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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인문 문화 이야기

호오이호오이~숨비소리!

제주 해녀박물관

2017.05.11



숨비소리

▲ 숨비소리


❝호오이호오이...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약 1분에서 2분가량 잠수하며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호오이호오이’ 하는 소리가 난다.❞

-해녀박물관


제주해녀박물관 외부제주해녀박물관 광장

▲ 해녀박물관 외부 / 해녀박물관 광장


제주해녀박물관 소개제주해녀박물관 시설배치도

▲ 해녀박물관 소개 / 해녀박물관 시설배치도

 

삼춘의 헐거운 고무신엔 바다가 따라 다닌다

해녀박물관을 찾은 날은 바람이 어찌나 센지 단발 머리카락이 뺨을 후려치는 아픔을 느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낭(제주 대문의 일종)을 지나 오십여 미터를 걸어 해녀박물관 유리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바람이 매서웠다. 출입구를 들어서자 넓은 홀 넘어 유리창으로 넘실대는 바다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 왔다. 날씨 탓인지 박물관은 비교적 한산했다. 바닥에 표시된 순서대로 박물관을 둘러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해녀가 제주도, 울릉도, 일본 일부 지역에만 존재한다고 쓰여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다 보면 동네 해녀 삼춘(제주에선 이웃어른을 ‘삼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겐 일상이었다. 바다에서 걸어 나오시는 삼촌의 굽은 허리엔, 소라며 미역, 문어들이 담긴 테왁 망사리가 알맞게 얹혀 있었다. 온몸에 미역을 칭칭 감은 문어는 망사리 속에서도 대장질을 해댄다.


박물관 내부

▲ 박물관 내부


“삼춘, 문어 꼴랭이 나완마씨~”(삼춘, 문어 꼬리 나왔어요.) “어떵 안헌다. 집이 어멍 이시냐? 강 들어보라...전복 가져 가느넨, 이~?”(괜찮다. 집에 어머니 계시냐? 가서 들어봐라, 전복 갖고 가느냐고? 알았니?) 차바차박, 삼춘의 헐거운 고무신엔 바다가 따라 다니며 흔적을 뿌린다. 조그만 우리 동네엔 해녀 삼춘도 많지 않아 불턱(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쉬던 장소)이 따로 없었는지, 오랜 기억 속엔 바다에서 쓱~ 나온 해녀삼춘이 바닷물까지 그대로 담아 걸어오시는 모습만 각인이 되어 영상처럼 흔들거린다.


해녀의 집해녀의 밥상부엌(정지)

▲ 해녀의 집, 밥상, 부엌(정지)


제주 해녀박물관

해녀의 생활을 보여주는 제1전시실에는 1960 ~1970년대 제주 어촌 살림살이를 재현하고 있다. 해녀들의 기부로 이루어지기도 한 살림살이 전시를 보며 어릴 적 동네에서 흔히 봤던 추억에 젖어 들었다. 물허벅, 지세항아리, 애기구덕… 건강하게 잘 자란 아기가 쓰던 애기구덕은 대대손손 곱게 물려주기도 했다.


해녀의 물옷해녀의 물질도구1해녀의 물질도구2

▲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도구

 

 

2016년 11월 3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배경에는 제주 해녀만이 갖는 독특한 정체성과 인간적인 질서, 불턱에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배려, 자연과 함께 살아나가려는 점등 공동체 문화를 높게 평가 받았다고 한다.


해녀볼턱 모습변화하는 볼턱

▲ 해녀불턱 모습 / 변화하는 불턱 모습


* 불턱 :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이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바다 밭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하며 해녀 간 상호협조를 재확인하고 의사결정이 이우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해안에는 마을마다 3~4개씩의 불턱이 있었으며 현재도 70여개의 불턱이 남아있다. 1985년을 전후하여 해녀보호 차원에서 마을마다 현대식 탈의장을 설치하였는데 개량 잠수복인 고무옷의 보급에 따라 온수목욕시설이 갖추어진 탈의장은 필수 시설이 되었으며 불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해녀박물관


신광수 잠녀가

▲ 신광수 잠녀가


신광수 잠녀가에는 ‘탐라여자들은 잠수질을 잘하느니라, 열 살 때 벌써 앞 냇가에서 배운다. 이 곳 풍속에 신부감으로는 잠녀가 제일…’ 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도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의 풍속을 알아 챌 수 있다. 필자는 열세 살에 바다에서 수영을 익혔으니 조금 늦은 편인 듯 싶다.


