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대형 표절 의혹들이 유야무야 끝난 다음 이후 간간이 불거져 나온 기성 작가 작품들의 표절의혹들이 저기에 그냥 다 묻혀가는 식이었다.
표절 의혹 작가 스스로도 뻔뻔하게 ‘저런 작품들도 표절이 아니라는데 내 작품이 어때서?’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표절에 대해 오래된 기억 하나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이 신문에 실리고 난 다음에 많은 독자들(그들 가운데 이 작품에 밀려 낙선한 많은 응모자들)이 이 작품이 오정희 선생의 <파로호>, <어둠의 집>, <불의 강> 등을 표절했다고 항의했다.
예심과 본심을 거쳤지만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걸 잡아내지 못했다. 나도 그때 작품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오정희 작품 냄새를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눈 밝은 독자들과 응모자들이 항의하자 세계일보는 오정희 선생에게 작품 의견을 묻고, 그걸 바탕으로 심사위원들이 다시 모여 이미 신문에 발표된 작품에 대해 당선취소 결정을 내렸다. 취소 경위에 대해서 “피를 말리듯한 각고로 얻어진 남의 문장을 허락도 없이 쉽게 차용하는 것을 두고 혼성모방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그때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구하기 어려워 그 작품의 어떤 문장이 오정희 선생의 작품을 베낀 것인지 대조해보기 어렵지만, 그때 남보다 작품을 많이 읽은 심사위원들도 그리고 스스로 남보다 작품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던 나도 사전 정보 없이 그걸 그냥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때는 그게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교묘하게 변형하여 베낀 것인 줄 몰랐다. 아마 신문사도 두 작품의 어떤 문장들이 명백하게 똑같다면 그걸 대조만 해보고도 알 텐데 차용해온 문장의 이차변형을 거친 것이라 심사위원들의 의견만이 아니라 해당 작가의 의견까지 들어 그 작품은 표절작으로 여겨 당선을 취소했던 것이다. 한국문단이 표절에 대해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쏟아지기 시작한 표절의혹들
그러면 그 시절 한국문단이 표절에 대해 일반적으로 엄격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전혀 그러지 못했다. 1992년 한국문단을 표절 문제로 술렁이게 했던 작품이 몇 개 있다. 그해 ‘작가세계문학상 제1회 수상작’인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하는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어느 한두 구절 남의 작품 문장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그런 식이었다. 여기에 당연히 표절 시비가 벌어졌고, 작가 스스로 그 늪을 헤쳐 나오며 만들어낸 말이 ‘혼성모방’이었다. 어쨌거나 많은 의혹 속에 작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이고, 이것은 또 하나의 창작기법이다.’ 하는 식으로 그걸 뚫고 나오고 그 책을 낸 출판사 역시 한 배를 탄 운명으로 여기에 힘을 더해 작가를 구출했다. 그래, 이런 건 ‘구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만약 그것이 뒤늦게가 아니라 심사중에 불거진 논란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결과는 정반대로 남게 되지 않았을까? 작품 곳곳에 그토록 많은 표절 의혹을 갖고 있는 작품을 새로 시작하는 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으로 선택할 문예출판사도 없고 심사위원들도 없을 것이다. 표절이냐 아니냐의 결정이 작품 내용보다 그때의 정황과 주변 변수들로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도서 <노르웨이의 숲> (출처: 알라딘)
같은 해인 1992년 장정일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표절했다고 문제 제기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제기를 한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역시 그런 의혹 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대형 표절 의혹에 대해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선을 긋지도 기준을 세우지도 못한 가운데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표절 논란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때 세계일보가 당선작을 취소하며 밝힌 “피를 말리듯한 각고로 얻어진 남의 문장을 허락도 없이 쉽게 차용하는 것을 두고 혼성모방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전후 맥락을 살피면 바로 위의 일들이 있었던 건데 이후 이런 엄격한 잣대는 한국문학 작품 모두에게 적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몸통에 해당하는 기성작가들은 다 빠져 나가고, 등단 신인 작가들 작품 심사에만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돌아보면 이때 한국문학이 표절에 대해 보다 분명한 선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했는데, 저런 대형 표절 의혹들이 유야무야 끝난 다음 이후 간간이 불거져 나온 기성 작가 작품들의 표절의혹들이 저기에 그냥 다 묻혀가는 식이었다. 표절 의혹 작가 스스로도 뻔뻔하게 ‘저런 작품들도 표절이 아니라는데 내 작품이 어때서?’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표절에 대한 도덕성도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져서 남의 작품을 자기 창작품인 것처럼 끌어와서도 나중에 누가 그 부분을 문제제기하면 ‘절대 표절 아니다. 인용을 밝히지 않은 실수다. 이걸 표절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단세포적 의식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적반하장 식으로 표절 의혹 제기자의 정신문제 성격문제까지 들먹이고, 여기에 그 책을 펴낸 문단권력과도 같은 출판사 역시 작가를 엄호하며 그런 문제 제기자를 ‘문단사회 부적응자’ 수준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출판사가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원로 평론가의 표절문제를 제기하고, 그 때문에 원로 평론가의 제자 그룹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하며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이명원 씨가 있다. 표절한 사람은 멀쩡하고, 표절 문제 제기한 사람만 그가 다니던 대학원에서마저 퇴출되듯 스스로 나와야 했다. 이 또한 한국문단의 참 부끄러운 상처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신경숙 표절은 어떻게 나오고 누가 덮어왔나?
