 기분으로 느꼈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 둘의 인생이, 어째서 이토록 잘못된 것으로 느껴져야 하는지. 나는 그런 참담함을 다시 내 안으로 되새김질하며 은아를 읽었다.

 

은아는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몇 달 후 세진과 이혼을 선택했다. 얼마 안 되는 시아버지의 유산을 건네주려고 연락했다는 세진의 말을 듣고 홀로 간 북해도에서 복잡하게 밀려드는 감정들을 어쩌지 못한 채 술을 먹고 자꾸 뒤엉켜 걷는 그의 스텝을 바라보며, 나는 세영을 쓸 때 그랬듯이 몸 안쪽이 날카로운 것으로 긁히는 느낌을 다시 떠올렸다. 무엇보다 인생이란 저렇게, 어차피 다 모두 서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보면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인물의 삶을 살아내는 것 같다. 인물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마음들을 체험해보는 것 같다. 그 탓인가, 나는 여전히 용기 내어 결혼을 하고 출산과 양육을 도맡는 삶을 직접 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서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서툴지 않은 듯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견고히 쌓아놓은 벽들은, 결국 인생이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반증일 뿐인 것 아닐까. 나는 그래서 내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자꾸 실패하게 만드나보다. 서툴지 않은 인생이, 비겁하지 않은 인생이, 그러니까 견고히 짜인 그물망 같은 세상에서 내 멋대로 되는 인생이, 도무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서툴고 모난 인물들을 만들어내며, 내가 숨을 불어 넣어준 그들이 앞서가는 길을 보며, 나 역시 그들처럼 서툴고 비뚤비뚤한 인생을 살며, 내 앞에 당도한 나의 시간들을 바라본다. 모두에게 지금은 인생의 첫 순간이니까. 나도, 내 앞의 사람도, 이 세상 어떤 사람들도 예외 없이 낯선, 여기저기 모나고 성글고 서툰 인생을 사는 것이니까. 부서지고 찢어지며, 서로 할퀴고 찌르며,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모르는 채 뿌연 안개 속에서 더듬듯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을 잡으며, 서로에게 조심히 걸으라고 말해주며, 그렇게 다들 서툰 삶을 사는 중이니까.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예외 없이 낯선

- 지난 글: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우리라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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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소설가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보통 맛』과 장편소설 『백 오피스』가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페페』, 『우리의 비밀은 그곳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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