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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인가, 다른 방식의 세계화인가

- 이달의 답변 -

박철현

2022-11-18

신냉전이란 프레임으로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향후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은

양 진영 사이의 폐쇄성과 고립감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모호하고 부적절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존 WTO 및 FTA 체제가 다양한 ‘메가 FTA’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 자유주의 국제무역질서가 퇴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화가 종말을 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곧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의 심화를 의미하는데, 이 글에서는 WTO, FTA, CPTPP, RCEP 등 다양한 국제적 경제협정이 기존 상호 의존성에 초래하는 변동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화의 문제에 답변하고자 합니다.

 

 

기존 세계화를 주도한 WTO와 FTA

인류 최초의 세계화를 13~14세기 몽골제국의 정복으로 유라시아에 안정이 도래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에서 찾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처럼 대규모 인구가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고, 국가 간 정치경제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상호 의존성이 심화된 것은 결국 국가 간 무역과 투자가 전 지구적 범위로 확대되면서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역과 투자의 전 지구적 범위로의 확대는 1995년 공식 출범한 WTO(세계무역기구)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의 완화를 목표로 국가 간 경제 분쟁과 마찰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WTO는 한때 162개국 회원국을 거느리는 범세계적 기구가 되면서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과의 충돌과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WTO를 대신해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인 FTA(자유무역협정)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사국의 숫자가 2개이므로 협상 진행에 있어서 FTA는 WTO에 비해서 효율적이었고, 2015년에는 양국 FTA가 262개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습니다. WTO가 다자주의(多者主義)에 기초해 있는 것에 비해서 FTA는 양자주의(兩者主義)를 그 기초로 한다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WTO와 FTA 모두, 교통과 통신의 비약적인 발달을 기초로 전 지구적 범위에서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적 상호 의존성이 심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동일합니다.

 

 

국가 간의 협정

국가 간의 협정

 

 

최근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이에 도전하는 경제력과 가치를 가진 중국이 부상하는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를 배경으로, 기존 자유주의 국제무역질서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존 양자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FTA가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IPEF(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 등으로 새로운 형태들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 협정들은 환태평양, 인도-태평양, 동남아시아 등 특정 지역(region)에 기반을 준 이른바 ‘메가(mega) FTA’입니다.

 

이 협정들은 이해 당사국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협상 진행의 비효율성이 문제였던 WTO의 문제점과 양국 간 혹은 소규모 범위에만 효과적인 규칙과 조항이라는 FTA의 문제점을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서, 협정에 참여하는 이해 당사국의 범위를 ‘특정 지역’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 새로운 협정은 단지 참가 당사국의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정치적 안보적 이익’의 증진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TPP로 시작해서 2016년 미국의 탈퇴 후 일본 주도로 전환된 CP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출범한 자유무역협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일본 호주 등의 반대로 중국의 가입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IPEF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TPP를 탈퇴한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주도적으로 만든 IPEF는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 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 FTA와 다른 ‘새로운 통상의제’에 집중합니다. 새로운 통상의제란 무역촉진, 디지털 경제와 기술 표준 정립, 공급망 회복력 달성, 탈탄소화와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 노동 표준화 등의 6가지 분야를 가리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탈퇴로 ‘김빠진’ CPTPP가 기본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데 비해서, IPEF는 경제성장과 일대일로 등으로 ‘인도-태평양 지역(Indo-Pacific Region)’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가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 지역에서 미국의 기존 리더십과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경제적 전략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즉,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경제전략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FTA의 성격을 강하게 가진 CPTPP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IPEF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이라고 하는 명시적인 정치안보전략의 실현을 위한 경제적 전략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볼 때 IPEF는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실현을 위한 경제적 전략이고, 바로 이 점에서 기존 FTA와는 물론, CPTPP와도 명확한 차별성을 가집니다.

 

 

RCEP과 중국의 ‘일대일로’

시진핑 정부 들어서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OBOR)’를 추진해왔습니다. 과거 역사에서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통해서 이뤄졌던 교류의 기억을 현재의 정치경제적 전략으로 전환하여 유라시아에 투사하고자 하는 일대일로는 현실에서는 일대일로 연선(沿線)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이러한 일대일로 추진에 있어서 아세안을 포함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은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RCEP은 2010년대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역내 무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가, 한국 ․ 중국 ․ 일본 ․ 호주 ․ 뉴질랜드가 가입하여 아시아 전체 범위로 확장된 자유무역협정입니다. 중국은 RCEP을 통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해상 실크로드’ 방면의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으며, 자신이 주도하여 건립한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지역 일대일로 추진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신냉전(新冷戰)’은 곧 기존 세계화의 종말인가

최근,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신냉전이란 말이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냉전 시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 진영은 대립하면서도 핵무기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통해서 전쟁 억제가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과 일부 실지 회복,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시사 등으로 예측 불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는 다릅니다. 또한,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는 모두 ‘자유와 개방’, ‘평화와 발전’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명시적인 적대와 대결을 내세웠던 과거의 냉전과는 다릅니다.

 

 

전쟁

전쟁


 

따라서 신냉전이란 프레임으로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향후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은 양 진영 사이의 폐쇄성과 고립감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모호하고 부적절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서 기존 WTO 및 FTA 체제가 다양한 ‘메가 FTA’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 자유주의 국제무역질서가 퇴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화가 종말을 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기존 세계화는 2차대전 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제공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군사적 ‘공공재’를 기초로 수립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의해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항하던 소련이 1991년 붕괴한 이후,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추진했고, WTO와 FTA는 이러한 미국 주도의 세계화를 보장하는 ‘국제 정치경제 협정’으로 역할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IPEF와 RCEP는 기존 미국 주도의 세계화와는 다른 세계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정치경제 협정’입니다. 즉, IPEF로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제적 전략으로서 해당 지역에서의 세계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대일로가 추진되면서 RCEP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면 해당 지역에서도 세계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미-중 패권 경쟁

미-중 패권 경쟁


 

물론, IPEF와 RCEP 모두 일방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세계화를 추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각각의 국제경제 협정에는 미국과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소속해 있고, 이 두 협정에 중복으로 가입해 있는 국가들-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중 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IPEF와 RCEP라는 국제 정치경제 협정이 해당 지역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고 경험했던 세계화, 즉 기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지탱하던 세계화와는 다른 세계화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진행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향후 심화될 미-중 패권 경쟁의 결과에 따라서 그 세계화의 형식과 내용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한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을 제외하면 중국은 자본주의 체제의 보편적 성격을 다른 국가와 공유하고 있으므로, 미-중 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전개될 수 있는 ‘지역의 세계화’가 곧 냉전 시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명시적인 대결 구도하에서 전개된 각 진영의 세계화와는 다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인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대항하여 중국이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와 같은 ‘중국판 글로벌 스탠더드’를 일대일로 추진을 통해서 해당 지역에 강하게 투사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또한, 이러한 ‘중국판 글로벌 스탠더드’를 둘러싼 충돌과 갈등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과거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지배하던 세계화와는 다른 세계화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11월 [이달의 답변] 세계화의 종말인가, 다른 방식의 세계화인가

- 지난 글: 11월 [이달의 질문] 전 세계 다양한 탈세계화 현상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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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연구교수 사진
박철현

연구교수
1969년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12년 중국인민대학(中國人民大學)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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