2015년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이응준이 발표한 <어둠의 우상- 문학의 타락> 한 부분을 그대로 이용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신경숙은 표절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다.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은 고인의 부친 안창식이 쓴 것인데 이를 신경숙이 자신의 소설 「딸기밭」에 모두 여섯 문단에 걸쳐 완전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장으로 무단 사용한 것이나,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소설 「작별 인사」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 속 문장과 모티프와 분위기 들을 표절했다는 고발 등등은 필경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표절한 것과 비슷하거나 같은 노릇을 여기저기서 상습으로 일삼던 와중에 흩뿌려진 흔적과 증거 들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그때 나는 같은 시대의 작가로서 이응준의 문제 제기를 백번 공감하고 지지했다. 이응준이 기고문에 지적한 대로 그동안 한국문단에 신경숙만큼 많이, 또 자주 표절 시비가 있었던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응준 씨가 예를 든 것처럼 ‘상습적’ 수준으로 ‘표절 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말이 나올 때마다 그게 변방에 우짖는 새 소리로 정도로 그치고 문학판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선 들 수 있는 게 그런 표절 문제들을 작가 대신 전면에 나서서 차단해나간 문단 권력과도 같은 출판사의 힘을 들 수 있겠다. 흔히 한국문단에서 문지, 창비, 문학동네를 문학출판의 3 메이저 출판사라고 부른다. 아예 대놓고 젊은 작가들만의 은어처럼 ‘삼사’라고 부르는 작가들도 많다. 이응준씨도 글을 통해 이들 출판권력의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서 말했다. 당시 신경숙은 신경숙대로 자신의 표절 의혹을 부인하고, 그 책을 출간한 창비 역시 일부 문장에 대해서만 소극적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히려 전체 틀의 표절을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독자들 사이에서 신경숙이 베낀 것으로 의심을 받는 단편소설 <전설>의 한 문단을 그대로 모방한 다음과 같은 페러디가 나왔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양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의 베끼기는 격렬하였다. 출판사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는 여자를 안타까워하다가도 원고를 달라며 여자를 채근하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 표절을 하고 두 달 뒤 남짓, 여자는 벌써 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순한 머릿속으로 문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젖어들었다. 그 문장은 글을 쓰는 여자의 원고지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표절을 하는 게 아니라 표절이 여자에게 빨려오는듯 했다. 여자의 변화를 기뻐한 건 물론 출판사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창비의 태도가 요지부동이자 그런 출판사의 태도에 대해 이형열 씨가 다음과 같은 패러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이것이 표절이 아니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그 트라우마나 이런 진상규명이 확실히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 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알겠다.”