구좌읍 하도리 각시당무사안녕기원

▲ 무속의례(구좌읍 하도리 각시당 / 무사안녕기원)


* 무속의례 : 제주도의 어촌 마을에서는 해녀들이 중심이 되어서 무사안녕, 풍요로운 해산물 채취, 공동체의 화합 등을 비는 무속 의례를 해마다 이어오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된 데에는 해녀들의 ‘물질’과 ‘잠수굿’, ‘해녀노래’등을 총체적으로 포함 하고 있다.


해녀 모형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한 손엔 소라를 한 손엔 빗창을 든 물질하는 해녀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물건 그래도 테왁망사리를 한 가득 채우는 기쁨’ 이라고 쓰인 글이 보인다.


해녀 삼촌이 전복을 따 왔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아버지 보약으로 기다리던 참이라 한 걸음에 나서신다. 나는 어머니의 잰 걸음을 쫒아 삼춘 집으로 촐랑촐랑 뛰어 간다. “아이고 어떵 영 큰큰 헌거 잡아 집디강… 손바닥만이 허다양…”(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큰 걸 잡을 수 있었나요… 손바닥만큼이나 하네요), “말 맙써 미역 좁아 댕기는디… 허영헌거 봐지는거 아니, 담 고망더래 곱잰 허는거 숨 뽓당 죽엄직 해도, 이 놈이걸 이기주 허멍 동겼쥬…호이… 곧 죽어짐직…”(말 마세요, 미역 잡아 당기는데… 하얀 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담 구멍에 숨으려고 하는데 숨이 막혀 죽어질 듯해도 이 전복을 이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당겼답니다… 호이… 금방 죽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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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해녀관


아이 낳고 살림하고 먹을거리마저 책임져야 했던 제주 여인들의 삶은 각박했다. 검푸른 바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체도 없는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각자의 사연을 담아 노동요로 한풀이 해댔고, 너나없이 힘들 때니 서로 의지하며 살아 냈지 싶다.


해녀 노래


해녀노래


이어사나 이어도사나~

우리 어멍 나를 낳은 날은

해도 달도 없는 날에 나를 낳았나

요렇게도 힘든 일을 시켰던가?

울면서 헤엄쳐가고, 헤엄쳐 오고…

혼착 손에 테왁 심고 혼착 손에 비창 심엉

혼질 두질 들어가 보니 저승도가 분명하다

…이어사나, 이어도사나~


해녀노래는 제주해녀들이 물질하러 나가면서 부르는 노동요다. 해녀 여럿이 먼 바다로 나갈 때 돛배 노를 저으며 부르는데 파도가 세어 힘들어 질 때면, ‘이여싸, 져어라져어라, 이여도사나, 이여사나’ 등을 힘차게 붙여 부르는 특징이 있다.


해녀항일기념탑

▲ 해녀항일기념탑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2년 1월 구좌면과 성산면, 우도면 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수탈 정책과 민족적 차별에 항거한 해녀들이 일으킨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항일 운동이다. 이 운동은 여성들이 주도한 유일한 항일운동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해녀박물관



사진= 이경열


장소정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제주 해녀박물관
해녀 제주 해녀박물관 무형문화재 불턱 무속의례 제주해녀항일운동
이경열
인문쟁이 이경열
[인문쟁이 2기]


이경열은 틈만 나면 친구들이 있는 제주시로 나설 궁리를 하지만 부모님이 계신 서귀포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은퇴 후 제2막 인생을 즐기는 인생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을 한다. 엉뚱하고 FUN한 퍼포먼스를 기획할 때 신이나고 사는 맛을 느낀다. 겸손과 배려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효를 말하는 공자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일기를 잃어버렸던 트라우마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지만, 인문쟁이를 빌어서 낙서쟁이 소녀로 돌아가고 싶다. kissday1967@daum.net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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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제주도 여행가면 가봐야겠어요

    김형민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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