이형열 씨가 올린 글은 당시 해당 출판사로서 창비의 태도가 사과인 듯하지만 일부만의 사과를 통해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표절 옹호에 무게를 둔 것에 대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어법을 그대로 패러디하여 비판한 것이다. 막을 걸 막고, 우길 걸 우겨야지. 이것이 바로 이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는 대한민국 독자들의 수준인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로 ‘문단 보험 카르텔’과도 같은 출판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 이것도 거의 신경숙부터 시작했을 것 같은데, 나들이에서 서울 부산 대구 찍듯 문지 창비 문학동네에 차례로 돌아가며 책을 내니까 그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들 한국 문단권력 패거리 같은 세 출판사가 작가를 ‘결사옹위’의 태도로 호위하고 엄호하며 표절 문제를 은폐시켜 버렸던 것이다. 한국 문학출판에 대한 도덕성은 아마 이들 삼각점 안에 없어지고 말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보험 카르텔’과 관련하여 정말 웃기지도 않은 게 이렇게 세 군데 출판사를 돌아가며 책을 내는 걸 한국의 젊은작가들이 마치 문단의 귀족 증명서나 받은 듯 여긴다는 점이다. 요즘 언론에서 문단 권력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게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문단권력이다. 또 에콜이랍시고 거기에 얹혀 있는(그러나 그야말로 함께 먹는 밥솥에 붙어 기생한다는 표현이 딱 좋은) ‘관제 평론가’들의 상습적 외면도 표절 논란을 음으로 양으로 차단해왔다. 이것이 바로 이응준 씨가 말했던 ‘침묵의 카르텔’이다.
침묵과 외면
앞에서 얘기한 이명원의 사례에서, 또 신경숙의 <딸기밭> 표절 때 그걸 문제제기했다가 오히려 뭘 그런 걸 말하느냐고 한동안 시달림을 당한 어떤 평론가의 사례 등에서 학습된 자기 조심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게 표절인 줄은 알지만 그걸 문제 삼는 자가 오히려 왕따 당하고 매장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나서봐야 괜히 적만 만들고, 또 위험 부담이 따르고, 그게 자칫 어느 성공한 작가에 대한 시기와 질투처럼 비쳐질까봐, 또 그렇게 몰고 갈까봐, 알면서도 침묵하고 외면해온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야 남의 작품을 표절하든 말든 하든 오불관언 나는 내 글에만 신경쓰지 남이야 표절하든 말든 그런저런 일들에 관심 없다, 하는 작가들도 있을 테지만, 이거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다른 작가의 표절 문제에 대해 자신도 그 문제에 떳떳하지 못해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하루키의 정신적 자식들’이라는 말까지 돌았겠는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아주 만연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표절에 대해 이야기 나오면 누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나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러면 한국문단의 표절 문제가 이슈처럼 불거졌던 30년 전, 또 20년 전과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의 문단 권력, 또 출판 권력들이 그걸 은폐하려면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저런 일들이 터졌을 때 그것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할 수 있는 신문이 몇 개 되지 않았고, 신문에 기사화되는 걸 문학담당 기자들과의 면식을 통해 알음알음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응준이 ‘새로’ 문제 제기했던 2015년의 사정은 전과 달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각종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와 카페와, 거기에 한번 문제가 터지면 인터넷에 수십 개의 새로운 기사가 경쟁하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사 하나가 다시 다섯 번 여섯 번 변형을 거치며 재탕 삼탕 기사로 올라온다. 신경숙 급 작가 정도 되면 더욱 그랬다. 아무리 메이저급 출판사라도, 또 그런 출판 권력이라도 도저히 그걸 막아낼 수 없다. 또 표절엔 시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든 이슈화될 때마다 현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시 이응준이 문제 제기했을 신경숙은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 <우국>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보다 더 기막혔던 것은 신경숙의 표절을 두둔하며 내놓은 출판사 창비의 궤변이었다. 창비는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급기야는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해괴한 주장까지 펼쳤다.
이 정도 되면 창비의 판단으로는 신경숙이 잘못한 게 아니라 신경숙보다 먼저 <우국>을 쓴 미시마 유키오가 잘못을 한 것이다. 무얼로 보더라도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는데 이 무엄한 일본 작가가 미래에 신경숙이 쓸 묘사를 수십 년 앞서 남의 묘포장을 짓밟아놓듯 미리 망쳐놓은 거라는 얘기인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문학의 표절을 장려해온 자들이다. 변명을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실제 정치에서도 군사정부 때 총갈의 권력보다 더 야비하고 더러운 문단 권력의 망발인 셈이다.
현재는 어떠한가
이후라고 달라졌는가. 그건 정말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교묘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발상의 표절, 구성의 표절, 이미지의 표절, 아무리 속여도 선수들끼리는 안다. 그래서 여전히 어느 누구의 어느 작품이 해외의 어느 작가 어느 작품을 그대로 따온 것 같다는 말들이 선수들 바닥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의 어떤 작품이 어떤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시기 질투에서 나오는 말들이 절대 아니다. 작가는 창조자인데 복사기의 대명사와 같은 ‘신도리코’ 소리를 들어서야 쓰겠는가. 이러니 학계의 논문 표절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야 할 작가들이 쥐죽은 듯 찍소리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
정말 이참에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표절과 표절작가들은 좀 부끄러운 줄 알고 사라졌으면 좋겠다. 표절에 대한 기준과 잣대도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취소시켰던 그 기준대로, 또 지금 신인작가들 등단 작품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엄격한 잣대대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한국문단의 표절 문제는 오히려 이름 있는 기성작가들 작품에서 늘 발생해왔는데, 늘 신인작가들에게만 적용해왔던 그 잣대로 이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히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 표절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소설가
1957년 강릉에서 태어나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가 당선되고 1988년 <낮달>로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1996년 <수색 어머니 가슴 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제27회 동인문학상, 1997년 <은비령>으로 제 42회 현대문학상, 2000년 <아비의 잠>으로 제1회 이효석문학상, <그대 정동진으로 가면>으로 제 7회 한무숙문학상, 2006년 <푸른모래의 시간>으로 제1회 남촌문학상, <얘들아 단오가자>로 허균문학작가상을 2016년 <나무>로 제5회 녹색문학상을, <삿포로의 여인>으로 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첫눈>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나무>, <삿포로의 여인>, <춘천은 가을도 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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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표절에 대하여
- 이달의 질문 -
이순원
2022-12-15
돌아보면 이때 한국문학이 표절에 대해 보다 분명한 선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했는데,
저런 대형 표절 의혹들이 유야무야 끝난 다음 이후 간간이 불거져 나온 기성 작가 작품들의 표절의혹들이 저기에 그냥 다 묻혀가는 식이었다.
표절 의혹 작가 스스로도 뻔뻔하게 ‘저런 작품들도 표절이 아니라는데 내 작품이 어때서?’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표절에 대해 오래된 기억 하나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이 신문에 실리고 난 다음에 많은 독자들(그들 가운데 이 작품에 밀려 낙선한 많은 응모자들)이 이 작품이 오정희 선생의 <파로호>, <어둠의 집>, <불의 강> 등을 표절했다고 항의했다.
예심과 본심을 거쳤지만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걸 잡아내지 못했다. 나도 그때 작품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오정희 작품 냄새를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눈 밝은 독자들과 응모자들이 항의하자 세계일보는 오정희 선생에게 작품 의견을 묻고, 그걸 바탕으로 심사위원들이 다시 모여 이미 신문에 발표된 작품에 대해 당선취소 결정을 내렸다. 취소 경위에 대해서 “피를 말리듯한 각고로 얻어진 남의 문장을 허락도 없이 쉽게 차용하는 것을 두고 혼성모방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그때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구하기 어려워 그 작품의 어떤 문장이 오정희 선생의 작품을 베낀 것인지 대조해보기 어렵지만, 그때 남보다 작품을 많이 읽은 심사위원들도 그리고 스스로 남보다 작품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던 나도 사전 정보 없이 그걸 그냥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때는 그게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교묘하게 변형하여 베낀 것인 줄 몰랐다. 아마 신문사도 두 작품의 어떤 문장들이 명백하게 똑같다면 그걸 대조만 해보고도 알 텐데 차용해온 문장의 이차변형을 거친 것이라 심사위원들의 의견만이 아니라 해당 작가의 의견까지 들어 그 작품은 표절작으로 여겨 당선을 취소했던 것이다. 한국문단이 표절에 대해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쏟아지기 시작한 표절의혹들
그러면 그 시절 한국문단이 표절에 대해 일반적으로 엄격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전혀 그러지 못했다. 1992년 한국문단을 표절 문제로 술렁이게 했던 작품이 몇 개 있다. 그해 ‘작가세계문학상 제1회 수상작’인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하는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어느 한두 구절 남의 작품 문장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그런 식이었다. 여기에 당연히 표절 시비가 벌어졌고, 작가 스스로 그 늪을 헤쳐 나오며 만들어낸 말이 ‘혼성모방’이었다. 어쨌거나 많은 의혹 속에 작가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이고, 이것은 또 하나의 창작기법이다.’ 하는 식으로 그걸 뚫고 나오고 그 책을 낸 출판사 역시 한 배를 탄 운명으로 여기에 힘을 더해 작가를 구출했다. 그래, 이런 건 ‘구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만약 그것이 뒤늦게가 아니라 심사중에 불거진 논란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결과는 정반대로 남게 되지 않았을까? 작품 곳곳에 그토록 많은 표절 의혹을 갖고 있는 작품을 새로 시작하는 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으로 선택할 문예출판사도 없고 심사위원들도 없을 것이다. 표절이냐 아니냐의 결정이 작품 내용보다 그때의 정황과 주변 변수들로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도서 <노르웨이의 숲> (출처: 알라딘)
같은 해인 1992년 장정일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표절했다고 문제 제기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제기를 한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역시 그런 의혹 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대형 표절 의혹에 대해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선을 긋지도 기준을 세우지도 못한 가운데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표절 논란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때 세계일보가 당선작을 취소하며 밝힌 “피를 말리듯한 각고로 얻어진 남의 문장을 허락도 없이 쉽게 차용하는 것을 두고 혼성모방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전후 맥락을 살피면 바로 위의 일들이 있었던 건데 이후 이런 엄격한 잣대는 한국문학 작품 모두에게 적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몸통에 해당하는 기성작가들은 다 빠져 나가고, 등단 신인 작가들 작품 심사에만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돌아보면 이때 한국문학이 표절에 대해 보다 분명한 선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했는데, 저런 대형 표절 의혹들이 유야무야 끝난 다음 이후 간간이 불거져 나온 기성 작가 작품들의 표절의혹들이 저기에 그냥 다 묻혀가는 식이었다. 표절 의혹 작가 스스로도 뻔뻔하게 ‘저런 작품들도 표절이 아니라는데 내 작품이 어때서?’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표절에 대한 도덕성도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져서 남의 작품을 자기 창작품인 것처럼 끌어와서도 나중에 누가 그 부분을 문제제기하면 ‘절대 표절 아니다. 인용을 밝히지 않은 실수다. 이걸 표절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단세포적 의식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적반하장 식으로 표절 의혹 제기자의 정신문제 성격문제까지 들먹이고, 여기에 그 책을 펴낸 문단권력과도 같은 출판사 역시 작가를 엄호하며 그런 문제 제기자를 ‘문단사회 부적응자’ 수준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출판사가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원로 평론가의 표절문제를 제기하고, 그 때문에 원로 평론가의 제자 그룹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하며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이명원 씨가 있다. 표절한 사람은 멀쩡하고, 표절 문제 제기한 사람만 그가 다니던 대학원에서마저 퇴출되듯 스스로 나와야 했다. 이 또한 한국문단의 참 부끄러운 상처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신경숙 표절은 어떻게 나오고 누가 덮어왔나?
2015년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이응준이 발표한 <어둠의 우상- 문학의 타락> 한 부분을 그대로 이용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신경숙은 표절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다.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은 고인의 부친 안창식이 쓴 것인데 이를 신경숙이 자신의 소설 「딸기밭」에 모두 여섯 문단에 걸쳐 완전 동일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장으로 무단 사용한 것이나,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소설 「작별 인사」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 속 문장과 모티프와 분위기 들을 표절했다는 고발 등등은 필경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표절한 것과 비슷하거나 같은 노릇을 여기저기서 상습으로 일삼던 와중에 흩뿌려진 흔적과 증거 들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그때 나는 같은 시대의 작가로서 이응준의 문제 제기를 백번 공감하고 지지했다. 이응준이 기고문에 지적한 대로 그동안 한국문단에 신경숙만큼 많이, 또 자주 표절 시비가 있었던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응준 씨가 예를 든 것처럼 ‘상습적’ 수준으로 ‘표절 시비가 매우 잦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말이 나올 때마다 그게 변방에 우짖는 새 소리로 정도로 그치고 문학판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선 들 수 있는 게 그런 표절 문제들을 작가 대신 전면에 나서서 차단해나간 문단 권력과도 같은 출판사의 힘을 들 수 있겠다. 흔히 한국문단에서 문지, 창비, 문학동네를 문학출판의 3 메이저 출판사라고 부른다. 아예 대놓고 젊은 작가들만의 은어처럼 ‘삼사’라고 부르는 작가들도 많다. 이응준씨도 글을 통해 이들 출판권력의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서 말했다. 당시 신경숙은 신경숙대로 자신의 표절 의혹을 부인하고, 그 책을 출간한 창비 역시 일부 문장에 대해서만 소극적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히려 전체 틀의 표절을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독자들 사이에서 신경숙이 베낀 것으로 의심을 받는 단편소설 <전설>의 한 문단을 그대로 모방한 다음과 같은 페러디가 나왔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양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의 베끼기는 격렬하였다. 출판사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는 여자를 안타까워하다가도 원고를 달라며 여자를 채근하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 표절을 하고 두 달 뒤 남짓, 여자는 벌써 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순한 머릿속으로 문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젖어들었다. 그 문장은 글을 쓰는 여자의 원고지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표절을 하는 게 아니라 표절이 여자에게 빨려오는듯 했다. 여자의 변화를 기뻐한 건 물론 출판사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창비의 태도가 요지부동이자 그런 출판사의 태도에 대해 이형열 씨가 다음과 같은 패러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이것이 표절이 아니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그 트라우마나 이런 진상규명이 확실히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 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알겠다.”
이형열 씨가 올린 글은 당시 해당 출판사로서 창비의 태도가 사과인 듯하지만 일부만의 사과를 통해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표절 옹호에 무게를 둔 것에 대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어법을 그대로 패러디하여 비판한 것이다. 막을 걸 막고, 우길 걸 우겨야지. 이것이 바로 이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는 대한민국 독자들의 수준인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로 ‘문단 보험 카르텔’과도 같은 출판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 이것도 거의 신경숙부터 시작했을 것 같은데, 나들이에서 서울 부산 대구 찍듯 문지 창비 문학동네에 차례로 돌아가며 책을 내니까 그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들 한국 문단권력 패거리 같은 세 출판사가 작가를 ‘결사옹위’의 태도로 호위하고 엄호하며 표절 문제를 은폐시켜 버렸던 것이다. 한국 문학출판에 대한 도덕성은 아마 이들 삼각점 안에 없어지고 말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보험 카르텔’과 관련하여 정말 웃기지도 않은 게 이렇게 세 군데 출판사를 돌아가며 책을 내는 걸 한국의 젊은작가들이 마치 문단의 귀족 증명서나 받은 듯 여긴다는 점이다. 요즘 언론에서 문단 권력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게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문단권력이다. 또 에콜이랍시고 거기에 얹혀 있는(그러나 그야말로 함께 먹는 밥솥에 붙어 기생한다는 표현이 딱 좋은) ‘관제 평론가’들의 상습적 외면도 표절 논란을 음으로 양으로 차단해왔다. 이것이 바로 이응준 씨가 말했던 ‘침묵의 카르텔’이다.
침묵과 외면
앞에서 얘기한 이명원의 사례에서, 또 신경숙의 <딸기밭> 표절 때 그걸 문제제기했다가 오히려 뭘 그런 걸 말하느냐고 한동안 시달림을 당한 어떤 평론가의 사례 등에서 학습된 자기 조심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게 표절인 줄은 알지만 그걸 문제 삼는 자가 오히려 왕따 당하고 매장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나서봐야 괜히 적만 만들고, 또 위험 부담이 따르고, 그게 자칫 어느 성공한 작가에 대한 시기와 질투처럼 비쳐질까봐, 또 그렇게 몰고 갈까봐, 알면서도 침묵하고 외면해온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야 남의 작품을 표절하든 말든 하든 오불관언 나는 내 글에만 신경쓰지 남이야 표절하든 말든 그런저런 일들에 관심 없다, 하는 작가들도 있을 테지만, 이거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다른 작가의 표절 문제에 대해 자신도 그 문제에 떳떳하지 못해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하루키의 정신적 자식들’이라는 말까지 돌았겠는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아주 만연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표절에 대해 이야기 나오면 누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나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러면 한국문단의 표절 문제가 이슈처럼 불거졌던 30년 전, 또 20년 전과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의 문단 권력, 또 출판 권력들이 그걸 은폐하려면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저런 일들이 터졌을 때 그것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할 수 있는 신문이 몇 개 되지 않았고, 신문에 기사화되는 걸 문학담당 기자들과의 면식을 통해 알음알음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응준이 ‘새로’ 문제 제기했던 2015년의 사정은 전과 달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각종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와 카페와, 거기에 한번 문제가 터지면 인터넷에 수십 개의 새로운 기사가 경쟁하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사 하나가 다시 다섯 번 여섯 번 변형을 거치며 재탕 삼탕 기사로 올라온다. 신경숙 급 작가 정도 되면 더욱 그랬다. 아무리 메이저급 출판사라도, 또 그런 출판 권력이라도 도저히 그걸 막아낼 수 없다. 또 표절엔 시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든 이슈화될 때마다 현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시 이응준이 문제 제기했을 신경숙은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 <우국>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보다 더 기막혔던 것은 신경숙의 표절을 두둔하며 내놓은 출판사 창비의 궤변이었다. 창비는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급기야는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해괴한 주장까지 펼쳤다.
이 정도 되면 창비의 판단으로는 신경숙이 잘못한 게 아니라 신경숙보다 먼저 <우국>을 쓴 미시마 유키오가 잘못을 한 것이다. 무얼로 보더라도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는데 이 무엄한 일본 작가가 미래에 신경숙이 쓸 묘사를 수십 년 앞서 남의 묘포장을 짓밟아놓듯 미리 망쳐놓은 거라는 얘기인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문학의 표절을 장려해온 자들이다. 변명을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실제 정치에서도 군사정부 때 총갈의 권력보다 더 야비하고 더러운 문단 권력의 망발인 셈이다.
현재는 어떠한가
이후라고 달라졌는가. 그건 정말 알 수 없다. 오히려 더 교묘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발상의 표절, 구성의 표절, 이미지의 표절, 아무리 속여도 선수들끼리는 안다. 그래서 여전히 어느 누구의 어느 작품이 해외의 어느 작가 어느 작품을 그대로 따온 것 같다는 말들이 선수들 바닥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의 어떤 작품이 어떤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시기 질투에서 나오는 말들이 절대 아니다. 작가는 창조자인데 복사기의 대명사와 같은 ‘신도리코’ 소리를 들어서야 쓰겠는가. 이러니 학계의 논문 표절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야 할 작가들이 쥐죽은 듯 찍소리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
정말 이참에 한국문단의 고질적인 표절과 표절작가들은 좀 부끄러운 줄 알고 사라졌으면 좋겠다. 표절에 대한 기준과 잣대도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취소시켰던 그 기준대로, 또 지금 신인작가들 등단 작품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엄격한 잣대대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한국문단의 표절 문제는 오히려 이름 있는 기성작가들 작품에서 늘 발생해왔는데, 늘 신인작가들에게만 적용해왔던 그 잣대로 이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히 엄격한 기준이 아니라 표절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12월 [이달의 질문] 한국 문단의 표절에 대하여
- 지난 글: 11월 [이달의 답변] 세계화의 종말인가, 다른 방식의 세계화인가
소설가
1957년 강릉에서 태어나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가 당선되고 1988년 <낮달>로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1996년 <수색 어머니 가슴 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제27회 동인문학상, 1997년 <은비령>으로 제 42회 현대문학상, 2000년 <아비의 잠>으로 제1회 이효석문학상, <그대 정동진으로 가면>으로 제 7회 한무숙문학상, 2006년 <푸른모래의 시간>으로 제1회 남촌문학상, <얘들아 단오가자>로 허균문학작가상을 2016년 <나무>로 제5회 녹색문학상을, <삿포로의 여인>으로 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첫눈>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19세>, <나무>, <삿포로의 여인>, <춘천은 가을도 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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